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WE3를 다루려고 생각했는데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같은 출판사에서) 이게 툭 나와버렸더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찍어내기만 하고 땡”은 참 곤란하다.
동물의 자유, 인간의 자유 –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에서 의인화라고 하면, 인간 생활을 하는 캐릭터가 동물의 얼굴로 표현된 것은 쉽게 상상하게 된다. 동물 그림이라는 표현 속성상 만화에서 구현하기 쉬운 방식인데, 더욱 폭 넓은 개성적 외양을 부여할 수 있고, 각 동물의 속성을 통해 성격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는 캐릭터가 독립적이며 조심성 많은, 하지만 살짝 변덕스러운 성격이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이입할 수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혹은 민족을 쥐와 고양이로 표현하여 역사적 착취 관계를 표현하는 것도 매력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왜 그런 동물로 의인화해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야기 전개에 오히려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런 경우는 사람의 동물화다. 동물의 의인화는 동물이 자신들의 습성에 따른 어떤 생활을 하는데, 그들에게 인간 같은 사고방식을 부여하여 동물의 생활에서 인간 세상에 대한 함의를 얻어내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쪽이 훨씬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힘든 방식인데, 제대로만 해낸다면 ‘워터십다운의 토끼들’ 같은 디아스포라에 관한 대하서사 명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아니면 이 작품,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브라이언K 본, 니코 앙리숀 / 시공사 / 최원서 옮김)처럼 현대사회에서 자유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자극한다.
‘프라이드’는 자긍심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자의 무리를 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즉 작품의 제목은 바그다드의 자긍심이자, 바그다드의 사자떼라는 중의적 표현이다.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2003년의 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003년 당시 보수 공화당 정권의 미국은 9/11테러라는 자국의 큰 비극을 지렛대 삼아, 부실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무력침공을 개시했다. 당시 이라크는 반미성향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철권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민주적 자유를 박탈당한 대신 종교적 광신 등의 사회 혼란도 동시에 억제된 폐쇄사회였다. 그런데 침공의 폭격 속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기능이 마비되었고, 관리 부재 속에 굶고 있던 동물원의 동물들이 철창이 파괴되며 풀려났다. 그리고 그렇게 풀려난 몇 마리의 사자들이 결국 길거리에서 미군 병사들에 의해 사살되었다.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는 바로 이 사자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들의 짧은 여정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동물원에서 타의에 의해 풀려나게 된 네 마리의 사자들은 ‘자유’에 대한 각각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이라크 전쟁 같은 식의 사건이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여러 각도에서 나타낸다. 원래 동물원이란, 좁고 자유가 없지만 안정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결국 타의에 의해서(이 경우, 인간들의 전쟁에 의하여 동물원의 관리가 무너져 식사 제공 등이 끊기는) 그 구속이 풀어져버린 그 순간, 어떻게 할 것인가. 한쪽의 대립축에는 늙은 암사자 사파와 젊은 암사자 누어가 있다. 사파는 외눈에 한쪽 귀가 찢긴 모습인데, 동물원에 들어오기 이전의 ‘자유로운’ 정글 생활이 오히려 고통이었음을 기억한다. 다른 사자들과의 폭력적 영역다툼, 강간 등의 아픔이 바로 그녀에게 자유의 일면이었고, 따라서 동물원을 벗어나 자유로 돌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으로 치부한다. 그 반대편에 있는 누어는 동물원을 벗어나 자유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상을 위해 노력한다. 몽상에 안주하지 않고, 탈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른 동물들과(즉 자신보다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있는)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하나의 대립축은 성인 수컷 ‘질’인데, 동물원에서 존중을 받아온 싸움을 모르는 온화한 성격이며 사파와 누어 둘 다 연을 맺은 무리의 우두머리다. 하지만 목표도 도전도 없는 우두머리 생활에 무심하고 둔하며 시니컬해진 상태다. 그 반대편에는 누어의 아들인 어린 사자 알리가 있는데, 미숙하지만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낙천적이다. 이런 상반된 성격의 네 마리로 된 무리는, 이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갈 것인가. 동물원에 계속 남아있을 것인가. 인간의 땅으로 숨어들어갈 것인가. 자유의 정글을 찾아 여정을 떠날 것인가.
강제적 자유라는 화두를 동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은 미국 작가가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풀어나간다는 민감성을 놓고 볼 때 현명한 선택이다. 자유에 대한 여러 인식들이 충돌하는 것을 제1세계 창작자의 피상적 휴머니즘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잔혹한 현실에 대한 직면과 자기성찰인데, 사자들을 주인공으로 함으로써 그것을 이뤄낸다. 갑작스러운 폭력과 급격한 환경변화를 야기하는 것은 미군이라는 인간들이다. 부족을 앞세운 폭력과 인권탄압 등 인간 세계에서 이뤄진 잔혹행위들은 사자들의 정글이라는 설정 속에 더욱 섬뜩하게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는 온건한 미국 대중서사 작품이 흔히 그렇게 하듯 서사적 모험 속에서 말랑한 가족주의적 해피엔딩이 이뤄지는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두 암사자 사이에 발생하는 자유의 해방감과 위험에 대한 격론, 두 숫사자 사이의 무기력과 희망적 낙관 사이의 저울질의 갈등 그 자체가 핵심이다. 그리고 끝까지,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승리 선언을 해주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는 누어는 폭격의 현장 속에서 생존의 위험을 직면하고, 자유를 경계하던 사파도 동물원의 구속 상태와는 다른 관계들을 새로이 경험하게 된다. 자유 없는 호사 속에서 무기력해졌던 수컷 질은 서서히 야성을 되찾아가고, 자유라는 험난한 도전 속에서 미숙한 알리는 점차 성숙해진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는 그 자체로 대재앙도 행운도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적응하고 성장하는 만큼씩만 유용하다. 다만 장단점을 서로 뭉뚱그려 상쇄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그 폭을 직면할 때에 그렇다.
이 작품은 사자들을 사자의 몸짓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강제로 부여된 자유 속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만들어낸다. 이미 [Y: 더 라스트 맨]으로 다양한 개성적 인물들의 로드무비 전개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이야기꾼 본의 스토리가 차지하는 명백한 공과 함께, 앙리숀의 그림이 차지하는 몫도 만만치 않다. 동물의 모습 자체는 의인화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인간적 표정을 부여하고, 몸짓으로 섬세한 감정연기를 시키는 것에 능하다. 전쟁으로 파괴된 바그다드의 풍경 속에 탈주한 동물들이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기이한 정글의 풍경들 또한 일품이다. 전쟁의 거시적 정치성과 민중들의 생존에 대한 비유를 위해 인간의 전쟁과 그 속에 자신들의 삶을 찾아야 하는 동물들을 대비시키는 것은 자칫하면 거창한 관념에 머물기 쉽지만, 탁월한 그림솜씨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같은 공간 속에 벌어지는 두 가지 층위를 서늘하게 묘사해내는 것에 성공한다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이 한 자리에 충돌하며, 작품의 여운을 손쉽게 명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프라이드 오브 바그다드 브라이언 K. 본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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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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