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뉴스를 다루는 과학 기자의 소양 [사이언스온 110722]

!@#… 연재 지면에 다음 회를 써올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기는 하는데… OTL

 

과학 뉴스를 다루는 과학 기자의 소양
– 과학뉴스 ‘사용설명서’ (3)

김낙호(미디어연구가)

록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꼬투리 삼은 극성의 안티팬들에게 시달리던 가수 문희준이 한때 “차라리 록 자격증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렇듯이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할 수 있는 능력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인증할 수 있고 그래서 다들 어느 정도 안심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분야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과학 뉴스를 보도하는 데에도 역시 어떤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간편한 신뢰의 기준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과학 뉴스도 그것을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 각각의 소양을 염두에 두며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과학 뉴스의 매체 경로도 다양하고 각각 전문성의 수준도 다른데, 뉴스를 만드는 이들에게 어떤 식의 소양을 요구해야 한단 말인가? 또한 그런 소양을 갖추지 못했으면 과학 뉴스를 다루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우선 학술저널처럼 아카데미의 전통 안에서 움직이는 전문 매체들에는 이런 식의 고민거리가 상대적으로 적을 듯하다. 논문 형식으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소식을 전해도 될 만한 자격은 해당 과학 분야에서 제도적 인증을 받은 과학자들로 사실상 한정되어 있다. 2005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재료공학 학술지 <머티어리얼 리서치 블리틴>에 연구논문을 실은 장영준씨의 경우처럼 극히 예외적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위 자체가 ‘자격증’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자신 또는 자기 연구팀의 발견을 전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소양은 논문 형식으로 글을 쓰는 능력, 즉 연구의 전체 절차와 관련 데이터를 다른 이들이 세부 참조할 수 있게 서술할 수 있는 능력 정도다. 또한 학술저널에 실리는 연구동향에 관한 글도 보통은 해당 저널에서 다루는 분야의 과학 전문가들이 쓴다.

하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내부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학술 발표가 아니라, 여러 다양한 층위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소식’의 가치를 가다듬어야 하는 저널리즘의 영역에 들어오면 상황은 좀 더 미묘해진다. 우선 제도권 언론사의 저널리즘을 생각해보자. 대놓고 말해, 종합 일간지의 과학면을 구성하는 기자들에게는 무조건 과학 분야의 학위가 필요한 것인가? 있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렇게 단순화하기에는 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너무 넓고 반면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 풀은 좁다. 천문학부 출신 기자가 생물학 뉴스를 다루면 안 된다고 한다면, 그 많은 과학 분야를 다룰 수 있는 언론사는 없게 된다.

게다가 애초에, 분과로 나뉘는 학술저널과 달리, 언론의 뉴스 지면은 훨씬 뭉뚱그려져 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국내 언론사 사이트 혹은 뉴스포털을 들어가보라. 대부분 매체의 경우에 과학 분야의 뉴스는 “과학/IT”라는 카테고리 안에 담겨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태반은 신제품 기기 출시나 판매 동향 뉴스처럼 경제면에 더 어울릴 법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또한 과학적 내용을 담는 뉴스라고 쉽게 인식할 만한 환경, 의료 등에 대한 내용은 정작 종종 사회면에 채워지곤 한다. 그렇듯이 과학 뉴스를 과학이라는 요소만으로 다루는 것으로는 독자에게 충분한 매력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짠 듯한 언론사들의 분류 틀을 우리는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과학의 가치와 맥락을 짚는 과학 뉴스를

