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어쩌다보니 게재 제목이 꽤 오버액션).
매력적 캐릭터라면, 필살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캐릭터의 개성이란, 얼굴이나 복장이 전부가 아니다. 성격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덧붙인다고 해도, 여전히 결정적인 무언가가 부족하다. 완성도 있는 캐릭터에게 정말 필요한 완성 조건, 마치 딸기 케잌 위의 딸기와도 같은 것은 바로 ‘필살기’다. 특유의 강력하고 개성적인 기술을 가져서, 어떤 승부 상황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순간적으로든 최종적으로든 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다. 매력적이고 독특한 필살기는 캐릭터의 개성 그 자체이며,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필살기를 잘 배분하는 것이 흥미진진한 작품설정을 짜는 핵심이다. 캐릭터의 매력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극대화하는 것에 장점을 보이는 장르인 대중만화에서, 필살기는 양념이 아닌 본질에 가깝다.
가장 간단한 방식의 필살기는 강력한 폭력적 힘이다. 마징가제트의 ‘브레스트 파이어’든 드래곤볼 손오공의 ‘에네르기파’든 온갖 무협물의 각종 길고 긴 한자 조어든, 결국은 막강한 힘의 공격을 하는데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외치는 것이다. 그냥 손에서 에너지가 나가서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에네르기파!”라고 기술명을 길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는 쪽이 어째선지 더 흥미진진하다. 그냥 폭력이 아니라 특별한 폭력, 개성을 부여받아 해당 캐릭터의 일부가 된 폭력이기 때문이다. 학원폭력만화의 나름 정의로운 주인공이 “108콤보”라고 외치며 상대에게 주먹과 발을 날리면 모든 행위는 주인공다운 짓을 하는 것의 일부가 되고, 수십 페이지에 걸쳐 일어나도 극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상대를 두들겨 패는 장면만 나오면 거리감을 유지하는 다큐멘터리가 되어 몇 페이지만에 불편해지기 쉽다.
하지만 그냥 강함만을 표시하는 필살기로는 충분히 많은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기 힘들고 쉽다. 그렇기에 각 기술에 장단점을 부여하기 시작하는데, 실행할 타이밍을 잡기도 힘들고 자신도 얻어맞게 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크로스카운터’는 권투선수 허리케인죠의 필살기가 좋은 예다. 물론 간순한 강약으로는 곤란하고, 캐릭터들의 성격과 필살기의 속성이 잘 맞아떨어지는지가 여기서부터 중요해진다.
그리고는 한층 더 나아가 상성을 논하기까지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음양오행이나 4원소 같은 나름대로 체계적 세계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서열화가 아니라, 약해 보이는 필살기도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강한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한층 흥미진진한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지점을 절묘하게 활용하는 [금색의 갓슈]라는 작품은, 인간 주인공들과 그들과 각각 함께 파트너가 되어 싸우는 꼬마 악마들이 등장하여 마계의 지배자를 정하고자 서로 싸운다. 그런데 각자의 능력은 위력적인 번개를 쏘아내는 것부터 그냥 사물로 변신하는 것처럼 전혀 격투 자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까지 폭이 대단히 넓다. 그럼에도 어떻게 서로의 능력으로 팀워크를 발휘하고, 상대들을 누르느냐에 따라서 흥미진진한 대결이 쉴 틈 없이 이뤄진다.
다만 이야기꾼도 향유자도 손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필살기는 가상의 이야기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키우는 장치인 것이지 실제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거나 숫제 대결 이후의 일상 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욱 더 아니라는 점이다. 섬세한 긴장과 갈등묘사를 포기하고 캐릭터의 설정 자체로 대결을 시키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과장된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필살기를 요구하거나 구현하는 것은 개그 소재가 될 따름이다.
필살기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기억하며 환호를 보내는 향유 방식은 어느덧 만화 속 세계에 대한 것을 넘어선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아사다 마오에게 김연아를 누르기 위해서는 ‘트리플 악셀’을 할 것을 주문하는 팬들의 모습은 애교스럽다. 현실의 정치를 몇몇 유명 정치인들의 대결로, 정책철학을 장르만화 속 단순화된 필살기 대결 수준으로 캐릭터화하여 환호와 경멸을 보내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은 좀 덜 애교스럽다. 오락성 코드는 오락성 코드로만 누리는 절제는, 필살기라는 요소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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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격주 칼럼 ‘네남자의 만화방’. 4명의 필자들이 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코너인데, c모의 경우는 만화의 어떤 코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은근슬쩍 세상이야기로 유도하는 것이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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