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저씨 사람 만들기: 죽어도 좋아 [기획회의 403호]

!@#… 개복치게임과 사랑의 블랙홀의 멋진 크로스.

 

개저씨 사람 만들기 – [죽어도 좋아]

김낙호(만화연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개저씨”라는 속어는, 버릇없음을 뜻하는 접두어와 아저씨라는 말을 합친 것이다. 중년 남성이 온갖 공격적 무례함을 당당하게 펼치는 모습을 비판하는 말인데, 우리 사회 특유의 강한 권위적 위계서열 덕분에 무척 흔히 목격할 수 있기에 빠르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런 개저씨의 행태란, 나이든 직장에서의 지위든 성별이든 자기보다 아래라고 여겨지는 관계에 놓인 이들에게 실로 아무렇게나 수탈이나 모독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역할 관계가 맺어져있는 대등한 시민으로 인식하기보다, 정말로 무슨 인간의 상하관계가 있고 자기 맘대로 다뤄도 무방하다는 듯 함부로 하곤 한다. 외모폄하, 사생활 오지랖, 능력에 대한 노골적 모욕, 비합리적 과잉 업무 부여, 의전이든 뭐든 자신에 대해서는 상전으로 모실 것을 종용한다든지 그 양태는 다양하고도 너무도 친숙하다.

[죽어도 좋아] (골드키위새 / 생각정거장 / 1권 발매중)는 개저씨 중 개저씨라고 할 수 있는 중년 과장을 사람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사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티격태격하면서도 그 안에 운명적 고집, 관용과 헌신이 꽃피는 흔한 트렌디 드라마 스타일과 대단히 거리가 멀다. 얼굴은 대단히 잘 생겼으나 성격은 완벽한 개저씨인 악덕상사 백과장 밑에서 일하는 주인공 이루다 주임은, 같이 고통 받는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 그럭저럭 투덜대며 평온한 생활과 사내 연애를 이루고자 하는 나름대로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타임루프”, 즉 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자신의 원수격인 백과장이 죽어버리면 그 하루가 반복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째서인지 백과장이 어째서인지 온갖 사소한 계기로도 죽어버린다는 점인데, 누군가가 백과장이 죽어버려야한다고 말해버리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무한히 같은 하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루다는 원한을 가득 사둔 백과장이 죽지 않도록 수호천사 역할을 해줘야 하는 지경에 놓이고, 온갖 핏빛 쾌활함이 넘치는 소동이 펼쳐진다.

흔히 루프물이라고 통칭되는 시간 회귀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결국 반복과 학습을 통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쪽 계열의 명작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오만한 주인공은 시골 마을에서 같은 하루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결국 삶을 즐기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익혀낸다. 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에서는 초보 병사가 전장에서 죽으면 다시 특정한 순간으로 돌아오는 반복 과정을 통해 외계 괴물들과 싸우는 최고의 병사로 거듭나며,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해 치러야할 댓가에 갈등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어떤 분기점으로 계속 돌아오는데,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이유를 밝혀내서 극복하고, 성장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미션 충족 방식인 셈이다. [죽어도 좋아]에서 그 미션이란 바로 하루 동안, 누구도 백과장이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을 던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워낙 진상 개저씨라서, 차라리 외계 괴물들과 싸우는 것이 더 승산이 있어 보인다.

이미 원망을 가득 받고 있는 막 되먹은 아저씨가, 누구든 툭 뱉을 수 있는 죽음의 저주를 받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상적인 경우라면 물론 죽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라고 진심으로 설득을 해내는 길이 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길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루다는 자신의 내일을 위해, 아무리 해도 매번 죽어버리는 백과장을 밀쳐내고 협박하고 급기야는 감시와 고문까지 서슴치 않게 된다. 백과장이 세상의 원한을 사지 않게 만드는 것, 즉 조금만 덜 무례하고 조금만 더 다른 사람을 사람 취급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 코미디 작품이라서 그 과정을 희극적으로 그려내었을 뿐, 실제로도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무례한 이들을 조금이라도 바꿔내는 것은 거의 그 정도의 극단적 강압이 없다면 못해낼 것 같이 험난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착실히 다음 단계의 난장판까지 펼친다. 자신의 잘생김에 대한 자의식이 넘치는 백과장이, 자신을 성심성의껏 쫒아 다니며 감시하고 괴롭히는 이루다 주임이 자신에게 연애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백과장이 이주임을 악덕 상사로서 인격적으로 괴롭히던 관계에서, 반대로 이주임이 백과장을 단속하고 폭력적으로 옭아맨다. 그런데 그런 양방향적 괴롭힘의 상태가 애정에 대한 착각으로 치환되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강철의 정신세계야말로 개저씨스러움의 궁극의 경지인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것 때문에 코미디 스릴러가 러브코미디 스릴러의 향기를 풍겨버린다.

잠깐만 이렇게 살펴봐도 명확하게 드러나듯, [죽어도 좋아]는 개저씨라는 속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복합적 난리통에 대한 대단히 유려하고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허우대는 멀쩡한데 한 꺼풀 들어가 보면 자기 우월감에 빠진 심각한 무례 그 자체인 ‘윗사람’ 하나쯤 꼽아볼 수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게다가 도무지 그런 존재를 바로 잡아줄 방법이 없다는 것에 한숨을 쉬어보지 않은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그런 인간의 완성형인 백과장이 있고, 그를 수정해버리고 싶다는 갈망을 가장 직선적인 방식으로 강행해버리는 이루다가 있다. 개저씨에 대한 원한은, 그를 죽여 없애는 것으로 풀어낼 수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최선을 다해 살려내면서, 혼자서도 죽지 않도록 정말로 개과천선을 시켜야만 한다. 통쾌한 돌파력과 갑갑한 미션이 함께 주어진 상황에서, 괴롭힘의 관계가 양방향이 되고, 그것은 다시금 애정전선에 대한 착각으로 비화된다. 현실 세계에서도 개저씨를 고치는 것이 어렵지만,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작품 속 세상에서 오히려 더욱 어렵다. 그 역설이 바로 소동의 핵심이며, 현실감 넘치는데 동시에 황당한 재미의 정수를 만들어준다.

정신없는 소동이지만 이면에는 그런 복합적 조율이 넘치는 면모는, 연재 만화라는 사실을 종종 작품 안의 사람들도 인식하거나, 만화 형식을 교묘하게 비틀어 반영하는 등의 메타적 유머의 구사능력을 통해 더욱 도드라진다. 현실과 작품 속 세상의 경계, 나름대로 스릴러와 나름대로 연애물의 경계, 그리고 온 세상의 권위적 무뢰한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막가는 유머의 경계를 마음껏 넘나든다. 아직 연재중인 작품이지만, 돌아보고 공분하며 웃어볼 수 있는 이 정도의 능란함이라면 어떤 결말이 되든 상관 없다. 기왕이면 개저씨도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을 주면 더 좋겠지만, 그런 희망조차 뭔가 복합적이고 비틀어진 채로, 하지만 유쾌하게 던져주지 않을까.

죽어도 좋아 1
골드키위새 글.그림/생각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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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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