바로 그 지점에서, 과학 기자가 과학 뉴스를 다룰 때 필요한 첫 번째 소양이 부각된다. 그것은 과학 소식에서 과학의 요소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연구를 대체로 지극히 비과학적으로 산출한 몇백 억원짜리 “예상 경제 효과”로 포장하는 것 말고, 그 연구 자체의 과학적 함의에 집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과학이라는 탐구 체계에서 중시하는 관심사와 흔한 뉴스 대중의 관심사의 차이를 인식하며 기사를 쓸 줄 아는지가 관건이다. 즉 과학으로서의 함의에 대한 소개를 기사의 핵심으로 삼을 줄 아는 것이 그런 소양이다. 최근 여러 언론 지면에 “인터넷 검색 의존하면 기억력 감퇴”라는 식의 제목들로 보도된 뇌과학 연구를 예로 들어보자. 실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논문의 제목은 “구글이 기억에 끼치는 영향”인데, 검색 툴을 쓰는 데 익숙해진 뇌는 기억하는 방식이 내용의 암기보다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쪽으로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뇌과학 연구결과를 “어떤 사람 A는 뇌신경부터 다르더라”라고 보도하는 뉴스 방식은, 독자들에게 대중적 흥미를 돋우는 극단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차원에서 볼 때에는, 애초부터 뇌라는 하드웨어와 사고라는 현상은 하나이기 때문에 사고의 차이가 뇌 활동으로 나타난다는 정도의 결과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각 연구의 진짜 성과는 뇌의 ‘어느 부위’가 그런 사고를 관장하는지 찾아냈다거나,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 부위의 활동이 다른 어떤 기능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려내는 지도의 퍼즐 조각 하나라도 더 찾아 다음 연구들을 위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요소’를 강조하지 못하고 그저 손쉬운 범주화를 통해 통찰력이 증진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집중하는 기사라면, 과학 뉴스가 아니라 과학적 발견을 곁들인 가십에 불과하다. 과학 섹션보다는 오락 섹션에 실을 것을 추천한다.

과학 뉴스다운 과학 뉴스를 위한 두 번째 소양은 내용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능력이다. 어떤 과학 소재를 소개했는데 그것에 대해 더 알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거슬러 올라가’ 찾아보는 것이 어렵다면, 개별 지식을 상호 참조하며 축적하여 발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과학의 논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격이다. 뉴스 기사에서 소개하는 연구결과의 학술적 출처를 비교적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단서를 포함할 줄 아는 것이 과학 뉴스를 쓰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다행히도 특히 온라인 뉴스 보도에서는 하이퍼링크 기능 덕분에 그런 것이 한층 더 수월한 상태이고, 링크를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내용에 간단히 명시할 수 있다. 특히 홍보용 보도자료 또는 다른 언론이 이미 보도한 내용을 다시 언급하며 끝맺기(예컨대 “영국 신문에 따르면 어느 연구기관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화제다”라는 전언 식으로)가 아니라, 과학 연구로서 온전히 참조할 수 있는 자료의 출처를 제시하고 그곳으로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 소양은, 과학적 발견과 희망을 분리하는 것이다. 현대 주류 언론의 뉴스 작성 관행에서 기자들이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도록 교육받듯이(비록 블로그 같은 한층 더 자유로운 매체 공간에서는 ‘사실과 의견의 분리가 아닌, 자료의 투명성을 통한 공정성’ 같은 여러 새로운 가치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아니 그 이상으로 엄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널리즘 규범과 과학 지식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중요한 부분이다.

연구 내용 자체에서 매력이 거의 결정되는 논문과는 달리, 저널리즘의 과학 뉴스는 독자에게 매력을 따로 설명해야 한다. 여기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즉 정확한 설명은 지루하고, 매력적인 설명은 틀리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매력은 종종 해당 연구에 관한 희망의 상을 그려주거나, 또는 사회적 의지를 강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발견과 희망의 분리를 통한 균형이란, 사회적 의지가 과학적 엄밀성을 뛰어넘지 말도록 조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은 정치 이념의 잣대 어느 쪽이라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천안함 침물 사건에 대해, 이념 스펙트럼의 한쪽에서는 자신들의 사회적 의제를 위해 몇몇 어렴풋한 발견들 위에 각종 환상을 붙여 ‘인간 어뢰’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결론인 것처럼 주장한 언론이 있고, 다른 쪽에는 자신들의 의제를 위해 실험 조건에 대한 논란이 많은 “토치로 매직잉크 가열하기 실험” 동영상을 만든 언론이 있었으니 말이다. 덜 선명하더라도 더 엄밀하게,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매력적인 면모를 제시하는 것이 과학기자에게 필요한 소양이자 능력이다.

