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돈을 벌자: 독자론(4) 세계의 독자 [만화규장각 칼럼]

!@#… 게재본은 여기로. 한류라는 (각자의 기대에 비하여 실체가 어느 정도인가는 다른 기회에…) 붐에 대한 자긍심 고무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여러 권역 독자들에 대한 시야 그 자체다.

 

만화로 돈을 벌자: 독자론(4) 세계의 독자

김낙호(만화연구가)

여느 산업 영역의 수출 역군 논리와 마찬가지로, 문화산업 역시 꾸준히 ‘한류’라는 버즈워드를 통해서 사회적 관심과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시장을 넓혀야 다음 단계의 성장을 노릴 수 있다는 엄연한 물질 조건과 해외에서의 성과를 들이밀어야 국내에서도 번듯한 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문화적 분위기 등이 어우러지며 나타나곤 하는 현상이다. 산업적 규모를 논할 만큼의 작품 수출이 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만화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에는 ‘K툰’이니 ‘만화한류’니 하는 마케팅 신조어들이 업계와 지원기관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왜 이미 00년대 중반부터 서구권 팬 커뮤니티 사이에서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Manhwa라는 용어의 브랜드 가치는 깨끗하게 무시하고 바퀴를 재발명하려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작품을 내겠다고 할 때 승인을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출’을 해보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신경써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세계 다른 곳들의 만화 독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려는 것이다. 현지의 독자들을 알아야 이쪽에서 무엇을 집중적으로 가다듬어야하는지 계획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규모(추산) 수치 뽑아서 도표 만드는 것보다 덜 명확해 보이기 때문에(게다가 그런 질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만화연구 전문인력이 그만큼 더 한정적이기 때문에) 등한시되기 쉽다. 하지만 커다란 권역별 구분에서만이라도, 독자들의 전반적 성향 차이에 관한 평론가 및 제작/유통 현업인들의 여러 통찰들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자의 다름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워낙 일본 만화를 익숙하게 즐겨온 만큼, 한국 독자들이 재미있다고 여기는 작품이면 일본 만화 독자들도 대략 납득할 수 있겠다는 식의 착각은 곤란하다. 일본에서 일정 정도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은 한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제작과정에 일본 현지 제작업체가 개입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신암행어사]는 스토리작가 만화작가 모두 한국인이지만, 연재지면인 일본 잡지의 편집기자 시스템을 통해서 제작이 조율되었다. 실력 있는 한국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온 스퀘어에닉스는 아예 한국인 편집자를 기용해서 적극적 양국 인력 협업과 실험을 이끌어가고 있다. 반면 순수하게 한국에서 작품의 모든 것이 완성된 작품이라면, [궁] 같이 한류드라마 붐이라는 기회와 잘 맞아떨어졌던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주류적 성공을 얻어냈다고 할 만한 화제작을 따로 꼽기가 힘들다.

이런 현상은 고도로 발달한(“더 좋은”이라는 의미와 다르다) 장르적 완성도에 익숙한 수용자층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주류 만화 독자들은, 미국의 헐리웃 오락영화 관객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한 때는 “미국인들은 오만해서 영어자막이 달린 영화를 관람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떠돌아다녔지만, 무협영화 ‘와호장룡’의 성공 이후로 좀 더 세련된 해석이 필요했다. 만듦새 전반에서 장르적 기대를 충족하는 작품에 대중적 열광이 모이는 것이고, 낯선 것은 예술적 충격이라는 훨씬 좁은 수용자층의 전유물이다. 그렇기에 만약 외국에서 좋은 소재의 작품이 나왔거나 다시 볼 만한 고전영화가 장르적 익숙함 측면에서 괴리가 있다면, 헐리웃에서는 현재 주류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화면과 연출과 얼굴들을 넣은 리메이크 버전을 찍어낸다.

그런 비슷한 경우가 최근 만화에서 벌어진 것이 바로 [신과 함께](주호민)의 일본 리메이크 연재다. 한국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일본 작가가 다시 그린 것인데, 세계관도 이야기의 무대도 한국이라는 설정 그대로 갔다. 이것은 무슨 한국 만화에 대한 폄하나 한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본 주류 독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에 제작사가 그렇게 선택한 방식일 뿐이다. 좋은 이야기라고 인정했기에 그 작품을 잡은 것이고, 일본 주류 독자층이 익숙하게 기대하는 장르적 모습들로 채워야 괴리감 없이 히트시킬 수 있기에 굳이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 시간을 들여가며 새로 그려내는 것이다. 장르적 완성도(즉 까다로운 익숙함)에 대한 민감함이 일본 주류 만화독자들의 성향이다.

