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종이만화 시대의 대표작가, 온라인 적응기 [전시회 연계 작가론 보고서 2015]

!@#…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2015년 허영만 작가 특별전의 일환으로 작성된 작가론 연구보고에서, 온라인 환경 적응에 대해 한 챕터 일임. 보고서가 어찌 완성되고 활용되었는지는 못 들었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백업 게재.

 

허영만: 종이만화 시대의 대표작가, 온라인 적응기

김낙호 (만화연구가)

70년대부터 내내 한국만화의 대표적 스타작가로 위치하며, 허영만 작가는 대본소 극화, 만화잡지, 일반 단행본, 스포츠신문과 종합일간지까지 거의 모든 당대 주류 매체를 활동 터전으로 성공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그가 2000년대 중반 이래로 확연하게 정착한 온라인 만화라는 터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한 것은 조금도 의아한 일이 아니다. 2015년 1월 17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끼여 있는 세대의 작가”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해당 인터뷰 대목의 바로 뒤에, 제한사항이 붙었다. “2년 전부터 종이 대신 모니터에 작업을 하고 있다. 편리한 점도 있긴 하지만 모니터에는 고통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온라인을 통해 만화를 보면 접근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작가들의 노고가 너무 쉽게 가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여러 플랫폼에 도전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했던 모습과는 다른 거리감을 표명한 것이다.

위 서술은 온라인이라는 유통방식과 디지털이라는 작업방식을 혼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계속 노력한 적응 시도와 고민의 흔적은 역력하게 담겨 있다. 온라인의 정착 속에, 만화의 가장 성공적인 모범 사례로 솔선수범을 보여야 했던 한 작가는 어떤 식으로 좌충우돌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의 다양한 시도들과 성패 과정은, 한국에서 만화가 매체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한 중요한 사례 자료가 되어준다.

온라인이라는 수용양상과 만나다

허영만 만화와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만남이 시작된 것은 사실상 [타짜](김세영 글, 허영만 만화)부터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가 저물며 촉발된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망의 폭발적 보급과 웹 환경의 빠른 정착 속에, 스포츠신문사들은 자신들의 킬러콘텐츠 중 하나였던 연재만화들을 앞 다투어 전면에 내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4-6페이지라는 길지 않은 분량이 장편 연재로 매일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방식은 인터넷 사용자 문화 특유의 입소문 문화와 쏠림 등의 요소들과 궁합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 속에, 스포츠조선에서 1999년부터 연재된 [타짜]가 온라인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타짜는 기본적으로 90년대 내내 이뤄진 바와 마찬가지로 신문 연재 극화였다. 디지털 작업이 이뤄진 것이 아니고, 온라인 매체를 전제로 하여 이야기나 표현의 틀이 짜여진 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을 애초에 고려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환경에 한층 잘 적응하게 된 작품은 바로 [식객]이었다. 이 작품은 2002년 동아일보에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90년대 중반 영점프에 연재했던 [샐러리맨]처럼 옴니버스 방식을 취했고, 음식과 음식점 정보라는 구체적 확장성을 포함했다. 옴니버스 방식은 누구나 작품에 가볍게 뛰어들기 편하게 만들었고, 각종 게시판 포럼에서 각 화에서 다뤄진 음식 소재에 관한 정보 교환과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처음에는 신문 연재분량이 동아일보 웹사이트인 동아닷컴에서 서비스가 이뤄졌다가, 2004년에는 한국통신이 야심차게 포털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파란닷컴으로 둥지를 옮겼다. 파란닷컴은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메꾸기 위해 주요 스포츠신문 독점 등 공격적인 콘텐츠 유치 전략을 펼치며 그 연장선에서 ‘엔타민’이라는 연재만화 모음 코너를 만들었고, 당시 주류적 인기가 뛰어났던 [식객]의 온라인 유통을 일임해버린 것이었다. 이로써 [식객]은 지면상으로는 동아일보에, 온라인에서는 동아가 아니라 파란에서 이어지며 작가에게 두 경로의 연재료를 안겨주었다.

신문과 포털

한 작품을 신문과 포털에서 함께 연재하여 연재료 수익처를 나누고 작품의 경로도 넓히는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관상학을 다룬 [꼴]을 동아일보 경제 섹션과 미디어다음에 함께 연재했다. 그간 포털업계에서는 스캔 만화방 서비스가 아닌 온라인 만화 연재가 ‘웹툰’이라는 용어로 정착하며 빠르게 확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꼴] 역시 웹툰 섹션으로 함께 묶였다. 또한 섹션의 성향에 맞게, 신문 연재분과 달리 디지털 채색이 입혀져 있었다.

