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거대한 모순과 직면시키기 – 『어린왕자의 귀환』[기획회의 252호]

!@#… 생각해보면 ‘어린왕자’ 자체도 현대 자본주의 물질문명 사회에 대한 비판이 쩔었던 통쾌한 작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낭만화되어 받아들여진 감이 있다.

 

일상의 거대한 모순과 직면시키기 – 『어린왕자의 귀환』

김낙호(만화연구가)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이 설득력을 지니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모순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수많은 ‘교과서’들이 그런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 개념들의 향연을 벌이거나, 혹은 선명한 만큼 특수할 수 밖에 없는 몇몇 대표적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런 접근이 물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문제에 주목하고 결국 나서게 만들고 싶다면 그다지 크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필요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 된 세상사 속의 어떤 패턴을 살짝 끄집어내서, 그것이 약간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 직면시켜주는 것이다. 일상의 패턴은 더 일상적일수록, 모순은 거대할수록 효과는 뚜렷하다. 예를 들어 어느덧 시대정신처럼 되어버린 자본주의 과잉(흔히 문제점들을 모아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로 통칭하곤 하는데, 그 용어의 원래 의미는 좀 더 복합적이다) 속에서,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평등은 증가하는 이상한 상황을 뽑아낸다든지 말이다.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김태권 저/ 돌베개)는 좌파 정치경제학을 기반에 두고 있는 사회비평서다. 다만 그것을 교과서의 형식을 지닌 학습만화로 만들지 않고, 반대로 완전히 극화하지도 않은 중간 형태의 설명적 우화로 풀어낸다. 널리 읽혀온 책 ‘어린왕자’의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속성을 지닌 여러 별들을 여행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것이다. 여행하는 주인공들은 장사꾼 손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본주의에서 휴식과 일상의 비틀어진 관계를 접하고, 자본가의 별과 실업자의 별을 차례로 다니며 경영‘합리화’가 남기는 우울한 뒷모습을 보고, 임금님의 별에서 FTA와 비교우위론의 문제를 겪으며, 의미 없는 노동을 반복하는 가로등지기의 별에서 자본가의 잉여가치 독점을 읽고, 상자에 갇힌 별에서 노동자 분할통제라는 사회 유지 방식을 본다. 이렇게 뼈대를 놓고 보면 원래 이 분야의 이전 서적들이 그렇듯 무척 무겁고 난해한 책으로 느껴지겠지만, 이 작품의 핵심정서는 코미디다. 캐릭터들의 비극적 상황에 이입시켜서 우울함을 공명시키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캐릭터들과의 정서적 거리는 살짝 떼어놓고, 절묘하게 공감이 가는 상황의 뚜렷한 부조리함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을 잠시 그칠 때, 등골이 살짝 서늘해진다.

김태권 작가는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대사회 풍자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은 그의 첫 주류 단행본인 『십자군 이야기』로 주목하기 시작했겠지만, 원래 작가는 90년대 후반 동안 대학가 만화 – 음악으로 치자면 일종의 지역 언더그라운드씬인 셈이다 – 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신림동의 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의 잡지, 각종 대학생 신문과 월간지 등 여러 지면에서 사회 참여적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저항시인들의 이름을 딴 ‘남수와 주영’ 시리즈였다. 이상주의적인 열혈 운동권과 사회현상에 관심은 있지만 시니컬한 비권으로 특징지어지는 두 대학생 친구들이 티격태격하는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어떤 사회 이슈의 복합성을 던져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연작이다. 이 시리즈는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위해 지식을 쌓아보려 하는 젊은이들(당시로서는, 아직 대학생들이 주로 해주던 역할)의 생활방식 및 사고방식의 공감 코드를 잘 건드렸기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중 특히 인기가 높았던 것이 두 주인공 남수와 주영을 어린왕자의 캐릭터들에 대입하여 자본주의 우주를 여행시키는 이야기였는데, 이번 책은 그 당시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일부 재작업하고, 여러 추가 작업들을 더하여 묶어낸 결실이다.