특정 국가에서 만화를 애호하는 독자층이라 하더라도 내막은 좀 더 세분화된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주류 만화 독자들은 ‘망가’ 독자들과 ‘코믹북’ 독자들로 성향이 비교적 갈리는 편이다. 물론 둘 다 좋아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대형 체인점형 동네 서점의 바닥에 앉아서 쇼조망가를 독파하는 십대 청소년들과, 만화전문점에서 금주의 신간 발매를 체크하는 슈퍼히어로 티셔츠를 입은 젊은 아저씨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꽤 다르다. 전자는 연속극을 보듯이 작품을 훑어내리며, 후자는 단일한 이야기 한 가지보다는 작품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의 완성도와 참여 가능성에 집착한다. 그렇기에 망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만한 성질의 작품을 코믹북 형식으로 시장에 내놓아서 큰 성공을 기대하기는 힘들며, 반대방향도 마찬가지다.

해당 권역 만화독자들이 더 높게 평가하는 부분, 좀 부족해도 크게 망치지 않는 부분도 사전조사를 해둘만한 부분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권의 ‘알붐’ 판형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시각적 상상력에 대한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이야기 전개의 박진감 넘치는 페이스가 좀 부족하더라도 시각적 상상력의 완성도에서 대중적 인정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출방식은 망가 형식에 가까운데 그림만 화려하고 복잡한 스타일로 일관하면, 어느 쪽으로 기대를 둬야할지 모르기에 그다지 높은 호소력을 발휘하기 힘들고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하는 것도 어렵다.

이런 것들은 그간 여러 만화 전문가 칼럼지면들을 통해서 비교적 잘 알려진 속설들에 가깝다. 그보다 더 자세한 개별 디테일은 다시금 여러 가지 존재하고 구분되기 마련이니, 늘 자신이 정말로 노리는 타겟 독자층에 대한 구체적 조사 작업이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으면서도 적당히 얼버무리며 생략되곤 하는 부분이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반면 세계 어디서든 비슷하게 나타나는 독자들의 모습도 있는데, 바로 향유와 공유라는 두 가지 효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즐기는 것, 그리고 자신의 즐김을 타인들과 나누며 취향을 확인 받고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의 생계 같은 것은 지극히 부차적인 부분일 뿐이다(게다가 대중문화 분야에서 스타는 어차피 돈을 많이 번다는 고정 관념이 적지 않다).

이런 기본 성향들은,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 해적판 만화 사이트가 나름대로 인기를 얻으며 존재하도록 한다. 내가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고, 최대한 널리 남들과 나누며 자신을 과시하고, 그 과정에서 딱히 창작자의 이득이 침해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을 때 발현되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귀결이다. 사업 대상으로 삼은 국가에서 온라인 해적판으로 돌고 있으면, 정식 유료 판본으로 내놓을 만한 동력이 부족해지기에, 수출에 있어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영역이다.

온라인 해적만화 사이트는 수익의 선순환을 망치는 방식인 만큼 당연히 저작권 단속을 통해 규제해야하지만, 완전히 막을 만한 방법 또한 없고, 효용이 존재하는 만큼 기술적 우회로를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새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적절한 단속과 함께, 원래 존재하는 동기를 더 강화시켜주는 정식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 세계 독자들의 향유와 공유에 대한 욕구를 해적판으로 충족시키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합법적 루트로 유도할 것인가. 즉 해적사이트를 능가하는 더 편리한 향유, 더 넓은 공유가 필수적이다.

편리한 향유로 보자면, 디지털에서는 음악에서 아이튠즈가 그랬듯이 쉬운 결재와 다운로드, 철저한 태깅과 분류, 그리고 열람툴과 작품 파일 모두에 대한 지속적 업데이트 사후관리가 바람직하다. 종이책이라면 디지털 보너스, 전세트 소장시 보너스 부여 등, 많이 가지고 있음에 대한 혜택을 설계하는 것도 좋다. 넓은 공유로 보자면, 각종 SNS와 연동하고 게임화된 보상체계를 통해 타인들에게 자신의 우월한 만화사랑을 과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들이 좋다. 소셜데이터에 기반한 작품 추천, 리뷰 축적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해볼만하다. 다만 어떤 경우도, 타겟으로 하는 해당 국가의 만화독자들에게 충분히 익숙한 방식(인터페이스부터 관리자의 자세까지 전부)으로 하는 것은 지극히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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