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거나 탈출하거나: DP 개의 날 [기획회의 398호]

!@#… 안 망가지고 굴러가는 것의 신기함 또는 서늘함.

 

고치거나 탈출하거나: [DP 개의 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집단에 속한 개인이 어떤 조직적 문제에 봉착해서 장점이 줄고 피해가 늘 때, 그는 어떻게 대처할까. 경제학자 허쉬만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탈퇴를 저울질한다. 그러나 탈퇴가 여의치 않을 때, 그리고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더 높을 때, 문제를 고치도록 항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 원리 위에, 현실은 좀 더 복잡한 변주들이 나타난다. 집단이 전반적으로 피해를 주는 곳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덜 손해 보는 소수가 권력을 쥐고 탈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혹은 충성도가 집단의 장점에 대한 합리적 기대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규범으로 강제되어버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집단 내에서 탈퇴하지는 못하지만 특정 권력 위치에서만큼은 자동적으로 탈퇴할 수 있게 장치를 두어, 집단을 유지하면서도 항의와 개선을 체계적으로 막아낼 수도 있다.

이런 갑갑함은 온갖 커다란 집단에서 크거나 작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 어디보다도 선명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군대다. 국방이라는 원래 목적에 합리적으로 충실하기보다는, 효율적 전투를 위해 만든 지휘 구조를 그저 권력서열로 치환하여 일상적 노동수탈과 인권침해에 악용하는 일이 흔해 빠졌다. 행여나 누군가가 무언가 고치고자 목소리를 높이면, 국방의 의무, 조직의 일사분란 같은 논리를 동원하여 충성심을 강제한다. 무엇보다 자동진급과 “짬밥”서열의 공식적 비공식적 장치 속에서, 개인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부조리를 참고 견디면 자신이 권력서열의 상위에 올라가는 것이 더 용이하다. 폐쇄적이고 제한된 생활환경 안에서 절대적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후진적 관리체계를 대대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군대생활이 국방보다는 인권의식 파탄에 특화되는 상태를 막을 길이 없다.

그런 판에 치이고 치이다가, ‘탈퇴’를 결정하는 개인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거부한 것이기에 범죄로 간주하고 바로잡아야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강제로 주입한 충성으로도 권력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피해가 누적되고, 도무지 항의로 무엇을 개선할 길이 없을 때 나올 수 있는 대처다. 모든 탈영병이 그런 동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막대한 불이익이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극단적 선택을 내리게 하는 경로 중 하나로서는 부족하지 않다.

[DP 개의 날] (김보통 / 씨네북스 / 2권 발매중)은 탈영병을 잡는 헌병 수사팀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안준호 상병, 그리고 그의 파트너인 박성준 일병이 여러 군무이탈범을 잡아들이는 에피소드 속에서, 크게 두 가지 기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는 각 탈영병의 사연으로, 사실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몰리게 되었는가를 그려낸다. 잠을 제대로 못자는 가혹 행위를 당하다가 탈영한 이의 사연도 있고, 여자관계로 탈영한 이의 사연도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다른 한 쪽은 바로 주인공들이 처한 군 생활의 모습이다. 부대를 탈출한 이들을 잡아들이는 직종의 특성상 내무반 생활보다 사복을 입고 바깥에서 수사를 하는 시간이 훨씬 많기에, 군인으로서의 생활과 민간에서의 작전활동 사이에서 더욱 선명하게 군대의 모순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안준호 상병은 불이익을 피하는 잔머리와 일을 처리하는 요령이 좋다. 자기 눈 앞에서 펼쳐지는 가혹행위에 대해서, 자신의 권력 범위 안에서는 말릴 정도로 기본적 양식이 있다. 하지만 사병 개인이 항의를 통해 개선을 하는 것이 웬만해서는 통하지 않음을 충분히 알고 있기에 나서지 않으며, 가혹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정의감을 불태울 정도로 열혈인 것도 아니다. 자신이 크게 손해보지 않는 한도에서, 자신이 지금 개입할 수 있는 선에서만 움직인다. 다만 탈영병을 잡는 수사의 과정에서만은 상당한 추리력과 장기 잠복의 끈기를 발휘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셜록 홈즈 같은 장쾌한 연역이 아니라, 지금 그 탈영병이라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지 이입해서 추적하는 것에 가깝다. 그보다는 탈영병을 둘러싼 정황을 파악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부대생활도 반추하는 쪽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다만, 그는 나서지 않는다. 이런 성격이기에, 감정이 극단에 이르러 생긴 탈영병 사건들을 만들어낸 이면의 과정이 건조하고 덤덤하게 제시될 수 있도록 이야기의 진행을 돕게 된다. 마음에 안 드는 이를 같은 내무반에서 집단의 이름으로 괴롭히는 것, 불필요하게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기 때문에 생겨나는 엇나감, 계급을 구실로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는 악당들이 있다. 쓴 입맛을 다시거나 나쁜 놈에 대한 흥분을 하는 것은 쉽지만,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흥분하지 않고 되짚는 것은 절제된 거리두기가 필요한 접근이다. 그런 부분을 절묘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작품의 장점이다.

절제된 거리두기가 가능한 기반은 첫째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되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정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인데 일관되게 거리를 두면,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는 느낌 때문에 신파 정서가 역으로 더욱 강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개인들의 사연보다 사회적, 구조적 모순으로 시선을 꽂아야할 때는 역효과가 나오기 쉽다. 하지만 일로서 바라보고는 사람에 대해서는 개입을 최소화할 때, 다시금 독자도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섣불리 조언하지 않는 것이다. 남의 어려움을 손쉽게 폄하하고 어떤 열정적 ‘직설’로 훈계를 주는 인생 상담 상황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탈영병이나 부대 중견 사병이 처한 갑갑함을 오롯이 인정하되, 조금 덜 피해가 가도록 얌전히 수갑을 받거나 당장의 가혹행위를 정지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할 뿐이다. 그 전의 선택은 당사자의 것이고, 그 다음 인생도 당사자의 것일 뿐이고, 책임질 일 없으면서 인생 조언을 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그저 조금의 인간적 배려를 해주는 것까지가 한계다. 거리를 두는 관찰자의 시선 속에서, 주인공의 의지가 아니라 문제가 생겨나고 커가는 과정에 초점이 저절로 맞춰진다.

탈출을 선택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과정, 그것이 군대 안에서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환경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더 섬뜩한 부분은, 그렇게 온갖 엉터리와 착취로 움직이는데도 많은 이들이 그냥 적응해 살고 조직이 계속 굴러간다는 점이다. 이런 면들을 직시할 줄 아는 작품이기에, 연재가 이어지며 감상적으로 말랑해지지만 않는다면 상당한 수작으로 남을 작품이다.

DP 개의 날 1
김보통 지음/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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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빨간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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