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은 왜 즐거운 것인가 [문화저널 백도씨 0804]

!@#… 문화저널 백도씨 2008년 4월호 커버 테마 ‘변신’의 개요 꼭지. 정치인의 변신, 뭐 그런 것 말고 그냥 대중문화코드로서의 변신. -_-;

 

변신은 왜 즐거운 것인가

김낙호(만화연구가)

지난 여름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외화, ‘트랜스포머’를 기억해보자. 솔직히 특수효과 기술로 무언가 펑펑 터트리는 것으로 치자면, 한 해에도 지구를 몇 번씩 박살내는 헐리웃의 과잉 속에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다. 스토리나 연기가 견인하는 영화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던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흔히 하는 이야기는 거대로봇을 실사영화에서 구현했다는 것. 맞는 말이기는 한데, 무언가 아직 부족하다. 무식한 대형 트럭이 더욱 무식한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하는 광경 앞에 시선을 맞추기 위해 점점 눈을 위를 향해 올리는 경이로운 쾌감을 설명하는 것은 좀 더 가까이에 있다. 바로 변신의 즐거움이다. 변신의 즐거움은 대중 문화의 가장 대중적인 장르들 속에서 재미의 핵심 코드로 무척 자주 애용된다. 앞서 이야기한 변신로봇이든, 슈퍼히어로든, 마법소녀든 또 다른 무엇이든 말이다. 이번 기회에 간략하게, 대중문화 속 인기코드로서 변신이 주는 재미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해보자.

하지만 그냥 변신이라고 하면 너무나 용례가 넓다. 그 중 우리가 흔히 장르문화적인 ‘코드’로서의 변신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압축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처신에 의한 입장변화라는 변신, 즉 ‘변심‘은 그 코드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이야기 요소로서 재미있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선거 전과 선거 후의 얼굴이 싹 바뀌는 고위직 무능력자들의 현실 정치가 생각나면서 짜증이 밀려오니까. 변심은 배신이나 캐릭터 변화로 연결되는데, 그것 자체로 특별한 쾌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혹은 완전한 변모, 변태(‘metamorphosis’)도 딱 이거다 싶지 않다. 장중한 그리스신화의 결말에는 어울리겠지만, 뭔가 상쾌함이 없다. 카프카 소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바퀴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비참하게 외면당하다가 죽는 이야기가 연상된다. 완전한 변모 역시 캐릭터가 갑자기 바뀌어 버려서, 공식화된 즐거움보다는 충격효과에 더 유용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 하나의 공식화된 대중문화의 인기코드로서의 변신이라면 역시 능력으로서의 형체 바꾸기 그 자체다. 트럭이 외계에서 온 기계로봇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해서 다른 변신 로봇들을 호쾌하게 쥐어 패는 이야기에는 캐릭터의 일관성이 있다. 변신해서 무척 잘 싸운다는 것은 하나의 능력이다. 이것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그런 식의 변신은 워낙 물리세계의 흔한 일상을 크게 벗어나곤 하기 때문에, 현실탈피와 이입에 의한 극적인 대리경험을 쾌감의 원천으로 하는 대중문화 장르에서 더욱 중요한 기능이 되어준다.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보는 대중문화 속 변신의 코드는 전반적으로 세 가지 요소를 동반한다(예외는 당연히 있고, 예외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전복적 재미는 충분히 즐겁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째, 변신은 친숙한 것에서 환상적인 것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동네 자동차와 기차와 기타 온갖 일상적 소품들이 왠 소년이 손목시계에 명령 한번 내리자 우루루 모여서 결합하더니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한다든지 말이다. 아니면 평범한 동네 청년처럼 보이는 이가, 안경 벗고 웃도리만 풀어헤치면 난데없이 근육질 전신스판 외계인 슈퍼히어로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누빈다. 혹자는 트랜스포머의 경우 원래가 로봇 생명체이고 자동차나 비행기 모습이 변신한 모습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세부설정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닿는 구도는 어디까지나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한다”는 컨셉이다. 애초에 완구 시절부터 그 컨셉이었기에, 변신 완구를 판매할 때도 보통은 자동차 형태로 포장되어 팔린다.