『어린왕자의 귀환』은 작가의 최근 수년간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본연적인 장기를 잘 살려내는 작품이다. 사회의 모순적 상황들을 유쾌한 풍자로 비꼬며, 그 이면에 담긴 황당한 모순에 직면하게 된 주인공들이 여러 측면의 변명을 시도해보지만 결국 난감해지고 마는 유머가 바로 그것이다. 풍부한 인용을 통한 지식의 나열이나 언어유희 같은 것은 여기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풍자와 비유를 통해서 흔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고, 그 속의 친숙한 패턴을 끄집어내서 부조리한 모순을 직면시키는 작업이야말로 가장 난이도 높은 작업이며, 유머러스해질 정도로 잘 해낼 경우 독자들의 각성이라는 최종목표를 제대로 이루어낸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경제 교과서가 아니라 경제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이 사회가 굴러가는 어떤 방식이 지니고 있는 여러 구조적 결점들, 그리고 그것들이 자아내는 생활상의 줄거리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건강보험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 문제, 각종 규제 철폐와 개발주의로 인한 환경 문제, 시민들과 노동에 대한 통제 등을 풍부한 모순을 통해서 보여준다. 지나친 현실 안주가 불러오는 우습고도 슬픈 풍경, 하지만 그 대안으로 지나친 이상을 부르짖을 수도 없는 갑갑함이 어우러지는 한 편의 부조리 연극이다. 김태권의 만화가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해내어 자극을 한다면, 각 챕터마다 달려있는 우석훈의 글 해제는 줄거리 속에 담긴 개념들을 좀 더 정식 개념화시켜주고 대처하는 실마리를 던져준다(연대와 공동체의 복원이라든지). 하지만 만화 본문에서 해결책의 난점들마저도 대부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마리 부분에 그다지 무게중심이 부여되지 않고 있고, 몇몇 독자들에게는 그런 점이 불만으로 다가올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 독점 같은 고전적 맑시즘 정치경제학 개념들이, 현재의 지식정보산업 분야 등 좀 더 복잡해진 트렌드 영역에는 그대로 반영하기 불편한 측면도 일정 부분 있다. 하지만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된 허생전의 느슨한 패러디 ‘민생뎐’을 보면 약간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단편이 진보신당 창당을 기념하여 2008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상기할 때, 원래 해결책은 쉽고 간편하게 나오지 않고 복잡해진 트렌드 속에도 여전히 고전적인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90년대에 이 작품의 뼈대가 되는 연작을 발표했던 당시보다 한국사회의 상황은 더욱 더 자본주의적 가치가 극단화되었고,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무언가 이대로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규범적 자아와 이럴수록 정신 차리고 한 몫 잡아둬야 한다는 타산적 자아 사이의 균열은 더욱 커졌다. 즉 이 작품을 애초에 인기 있게 만들었던 사회적 맥락이 더욱 강해진 셈이다.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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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어린왕자의 귀환
김태권 지음, 우석훈/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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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일상의 거대한 모순과 직면시키기 – 『어린왕자의 귀환』[기획회의 2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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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歲寒時節

    [소개] 어린 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진보 학습만화의 거장 김태권의 오래된 신작. 남수와 주영은 김태권의 초기작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캐릭터. 나름 그 바닥 안에선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얼마 안가 남수와 주영의 캐릭터를 이용해 일련의 대중적인 작품을 내놓게 되는 데, 출판 안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나왔다. 당시부터 꽤나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출판본에서도 당시 기억을 저버리지 않았다. 술술 넘어가면서도 정치경제학적인 접근을 쉽고 빠르게 전달해주는 …

  2. Pingback by 연필통의 이야기

    [도서리뷰] 어린왕자의 귀환…

    의료보험을 포함해서 공공부문으로 알고 있는 전기,수도,우정사업 등이 민영화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근로자의 해고가 쉬워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이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줄까요? 모든 것을, 혹은 더 많은 것을 ‘시장의 능력’에 맡기자는 경제 패러다임이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경제질서이기 때문에 미국에게 유…

Comments


  1. 이 책에 관한 얘긴 아니지만…
    예전에 김태닷컴에서 십자군 이야기 연재할때 캡콜님이 그 사이트 관리자 비스무레한 역할을 하셨던거 같은데…(맞나요? 기억이 가물가물…)
    그 인연(?)을 내세워서 십자군 이야기 3권 빨리 내달라고 압박좀 넣어주심이…ㅠ.ㅠ
    기다리는 사람 정말 많을거 같은데요.

  2. !@#… 경자라슈님/ 좀 더 널리 소개가 퍼질 필요가 있는 책이죠.

    언럭키즈님/ 흑흑…;;;

    stefanet님/ 그 인연보다 더 가까운 인연의 분들도 계속 압박을 넣어오셨고, 관련 작업을 작가가 손 놓은 것도 결코 아니지만… 참 여러가지 우여곡절 속에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흑흑;;;

  3.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든 펌프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하철도999가 떠오르는군요. 형식도, 대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