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준석의 토론은 정치의 합리성에 도움이 되는가 [IZE / 160224]

!@#… 인물이야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화제성에서 밀려났지만, 그 전까지 보여준 어떤 패턴은 앞으로도 여러 인물 여러 방식으로 다시 나올법한 것. 게재본은 여기로: 이준석의 ‘젊은 보수’ 토론법.

 

정치인 이준석의 토론은 정치의 합리성에 도움이 되는가

김낙호(미디어연구가)

누군가가 “A가 어떤 주장을 펼치며 행동을 했다”고 사실 관계를 말할 때, 상대방이 “그걸 인정하다니 당신은 A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응수한다면, 그 논법에 담긴 함의는 꽤 명확하다. A의 행동 기제와 그것에서 파생된 어떤 상황들을 이해하고 조율하기보다는, 이야기를 꺼낸 상대방에게 전선을 그어서 진영에 입각한 승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최근 JTBC [밤샘토론]에서 북한 개성공단 폐쇄 사안을 다루며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이준석이, 더민주 비대위원 표창원이 북한의 입장을 반영한다며 구사했던 논법이다. 이것은 고작 두어 달 전의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똑같은 상대에게 “저는 합리성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중략) 국정원의 잘못된걸 비판하면 ‘안보에 관심이 없는 거냐?’ 이런 식의 논리잖아요 (중략) 이런 것들에서 탈피를 해야겠죠”라고 말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사안에 대한 토론을 선명하게 대비되는 진영으로 단순화하고는, 자신의 입장을 별다른 해명이 필요 없는 도덕적인 것으로 위치 짓는 기법은 희귀한 것이 아니다. 이해 가능한 합리성을 내세우며 전선을 긋는데 사실은 양자택일 진영논리를 덧씌워버리는 식이다. 정치적 이득을 노려야 하는 젊은 보수 정치인의 기본기에 가까워서, 영국 캐머런 수상, 미국 라이언 하원의장 등이 소싯적 비슷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 논쟁의 경우, TV매체에서 그렇게 공격한 다음 날에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서 “그 분의 대북관이나 사상이 의심 받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진다”며 보듬는 유체이탈 논법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에필로그를 남겼다. 호쾌한 진영화 공격과 온화한 포용 이미지라는 매체별 접근법 속에서는, 전문성에 입각한 합의를 통한 사안 해결이라는 합리적 정치의 본질과는 반대방향으로 가버리기 쉽다. 남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낸 개인의 스타성 뿐이다. 이미 지난 대선 당시의 활동, 각종 방송 출연, 학벌 등으로 높은 인지도를 쌓은 상태이기에, 꽤 호응도 얻어내고 있다.

비슷한 패턴은 그 전에도 드러났던 바 있다. 연초 [썰전]에서 “위안부” 협상을 다룰 때, 이준석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입장을 받지 않고 나온 결과라는 비판에 대해 “국가 간의 협상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포함시켜 진행할 수 없다”고 방어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이해당사자의 해(害)자에 이미 피해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 야당 인사, 경향신문도 사용하는 표현인데 이준석이 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후일 반박했다. 자신의 용어를 반박하는 이들이 진영론에 입각해서 자신을 핍박한다는 뉘앙스를 전함으로서, 진영론에 휘둘리는 감정적 진보와 대비되는 합리적 보수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가꾼 셈이다. 그 안에는 정작 이번 협상이 바로 “위안부” 사안을 지속적 역사적 교훈으로 다루기보다는 무슨 이해당사자간 사고보험 현찰거래처럼 대충 완결해버려서 문제시된다는 현실이 없다. 정치 현실론을 설파하며 사실은 틀리지 않은 용어를 썼다는 자신이 있을 뿐, 실제 사안의 진전에 필요한 합의 지형은 펼쳐지지 않는다.

2013년의 동성애 인식 구설수는 어떤가. 주간경향 기고문에서 “막연한 거부감과 절박함의 대립”을 논하며 동성애를 인정하는 개방적 보수의 이미지를 선보였다. 하지만 글의 시작은 “우선 필자는 동성애에 매우 비판적이다”라고 하고, 그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걸 엄격하게 인식하는 분들은 거기에 꽂혀서 뒤 내용은 다르게 해석할 이유가 없는거고”라고 털어냈다. 여기서도 실제 사안의 진전을 위해서 필요한 기본 인식문제의 해소보다는, 합리적 자신과 그렇지 않은 남으로 진영을 그어서 자신의 지적 이미지를 변호하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동성애 자체가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폐기해야 비로소 그 위에서 차별 철폐의 당위가 생기고 개별 정책의 진전을 추진할 수 있다는 해결의 근간은, 그저 몰려난다.

정치인 이준석은 인지도 높은 사례 하나일 뿐, 당연하게도 이런 것은 특정인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능 방송인이라면, 다른 출연자들을 비합리적이라고 포장하고 자신을 지적 이미지를 부각시켜서 스타가 되는 것도 성공의 길이다. 낮시간 조동 종편을 가득 채우는 방송선동가라면 여하튼 진영부터 가르고 상대부터 쓰러트리는 것이 팬층을 키우는 방법이다. 하지만 합리성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정치인을 목표로 한다면 다르다. 진영 속 캐릭터 가꾸기 너머, 대체로 회색 영역이 넘치고 세부적 조율과 합의가 관건인 실제 사안들의 해결 논의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_Copyleft 201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_
[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고 끝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