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거성이고 남녀문제고 군가산점이고 자시고.

!@#… 반짝 인기로 끝날 줄 알았던 ‘전거성’ 쑈 – 마치 70년대 드라마에서 오려낸듯한 가부장 정신의 엑기스 전원책 변호사가 군가산점 부활 찬성론으로 상당수의 남성 인터넷 유저들(capcold는 아무때나 ‘네티즌’이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거 싫어한다니까)에게 히트치고 있는 현상 말이다 – 가 생각보다 계속되고 있어서 재밌다. 이 분이 흥행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방송국들이 간파했는지, 토론프로그램마다 못 모셔가서 난리다.

뭐 다른 분들이야 뭐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든 또는 걱정하든, capcold는 항상 그렇듯 자기 관심사에 따라서 이상한 지엽적인 부분을 공략하곤 한다. 이번에 이 건을 통해서 읽어내는 건 두 가지다: 1) 담론의 막다른 골목 환원 현상, 그리고 2) 대변받고 싶은 욕망. 그냥 좀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려보자.

!@#… 우선 담론의 막다른 골목 환원 현상. 임의로 붙인 엄청난 명칭과는 달리, 실상 이야기하려는 것은 간단하다. 의견들이 넘쳐흐르고 담론이 전개될수록, 사람들은 일부러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나간다는 것. 예를 들어, capcold의 지론은 이거다: “대부분 남녀문제의 핵심은, 쓸데없이 남녀문제로 풀어가려고 하는 것 그 자체다.” 군 가산점 문제? 그건 군필자와 미필자의 문제지 남녀문제가 아니잖아(부록: 생활형 우파 기린아님과의 만담 요약). 알파걸? 그건 여성 전체의 이야기도, 남자와의 대립각 이야기도 아니잖아. 된장녀? 천박한 소비는 남녀노소 공통이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남자와 여자 이야기로 연관이 될만한 건덕지가 조금만이라도 보이면, 앗 하는 사이에 남녀문제가 되어있다. 남자 이겨라 여자 이겨라 니가 군대가라 니가 애낳아라 기타등등. 레퍼토리도 하도 똑같아서 이 사람들 무한 CV증후군(Ctrl+C, Ctrl+V)에라도 걸리지 않았나 의심될 정도다. 그런데 남녀문제라는 근본적 대립각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애당초 실제 제기되었던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원까지 가면 너희는 우리 처지를 몰라, 라고 가다가 끝이다. 여튼 사회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남녀 성전환은 아직 꽤 어려우니까.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할까. 언론이야 그럴만하다. 싸움 붙이면 밥벌이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것도 아니고. capcold의 가설은 이런거다. 실제로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고민하기는 싫고, 하지만 나름의 스트레스는 있어서 한 마디 하고 싶다는 것. 대부분의 사안들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려면 회색지대 투성이다. 군 가산점 하나만 봐도 군대 가고 싶은데 못간 사람은? 의가사제대는? 군대는 전역했는데 공무원 시험은 관심 없는 사람은? 군대 끌려가기는 했지만 별로 공공 봉사정신도 협동심도 없는 사람은? 가산점 부여의 결과 더 실력있고 적합한 인재가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대책은? 등등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한 진흙탕이다. 머리도 많이 써야하고 여러가지 시나리오 세워가며 공부도 해야지. 그거, 무지하게 귀찮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확실하게 한마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문제 해결을 논하는 회색지대보다는, 안전한 배설을 할 수 있는 흑백지대로 퇴행하는 것. 아무런 증명이고 근거고 자시고 필요없는 원형적 대립구도에 편승하면 된다. 비록 실제 문제 해결에는 쥐뿔만큼의 도움도 안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군가산점 부활을 바라는 사람들이 다 공무원 시험볼 것도 아니잖아. 즉 머리를 굴리는 ‘비용’을 들인다 해도 이득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그 개인으로서는 자아정체성 확인, 그 패거리 내에서의 안정적 소속감과 다소의 존경 확보 등 참 얻는 이득이 많다. 정치학자들이 연구하는 ‘합리적 선택 이론’을 이런 때에 적용해보지 않으면 언제 적용하나.

