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어도 나름대로는 평화로운 현대 한국사회” 같은 말이 좀 뻘쭘해졌는데, 월초에 쓴 원고다보니 그런 것. 소개하는 작품은 인디팝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같은 제목 노래를 들으면 더욱 재미있다.
별 것도 없이 머뭇거리는 성인들 – 『속좁은 여학생』
김낙호(만화연구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은 주말드라마가 아니다. 적당히 크고 작은 부침은 있지만, 극단적인 인간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쫒는 열정을 불사르다가 배신을 당한다든지 하는 파국은 없다. 아니 그런 파국이 행여나 다가올까 피하기 위해서라도, 꽤 소심하고 머뭇거리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견주어보면서 다가간다. 그리고 조금만 틀어져도 뒤집고, 쿨하게 초월했다는 듯 허세를 부리다가도 알고 보면 마음이 허전하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지 어떤지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가 말았다가 한다. 때로 그것은 정말로 생활의 모든 것을 침범할 정도로 무겁지만, 사실 약간만 다른 곳에 신경쓰고 집중하고 나면 또 의외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꾸로 여느 드라마 속이라면 대범하게 지나갈만한 것들도, 자꾸 다시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대범하게 불사르고 맺고 끊는 그런 마음들보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런 속 좁은 마음들이 (적어도 나름대로는 평화로운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현실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현실이 만들어내는 인간 관계의 뻘쭘함이, 작품으로서 잘 엮어내면 퍽 재미있다. 주말드라마의 강렬한 관계 투르기나 시트콤의 인위적 대소동과는 다른, 소소하고 현실적인 난감한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공감 반,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마음 반, 그리고 가벼운 터치의 낙천성을 갖춘 가상의 이야기라서 오는 안도감을 양념으로 흩뿌리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나름대로 사회 생활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는 성인들의 연애라는 요소와 만날 때 이런 부분이 빛을 발한다.
『속좁은 여학생』(토마 / 팝툰 / 2권 발매중)은 작가 특유의 현실적인 남녀 관계의 소소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민망하게 어긋나는 사람들의 관계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속도 좁고 뭔가 마음 속에 미성숙한 구석이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약간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젋은 도시남녀들의 마음상태를 반영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제 나름대로 팬층을 얻고 기반을 잡은 소설작가 나미루, 그녀의 오빠 나미국, 편집자 한소미 등을 중심에 놓고 그들이 각자의 연애대상들과 벌이는 미묘하게 답답한 관계를 보여준다. 인연이 서로 얽힌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삼각관계와 치정극으로 빠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다양한 방식의 머뭇거림과 미련에 입각한 마음 뒤집기 패턴들을 보여주기 위해 갖가지 성격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그들의 현실적인 소심함에서 나오는 만남과 헤어짐의 결과들은 오늘날 한국의 도시남녀들에게 너무나 있음직한 모습들이라서 쉽게 공감대로 몰입하도록 만든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패턴에서 항상 나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상황인식과 판단에 빠져 상대의 마음을 먼저 재단해버림으로써 발생하는 착각이다. 어떤 이는 어렴풋이나마 제대로 사랑을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런 착각의 결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받는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서, 그런 착각들이 개입해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서 엉뚱한 이의 추파를 받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그저 제대로 한번 누군가를 좋아해보는 것 자체가 필요할텐데도 타인에 대한 착각의 결과 그냥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묻어버린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 동시에 좋아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으며, 타이밍은 늘상 어긋나는데 그것이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도 독자에게 있어서도 애잔하고 안타깝기보다는 마치 먼 친구의 친구의 연애담을 술자리 가십으로 전해듣는 것 처럼 “어라, 이번에는 이렇게 또 꼬이는군” 정도의 탄식을 뱉게 만들게 한다. 그런 비극적일 것 까지는 없지만 뭐 하나 속시원할 것 없는 엇갈리는 관계 속에,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어렴풋한 (그러나 스스로들도 그다지 믿지 않는) 소망도 이미 곁에 있는 사람 말고 다른 이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와중에서 약간씩 주인공들은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성장한다. 상대의 마음을 더 알게된다기보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더 성숙해지는 식이지만 말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작가의 이전 작품들의 연속선상에서 보자면 더욱 돋보인다. 비록 현실적 밀고당기기의 연애를 그려내고 있지만 기실 속 늙은 청소년들의 에피소드식 연애백서 같은 감성이 강했던 『남자친9』나 『크래커』등과 달리, 『속좁은 여학생』은 사회 속에 기반 잡고 살아가는 성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속좁은 여학생’스러운 연애 감성을 장편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장편이라는 형식이 이번 작품에서는 무척 효과적인데, 어떤 민망한 상황을 오늘 벌였든 간에 다음날에 또 얼굴을 마주봄으로써 더욱 민망해지는 일이 빈번한 연속성이야말로 사회인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의식적으로 코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어느덧 희극성이 생기며, 알콩달콩한 귀여움을 만들어낼 상황을 미묘하게 주책스러운 질감으로 바꾸어준다. 이전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만들어온 현실적 찌질함 가득한 연애관계에 대한 집착을 고수하되, 세부 내역은 의외로 정반대의 접근이 들어간 셈이다.