둘째는 파워업이다. 변신을 한 결과, 변신 이전보다 더 약하고 볼품없어지면 무척 곤란하다. 그래서야 변신하는 의미가 없으니까. 즉 변신을 하기 때문에 막강한 존재로 탈바꿈해야 한다. 덤벙이 여중생은 세일러문으로 변신 후 필살기 빔을 쏠 수 있어야 하고, 두들겨 맞기 바쁘던 사이야인은 머리가 노랗게 일어서서 초사이야인이 되고 난 후에는 프리더에게 이겨야 한다. 변신을 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약하면 변신의 쾌감은 급속하게 줄어든다. 많은 경우 그런 사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숨겨두었던 2단계 변신 밖에 없다 (심지어 새 완구도 팔아먹을 수 있다).

셋째는 제한조건이다. 변신을 하는 것에 제한조건이 없으면 그냥 마이티울트라슈퍼파워풀 형태로 평생 돌아다니지 왜 친숙하고 약한 모습으로 살아가겠는가. 대표적인 예는 울트라맨의 5분3분이다. 5분3분 안에 괴수를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까지 참고 아끼다가 확 풀어낼 수 밖에 없다. 미국식 변신 슈퍼히어로들의 경우, 인간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사생활이 바로 제한조건이다. 24시간 히어로질만 하다가는 사회적 부담감이 무척 커질 수 밖에 없는 이들이기에, 변신을 풀고 다시 평범한 척 사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바로 대중문화 속 변신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강력한 힘에 대한 동경”을 자극해주는 쾌감의 코드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 듯 별 것 없어도, 한번 꼭지가 확 돌면 장난 아니게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에 대한 대리만족이다. 다만 내가 항상 그렇게 광분하고 다니지 않는 것은 나름의 제한이 있기 때문일 따름이다. 찢어지는 옷과 주인공의 고뇌는 어찌되었든,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신해서 그를 괴롭혔던 악당들을 분노의 무력으로 쓸어버리기를 고대하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이다. 단순히 급격하게 성장해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환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파워업이 내 의지에 의한 것이고 내 일상에서 필요할 때 구현할 수 있다는 이입이다. 이런 것은 폭주하지 않는 파워 판타지의 필수요소다. 물론 여기서 힘이라 함은 무력으로서의 힘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여러 직업을 가진 (미녀)어른으로 성장해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소녀 밍키는 무력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 어려운 문제를 능란하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이기에는 매한가지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 상징적 이벤트가 바로 변신이다. 특히 변신은 힘의 급격한 업그레이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도 딱 좋지 않던가.

여기에 덤으로, 의외성의 효과도 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영어 홍보 카피 ‘More than meets the eye’는 문자 그대로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는 말이다. 혹은 서울시의 각종 건물들이 합쳐지면 사실은 마징가가 된다는 유명한 개그가 주는 유쾌함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익숙함과 의외성을 균형 잡으며 즐거움을 주는 대중문화로서는 좋은 도구다.

파워업으로 캐릭터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이면서도 동시에 언제라도 파워업을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보유가 바로 변신이라는 모티브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 의 변신 코드는 즉각적이고 원초적인 재미를 준다. 너무 남발해서 현실과의 고리를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맛난 조미료가 드물다. 그것이 바로 대중문화 속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신이 넘쳐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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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변신은 왜 즐거운 것인가 [문화저널 백도씨 0804]

Comments


  1. 어째서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고3 변신소녀가 생각나는지는 불명(…)
    뭐 확실히 트랜스포머즈는 으흐 나도 저런 차 있었으면 으흐~하는 감정은 (데이트까지 도와주는 엄청난 차가 아닌가!!!) 마구마구 자극하더랍니다.

  2. !@#… ullll님/ 설정상 못생긴 괴물이라는거지 디자인 자체는 귀엽던데요.

    시바우치님/ 덤으로 우주적 차원의 전쟁질에 휘말려 들어가기도 하죠.

  3. 울트라맨의 제한시간은 3분입니다만… (시리즈에 따라 늘거나 줄기도 하지만 기본은 항상 3분이죠. 덕분에 컵라면도 못먹는 불쌍한 히어로라는 CF가 나오기도 OTL)

  4. !@#… 잠본이님/ 헉,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도대체 5분이라는 애매모호한 수치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