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 <천일야화> [기획회의041214]

이야기의 이야기 – <천일야화>(전진석/한승희)

‘이야기’라는 것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방식들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우리에게 왜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올 수 있겠지만, 크게 바라보자면 한 가지는 공감의 재미, 즉 주인공들의 감정과 활동상에 이입을 해서 같이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는 듯한 쾌감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외성의 재미, 즉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과 “나라면 결코 했을 리 없는 선택”을 내리는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얼마나 잘 배합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이야기의 재미가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모든 것을 다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고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복잡하고 큰 대하 서사극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로 묶여져 있으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되는 구조로 끌고 간다는 말이다. 작은 이야기들이 각자 자신만의 매력과 기승전결, 이입과 의외성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이야기들이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묶음으로 뭉쳐진다. 이런 구조 덕분에 세월의 흐름 속에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쉽고, 각각의 세부적인 디테일 역시 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된다. 즉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이야기’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베스트셀러라면 역시 기독교의 “구약성서”겠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고르자면 큰 이견 없이 아마도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츠)”가 꼽힐 것이다. 연소된 그림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결국은 이야기로 승부하는 장르인 만화에서,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만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때로는 통째로, 때로는 몇몇 작은 이야기들만 뽑아서 만화로 만들어져왔고, 성공도 실패도 있었지만 그 시도만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좋은 반응을 얻은 <아라비안 나이트>(신일숙), 인터넷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온라인 연재만화 <1001>(양영순),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천일야화>(전진석/한승희) 등이 좋은 사례다.

<천일야화>는 <라스트 환타지>, <멀린의 신비한 마술학교>등 소년향 만화의 기반 위에서 익숙한 장르적 규칙을 비틀어 내는 것을 특기로 삼고 있는 스토리 작가 전진석의 글과, <연상연하>, <웰컴 투 리오>등 사건 위주의 드라마성이 강한 순정만화 계열 작가인 한승희씨의 그림이 만난 작품이다. 이질적일 수 있는 두 창작자의 성향이지만, 원래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용광로로 녹여내는 이야기인 천일야화의 세계 속에서 이 만남은 의외로 썩 어울린다.

아라비안 나이츠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바로 왕과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진 왕이 온 나라의 처녀들을 섭렵하며 다음날 아침 참수하는 횡포 속에서, 대신의 딸 세헤라자드가 들어가서 매일 밤 왕에게 진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1000일(혹은 1001일)동안 공략, 결국 왕을 제정신으로 돌려놓고 해피엔딩. 첨삭의 자유를 누리는 이야기인 만큼, <천일야화>에서 작가는 아예 세헤라자드를 남자로 설정해버린다. 연인이자 가족인 여동생을 대신해서 끌려가는 것이다(여성향 만화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야오이 코드, 근친애 코드 등의 도입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아직 좀 더 두고볼 일이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침대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옥 골방에서 유언처럼 읊조리는 이야기가 되어 비극적 처절함의 분위기가 좀 더 부각되고 있다.

첫 번째 날의 이야기로 푸치니의 오페라로도 유명한 투란도테 공주 이야기를 꺼낸 것 역시 꽤 파격적인 발상이다. 초반에는 짧고 교훈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복잡한 인생사와 애정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기대하는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첫 주자부터 이미 장엄한 이미지의 비극으로 시작해버리는 것이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은 푸치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선택 자체로 인하여 이미 <천일야화>가 지니는 독특성을 선전포고한 셈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구체적인 형상의 선은 사건의 전달에 깔끔한 소화력을 주고 있으며, 남성향 장르와 여성향 장르에 익숙한 독자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중성적인 칸 연출방식 역시 작품의 독서에 큰 도움이 되어준다.

물론 아직 1권만 발간된 상태이기 때문에 섣부른 칭찬도 비판도 쉽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아라비안 나이츠를 모태로 하는 재해석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잡다한 이야기들의 일관성 없는 모음”이라는 함정을 어떻게 피해갈지, 아직 판단 내리기 힘들다. 원래 아라비안 나이츠의 다양한 이야기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미덕, 지혜와 현명한 판단의 중요성 등의 교훈을 남겨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건과 진기한 세상 문물들이 소재로서 동원되고 있을 뿐이다. 설정 자체가 “왕에게 사랑과 지혜를 깨우쳐줘서 정상으로 돌려 놓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말이다. 그런 목표의식이 좀 더 희미했던 이야기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든지 “알라딘과 마술램프” 등은 사실 나중에 서양인들이 끼워넣은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비록 <천일야화>에서 첫 이야기로 사용한 것은 아라비안 나이츠의 설화 ‘칼라프 왕자와 중국공주 이야기’ 보다는 그것을 서양식으로 각색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모습에 가까웠지만, 상당히 모험활극스럽게 시작한 이 작품의 전체적 스타일이나 주제면에서 잘 어울리고 있다. 첫 단추는 잘 들어간 셈인데, 이런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계속 천일어치 동안 지속시키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이런저런 수식어나 분석 이전에, <천일야화>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만화 독서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바로 만나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남성향과 여성향 독자들 모두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재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독자들의 많은 호응,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작품 자체도 계속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이후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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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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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전진석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2004/12/18 08:49

    – 페이 – 전진석님 화이팅입니다!^^ 2005/06/22 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