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사랑에 보답하다 – <슬램덩크> 후일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041217]

지난주, 일본 카나가와 현에 있는 한 폐교가 갑자기 다시 학생들로 붐볐다. 이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스포츠 속에서 우정과 성장을 나누던 멋진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만화 작품 한편을 기리기 위한 이벤트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붐을 몰고 온 바 있는 농구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타케히코)고, 이번 이벤트는 1억권 판매 돌파를 자축하기 위한 팬서비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작품, 자기 작품과 그 속의 주인공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낸 작가. 여하튼 30여권의 시리즈로 단행본 1억권을 돌파한 것은 만화시장이 거대한 일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척도인 셈이다.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작가가 시작한 작전의 첫번째는 바로 일간지 전면광고였다. 어느날, 일본의 주요 종합일간지에 주요 캐릭터들이 각각 한 명씩 신문 한면을 통째로 채우며 멋진 모습의 스케치로 등장해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통 큰 팬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 두번째 이벤트는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주인공들의 농구경기 장면이 펼쳐지고, 관중석에는 관중이 가득하다. 그리고 팬들은 사이트에 등록해서, 자신만이 아바타를 관중석에 앉히고 응원 메시지를 띄울 수 있도록 했다. 즉 북산(쇼호쿠) 고교 농구부 경기의 하이라이트에 직접 가서 응원을 하는 기분을 만끽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난주의 폐교 이벤트였다. 폐교에 들어가서, 23개 학급의 칠판에 만화를 그린 것이다! 작품에 등장한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23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칠판위에 분필로 그려냈다. 그것도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그 동네에서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이미지,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나아가 칠판위의 분필 낙서가 가지고 있는 그 자유분방한 에너지까지. 뭐랄까, <슬램덩크>라는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공식 사이트에서 제작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며, 만화 내용은 칠판색 그대로 편집한 특별 한정판 엽서세트로 소량 상품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간의 ‘꿈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칠판을 지우는 마무리까지.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일맥상통한다.

만화라는 장르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라면 바로 독자와의 긴밀한 호흡이다. 이번 슬램덩크 이벤트는 그 점을 명확하게 짚어준 최고의 사례다. “1억권 팔렸으니 이런 이벤트도 하지” 라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이벤트를 할 정도의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1억권 팔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독자들과 작품에 대한 사랑으로 따지자면 10억권이라도 부족할 한 만화 작가의 성의에 박수를 보낸다.
[경향신문 04.12.17]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PS. 보너스 정보:

1. 칠판 그림을 흑백화 및 음양전환해서 원고 모양으로 바꾼 것, 거기에 약간 해설을 달아놓은 버젼. http://dizzyfish.egloos.com/652353/ (해설: 비닐우산님)

2. 행사 동영상. http://www.itplanning.co.jp/slamdunk/

3. 나중에 이런 상품이 한정발매된다는 말이다.  (출차: BIGMASAの世界不思議 ) 설득력 만빵, 칠판느낌 그대로.

4. 행사 직후, 공식홈피에 작가가 올린 마무리 인사말. 해석(그 전에, 손글씨을 알아보기도 힘들엇!)은 각자 알아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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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독자의 사랑에 보답하다 – <슬램덩크> 후일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041217]

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김상하 – 작가는 요즘은 골프에 미쳐서 연재까지 휴재하고 한국에 골프 휴양하러 다니고 있으니, 조만간 <슬램 홀인원>이나 <버저 홀인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슬램덩크>라는 콘텐츠의 생산자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만화 작가’라는 측면에서는 참 얄미운 사람입니다. 2004/12/17 13:43

    – 캡콜드 – !@#… 그나마 양반이죠. 그냥 자기 취향대로, 1권 단위의 에피소드식 동화풍 개그물을 가끔 한번씩 던져주는 것 빼고는 자신의 개인 영지에서 프라모델에 전념하고 있는 토리야마 아키라도 있는데요 뭘…;; 2004/12/17 14:09

    – 코믹도치 – 아악!!!! 2부!!!! 2부좀 나와!!!! 유리가면도 그렇고~ 날 피말리게 하지 말아줘용!어흐흐흑~orz 2004/12/21 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