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한x덕춘을 밀어보자(…그럴리가). 아, 이 작품으로 명실상부 주류 인기작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으니, 여세를 몰아 ‘안녕잠수함’도 되살려달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자(라고 말로 해버렸잖아).
명복은 삶의 결과 – [신과 함께]
김낙호(만화연구가)
수많은 이야기들의 주제 가운데, “권선징악”만큼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선한 행위들을 권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게 유도하는 교훈을 학습시키는 것은, 사회적 효용이 워낙 뚜렷하다. 사실 선과 악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자체가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망가트리는 것인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주로 보상과 처벌을 통해 실현된다.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 인과관계를 접하며 사람들은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쾌감을 느낀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실제 세상은 그렇게 깔끔하게 돌아가지 않기에 악을 행하고도 잘 사는 사람과 선을 행하고도 못 사는 사람 투성이라서, 이야기의 설득력에 문제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생각이 닿은 것이 바로 “죽고 난 후 미지의 세계에서는 결국 권선징악이 실현된다”는 테마다. 고대 이래로 수많은 종교들이 생전에 행한 것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저승관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 기준에서 가장 그럴듯한 설정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업에 따른 등급이 부여된 환생 등이 있다. 누군가가 생을 다 할 때 사람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지만, 정작 명계(저승)라는 개념을 상정한다면 명복은 빌어준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삶에 대한 냉정한 판결인 셈이다.
[신과 함께: 저승편](주호민 / 애니북스 / 전 3권)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과를 치루는 곳으로서의 저승에 관한 이야기다. 두 가지의 스토리가 같이 진행되는데, 하나는 마치 오래전 단테의 ‘신곡’이 그랬듯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저승을 구석구석 방문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여러 죄와 그것에 대한 댓가를 훑어낸다. 그와 함께, 어떤 이들이 현세에서 죄업을 쌓고 있는 사건에 휘말려 그것에 대처하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승기행 이야기는 사회적으로는 별 볼일 없이 그저 적당히 착하게 살다가 중년에 병으로 쓰러진 샐러리맨, 그리고 저승의 각 판결 단계에서 그를 돕는 저승변호사가 주인공이다. 죄의 성격과 경중에 따라서 지옥의 벌 또한 다른데, 그 모든 단계를 무사히 통과하고 결국 환생의 문에 도달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저승사자 이야기는 악령을 회수하는 임무를 지닌 차사들이 군 의문사 사건에 휘말리며 억울하게 죽은 자, 비겁하게 숨기는 자, 용기를 내 드러내는 자 등에게 개입하고 결국 모든 것에는 저승에서라도 대가가 따를 것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그리고 결국 두 이야기가 결국 만나게 될 때 이야기의 매력은 완성된다.
[신과 함께]의 저승은 불교와 민속신앙의 개념들이 결합한 한국의 전통적 지옥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곳이다. 각 지옥 단계는 전통적 구분에 따르되, 죄과에 대한 판단절차가 갱신되어 있다. 우선 각 지옥의 재판 현장에 저승의 변호사가 대동한다는 점부터가 충분히 현대적이며, 키보드의 시대를 반영하여 말로 상처를 준 사람들이 벌을 받는 곳은 혀 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문제가 된다. 죄를 보다 엄하게 다스리려는 염라대왕 등 지옥판관들은 검사를 닮았기에 변호사측과 피고인 망자의 생전 죄과에 대한 각자의 증거를 내놓고 법정 싸움을 한다. 사실 원래 전통적으로도 저승은 가장 공명정대해야 하기에 관료화된 곳으로 묘사되곤 했는데, 오늘날의 상상력이라면 이런 현대적 사법과정이 가장 적합한 셈이다. 악령을 수거하는 차사들 역시 공무원들처럼 조직화되어 직위가 따른 역할과 능력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설정 위에, 저승이라는 곳이 생전 삶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요소가 듬뿍 묘사된다. 확실하게 착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지옥길의 험한 구덩이를 지나는 길에 더 안전하고 빠른 운송수단을 지원받고, 더 유능한 변호사가 붙어주기에 더 수월하게 재판을 마치고, 49제 후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선행을 일삼은 것도 아닌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애매한 수준의 혜택과 치열한 상벌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저승의 변호사들조차 더 착한 사람을 맡아서 쉬운 변론과 환생 실적을 노리고, 큰 전망이 없는 까다로운 망자는 일종의 저승판 국선변호사들에게 돌아간다.
대부분의 분량에서 저승기행과 악령수거라는 두 이야기가 분리되어 진행되는 작품에서 일관되게 고집되는 내용은 바로 결국은 대가를 치룬다는 것이다. 저승의 각 재판 과정을 통해서 점차 드러나는 주인공 망자의 삶은 별 것 없는 소시민의 삶을 살면서도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는 못했으나 늘 생각했으며, 오히려 적당히 속으며 피해를 보면서 살아온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그런 궤적에서 선함을 찾아내 부각해줄 수 있는 저승변호사와 만날 때, 소소한 삶의 선함이 긍정된다. 악령 수거에 나선 차사들은 원래 규칙상 이승의 인간사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악행 없이 악령이 된 이와 악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 그 피해를 입는 주변인들의 사연을 보며 나름의 조치에 나선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엄청난 자선기부나 초인적인 선행이 아니라도 그저 죄 짓지 않고 소심하고 착하게 사는 수많은 작은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전작 [무한동력]과 마찬가지로, [신과 함께]의 이야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들을 반영하는 디테일이다. 만만하게 착한 지인들을 등쳐먹는 피라미드식 잡화 판매, 문제는 우선 묻어두고 보는 군대문화, 안전한 출세지향의 법조계 관행 같은 비판적 요소가 발군이다. 또한 그래도 사람을 생각해주는 사람의 오지랖이 남아있고, 어쨌든 어긋나지 않고 살아가려는 소시민적 노력들이 망자의 삶에 대한 기록이나 원령의 사연을 통해 촘촘히 제시된다. 이런 디테일들과 투박하지만 집요한 권선징악의 테마가 결합했기에, “이 만화를 보고 나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식의 솔직한 독자평이 나올 수 있는 셈이다.
시각적 묘사의 측면에서는, 미소녀 캐릭터로 설정되었을 법한 ‘덕춘’조차 연재 당시 이야기 중반까지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독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을 정도로 트렌디한 미형캐릭터나 정교한 정경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오히려 그 느슨한 그림 덕분에 저승길을 돌파하는 개량 불도저 같은 소재들이 메카닉 디자인으로 경외감을 주기보다는 발랄한 상상력 그 자체로 공감을 살 수 있다. 마치 세밀한 자동차 스케치는 부러움을 사지만, 네모난 자동차그림의 앞부분에 커다란 드릴을 달아 놓으면 “우와 이거 재미있다”라고 느낄 수 있듯 말이다. 느슨한 그림체라도, 기교가 적어도 더할 나위 없이 꽉 찬 연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서사성이 있다면 오히려 온전히 이야기 자체로서 즐기는 것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작품의 제목은 ‘신과 함께’지만, 그 신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나온 적이 없다. 어떤 이들에게는 소시민의 편을 들어준 저승변호사가 신일 것이며, 정의를 실현하는 차사들이 신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의 느낌이나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개인적으로는 인과응보의 권선징악이 존재하는 작품의 세계관 자체가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독자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것이야 말로 그 ‘신’과 함께 하는 작품의 힘이다.
신과 함께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애니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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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현 발간호 게재중인 글): 기묘한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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