그런데 2010년에 중요한 변화가 두 가지 일어났는데, 하나는 [식객]의 연재 종료였다. 동아일보와 파란에서 병행되던 상태에서, 식객은 2008년에 동아일보가 자사 사정에 의하여 연재를 중단하고, 파란 역시 그간 포털 경쟁에서 만성적으로 밀리면서 만화섹션을 사실상 정리했다. 온라인은 KT의 인터넷 가입 브랜드인 ‘쿡’의 콘텐츠 서비스 페이지에서 연재처를 새로 찾았지만, 신문 부문은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오며 더욱 지명도가 커진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개월여 동안 새 공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도시 지역 출퇴근 인구를 대상으로 한 지하철 무가지 ‘메트로’에서 둥지를 틀었다. 겨우 신문과 포털의 병행이라는 구조를 이어갔지만, 두 곳 모두 매체로서의 주류적 안정성에서는 한층 불안해진 국면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매체환경은 다시금 급변, ‘아이폰 쇼크’를 계기로 터진 스마트폰 보급 속에서 지하철 무가지는 급속히 일반 독자들에 대한 지분이 줄어들었고, 결국 2010년 3월에 메트로는 식객 연재를 종료했다. 연재를 가능하게 한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무너지자, 온라인에서도 연재를 동시에 종료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미디어다음 웹툰 섹션과 스포츠조선에서 연재를 시작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이하 말무사)의 시도다. [말무사]는 징기스칸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장대한 대하서사에 도전한 작품으로, 그림체 면에서도 그간 간략화한 양식에서 섬세한 세부묘사를 강화하며 영화로 비유하면 블록버스터라고 할 만큼 스케일도 작업량도 큰 대작을 선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신문 산업 전반의 위축이 가시화되던 매체 환경, 연성 작품에 대한 선호가 큰 편이었던 당시 웹툰 주류 독자층 취향, 작품 내용 자체의 후반부 진행의 급작스런 전개 논란 등이 겹치며 전작들과 맞먹는 뚜렷한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문제는 고정비용이었다. 일일 연재를 기본으로 하는 작품 연재 방식을 하고 있다 보니, 혼자서 모든 것을 맡거나 사람들을 작품 단위로 일시적으로 규합하는 개인 창작이 아니라 화실을 고정적으로 운영하며 작품 제작을 계약하는 제작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류 연재만화라면 잡지 편집부에서 일정부분 보조해줄 각종 취재 등 사전 제작 과정 또한 화실에서 일임한다. 전국 각지의 음식을 찾아다니며 취재해야하는 [식객]도 그렇지만, 아예 몽골 현지 취재까지 해야하는 [말무사]는 사전제작 부분이 더욱 컸다. 그런데 매체환경의 변화 속에서 점차 신문의 수익성이 떨어짐에 따라서 신문들이 연재 콘텐츠에 장기적 투자를 거는 것도 줄었다.

그러다보니 종이와 온라인 두 연재처에서 함께 수익을 얻는 것은 허영만 작가가 그간 구축한 작품 제작 방식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이 되어버렸고, [말무사]는 이런 문제가 결정적으로 터져버린 작품이었다. 2013년 국회토론회에서 발언한 바에 따르면, [말무사] 연재 당시 두 작품을 동시 연재함에도 불구하고 매달 천만원의 적자가 났고, 설상가상으로 작품 시작 후 15개월 정도가 되자 스포츠조선이 연재를 종료시키고 미디어다음만 남자 적자의 폭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말무사]는 미디어다음에서 도입한 완결 후 패키지로 만들어 유료과금을 하는 수익모델의 첫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기도 했지만, 그간 비용을 메우고 새로운 모델로 정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바일 과금에 도전하다

[말무사]가 종료된 후, 다시 차기작 매체 물색 기간이 이어졌다. 그 시기 허영만 작가가 가장 큰 호응을 이미 증명했던 [식객]의 재개를 내걸고 포털이나 지면 업계에 요구한 제작비는 월 3500만원이었다. 7인의 팀원과 각종 취재비 등 작가 본인에게 떨어지는 수익 없이 화실 운영 자체에만 들어가는 비용이 그 수준임을 그는 명확히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제작비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너무 원고료를 높이 부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제는 그런 제작비 규모를 투자할 여력이 있는 곳이 2012년의 출판계와 언론계에는 남아있지 않았고, 포털사이트로 대표되는 인터넷 신흥 세력이 자신들이 평가하는 시장성에 비추어 지불하고자 하는 원고료 규모는 아직 2000년대 초 산업적 전성기를 맞았던 신문사들의 수준까지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매체 물색은 9개월 동안이나 성과 없이 지연되었는데, 급부상중이던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 업종과 결국 만남을 이루었다. 모바일 기기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카카오메신저가 본격적으로 콘텐츠 배급 사업에 나서고자 하는 ‘카카오페이지’를 준비중이었고, 핵심 분야 중 하나인 만화 부문에 허영만 만화를 물색하고자 한 것이었다.