좋은 뉴스 찾아내는 ‘과학과 저널리즘’ 균형의 안목

그런 식의 소양이 있는 과학기자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가장 확실한 것은, 물론 애초에 사실상 과학자나 다름 없는 저널리스트를 기용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과학 전문기자 니콜라스 웨이드(Nicholas Wade)는 학술지 <네이처>의 부편집인 출신이고, <와이어드> 등에서 인지심리학에 관한 글을 주로 쓰는 조나 레러(Jonah Lehrer)는 기자보다는 심리학 단행본의 저자로서 더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수준까지는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과학 섹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과학적 소양을 갖춘 담당자를 부서 순환 없이 고정하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지점은, 저널리즘의 탈중심화 추세 속에서 과학 저널리즘도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사, 과학 블로거, 게시판 토론객, 비전문가 개인의 역할이 매번 서로 엮일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지면인 <사이언스온>이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시도인데, 제도언론인 <한겨레>의 과학 기자가 책임운영자 및 필진으로 참여하여 여러 과학자 블로거들을 끌어들여 지면을 만들어내는 횡적 연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은, 다양한 배경의 뉴스 생산자들은 각자 과학 뉴스 생산에 대한 저널리즘적 소양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높지만 저널리즘의 소양은 부족할 수 있고, 화제성 있게 소재를 잘 뽑아내지만 과학적 측면은 부실해질 수 있다. 소양을 갖춘 과학 기자가 여러 작성자들 사이에서 다시금 내용의 교통정리를 해줄 수 있는 매체공간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결국에는 독자들이 글쓴이를 확인하고 옥석을 스스로 가려내기 위해 좀 더 고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앞에서 이야기한 소양을 최고 수준으로 갖춘 이들이 과학뉴스의 생산을 독점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과학적 자세를 최소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갖추었다면 프로 과학자나 과학 기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라도 과학 정보의 유통에 뛰어드는 것을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정보의 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기되는 걱정은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일텐데, 문제는 클레이 셔키 같은 뉴미디어 학자들이 말하듯이 “필터링의 실패”일 뿐이며 생산되는 정보량 자체는 어차피 미디어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한국처럼 과학 뉴스가 주변화한 곳에서 정보 과잉을 논할 만한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좀 거칠게 비유하자면, ‘유용한’ 정보와 ‘쓰레기’ 정보(사실은 훨씬 회색지대가 더 많지만)는 돌과 쌀에 비유할 수 있다. 주머니에 돌이 9만큼 있고 쌀이 1만큼 있으면, 아무리 잘 골라낸다고 해도 쌀 자체가 부족해 도저히 한끼의 밥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돌이 9000, 쌀이 1000이면 어떨까. 그렇게 늘어난 규모에서는 쌀을 잘 골라내는 선별력을 갖추면, 더욱 많은 이들이 밥을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커진 스케일에 걸맞은 선별 시스템과 개인의 선별 능력을 만들지 못하거나, 아예 그런 긍정적 가능성을 개척할 생각 없이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그저 커다랗게 쌓인 돌무더기로 보일 뿐이다. 즉 더 많은 정보는 필요조건이되, 체계와 개별 능력으로 선별해낼 때 비로소 축복이 된다. 그리고 인류 문명에 ‘유용한 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과학 정보야말로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과학기자를 위한 소양 그 네번째는, 독자에게 과학을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좋은 과학 정보를 솎아내는 방법을 기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번에 소개한 여러 소양 가운데 가장 갖추기 힘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능력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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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원래 처음 쓴 글은 돌과 쌀이 아니라 똥과 된장이었는데, 상의를 해본 결과 ‘똥에서 된장을 걸러내서 국을 끓일 수 있을까’ 같은 류의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막판에 변경. 하지만 “비율 이전에 양 자체가 중요하다는걸 무시하는 이들의 눈에는 인터넷이 드넓은 똥밭으로 보일 뿐”이라고 할 때의 어감이 뭔가 더 생생하지 않나(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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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연재코너 ‘과학뉴스 사용설명서‘. 과학을 소재로 하는 뉴스 정보의 생산, 유통, 사용을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방안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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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Nakho Kim

