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년 무렵 최규석 작가의 백도씨 단행본 출간 작업 초기에, 에필로그 단편으로 시나리오 써봤다가 중간에 엎어졌던 30페이지쯤 소요될 단편만화 스토리(결국 책에는 좀 다른 초점으로 더 명료한 내용의 단편이 들어갔는데, 내용 기조의 일관성 측면에서 역시 그쪽으로 방향 전환한게 나았다). 제목하여 ‘본격민주주의단편만화’고, 스타일은 고닉과 맥클라우드 중간 어디쯤. 오래된 폴더 몇몇 좀 정리하다가 발견했는데 다시 보니 꽤 재밌는 것 같아서(…아마 요즘 다시 쓴다면 한층 건조한 틀거리(클릭)를 적용했겠지만) 여기 공개. 제게 알려주시고 아무나 주워가서 적당히 정-반-합 위치의 주인공들을 달리 대체하여 만화화해도 무방합니다.
본격민주주의단편만화 (가제)
글: capcold
[등장인물: 나레이션(나), 촛불소녀(소), 녹용(녹)]
(칸을 나누는 게 좋겠다 싶은 대목을 빈 줄로 구분. 하지만 전반적으로 콘티 사정에 따라서 재배치 권장)
(백도씨 마지막 장면의 백지 그림 이어받음)
나레이션: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
(핑! 하얀 백지로 코푸는 녹용)
녹용: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나: …
나: … 그러니까, 소중하게 여기면서 민주주의의 꿈을 계속…
녹: (시큰둥하게 앞의 페이지 가운데 식당에서 실랑이하는 대목을 뒤적여보면서) 뭐 헤어스타일만 바꾸면 그냥 요즘이랑 똑같네.
촛불소녀: (뭔가 화려하고 비장하게 등장) 무슨 소리! 지금의 민주주의는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이제는 독재도 몰아냈고 민중의 의식도 성장했어!
녹: (시큰둥) 에이, 박정희 각하 시절이 그립다는 사람들도 많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도 경제는 좋았다고 하잖아? (배경에는 전사모 시위, 박정희 기념관 앞의 장사진)
소: 그건 기성세대의 관성과 지배세력의 우민화 교육 때문이라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경제 성장 논리를 들이대는 건 그들의 음모야! (배경에 경제위기 설파하는 MB 연설장면)
녹: 쯧… 곳간에서 인심 나듯, 곳간에서 민주주의도 나는 거 아냐? (가득한 쌀 곳간 문틈으로 민주주의가 삐져나오는 장면)
소: 민주주의가 바로 그 곳간이라고! (민주주의라는 벽돌로 곳간을 만들고 그 안에 쌀가마니를 여러 사람들이 같이 채워 넣는 장면)
나: …저기, 여러분.
녹, 소: 왜?
나: 음… 사실 둘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녹, 소: 뭐야, 그게. (둘 다 비웃는 표정)
나: 민주주의는 그때보다 별로 변한 것 없기도 하고, 발전하기도 했고, 독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우민화도 있고, 곳간에서 나기도 하고, 곳간이기도 합니다. 그것 이외에도 무척 많은 것이 한꺼번에 담겨있죠. (뭔가 복작대고 시끄럽고 복잡한 이미지 꼴라쥬)
나: 그럼 이왕 민주주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처음부터 시작해볼까요 (득의양양한 느낌으로 화면 중간에 배치). // 녹: 지겨울 것 같은데? / 소: 뜨거운 민중은 다 아는 이야기 아님? (구석에서 수군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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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장 간단한 사전적 의미로 시작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민주주의란 민, 즉 그 사회의 성원들이 직접 사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평등한 권력을 부여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녹: 동네 바보들도 다 평등하게? // 소: 쉿.
나: 흔히들 민주주의의 시초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이야기하지만…
녹: (그리스 아고라 한복판에서 신관 복장으로) 그러니까 페르시아를 치자니까.
소: (관객석을 매우고 있는 수많은 소녀들 일제히) 싫어.
나: … 사실은 여러 곳에서 비슷한 싹이 돋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미국 원주민… 대등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살아가야 할 곳이라면 여기저기서 민주주의의 씨앗은 만들어졌죠. (배경에는 각종 문명의 그림양식으로 그려진 녹용과 소녀가 말싸움하는 그림)
나: 그러다보니 다양한 형식의 민주주의가 탄생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만 하더라도, 철학자들이 토론하며 날밤 새는 아테네와 군인들이 권력을 나눠가지는 스파르타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 형식이었죠.
녹: (책걸상이 있는 교실 배경) 뭐야, 그러니까 백수들이 철학 놀음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이야기?
나: 토론으로 해법을 찾는 현대 정치문명의 모태죠.
소: 질문! 군인들이 정권을 휘두르는데 그게 어떻게 민주주의인가요!
