!@#… 늘 이야기하듯, 종이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도 이 정도 분량을 받고 좋은 독자층을 지닌 리뷰를 연재할 지면이 요긴하다. 이런 작품 덕에 더.
건강한 건강만화 – [다이어터]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는 물론 대중문화 일반에서, 주인공의 ‘뚱뚱함’은 단순한 신체특성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일종의 캐릭터 코드다. 평범한 주인공이라면 당대에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여질 법한 적당히 건장한 체형이기에, 일부러 뚱뚱하게 만든다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찌질한’ 성격으로 만들기 위한 희화화의 대상이거나, 그래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적당한 옹호의 소재를 위한 도구가 된다. 뚱뚱한 여주인공이 전신성형의 결과 미녀로 거듭나는데 성격은 원래의 주눅든 모습 그대로라서 벌어지는 소동들을 그려낸 [미녀는 괴로워] 같은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주눅 들어 변신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일상생활이 불편해서 살을 빼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리고 빼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도전과 극복을 캐릭터의 성장으로 그려낸다. 억지로 희화화할 것 없이 현실성 때문에 공감대의 유머가 만들어지고, 서서히 열심히 훈련을 해서 정상체중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당당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팍팍해지기 쉬운 접근법이지만, 전문적 디테일과 만화적 재미를 제대로 구현해서 표현해낸다면 뛰어난 전문소재 극만화를 탄생시킬 수 있다.
포털사이트 미디어다음에서 큰 호응 속에 연재중인 [다이어터](캐러멜 그림, 네온비 글 / 중앙북스 / 1권 발매중)는 비만체형 주인공인 수지, 그의 개인 트레이너 찬희, 그리고 수지의 직장 상사인 부장이 펼치는 다이어트 이야기다. 수지는 뚱뚱하다고 주변에서 노골적으로 구박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무절제한 식생활 속에서 결국 스스로 불편해지기에 이른 수지가 수차례의 어설픈 다이어트 결심과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 포기하려고 한다. 그 때 수지의 헬스클럽 등록비를 등쳐먹으려던 초보(혹은 무자격) 트레이너 찬희가, 그녀의 다이어트를 성공시켜서 홍보하여 승승장구하겠다는 사적 욕심을 위해 동거하며 체계적 밀착 훈련에 들어간다. 한편 수지를 내심 좋아하던 부장은 둘의 사이를 질투하며 자신이 더 효과적으로 살을 빼서 찬희의 무능을 증명하고 수지의 마음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무리수 다이어트를 벌인다. 이들이 벌이는 살 빼는 일상 속에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마음가짐과 신체적 욕구들, 체계적으로 건강하게 정상체중을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들, 지름길만을 추구하여 무리하는 방식들 등이 풍부하게 그려진다.
[다이어터]는 디테일의 힘과 만화적 과장을 함께 효과적으로 구사할 때 전문 소재 극만화가 얼마나 재미있어질 수 있는지 거의 교과서적 사례다. 여러 작품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인 “소재의 디테일 자체를 만화적으로 과장”하는 식이 아니다. 디테일은 다루는 소재를 더 자세하고 제대로 알아가기 위한 요소고, 과장은 사람들이 엮어가는 극 전개에 한정한다. 그러면서도 소재와 전개가 서로 겉돌지 않도록 엮어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그런 연결을 맡아주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트레이너 찬희의 역할이다. 지식학습만화로 치자면 ‘박사님’ 같이 디테일을 직접 설명하는 기능을 해주곤 하면서도, 동시에 극 안에서는 치졸하고 이기적인데도 목표를 위해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며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은, 재미있는 캐릭터다. 즉, 애매한 수준의 트렌디드라마나 별 극적 재미 없이 특정요법에 대한 과장 광고 등으로 빠지곤 하던 여타 다이어트 소재 만화들과 달리 캐릭터극으로서도 훌륭하다. 다만, 감정이입을 충분히 얻는 매력적인 남녀주인공들이 한 방에서 같이 자도 애정의 상상력보다는 먹을 것을 둘러싼 소동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코믹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소재의 디테일과 만화적 과장의 재미를 엮어주는 것은 이들의 다이어트 생활과 평행적으로 벌어지는 ‘수지나라’ 이야기다. 수지나라는 수지의 몸 속 기관과 영양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그들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세상이다. 폭군 내지 조폭 같은 지방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조금씩 강하게 성장해나가는, 억압받는 철거민 같은 근육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다. 다이어트가 진행되거나 중간에 실패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신체 변화들의 과학적 디테일을 재난과 모험, 성장담으로 하나씩 비유하여 펼치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묘하게 감동적일 정도다. 또한 다이어트 과정의 단조로움을 그저 작가의 교훈적 강변으로 보충하는 유치한 접근방식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다이어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포기의 유혹, 세부 디테일에서 잘못 접근할 경우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 – 하지만 정석을 걷는 주인공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는지 – 보여주는 부장 캐릭터 등을 통해서 충분한 갈등구조를 넣는다. 호의 넘치는 철없는 중년인 부장을 악역(!)다운 악역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다이어트를 둘러싼 상황들의 디테일은 대단한 수준이다. 초반 상당한 분량을 주인공이 다이어트를 시작도 못하는 부족한 결단력을 그려내는 것에 할당하는데, 특별할 것 없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흔한 일상이 모두 그 의지 박약에 기여한다. “살이 쪄서 힘든 상황”은 단지 뚱뚱하다고 놀림 받는다는 정도의 피상적 수준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에서는 그럭저럭 배려하지만 스스로는 발톱 깎을 때조차 힘들다는 부분에서 포착한다. 다이어트의 힘든 부분은 적당히 장르 코드화된 식탐 정도로 포장하기보다, 뇌라는 신체기관의 작용에서 오는 허기와 엄마 몰래 한밤중에 찌개에서 고기 건져먹던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 디테일을 필살기 삼아 무슨 단일한 최고 고수의 경지를 노리는 식의 단순화를 피한다. 현실에 기반한 균형감각, 즉 모두에게 같은 식단과 운동 스케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개별 상담하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단순히 음식물을 어떤 식으로 제한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식의 비과학적 거짓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먹을 것을 너무 억누르지는 않는 적당히 균형을 잡는 식단과 건강한 식습관과 단계적으로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하는 운동을 이야기한다. 전개가 늘어지기 쉬운 웹툰 연재물의 단점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한 회 분량 속에서 기승전결과 정보량을 빼곡하게 담아내는 호흡조절도 장점이다.
[다이어터]의 기반에는 온라인 문화의 패러디 유머감각, 만화게시판 ‘일상툰’에서 사소한 공감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접근방식 등이 고루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예쁜 뚱뚱함, 귀여운 치졸함 등의 복합적 성질들을 초롱초롱한 눈과 어이 없어하는 표정 등을 통해서 풍부하게 묘사해내는 그림체 역시 큰 도움이 된다. 아직 연재중인 만큼 이후 전개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해두더라도, 즉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의 ‘웰메이드’라는 수식어를 가장 망설임 없이 붙여줄 수 있는 오늘날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다이어터 1 : 식이조절 편 네온비 지음, 캐러멜 그림/중앙books(중앙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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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마조앤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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