증명이고 근거고 자시고, 편만 들면 만사 해결. 비슷한 유형으로 창조론 논쟁이 있다. 여튼 창조론을 ‘믿으면’ 증명 따위는 안해도 되니까. 영 뭐하면 대충 아무렇게나 좀 끼워맞춰주고 (“그것도 다 조물주의 지능적 디자인이야”). 혹은 조금 다른 경우로는 환빠는 어떨까. 현존하는 모든 반증 자료는 위조고 환단고기는 빛나는 경전인데 증명이고 논쟁이고 뭐 필요한가. 오히려 이런 경우에 필요한 것은, 조낸 거칠게 밀어붙이며 삿대질을 하는 영웅이다. 실제 논리적이든 어쩌든 말이 되든 말든, 우리편의 파워풀한 전사(영웅, 아니 거성)라면 된다. 후련하잖아. 그에 비해서 행여나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세세한 변인들 고려하고 조율하는 사람들은, 좀 더 짜잘해지고 멋대가리 없어지기 마련이다. 스타 되기는 틀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런 저런 사안들이 남녀문제로 자꾸 환원되는 것은 결국 실제로 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사실 별로 없다는 것. 문제가 있는 상황을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쾌감을 누리고 싶은 거지. 나는 대한남아다, 나는 전역병장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뭐든. 뭐 그게 꼭 항상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실제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어서 머리 굴리는 사람들에게 조낸 달려가서 삿대질하면서 방해는 좀 하지말란 말이다. -_- 남자든 여자든, 니들끼리 속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심히 노세요.

!@#… 대변 받고 싶은 욕망 (대변’을’ 받고 싶은 욕망으로 잘못 읽지 말지어다). 이번 전원책 스타화 쌩쑈의 이면에는 사실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 중학교 때 배운다. 사회가 조낸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뽑는다고. 민주주의의 직접선출방식은 최고의 실력자를 지도자로 뽑는게 아니라, 가장 사람들이 ‘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이를 뽑고 그 결과 그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보다도 훨씬 더 복잡해서, 정말로 자신을 온전히 대변해줄 수 있을 사람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변될까. 아니 최소한 대변되고 있다고 느끼게 될까. 첫째는 무엇을 대변하는가, 라는 요소. 자신의 이익? 많은 경우 자기에게 무엇이 이익인줄도 모르는 데 뭐. 세상사 사안들이 이리 복잡하니, 많은 사안들에 있어서 나도 내게 뭐가 이익인 줄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나아가 그런 사안들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그보다는 좀 더 커다란 ‘자아정체성’이 있다. 사회적 자아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서 학계의 연구결과들을 장황하게 쏟아놓을 생각은 없지만. 자아정체성은 복합적으로 형성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해당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범주로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호남사람이든, ‘서민’이든, 남자든, 한국인이든 뭐든. 남녀문제로 이야기할 때는 그냥 남자이고 싶지, “나는 OO에서 태어나 OO한 환경에서 자라난 OO세 OO원 수입의 OO직 한국인 남자”로 세분화해서 생각하기 힘들고 귀찮다니까.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특히 그 중에서도, 피해의식으로 확고하게 연결된 자아정체성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효과적인 결속력을 자랑한다. “충분히 서로 뭉쳐서 큰 세력을 못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거야” 같은 의식도 아마도 한 몫 할 것이다.

둘째는 어떻게 대변하는가, 라는 요소. 대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제대로 대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뭐 상당히 복잡한데 사실은 이게 바로 당신의 이익이다, 라는 식으로 섬세미묘한 접근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눈높이. 내가 느끼고 있는 만큼의 수준으로 혹은 거기서 딱 반 발짝만 앞선 정도로 호쾌하게 터트려줘야 한다. 사실 그것이 대변 아닌가 – 궁극적으로 내게 이익이 되는 길로 인도하는 스승이 아니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감성적일수록 유리하다. 논리적, 이성적 논의는 나 자신이 거기까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내가 대변되었다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감성은 다르다. 내면에 깔린 억울함만 있다면, 누군가 그 기조 위에서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 토로해주면 된다.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말”으로 대충 해석해주고 감동해준단 말이지. 그것도 내가 볼 수 있는 자리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공간에서 나를 대변해줘야 한다. 아무리 국회에서 결정적인 연설을 하든 어쩌든, 내가 못보면 땡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들이 히트친 것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축에 들고 피해의식이 막강한 집단을, 딱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효과적으로 대변해줬기 때문이다. 역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남자‘들을, 논리적 근거를 살짝 버무린 ‘막말‘ 수준에서, TV 토론프로그램이라는 나름대로 지극히 공식적인 장에서 대변해줬다는 것. 사실 이런 환영의 감수성이 딱히 하류나 막장은 아니다. 그저 지나치게 ‘감성적’일 뿐이지. 그들이 전 변호사의 발언에 보내는 심정은 딱 하나다. 속이 다 후련하다,라는 것. 그리고 나를 그리 잘 대변해주니, 다음에 대통령이라도 나오면 표 하나 던져주마라고 오바질도 좀 하고. 다만 감동하다 보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뭐든지 다 맞고 훌륭하고 진리같이 들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말이다. 감성으로 한번 헤까닥 하면, 이성은 잠시 – 아니 꽤 오랫동안 – 마비되기 마련이다(원래 있기라도 했다는 보장은 물론 없지만).