나: …그 동네는 시민들이 죄다 군인이었습니다. (뒤로 지나가는 영화 ‘300’ 장면)
녹: 그런데 정말 다들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나: 노예, 미성년자, 여자는 자유 시민에서 제외. // 녹: 왜? // 나: 시민 안시켜준다고 싸움을 일으켜 이기지 못했습니다. // 녹: 뭐야 그게. // 나: …
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민주주의를 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계속 권력을 함께 나누자는 규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서로 싸우기만 하고는, 승자가 왕이 돼서 마음대로 하고 끝나겠죠. 더 강한 이가 또 판을 뒤집기 전까지는. (왕관 쓴 사람이 “내가 왕이…”를 외칠때 뒤에서 누가 찌르고는 “왕은 죽었다. 왕이여 만수무강…” 하는데 또 뒤에서 누가 찌르고는 “짐이 곧 국가…” 라고 하는데 뒤에서 누가 찌른 모습)
나: 왕이 지배하는 사회라도 군주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법을 지키며 정치를 하도록 만들어놓는 것이 향후 본격적인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중간과정이 되곤 했습니다.
(위풍당당한 왕) – 마그나 카르타(1215): 왕은 귀족들 동의 없이 맘대로 못함 -> (눈치보는 왕) – 영국 권리장전(1689): 왕은 의회 동의 없이 맘대로 못함 -> (쪼매만한 꼬마왕) -> 미국헌법:(1787) 왕 같은 거 안 키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왕뚜껑) (흐름을 세로 도표로 그림)
소: 민중 승리의 역사네요! // 나: 이런 것이 만들어질 때까지도 여전히 여성, 노예들에게 참정권은 없었지만. // 소: -_-;;;.
녹: 그런데 왕이 약해지는게 좋은 거야? 사극드라마에서는 왕의 힘이 약하면 신하들이 맨날 자기 잇속으로 쌈박질하는 도중에 일본이나 중국이 침략해서 쫄딱 망하더만.
나: 중앙집권 사회에서 왕이 약해지면 나라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화국이 출범하면 어떨까? (녹용: 공! / 소녀: 화! / 백도씨의 주인공 청년: 국!) 왕 뿐만이 아니라 정부와 정책 전반을 더욱 더 분권화하면 그런 탐관오리들이 득세하는 것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데, 그런 식의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한 국가 운영형태를 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나: 공화국의 묘미는 안정적인 꾸준함입니다. 문제가 생겨도 황제가 내지르는 것 보다는 덜 막나가고, 덜 어렵게 해결할 수 있으니까. 덕분에 고대 로마의 경우, 공화국 시절에는 꾸준히 성장하며 거대한 세력이 되었죠. 하지만 공화국 로마의 성장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이들에 의해서 결국 로마는 황제가 호령하는 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잘난 황제가 몇 명 이어질 때는 융성하다가(배경: ‘5현제’. 빛나는 모습, 행복한 풍경) 못난 황제가 몇 명 이어지자 확 망했습니다 (배경: 불타는 콜로세움, 피바다 위에서 노래하는 네로황제).
나: 꾸준하게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크게 망할 수 있어도 그냥 달리는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녹: 인생은 한 큐.
소: 민중 혁명은 한 번에 불타오르는 것.
나: (이 사람들이…;;;)
나: 그래서 법 같은 제도적 규정 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열망하게 만드는 어떤 정신적 요인도 무척 필요합니다. 복잡하게 권력을 나누겠다며 법을 만드는 것이 정말로 뭔가 필요한 것이라고 와닿기 위해서는, 그것이 삶을 아름답게 해주리라는 (어쩌면 다소 낭만적)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굳이 피곤하게 사회의 주인을 자처하며 나설 이유가 없겠죠. 왕에게 대충 맡겨놓는 것이 편합니다. (“오늘도 각하만세”라고 써져있는 ‘D일보’ 표지)
나: 근대 유럽에서 그런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1789)이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프랑스혁명 그림에서 깃발 든 여자와 총 든 남자를 소녀와 녹용으로 패러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물론 험악한 생활조건 때문이지만… (고양이 시체들이 쌓인 장면. 자막: 고양이 대학살)
나: 개별적인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민중의 이름으로 뭉치고 왕정을 뒤엎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도록 만든 것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사상의 힘이죠. (배경은 파란 파워레인저가 ‘자유’, 하얀 이가 ‘평등’, 빨간 이가 ‘박애’라고 외치며 펑하고 합체, 프랑스 국기가 되는 장면)
나: 즉 국민들의 힘을 보장하는 ‘법 체계’, 그리고 민주주의가 추구해야할 ‘가치’가 합쳐지고 보급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대충 강한 녀석이 나와서 내 말대로 하라며 모두를 지배하는 방식보다 좀 선결조건부터 많이 복잡하죠.
녹: 소중한 백지만 있으면 대충 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는… // 소: 그러니까 민중혁명은 언제하나요?