카카오페이지가 출범하며 내세웠던 장점은 이미 널리 보급된 카카오 메신저라는 플랫폼 위에 올라서는 것이기 때문에 잠재 독자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수익모델이라는 측면 또한 원고료 방식이 아니라 아예 콘텐츠 과금 수익 배분으로 가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가 이미 충분히 높은 창작자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였다. 반면 단점은 작은 화면 등 물리적 조건 때문에, 이전에 신문연재 기준으로 포털까지 병행했던 방식보다도 한층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창작 과정 또한 종이 작업이 아니라 디지털 기기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나갔다. 나아가 인터뷰에서 누차 밝혔듯, 자신이 만화계의 롤모델이라는 자각 또한 함께 작용했다. 즉 업계의 가장 유명한 성공 케이스 중 하나로 꼽히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상당한 수익을 거둔 모습을 모범으로 보여야 한다는 의식이다.

불리하게 변한 매체 환경 속에서 화실 운영을 유지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뛰어든 것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식객2]는 2013년 4월에 카카오페이지로 연재를 시작해서, 월 구독료를 2000원으로 책정했다(그 중 50%가 수수료로 제공되고, 나머지가 전부 창작자의 몫이다). 기존 식객 시리즈와 달리 올컬러 작업을 했고, 일일 연재 당시와 비슷한 분량이 제공되었다. 시작하자마자 카카오페이지 모든 콘텐츠 가운데 매출 순위 6위(현재 인기 1위, 매출1위)입니다.

하지만 이 도전은 충분히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식객]이라는 콘텐츠가 수명을 다했다기보다는, 인터페이스 매력의 애매함, 초기 콘텐츠 풀의 부족 등 여러 요인으로 카카오페이지의 첫 버전 자체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식객2]에 대해서 당초 예상되었던 제작비 대비 손익분기점이 유료 구매자 4만 명 수준이었는데, 정확한 자료는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에 크게 못미친 것으로 작가 스스로 자인했다. 그 결과 [식객2]는 식객 브랜드의 새 중흥기를 열지 못하고, 3권 분량으로 조기에 완결되었다. 카카오페이지에 주간 연재로 병행하던 [허허동의보감]과 [나의 밥투정] 역시 2014년 1월말을 기점으로 완료되고, 카카오페이지 실험은 그렇게 완결을 고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허영만 작가는 다시 종합일간지인 중앙일보에 [커피 한 잔 하실까요]라는 커피 전문 만화로 돌아왔다.

소결

종이매체 연재 작가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절치부심의 시기를 거친 뒤 ‘웹툰’의 문법에 완전히 자신을 새롭게 적응시켰다. 어떤 이들은 그냥 도태되었다. 그러나 허영만 작가의 경우는 종이만화라는 자신의 그간 기틀을 매체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오랫동안 고수하고, 그 안에서 고비용 고품질 제작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한 분야를 대표하는 성공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신문과 온라인 포털을 각각 수익원으로 하는 이중 구조를 실험하기도 했고, 그것이 수명이 다하자 포털 단독으로 가면서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예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가장 먼저 도전하기까지 했다.

각 시도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수명을 다했지만, 적응에 임하는 방식만큼은 다른 상황에 처한 다른 시기의 창작자라고 해도 되새겨볼 구석이 넘친다. 연재 수익원의 분산 병행이라든지, 원고료가 아닌 작업비 개념을 고수한 것이라든지, 새 플랫폼에 도전할 것을 결정하고 나서는 한 다리 걸친다는 애매한 접근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새 환경에 맞추었다든지 하는 점들이 그렇다. 반면 한계는, 시장이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유용한 참조 사례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팀의 운영 형태를 변형하거나 다른 종류의 일을 병행하여 대형 작품 창작이 없는 휴지기를 보내는 방법을 체계화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금을 소진하며 버텼기 때문이다. 도전 실패의 시기를 유연하게 보내는 방법이 요긴할 때는 전혀 다른 참조사례가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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