그러니까 한마디로 교훈은, 대변받고 싶은 마음을 지배하는 자가 코트를… 아니 담론판을 지배한다는 것. 물론 그런 것은 보통 엉뚱한 이야기나 꺼내는 capcold와는 심히 관계없지만.

!@#… 물론 이 두가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억지로 합치면 참 암울한 명제가 나온다. 사람들은 이성적인 문제 해결에 뛰어들기는 싫어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며 쾌감을 느끼고 싶고 그것이 대변되었으면 하는 욕구가 출중하다는 것. 합리적, 효율적, 문제해결적 담론판을 만들려면 그 정도는 미리 감안하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까지는 아직 가지 말자. 이왕이면 희망차게.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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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생활형 우파 기린아님과의 군 가산점 만담 요약

K: 여성계는 딱 두가지 입장만 냈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어쨌든 여성계의 입장에서… 헌재에서 이미 결론 난것을 다시 언급하는건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나든지 그건 남성들이 투쟁해서 얻어내라. 정확하게는 군필자들이.

c: 바로 그러면 조낸 두들겨맞아요. 군필자들에게. 우리가 니들 지켰는데! 하면서. 핫핫

K: 사실 군필자들의 마인드가 이런 협상과 타협과 이해관계 이것이 아니라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

c: 저는 타협하고 싶어요! 돈 줘! 할인해줘! 국립공원 할인이든 / 박물관 무료입장 / 국회도서관 우대권 – 도서 우선 대출권, 몇매까지 복사 공짜, 기밀자료 접근… 여튼 제 이야기는 이겁니다: 짜잘하게 되게 많이 혜택을 주는겁니다!

K: 노인 복지 하듯이?^^

c: 군가산점 한번 주고 옛다 떨어져가 아니라. 짜잘하게 되게 많이, 사회 곳곳에서 혜택이 주어지는겁니다. 민방위 끝날때까지. 어차피 핵심은 자존심입니다. 내가 2년 희생했으니 좀 알아줘! 그러니까, 조낸 여러군데에서 두고두고 알아주는거죠. 수많은 자잘한 혜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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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전거성이고 남녀문제고 군가산점이고 자시고.

Comments


  1. EBS에서 한 토론카페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게 싸움을 유도하려고 한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도데체 잡지 편집장과 가수, 변호사가 여성학자와 같이 알파걸에 대해 토론하는게 말이 됩니까.

  2. 그 EBS에서 붉어진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더군요..

    덕분에 폭격 맞을 것을 예상한 ‘ 이안 ‘ 이란 가수는 ‘프로필’만 열어놓고, 폭격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인데.. 그닥 신통치 않은 모양이에요.. 온갖 게시판에 얼레 벌레.. 욕이란 욕은 잔뜩 써놨더군요.

    하기사 신격화 되어버린 ‘거성’의 존심을 건드린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할텐데.. 그런 생각이나 했겠냐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 사실 죗값치곤 가벼운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서.. 흐지부지 되버리긴 했지만;;
    (사실 죗값이라기보다 ‘이안’ 이라는 가수 홍보가 더 적절하군요.. )

    솔직히 그 말랑한 토론 까페라는 프로그램이라도 진행 하려면..
    적어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머릴 가진 패널이 있어야 하는게 정상 아닙니까-_-?

    고작 한다는 소리가.. ” 워류겐 ” 보다 못한 소리니.. 정말 크게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요.
    ( 저 같았으면.. 큰 소리 한번 내고, 뒤집어놨을듯.. )

    여하튼 “新거성”의 출현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남녀간의 싸움이 다시 한번 대열에 올랐는데..

    잘 되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져 말도 안되는 정책이나 안 던졌으면 합니다;

  3. !@#… 네이탐님/ 싸우면 시청률이 올라가니까요.
    Js님/ 치졸한 보복심리였죠 사실은. 그 전에 전원책 변호사가 여성들을 무진장 무례하게 까버려서…;;; 그런데 그 가수는 그런 순간의 충동과 현명치 못한 지적 수준 덕분에 오히려 큰 판을 말아먹었다는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