나: …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같이 사는 곳에서 권력을 나눠가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기에 꽤 자연발생적인 면이 있는데, 동시에 좀 더 큰 집단에서 제대로 굴러가려면 법제도를 세우고 가치이념을 널리 공감해야 하는 유지하기 복잡한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소: ? (-.-) // 녹: 훗, 가방끈 긴 놈들이란. // 나: (여기서 작품 접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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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다고 해도, 모든 이상향들이 그렇듯 완전한 자유 평등 박애 그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할아버지가 와도 도달하기 힘듭니다.
소: 말도 안 돼! // 나: 지금 당장 뉴스를 틀어보세요.
나: 오늘날 산적한 문제 가운데 어떤 것들은 굳이 민주주의를 하지 않아도, 아니 민주주의를 하지 않아야 더 확실하게 해결될 것 같아 보이기도 하죠.
(“저 강간범을 거세하자” (두개 루트로 나뉘는 그림)
루트A-> 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이…” “처벌수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인권 사이에 원칙이…”
루트B-> 왕: “짤라라.” 신하(녹): “짜르랍신다” )
나: 하지만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숭고한 이상으로 보기보다, 그런 이상들을 생활 속에 조금씩 계속 적용해 넣기 위한 ‘도구’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림: 스패너, 드라이버 등 각종 연장)
나: 민주주의라는 도구가 지니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수정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뭔가 잔뜩 썼다가 지우고 또 쓰고 또 긋고 또 그리고 또 지우고 한 엉망진창의 콘티 페이지)
나: 왕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에서 왕이 어떤 일을 잘못 정해놓으면 그것을 수정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왕이 스스로 죽거나, 봉기가 일어나서 왕을 죽이지 않는 한. (그림: 길로틴)
귀족정이든 일당독재 정권이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을수록 문제점을 수정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림: 코끼리 다리에 몰려든 개미떼)
나: 하지만 애초부터 권력이 폭넓게 분산되어 있고, 행정을 위해서 필요할 때 그 권력의 일부를 위임에 의하여 합쳐놓는 방식이라면 수정이 훨씬 용이하겠죠. (그림: 블록 장난감에서 부품 뽑아내는 모습)
나: 민주주의가 가끔 문제해결에 있어서 비효율적으로 보일 때가 있는 것은, 그 분산된 권력 주체들에게 문제를 인식시키고 다시 힘을 모아내는 과정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간단한 사회적 문제들은 그런 복잡하고 신중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죠. (그림: 고심하며 바둑알 한 수를 놓는 소녀, 그 앞에서 알까기로 튕기는 녹용)
나: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대 사회는 갈수록 그런 ‘간단한 문제’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뭐 하나만 바꾸려고 해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사안이 연결되어 있죠.
나: 예를 들어 산을 하나 옮긴다는 것은 고대에는 어떤 노인이 열심히 옮기면 된다는 근성 교훈담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라면 그 주변의 부동산 상권의 시장변동, 자연 생태계 보전, 교통망 변경, 생활환경 변화에 따른 거주민들의 적응문제 등 수많은 이슈들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예상하지도 못한 문제가 새로 튀어나올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그림: 철거민 시위, 부동산 간판들 등등 콜라주)
나: 민주주의는 복잡한 사안을 다룰 때에 적합합니다. 수정이 가능하고, 분산된 권력 속에 문제의 해답이 한 바퀴 돌다가 나오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여러 측면 고려해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항상 최선의 답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 그런데 민주주의 자체만 해도 목표도 운영방법도 충분히 복잡한 사안입니다(어떤 분들은 ‘복합 이상’이라는 멋진 용어를 사용합니다). 특히 분산된 권력을 필요에 따라서 모아내는 방법이 관건이죠.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실제로 적용하는 것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식의 직접민주주의, 투표로 자신들의 뜻을 대표할 사람을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 등등. (그림: 콩가루 위에 경단을 굴리는 장면)
나: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처럼 꼽히곤 하는 투표 제도만 해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모르게 할 수 있는 비밀투표 제도만 해도 1850년대 호주에서 처음 도입되었죠. (그림: “얼굴을 가리고 익명을 고수하다니, 비겁자들!” 외치는 파란띠 의원 옆으로, 누군가 투표중인 비밀투표 부스)
나: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중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시작한 100여년 전 러시아의 볼셰비키 공산주의 혁명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그냥 대놓고 독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혁명은 하고 싶고, 민주주의 제도의 복잡함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보니 금방 갑갑해져서 냅다 달린거죠. 좀 달리다보니 애초에 왜 달렸던 것인지 이미 잊어버리고.
녹: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살림 좀 폈나보던데. (배경에 뚱땡이 독재자 스탈린 초상화와 젊은 날 꽃미남 스탈린)
나: 아예 가장 민주적인 정치 제도를 지닌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가장 악질적인 독재정권을 자발적으로 탄생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꼽혔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들은, 몇 가지 요인들이 겹치자 1930년대에 민주적으로 국가사회주의정당을 집권당으로 선출해줍니다. (그림: “집권당 하나 바뀐다고 설마 망하기야 하겠어?” 이야기하며 상자에 표를 넣는 독일신사)
나: 이렇게 올라온 이들 나치당은 수십수백만 유태인들과 집시들을 인종말살하고,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여하튼 현대역사 최강의 민폐로 기록되었죠.
