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제 101

!@#… 원래 민주제의 메커니즘을 OS에 빗대는 접근법을 좀 더 발전시켜보고자 내맘대로 재정리하고 재단하는 민주주의론의 한 토막을 구플에 메모했다가 좀더 쓸만한 결론 등을 보충하면 블로그로 옮기려 했으나, 무려 국회에서조차 온갖 괴스러운 인식들이 난무하는 통이라 그냥 대충 포스팅. 혹 누구에게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메커니즘을 설명할 일이 있을 때, 살포시 여기로 링크를. 당연한 이야기지만, 더 자세히 파고들고 싶어졌다면 더 진지한 책들을 파보시길.


채택이유.

민주제란 민에 의한 지배이며, 자기결정권의 원리에 입각한다. 공공의 사안에 대한 사회 성원들의 합의 도출에 입각한 안정성 확보에 강하며, 웬만한 에러에 대해 일정한 방지 또는 장기적 자기수복 능력이 있고, 사회 규모와 복합성이 커지는 것에 대한 규모 적용성(scalability: 매우 크거나 작은 다른 규모에서도 무사히 돌아가는 성질)이 그간 여러 사회운영체제 가운데 그나마 가장 낫기에 현존 최선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민주제 자체가 밥 먹여주고 인권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굶지 않게 밥 나눠주고 인권 침해를 견제하는 작업들을 해나가되 그것을 독재자의 선의라는 뽑기운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함께 세우고 지키는 사회적 룰로서 유지하기에 좀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적으로 독재형 전체주의를 간택해버리는 ‘파시즘’ 같은 자기파괴적 버그도 좋지 않은 조건들이 겹치면 발생하곤 하지만, 이야기 덩어리가 크니까 그건 다른 기회에.

작동조건.

그런데 민주제가 허울이 아니라 실제 통치방식으로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크게 나누어

1)민의 뜻을 관철하는 의결 제도,
2)의결의 내용을 스스로 정할 기반,
3)그런 선택에 나설 여력의 확보다.

각각을 대표하는 내역이 바로

1)강력한 의회시스템,
2)자유와 평등에 관한 기본권 및 현대사회에 필요한 학습권과 정보권 등 확장 인권,
3)사회보장이다.

그것도 가급적 필수사양급의 – 마치 OS가 깔리고 작동할 수 있는 기본 스펙 – 역치는 뛰어넘어줘야 한다. 즉

1)지역성을 잘 반영한 선거구, 중간평가 효과가 최대화된 선거일 배정, 의원실 정책연구 지원 등등 현실을 반영하여 계속 업글해야할 많은 제도들,
2)더 복잡한 세부사례들에서도 기본권에 입각하여 세부 권리들이 철저하게 수호되는 시행령과 판례들 축적, informed citizen을 위한 이니셔티브들,
3)일정한 경제력 수준 확보와 일정한 경제불평등 해소(그럼에도 효과적 보상체계를 통한 활력 유지).

과정과 과제.

게다가 한 상태로 오래 있으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누적되어, 민주제의 순작용보다는 부패한 관료제의 측면이 강화된다(민주제는 다중의 의견조율을 전제하는 만큼, 관리효율을 위한 관료제의 적용은 필수적이다). 즉 더 나은 민주제로 계속 제도들을 개선시켜나가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체계가 복잡해져서 일반 시민들은 다들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방지해야 한다.

그런 어려운 미션들을 계속 클리어해나가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 민주제의 숙제다. 명확한 지향을 늘 상기하며, 당대에 가용한 모든 물리적/제도적 툴들을 총동원해야 겨우 한 발짝 나아가는게 가능하다. 독재의 철폐가 여러 미션 가운데 그나마 가장 덜 골치아픈(!) 초기 항목. 아니 애초에 성공적 민주제는 경제수준이든 뭐든 어떤 변인에 비례해서 짜잔 등장하는게 아니라, 일정한 기본요건은 갖춘 상태인데 정말 절묘한 특정 밸런스 포인트에서 기적적으로 도출될 따름이다(왜 ‘아랍의 봄’의 이집트가 아직도 혼란 와중이겠는가). 게다가 전에도 논했듯 득템 대상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렇기에, 기왕 힘들게 지금껏 확보해놓은 수준의 민주제 가치지향과 절차들을 실제로 갉아먹는 행위들에 대해 그만큼 더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런 짓을 하는 이들에게 쓴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조치조차, 민주제의 가치틀과 절차에서 벗어나 있어서는 안되고 말이다. 더 발전된 시스템일수록, 버그 사냥에 더 지속적으로 섬세한 노력을 할애해야 하는 법. 이토록 관리조차 힘든 것이다보니,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이 좀 들린다고 ‘민주주의가 과잉’이라고 볼멘소리를 할 만한 만만한 것은 확실히 아닐 듯하다.

 

PS. (13.12.추가) 2)에 있어서 잘 정비된 진보지식생태계가 해낼 수 있을 역할이 얼마나 큰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Copyleft 2013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게됩니다]

Trackback URL for this post: https://capcold.net/blog/10601/trackback
2 thoughts on “민주제 101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당신이 투표를 해야 하는 모든 이유 | ㅍㅍㅅㅅ

    […] 반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역사적 정의에 대한 생각이든, 민주제에 대한 성찰이든,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이뤄냈으면 하는 소망이든, 혹은 비교적 […]

  2. Pingback by 베스트 오브 2013: 문화 이것저것(영화, 음악, 웹), 캡콜닷넷 | capcold님의 블로그님

    […] 민주제 101 | 2013. 12. 10. 2:05 pm  국정원 문제의 이슈화를 위해 [한겨레 칼럼 130819] | 2013. 08. 21. 2:03 am  떡밥 증진용 국정원 댓글 사건 FAQ + 떡밥 분쇄용 NLL(북방한계선) 소동 FAQ [ㅍㅍㅅㅅ 1306] | 2013. 06. 28. 2:01 am  최소한, 민주공화국의 우익이 되자 | 2013. 06. 23. 1:53 am  ‘일베충의 일기’, 그리고 안티에 대처하는 방법 [만화 톺아보기/미디어오늘 130609] | 2013. 06. 11. 1:13 am  일베에 볼테르를 [한겨레 칼럼 130527] | 2013. 05. 29. 2:20 am  국정원 보고 놀라자 [한겨레 칼럼 130429] | 2013. 04. 30. 10:22 pm  갑질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 | 2013. 05. 08. 5:09 am  학교폭력, 학생 사회의 폐쇄성 | 2013. 03. 14. 2:18 am  지적 평등의 지향, 최저사양의 평등 [온라인진상열전 / 자음과모음R 2012 겨울호] | 2013. 02. 05. 8:23 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