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병맛나선, 그리고 빠져나갈 구석

!@#…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에 꽤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바로, 상대에게 적당히 빠져 나갈 구석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특히 모든 종류의 무한루프형(즉 하나의 해답을 도출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닌) 토론들이 그렇다. 그런 것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고양이를 무는 정도가 아니라 보기에도 안쓰러운 담론적 자해행위로 이어진다… 바로 변명의 병맛나선™.

!@#… 예를 들어 정말로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지지하는 특권층 말고, 기복신앙적 믿음으로 막연하게 지역 유지 내지 기득권 정당에게 몰표를 주어 종종 ‘국개론’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해보자(국개론에 스킨만 새로 씌운 20대개새끼론이든 지역색비난이든 뭐든 비슷한 패턴). 이들의 무지를 꾸짖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고작 그 이슈에 대한 의견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기정체성’이 걸려있는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많은 경우, 처음부터 사람들이 하나의 이슈에 대한 자기 의견에 자기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아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지적으로 인하여 어떤 문제가 드러날 때, 어떻게든 자신의 무오류성을 유지하고 싶어서 수많은 장치들을 사후에 가져다 붙이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천동설과도 비슷한데, 지구가 중심이고 우주가 돈다는 주장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온 우주를 복잡한 궤적의 이상한 물리운동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반증이 나올수록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은 점점 더 커지고, 무리수가 된다. 사실은 천체들이 서로의 역학관계에 의해서 돈다는 대전제는 유지하되, 알고보니 그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만 인정하고 수정하면 될 것을 말이다.

작게는 온라인 찌질이부터 크게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묻어나오는 검찰 조사발표까지, 자해행위의 패턴은 비슷하다. 1)변명->2)반박->3)수정으로 매듭지으면 거기서 공정은 끝날 터. 하지만 1)변명->2)반박-> 3)변명1을 변명하기 위한 재변명->4)반박->5) 1과 3을 변명하기 위한 재재변명->… 이 코스로 가면, 예정된 병맛 결말을 향해 점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한번 그 병맛나선에 빠지면 수습해야할 담론은 점점 더 커져서, 중간에 빠져나오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서 운이 나쁘면 그 변명을 스스로 믿기까지 시작해서, 사고가 극단화된다(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 여론양극화에 대한 여러 접근법들 소개는 다른 기회에).

!@#… 사실 실력 있는 담론꾼이라면 이런 루트를 스스로 경계해서, 애초에 스스로 빠져나갈 구석을 미리 만들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깨끗하게 “내가 이 부분을 틀렸소 대신 미리 이렇게 전제했으니 그걸로 살짝 도망가겠소 다음에는 더 제대로 준비해서 설욕해주겠소 기대하삼” 이렇게 가는 모듈적 사고를 구사한다. 특히 지엽적인 문제를 지적당했을수록 빨리 수정하고 매듭짓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야지, 안그러고 버럭하면 그 지엽적인 것이 어느덧 본론마저 눌러버리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게 음흉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그렇기 때문에, 다그치는 쪽에서 오히려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오류를 다그칠 때에는 퇴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틀렸잖아 개쉐. ㅋㅋ”가 아니라 “하지만 ** 부분은 **한 반론이 가능합니다. 전에 **인 경우라면 **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그 쪽이 아닐련지요”(…) 라고 해주는 센스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상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입장 수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뽀인트다. 승리의 쾌감은 없겠지만(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것 없다… 병맛나선의 끝은 참회가 아니라 시체 파편 사방으로 튀는 자폭이니까), 좀 더 건설적인 방향전환쯤은 가능하다.