나: 도대체 왜 민주적이고 차분했던 사회가 자발적으로 일거에 그 모양이 되었는지, 나치 패망 이후 독일 지성계의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특히 나치 청소년 단원이었던 과거를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더욱 강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림: 히틀러유겐트 뱃지와 나이든 위르겐 하버마스 얼굴)
나: 여하튼 의회제도의 운영방식, 권력분할의 임기, 직접민주주의적 참여 제도의 활용, 다양한 요소들이 역사 속에서 열심히 실험되었습니다.
소: 그러니까 민중들이 직접 길거리에 나서는 게 최고잖아!
나: … 그보다는, 여러 방식들을 조금씩 절충해서 요소별로 합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녹: … 또 도망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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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래 민주주의는 사회 운영 시스템입니다. 컴퓨터로 치자면 윈도나 맥OS 등 운영체제 같은 것이죠. 그 사실은 잊어버리고 그냥 어떻게든 오매불망 얻어내고 싶은 이상향으로만 포장하면, 실제 그것을 얻어냈을 때 일대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그림: 여성에게 둘러쌓인 꽃미남 살인미소 버전 녹용, “우와 ***오빠다~!!! 결혼해줘요 꺄악” 하며 달려드는 여성팬 // 다음 장면: “밥 줘” 쇼파에 눌러 앉아 방귀 뀌는 난닝구 아저씨 모드의 녹용, 그 옆에 찌든/짜증난 표정으로 애 업고 밥하는 아까 그 여성팬)
나: 즉 민주주의가 없는 독재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아련한 꿈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목표, 압제자로부터의 해방, 민중들이 스스로 자기 손에 권력을 쥐고 꾸려나가는 사회… (그림: 꽃밭 발랄, 그 위를 70년대틱하게 호호호 하하하 뛰어다니는 녹용과 소녀)
나: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서, 실제 사회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당장 더 큰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소위 “대중독재”라고 부르는 상황이 대표적이죠.
소: 민주주의라면 민중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게 당연하잖아!
나: 특정인들이 대중의 가장 눈 먼 지지들만 잔뜩 한데 모아서 사실상 독재를 해버리는 것이 문제죠.
소: 민중의 힘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멍청한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배경그림: 파란 띠를 두른 정치인 유세 실루엣. “여러분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언론을 장악하고, 여러분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습니다.” 군중 환호. “와아아~” 녹: “아, 그러셔?”)
나: 원래 어느 정도 대의 민주주의를 운영하겠다면 각각 성원들이 정치에 대한 합리적인 기본인식을 가지고,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사회가 되도록 후원하는 것이 상식적이겠죠. (그림: 여러 사람들의 실루엣 위에 생각풍선이 있고, 각각 네모, 세모, 동그라미 등이 들어있음)
나: 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사람들이 큰 그림 속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충족시켜줄 세상을 그리기 보다는 그저 당장 눈 앞에 주어진 약간의 이득(으로 보이는 것)에 별 생각 없이 지지를 보내버리곤 합니다. (그림: 아까 그 사람들의 생각풍선이 희미하게 지워지고, 모두 똑같이 돈으로 덮임)
나: …마치 종교적 깨달음보다는 당장의 복을 갈구하는 기복신앙과 비슷하죠. 이런 경향을 최대한 이용해 먹기 위해 별반 확고한 사회상에 대한 비전도 없이 말초적 이득만을 내세우는 일종의 “기복정당”이 인기를 끌수록, 민주주의의 기반은 약해집니다. (그림: “뉴타운을 믿쓥니까?” “믿~쓥니다” 기호*번 후보 녹용 유세장면)
나: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특별히 ‘악’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각자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만 좁게 생각하다보면 나오는 “제한된 합리성”의 함정이죠. (그림: “빨갱이들을 족쳐야 자유민주주의라능!” 이라고 타이핑중인 골방폐인)
나: 사실 한국의 근대성이니 민주주의의 자체적 역량이니 하는 이야기에서 항상 꼽히곤 하는 동학농민운동만 해도, 그렇게 명쾌한 민중혁명은 아니었습니다. 당대의 인식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근대적 사회 조건을 요구하는 농민혁명이면서도, 동시에 보수적 왕정 가치 또한 미묘하게 섞여있었죠. // (그림: 녹: “혁명한다는 넘들이 다 그렇지 뭐. 만약 성공했더라도 고생 좀 했겠군.” 그 말을 듣는 최제우 초상화가 땀 삐질삐질)
나: 특히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방식과 속도에 있어서 각자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독립을 이루고 너도 나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나섰지만… (그림: 아프리카 신흥 독립국 지도. http://www.public.iastate.edu/~cfford/independenceafterWWII.jpg )
나: …대부분의 경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열강들에 대한 여전한 의존, 지도부의 부패, 낮은 교육수준 및 없다시피 한 사회 기간망, 부족 단위의 반목 관계… 이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서구의 제도만 그대로 심어 넣는다고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었죠. // 소: 그래서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거야? (버럭) // 나: … 에에,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도록 이거저거 더 정밀하게 수를 궁리해야 했다는 거죠.