시원시원하고 패셔너블한 선으로 슥삭 긋듯 만들어내는 반 낙서체의 그림은 여전히 큰 매력을 발휘한다. 표정 하나조차 확실하게 희화화하기도 지나치게 진지하게 만들기도 힘든 선 덕분에 독자들의 이입과 해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소품이나 공간의 현실성에 집착할 필요 없이 인물들의 사실 별 것 없지만 본인들에게는 골치 아픈 고민 자체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정작 이야기 자체는 소심하고 뻘쭘한 연애사 투성이인데 말이다. 이 기법이 이런 내용을 그려내면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고 몇몇 복잡한 감정의 대목에서는 좀 더 세밀한 필력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감도 있지만, 더 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접근인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이런 그림체는 엇갈리는 관계를 질척하고 우울한 것이 아닌 특유의 그래도 세상은 별 일 없이 계속된다는 느낌의 낙천적 분위기로 가도록 크게 일조하고 있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늘어지면 활력을 잃고 답답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다행히도 『속좁은 여학생』은 군더더기 없이 전3권으로 완결 예정이고 현재 잡지연재의 막바지에 있다. 주인공들은 머뭇거리는 것이 특기지만, 이 작품을 성인 연애만화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것은 머뭇거릴 필요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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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속좁은 여학생 1 토마 지음/씨네21 |
—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결말이 좀 급하게 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인생사가 기승전결 딱딱 맞는것도 아니고 거기서 더 길어졌으면 이야기가 늘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니 적당한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팝툰에서 제일 재밌게 보던 작품이 끝났다는게 아쉽군요.
안녕하세요~저번에 메일로 이것저것 여쭤봤던 녀석임다~ 파란색 글씨부분..어찌나 공감하는지, 논문 마감 12시간 남겨놓고 빵빵 터졌네요 호호. 이 만화 꼭 봐야겠습니다^^
저도 소소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의 감정들을 잘 포착한 작품에 끌리더라구요.^^
[속좁은 여학생] 정말 보고 싶어지네요. 캡콜드님 글은 정말 지르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ㄷㄷ
캡콜드님 블로그를 100페이지까지 역주행하고도 댓글 하나 안 달다 이제야 다는군요. 죄송합니다..
캡콜드님에게서 항상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습니다. 백투더소스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지식이 없어서 소스를 제공할 것은 없지만 소스를 확실히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저번에 트랙백 지워졌을 때 제 블로그까지 와서 알려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바로 토마님 블로그에, 마지막회 축하 글을 남겼는뎅.. 네 마지막회입니다.
위에 언럭키즈님 말씀대로 팝툰 라인업이….큰일이네용.^^;
!@#… 언럭키즈님/ 흑 지난 5월호가 배달사고로 누락되고 이번 호가 아직 안와서 어떻게 끝나는지 아직 몰라요 OTL
서영님/ 그 민망함이야 말로 진정한 성인의 정서!
비르투님/ 지르게 만드는 마력으로 느끼시는 분들만 여기 오시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나름 순도만 높은 마이너. // 댓글도 반갑지만, 아이디어들 읽어 주시고 더욱 발전시켜 주시고 퍼트려 주시는게 가장 반갑죠. :-)
nomodem님/ 이 기회에 본격 미소녀와 꽃소년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인기영합 작품을 도입할 필요가…;;;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