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굳이 정말로 비운의 명작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고, 한정된 인지도로 저평가되는 것이 마냥 아쉽다는.

동네적 삶의 모험성장극 -『미스문방구매니저』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 드라마에서 최근 수년간 소위 저주받은 걸작 또는 비운의 명작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시청률이 처절하게 낮다느니 소수에게만 열광적으로 인기를 끈다느니 하는 지당한 이야기 말고, 내용적으로 어떤 비슷한 코드가 종종 엿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남루한 일상적 삶을 사는 이야기가 많다. 물론 일상의 와중에서 보물찾기가 벌어진다든지 혹은 취업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든지 사건은 충분하지만, 기본적으로 폼 나는 코드가 없이 그저 서민적 페이소스 자체만으로 승부한다. 또한 종종, 그 주인공들은 신비감 없는 아웃사이더들이다. 반항아나 천재 같은 식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낙천적 백수, 특정 소소한 분야의 ‘오타쿠’, 구멍가게 알바생 등이다. 또, 핑크빛 연애 관계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물론 각종 짝사랑 등 연애담이 빠지는 경우는 적지만, 핑크빛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생활의 찌든 얼룩이 든 느낌에 가깝다. 즉 동지애의 연대와 우정 같은 느낌이 로맨틱한 사랑의 느낌을 자주 압도한다. 즉 드라마속 주인공들이라기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의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더라도 그 취향에 동의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섬세함으로 다가오지만, 역시 보편적으로 화려한 현실도피의 오락성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물론 전자에 속하는 이들의 경우,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좀 더 인기를 끌지 못할까 한탄을 터트리기 마련이다.

『미스문방구매니저』(캐러멜 / 팝툰 / 1권 발매중)는 바로 그런 식의 한탄을 터트리는 것이 마땅할 만화다. 포털사이트 미디어다음에서 연재중인데, 본격적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여타 만화들, 혹은 아예 대놓고 장르팬들을 노리는 다른 만화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묻혀있다. 하지만 이런 완성도 높은 백수 보물찾기 고교생 성장 난리 코메디(뭐랄까, 더 깔끔하게 이 이야기의 성향을 압축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가 더 널리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억울한 일이다. 이번에 종이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니, 이왕이면 비슷한 성향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걸어갔던 길이 아니라 널리 인정받는 히트작의 길을 걷도록 장려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백수 여주인공 하영이 집안의 가보이자 출처가 수상쩍은 황금양동이를 도난당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범인을 잡기 위해 몸져 누운 아버지의 문방구를 관리하며 몇 가지 단서를 통해서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여기에 그녀에게 반 강제로 동원되어 돕게 되는 포동포동한 체형의 오타쿠 오덕훈, 그의 친구이자 문명반대 아버지 밑에서 특이하게 자라났으며 알고 보면 무척 ‘찌질한’ 성격의 소유자인 전교급 꽃미남 정훈남, 그리고 자존심과 자립심 강한 까칠한 여고생 이희주 등 4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범인 잡기라는 수사극이 중심에 놓일 듯한 설정이지만, 정작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각 주연들과 조연들의 사연이 서로 얽혀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인간적 페이소스에 놓여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코메디인 만큼 포복절도할 시트콤식 상황극의 매력이 많은 경우 가장 전면에 두드러진다. 특정한 상황이 주어질 때 캐릭터들 사이의 성격 충돌에 의한 희극성이 기본이며, 만화적 과장이 효과적으로 가미된 티격태격 과정의 리듬 감각이 훌륭하다. 즉 하나의 우스운 상황을 던지고 여운 속에 캐릭터들과 독자들을 할 말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희극적 상황이 지속되는 식이다. 잘 구축된 캐릭터, 현실적인 소소함이 살아있는 분위기, 동네라는 좁은 이야기 공간등 여러 요소들이 이를 위해 잘 갖추어져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미스문방구매니저』의 미덕은 특유의 섬세함에 있다. 각 주연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궁상스러움이 있고 나름의 자존심, 그 바탕에 있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더욱이 캐릭터들의 말투(특히 오덕훈의 오타쿠체 “…다는”이 압권이다), 특정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나타내는 행동 성향 등이 무척 잘 구축되어 있어서, 한번 이야기에 빠져들고 나면 인물들의 설득력이 대단하다. 그 경지에 도달하고 나면, 굳이 엄청나게 극적인 효과 없이도 작은 상황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각자의 감정이 묻어나오게 된다. 나아가 현실성의 측면이 녹록하지 않아서,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백수의 정서와 오타쿠의 스타일은 상당한 직접 경험이 없으면 이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밀하다. 여하튼 이런 기반 위에, 일방적 권력관계로 시작했다가 점차 우정 비슷하게 변모하는 오덕훈과 하영의 수사극 콤비플레이, 하영을 짝사랑하는 정훈남의 소심한 접근 등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묻어나오는 감정선이 가장 큰 성과다.

또 하나의 큰 매력은 바로 이 작품에서 인간사는 서로 연결되어 결국 알고 보면 한 두 다리 건너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누구의 친구가 사실 알고 보니 옆집 누군가에게 빚을 졌고, 누군가의 스토커가 다른 어떤 조연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그런 연계는 만화에서 촘촘한 캐릭터들로 흔히 가장 먼저 꼽히곤 하는 강풀의 작품들과도 느낌이 다르다. 어떤 기구한 또는 아름다운 인연의 운명적 끈이라는 느낌보다, 마치 반상회에 가서 만난 옆집 아줌마가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식의 세상 참 좁다는 느낌, ‘동네적인 삶’의 향취다. 하기야 그렇기에 그 관계는 진득하게 서로를 구속하기보다 오히려 이야기 속에서 묘한 삶의 현실성(?)에 기여한다. 덕분에 동네적인 삶을 살아본 경험 혹은 살고 있는 독자들(사실, 거의 모든 독자들)이 한번 발동이 걸리기만 한다면 깊게 몰입할만한 것인 셈이다. 맨 처음에 언급한 드라마들의 사례처럼,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을 우선 붙잡아 봄으로써 그런 발동을 걸리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히 넘친다.

『미스문방구매니저』가 이번에 종이 책으로 나온 방식은, 최근의 무척 점차 눈에 띄는 긍정적인 웹만화 출판 사례 가운데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전기가 되어줄 듯 하다. 칸 단위의 재편집과 아직 그림이 확고하게 다져지기 전의 초창기 원고에 대한 전면 재수정은 물론, 이야기 단위까지도 원래의 연재분에 얽매이지 않고 이야기 단락을 새로 나누었다(비록 이왕이면 좀 더 많은 내용을 밀도 있게 편집해 넣어서 더 많은 이야기 전개 분량을 담아주었더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말이다). 웹만화에서 출판만화로 가는 것은 독서의 맥락이 완전히 바뀌는 새로운 매체이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책은 책으로서 의미가 있도록 접근하고 있는 작가와 편집부의 열의는 더욱 장려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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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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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문방구 매니저 1 캐러멜 지음/팝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