나: 여하튼, 민주주의 획득 “그 이후”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어떤 식으로는 나중에 발목을 잡습니다 (정치인 유시민은 이를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칭합니다). 한국만 해도 4/19 혁명과 6월 민주화 항쟁 같은 혁혁한 반독재 시민혁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그림: 뭔가 거대한 군중 혁명 이미지)
나: 하지만 운영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뒤로 미뤘다가 당혹스러운 반작용에 시달리기도 했죠. 4/19 직후의 혼란 상태 속에서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등극한 것을 납득해버린다든지, 6월 민주화 항쟁의 기쁨 속에 전임 독재자의 공범인 노태우를 민주적으로 대통령에 선출시킨다든지. (그림: 박정희, 노태우) //
녹: (박정희를 가리키며) 하지만 이 사람은 경제를 살린 거 아냐? 니들이 보리고개를 알아?
소녀, 나레이션(동시에): 닥쳐.
나: 운영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도 민주주의의 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 즉 복잡한 사회적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수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극대화해야죠. (그림: 뭔가 굉장히 꼬인 실타래)
나: 그래서 오늘날 더욱 대두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숙의 민주주의’입니다. 숙의, 즉 사회성원들이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히 서로 공유하고 토론을 해서 안건의 전체 측면을 이해한 후에 비로소 민주적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죠.
녹: …뭐야, 이거 당연한 소리 아냐? // 나: 지난 선거에 투표하기 전에 친구들하고 토론 좀 했나요? // 녹: 그놈이 그놈이라고 욕은 많이 했지. // 나: 그래서 잘 선택했나요? // 녹: 투표 안했는데? // 나: (…)
나: 민주주의가 장점을 발휘하려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하는 이들이 되도록이면 여러 가능성들을 접하고 충분히 그것을 토론하며 깊게 생각해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어떤 사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는 이들이 한 줌의 고위 정치인들에 불과하지만, 어떤 사안에서는 무려 전국민이죠.
(배경: “네놈은 그저 하루하루 여론조사만 당하는 기계일 뿐!” 화면 밖 독자를 향해 삿대질하고 있는 강건마 풍의 녹용)
나: 즉 의견의 다양성과 그것들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통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굵고 강한 글씨)
나: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제1원칙은 바로 ‘표현의 자유’입니다. 어떤 이들은 양심의 자유를 먼저 꼽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표현하지 않은 양심은 적발할 수 없으니까요(종교, 학문, 예술 등 다른 ‘내심의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적 자유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배경: 디씨 합성 짤방. 라면먹는 총각, 구리더 등 필수요소에 빨간 동그라미)
여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서로 힘을 합칠 자유, 즉 결사의 자유를 큰 범주에서 추가하면 얼추 대한민국 헌법 한 귀퉁이의 기초 얼개가 나오죠.
– 언론의 자유: 자기 사상이나 지식을 구두로 외부에 표현하는 자유 (아이콘: 확성기)
– 출판의 자유: 자기 사상이나 지식을 문자나 상형으로 외부에 표현하는 자유 (아이콘: 신문)
(나레이션 말풍선: “이 중에서도 ‘순전히 예술적인 경우’라면 예술의 자유로 보호됩니다”)
– 집회의 자유: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장소에서 일시적으로 집합할 자유 (아이콘: 둥근 얼굴아이콘 잔뜩 집합)
– 결사의 자유: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단체를 결성하거나 결성된 단체에 가입할 자유 (아이콘: 서로 선으로 조밀하게 연결된 여러 점들)
나: 다만 문제는 같은 헌법에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해서, 뭇 권력자들이 꼴리는 대로 표현을 막아버리는 변명거리로 쓰곤 하죠. (그림: 컴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악플다는 검사. 말풍선:“그 분에게 토달다니, 님 좀짱. 근데 나 검사임. 니네 이제 다 걸렸음.ㅋㅋㅋ”)
나: 집회나 결사의 자유는 좀 더 화려하게 유린당하곤 합니다. 야간집회 금지니 공공장소 사용의 사전신고제니 교통법이니 하는 것들을 이용하면, 손쉽게 사람들을 닥치게 만들 수 있죠. 그리고 한국 굴지의 S그룹의 경우 고작 노조 하나 만들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녹: 누가 뭐래? 합법시위를 하면 되잖아. // 소: 니가 해봐, 합법시위! (배경: 아무 것도 없는 야산 산골짜기에 모여서 뻘쭘한 모습으로 집회하는 사람들)
나: 그리고 여기에 직접적으로 맞물리는 것은 역시 미디어의 역할이죠.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가 제대로 서야 하고…
(그림: 신문 ㅈ일보/헤드라인에 “각하, 경제를 살리자 선언” // ㄷ일보/“야당은 바보똥깨” // TV화면에 앵커, 말풍선 “오늘도 도심 교통정체를 일으킨 촛불좀비들은 무사히 진압되었습니다. ***뉴스 ***입니다.”)