    [캡콜닷넷업뎃] 과학 뉴스를 다루는 과학 기자의 소양 http://t.co/sfo5jxA | 지난회 사이언스온 글. 물론, 직업인으로서의 기자가 아니라 과학뉴스를 쓰고 전달하는 누구에게라도 해당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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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 제 블로그에 전진석씨와 거의 동시에 들이닥쳐 글을 쓰신지 어언 5년여가 되었군요.
    과거 제 블로그에 선생님께서 어떤 글을 쓰셨는지 한번 즘 돌아보시고 고명하신 말씀도 한번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아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성인의 책무라 생각됩니다”
    맨 뒤에 보니 용산의 기억 운운…이란 글이 있던데, 용산 보다는 먼저 선생님의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 김낙호 선생님.
    선생님께서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라는 박인하와 최호철의 편에 서서 저를 다그친 기록이 아직 그대로 있군요..
    그런데 이 두사람은 국가인권위와 고법과 대법원에서 교수 임용비리 의혹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아무리 교언영색을 하더라도 사실이 상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두 기관의 판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래는 제 블로그이니 여기 오시는 분들 모두 확연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도배는 여기에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지난 5년여 동안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쨋든 답변을 듣고 싶군요.

  4. 나중에 공개토론을 할 때 초청을 하면 응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5. 아유, 관심을 끊으셨군요.
    그럼 수년 전 전진석씨와 동시에 제 블로그에 들이닥쳐 왜 저를 다그치셨을까요?
    제가 김낙호 선생님께 불이익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의분에 대한 ‘관심’을 느껴 그랬습니까?
    아니면 박인하와 최호철씨가 그렇게 해달라고 하던가요?
    원래 ‘뜬금없이 저지르는 사람의 행동’이란 이 두가지 범주 중 하나에 해당되거든요.
    위에 보니 ‘합리적…운운’ 이란 글도 써 있고 여러 가지 글과 책도 내셨는데 지성인답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 !@#… 안태성님/ A와 B가 비슷한 타이밍에 답글을 단 것은 둘이 청강대의 이름으로 해코지하기로 작당하여 출동했기 때문이라는 신앙에 집착하는 것이 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면, 계속 그렇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7. 허허,
    여전히 모든 것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답변으로 답을 피해가시는군요.
    1-청강대 이수형, 만화창작과 박인하 최호철은 국가인권위의 특별인권 교육 권고안을 받고 아직도 이행치 않고 있습니다.
    2-청강대 만화창작과 박인하와 최호철은 고법과 대법에서 교수 임용에 규정과 교육법을 어기고 교수가 되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문이 있으니 그대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3-이런 학교와 교수들은 안태성을 담합 결탁하여 해직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법적인 국가기관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상술한대로 결정을 하였지요.
    4-김낙호 선생님은 사안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전진석씨와 동시에 안태성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개구리가 죽은 것이 상대가 돌을 던져 죽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라’는 누가 봐도 이상한 교언으로 이 문제를 피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씨와 김낙호 선생님께서 주고 받은 문답을 돌아 보아도 잘 알 것입니다.

  8. !@#… 안태성님/ 그러고 싶으시면 판결문 공개하시든지요. 제게 일일이 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마 저와 관계있는 것은 3과 4인데, 3은 제가 5년전 남긴 대로이며, 4는 바로 앞에 제가 남긴 리플의 반복. 주고받은 문답으로 뭘 알수 있을지는 문답을 읽은 이들의 몫. 그럼 안녕히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