!@#… 아, 물론 상대를 죽여버리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그렇게 머리쓸 필요 없다. 하지만 상대를 설득해서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동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것보다 100배 1000배라도 더 머리를 써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 아니면 그 쪽으로 머리 잘 쓰는 사람을 모셔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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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oughts on “변명의 병맛나선, 그리고 빠져나갈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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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끄럼틀 현상 – 왜 사람은 극단으로 내몰리는가…

    Slippery slope, 또는 미끄럼틀 현상은[각주:1] 논리학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오류 중 하나입니다. 오류이기는 하지만, 그 오류가 이끄는 결론은 꼭 거짓이지는 않지요. 예컨데 이런 것을 미끄럼틀 …

Comments


  1. 오오 1등! 가문의 영광~ ㅋㅋㅋ

    그런데 보통, “개새끼론”의 주역들은 주장이, “전제”가 있고 그 하에 “이러이러한 주장”이 있는게 아니라, 그 근거가 보통 “그냥” 이거나 “주변사람들이 이러더라”인 경우가 많아 퇴로를 만들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좀 많지 않나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런 케이스가 많아서요;;

  2. !@#… erte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병맛 쩌는 피해망상 골방 또라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퇴로들을 만들도록 뇌력을 써야하는 것이죠. 나중에는 뒤에서 후광이 나오는, 해탈의 길이랄까.

  3. 해탈의 길을 언급하시니….ㅎㅎㅎㅎ

    얼마전에도 해탈의 경지에 가까이 간 적이 있습니다. 제 글 하나에 붙은 댓글에 응답을 주고 받는 과정이었죠. 링크 한번 달죠… 정말 득도의 과정만큼 힘듭니다. 특히나 거의 인내심을 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후의 결말이 상대방의 버로우라면 말이죠…

    http://crete.egloos.com/4104146

    중간에 산신령이란 분이 댓글을 다는 부분부터 한번 읽어 보세요.. 아무리 퇴로를 만들어 줘도…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리라.. 하는 분께는… 쩝…

  4. 글의 잘못을 지적하는 댓글을 남겼을 때 상대편에서 자꾸 말꼬리 잡고 비꼬는 바람에 제 쪽에서 지쳐서 나가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도망 갈 구석”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겠군요;;

  5. crete님 좀 주제에서 벗어났는데요. 궁금한게요. 제 기억에 Hammer(1916)에서, Wilson 정부의 아동노동에 의한 생산물을 금지한 연방법이 기각된 이유는, 산신령님이 말한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 때문이 아니라, Commerce Clause의 위반 즉 주정부의 권한을 넘어서서 연방정부가 생산을 금지하려 한다는 이유 때문 아니었나요?

  6. !@#… Crete님/ 그 산신령이라는 분의 블로그(niceparker.tistory.com)를 가보니 개념역덕에서 병맛크리로 빠졌다가 거하게 좌판 접어버린 이글루스의 ㅈ모 블로거의 향취가 강하게 나더군요. 아마 그런 분과 대화하려면 해탈 이상의 것이 필요하실 겁니다. 음… 하지만 퇴로를 만들어주셨다기보다는, 정중하고 지긋하게 눌러버리신 케이스라서…;;;(핫핫)

    언럭키즈님/ 상대가 “역시 내가 크게 틀린 게 아니구나!”라고 끝까지 생각하는데 정작 주장은 처음과 전혀 달라져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묘미죠.

    Penda님/ 듣고보니 이상해서 미국정부의 관계법령 해설 ourgovernment 사이트를 찾아보니, 말씀하신대로 “because it overstepped the purpose of the government’s powers to regulate interstate commerce”군요. 역시 버럭거리려면 근거부터 제대로 찾아봐야함.

  7. 언젠가 누군가에게 얘기를 할 때(아마 회사 상관이었을 겁니다..)미리 전제를 둬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려고 하면 어디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냐는 말을 하더군요. 한마디로 주장하려면 제대로 하고 수세에 몰리면 장렬히 박살나라는 얘기였는데 그 때도 좀 수긍이 어렵더군요. 종합해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어도 아예 모든걸 걸고 옳다고 주장하라는 건지…

  8. !@#… 지나가던이님/ 미리 구멍을 만들어서 유사시에 1만큼 추해지느냐, 장렬하게 박살날 타이밍에 그걸 피하려다가 10만큼 추해지느냐의 차이는 크죠.

  9. 장렬하게 박살나지 않으려고 잔꾀를 부리면 “어디에서 잡수작만 배워서 저 딴 짓을 하나” 싶은 생각만 들고 아예 인간으로 상종을 안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냥 깨질때 깨지고 풀어버리는게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