나: …또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는 매체공간이 잘 가꿔져야 합니다. (그림: 블로그들, 토론방들 스크린샷)
나: 물론 이런 소통의 중요성을 단순히 도덕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큰 소용이 없습니다. 각 개인들이 가치 있는 뉴스 정보와 열린 의견 소통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느냐가 관건이죠. (그림: 척도가 그려진 화살표. “개똥 – 어라 이런 것도 있군 – 좀 신경써볼까 – 뭔가 있어 보이네 – 어, 좀 중요하겠군 – 상당히 핵심적 – 궁극의 가치”)
나: 결국 상황을 이해하고 합리적 결정을 내리며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들, 즉 각 개인들이 할 몫이니까요. (그림: 말풍선만 : “어서오십쇼 주인님.” “오냐.”)
나: 매체와 소통이 민주주의가 굴러가는 방식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수년간의 전형적인 촛불 시위들을 예로 들어보죠. (주: 이하, 간단한 아이콘화된 그림과 지문만 있는 자잘한 칸으로 묘사)
1) 특정한 사안이 언론을 통해서 뉴스를 탑니다. (그림: 신문)
2) 그 뉴스와 기타 여러 정보와 의견들이 인터넷 상에서 섞여 갑니다. (그림: 인터넷)
3) 사람들이 각자 분개합니다. (그림: 화내는 얼굴)
4) 온라인게시판이든 동네 휴게실이든 곳곳에서 토론하고 성토합니다. (그림: 화내는 얼굴 여럿)
5) 결국 누군가가 시위를 제안합니다. (그림: 촛불)
6) 시위 정보가 온라인으로 일파만파 퍼집니다. (그림: 촛불이 들어간 말풍선 여러개)
7) 삼삼오오 모여들어 큰 시위를 합니다. (그림: 촛불바다)
8) 뉴스와 개인매체들에서 시위 현장 사진과 동영상이 떠돌아다닙니다. (그림: 사진 여러장)
9) 2)부터 반복됩니다. 물론 정도나 방향은 조금씩 바뀌어가면서. (그림: 돌아가는 화살표)
소: 민중의 힘이 발현되는 모습! // 녹: 촛불좀비 탄생이겠지.
나: 에에… 사안에 따라서 둘 중 어느 쪽도(아니면 둘 다) 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것은 다양한 소통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 사회 성원들의 분산된 세력화입니다. 고전적인 의미의 조직화와는 많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상생활인 민주주의 운영방식인 셈이죠.
(그림: 분산된 네트워크 그림. http://www.sysbio.org/images/interaction_network.jpg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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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의 핵심 안건 가운데 하나는, 과연 어디까지가 ‘민’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림: 그리스 신전 앞 팻말: ‘오늘 3시 아고라 정기총회. 미성년자금지 여자금지 노예금지’)
나: 어떤 사람까지가 우리와 함께 동등한 권력을 나눠야할 인간인가, 라는 문제는 계층, 계급, 이익집단, 연대 등 굵직한 화두를 한꺼번에 묶는 핵심 인식입니다.
(그림: 동그라미들이 겹쳐져 있는 도표. 맨 안쪽 동그라미: “나”, 다음 크기의 동그라미: “우리”, // 색깔 바꿔서 다음 동그라미:“듣보잡들”, 다음 동그라미:“물건, 짐승”, 가장 바깥 동그라미:“나쁜 놈”)
나: 여기에는 자기가 먹고 사는 것과 다른 이들이 먹고 사는 것 사이에서 조율하는 것의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그림: 철거촌에서 시위하는 철거민들 뒤로 솟아오른 고급고층빌딩)
나: 사상의 대립과 양심의 자유도 담겨 있습니다.
(그림: 군복입고 신문사에서 난동피우는 아저씨들, 복역죽인 양심수)
나: 물론 가장 간단히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성원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하…
녹: 훗, 정말로 네가 일면식 없는 공장 아줌마들하고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소: 무슨 소리, 노동자 민중이라면 자고로 한마음이라고!
나: …그러니까 서로 다른 집단이라는 차이를 인식하면서도 같은 사회적 이해관계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란 말입니다.
녹: 하! 사실 댁도 답이 없지?
나: … 없죠. 하지만 몇 가지 기본 원칙 정도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어떤 이들을 민으로 간주해주기 위해서는
1) 이들을 동등한 사회 성원으로 끌어들여야 이 사회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겠다는 믿음 (아이콘: 다양한 색깔의 점들이 만드는 모자이크)
2) 이들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할 능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 (아이콘: 총명한 표정의 얼굴)
…등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따라서 권한과 책임이 배분되는데, 그래서 1) 장기체류 해외국적자들의 권리 보장 범위가 항상 논란거리고, 2) 대부분의 현대사회에서조차 미성년자들은 투표 같은 사회운영 참여에서 제외되고 있죠.
나: 다만 가급적이면,
1) 이 사회의 성원이라면 보편적 인권을 보장한다는 근본적 전제 (그림: 미소짓는 아이콘 얼굴)
2) 결국 사회 속에서 서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네트워크적 시야 (그림: 미소짓는 아이콘 얼굴 여럿이 서로 작대기로 연결되어 있음)
…정도는 갖추는 것이 보다 완성도 높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방향성이겠거니 하고 시작하면 편리합니다.
나: 폭넓은 연대의 거의 낭만적인 이상향으로 꼽히곤 하는 것은 프랑스의 1871년 파리꼬뮌 이죠. 또 다른 귀족정이 되어가는 부르주아 중심의 민주주의 움직임에 반기를 들고, 수탈당하던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무장해서 수도 파리를 점령하고 그 안에 극단적으로 평등한 민주정을 실험한 사건입니다.
(그림: http://www.leportaildelabd.com/images/albums/cri.jpg 이런 느낌으로)
소: (말없이 극단적으로 감동한 표정) 녹: (그림을 보며) 그런게 오래 갈 리가 없잖아?
나: (쳇, 눈치 빠르긴…) 이들은 군대에 잔인하게 진압당하기까지 70일 동안, “권력의 보편화”를 기치로 걸고 자치정부를 굴리며, 생산수단 공유화, 각종 현대적 인권 개념은 다 들어있는 인권선언 등 당대의 상식을 크게 뛰어넘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냈죠. 이들에게 꼬뮌에 속해있는 모든 성원들은 동등한 권력을 나누는 폭넓은 연대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국제주의를 표방하기도 했습니다.
녹: …권력의 미움을 살 만 했군.
나: ‘민’의 범위와 연대에 관한 국내의 중요한 사례라면,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을 빼놓을 수 없죠.
소: 태일 오빠! 맞이하리라 민중의 나라!
나: 원래 한국의 70년대란 어차피 독재정권인데다가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느라 눈이 멀기까지 했었죠. 덕분에 민주주의적 가치로서의 평등이나 인권은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 같은 것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녹: 물론 뭐 지금이라고 딱히 다르다고는…;;;
나: 그런데 노동자 전태일이 한 손에 노동법을 쥐고 몸에 불을 붙인 분신사건을 계기로, 노동자들이 연대의 대상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저평가된 성원으로 재발견되었죠. 여전히 독재치하이기는 했어도, 민주주의의 무엇을 위해 어떤 식으로 싸워야할지 더욱 강력한 구심점이 생긴 셈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의 불꽃”이 씨를 뿌려 수많은 들불을 일으킨 격입니다. (그림: 온톤 어두운 배경에서 작은 불씨 하나)
“‘민족중흥’의 환상에 들떠 노동자들의 고통을 그저 ‘근대화’를 위해 치러야 할 당연한 대가로 생각했던 많은 지식인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들으면서 민중의 피눈물로 이뤄지는 ‘근대화’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 한 무명 노동자의 죽음은 이 나라의 지성계를 바꿔 놓았다.” (박노자, 2009. 3. 18. 한겨레 칼럼 중.) (배경: 청계천 거리 전태일 기념비)
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날 이후로 아름다운 민중연대 따위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노조라는 말만 들어도 아직도 악의 조직이고 사회질서 파괴세력이며 북괴의 꼭두각시인데다가 일하기 싫어하고 국가경제를 좀먹는 귀족 노동자들이라고 자동적으로 떠올리시는 분들이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에 많이 계시니까요. (그림: 괴수가 배경에 있고 사람들이 경악하는 호러 괴수영화 포스터가 벽에 부착되어 있음. 괴수는 노조 조끼를 입고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음. 포스터를 구경하는 녹용과 소녀의 뒷모습)
나: 사실 연대라는 것 자체부터가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뭉치지 않으면 사회를 꾸려나갈 동력이 생기지 않지만, 너무 뭉치면 그 속에 포함된 다른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손해를 깔아뭉개게 되죠. 물론 알리바이는 정기적으로 살짝 바꿔주곤 하지만.
“‘민족’ 중흥을 위해 너희들이 좀 고생해라” (그림: 60년대풍 사장이 노동자에게 하는 말풍선) -> “‘국가’ 경쟁력을 위해 너희들이 좀 고생해라” (그림: 80년대풍 사장이 노동자에게) -> “‘사회’ 통합이 필요하니 집단 이기주의를 관두고 좀 너희들이 고생해라” (그림: 90년대풍 사장이 노동자에게) -> ‘선진국 진입’을 하려면 역시 너희들이 좀 고생… (그림: 이명박이 노동자에게)
심지어 민주사회를 부르짖는 조직과 단체들에서도 내부에서는 연대라는 명분하에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은폐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2008년의 민주노총 성폭력 은폐 시도 사건 같은 것이 치욕적인 대표 사례죠. (그림: “정권과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 이라고 말하는 실루엣 인물)
소: 하지만 희생도 하고 양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뭉쳐요?
녹: 남이 희생도 하고 양보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이득을 봐?
나: … 아, 핵심은 쌍방향성과 공정성입니다. 서로 공정하게 주고 받다보면 단순한 희생이나 양보가 아니라 거래와 합의가 만들어지곤 하죠. 민주주의는 각각의 사건 해결 뿐만 아니라 자신을 움직여주는 ‘민’들을 규정하는 것에서조차 합의라는 룰으로 움직이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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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내용 단위로 들어가는 느낌이 확 들게 분절]
(빈칸 속에 말풍선 하나만 표시: “그런데 말야.”)
녹: 지금껏 별 복잡한 이야기는 다했는데,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확실히 나은 점이 뭔데?
소: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서 꿈을 이루기 위한 체제라는 거 아냐?
녹: 뭘 그리 복잡하게… 승자가 되면 내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소: 모두 잘 살아야 좋은 사회지!
나: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쪽이 내가 망할 때라도 좀 덜 망할 수 있으니까, 더 나은 편이기는 합니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은 내가 사실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호되게 당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좋은거죠.
녹: 훗, 박정희 때도 대충 착하게 살면 아무 문제 없었잖아? 똑똑한 티낸다고 불평 많이 하던 것들이나 잡혀간거지. 어떤 체제든 대략 친정부적으로 살면 문제 없는 거 아냐.
나: 그게… 친정부적으로 살아도 문제가 생길 정도의 강력한 민폐도 얼마든지 있죠.
독재 하의 소련도 정부 말만 들으면 문제 없을 것 같았겠지만 하지만 수십만이 강제이주하다 죽고 비밀경찰의 일상적 감시에 떨었습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선택이 뿌듯했겠지만, 결국 파멸의 잿더미가 돌아왔고. (그림: 나치 깃발, 잿더미, 고문실 등의 이미지)
뭐 여하튼, 동네 강아지도 주인 말만 잘 들으면 밥도 얻어먹고 귀여움도 받습니다. 언제 화풀이로 걷어차일지, 어느 복날이 이승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죠. (그림: 주인에게 귀여움 떠는 누렁이와 뒤에 몽둥이를 숨기고 침을 흘리는 난닝구 차림 주인)
나: 사실 민주주의를 가볍게 보고 팽개쳤다가 큰 피해를 봐야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수십년 개발독재의 오랜 폐단이 누적되었다가 하필이면 민주화가 된 이후에 IMF 구제금융 정국 같은 대형 사고로 터지는 얄궂은 타이밍이었습니다. 덕분에 개발독재가 아름다웠고 민주화가 피해를 낳았다는 듯한 이상한 인식을 하는 분들이 생겨나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꾸 그 시절의 상징이었던 토목공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지도자를 뽑기도 하… (그림: 일사분란하게 도열해서 삽질을 하는 좀비 군중)
소: 자꾸 옆으로 빠지지 말구요. 그.러.니.까. 8자구호로 하면 결국 민주주의는 뭐라고 건가요?
녹: 그래. 별별 이야기 다 했지만 뭐 뚜렷한 게 없잖아?
나: 민주주의는 뭐 뚜렷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소/녹: -_-
나: 민주주의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사슴이 사자와 뛰노는 낙원이 아닙니다. (그림: 녹용과 사자분장한 소녀가 70년대풍으로 꽃밭을 뛰어논다)
나: 게다가 쉽게 유지할 수 있는 것조차 아닙니다. 갈등은 넘쳐나고, 조율하려면 거쳐야할 과정도 많죠. 사람들은 언제라도 멍청해질 수 있고, 독재를 동경할 수도 있습니다. 손 많이 가는 복잡한 시스템인 것이죠.
(그림: 야스쿠니신사 참배하는 일본인들, 네오나치 스킨헤드들, 전사모)
나: 즉 사람들이 각각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개입해야만 민주주의는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림: 시끄럽게 토론하는 사람들의 실루엣)
나: 모두가 대통령 흉내를 내면서 모든 것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택도 없는 인간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판을 망치려고 할 때, 그런 것들을 반대하고 막아낼 정도의 적절한 정보 정도는 학습해야겠죠.
녹: 과연 그 정도라도 열심히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 소: 한명씩이라도 늘려나가면 되지 않아?
나: 민주주의는… 어차피 복잡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가능성’이 있는 사회운영제도입니다.
나: 같이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방향을 수정할 수 있고, 속도도 조절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으니까요.
나: 그러니까 제대로 확실하게 개발하고 밀어붙일 가치가 있습니다. 보장합니다.
녹: 그러니까 어쩌라고. 나가서 민주주의의 희망 전도사라도 할까? // 소: 난 할래! 난 할래!
나: 우선은 힘들게 얻어내서 지금 손에 쥔 백지 한 장의 의미부터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어떨까요.
(그림: 다시 한 장의 투표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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