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새로 창간한 월간 문화저널 백도씨에 기고한 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모에 취향은 아니지만 (구세대다 구세대…), 이쪽 계통의 현재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니까. 이미 전에 해오던 이야기에 약간 더 살을 붙여서 모에라는 현상을 한국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화두 몇개를 던진 정도. 한겨레에 기고한 하루히 글과 연동시켜서 읽어봐도 좋을 듯. 아 그래도 창간호의 품위를 조금 지켜주는 의미에서, 모에의 성적 코드에 대한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 다른 지면에서 한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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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라는 취향문화를 바라보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모에라는 시대정신
모에는 좋든 싫든 현재 일본 대중문화 하드 유저들의 기이하다면 기이한 ‘시대정신’이다.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모에라는 패턴은 이전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 모에’다. 모에하는 사람은 수많은 만화, 애니, 게임 등 장르 대중오락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중 붕대를 맨 소녀 캐릭터를 찾아내며 애착을 보인다. 그리고는 붕대소녀는 자고로 3분에 한번씩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려야 하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활약을 벌이려다가 아픔으로 한번 넘어져 줘야 하며, 머리에 붕대를 맬 경우 머리카락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되고 이마와 한쪽 눈 정도까지만 덮어야 한다는 등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다. 당연히 붕대소녀를 묘사한 각종 피겨와 게임, 만화책들을 긁어모은다(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빌자면, ‘데이타베이스적 소비’).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팬이고 민메이라는 아이돌을 숭배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는 식의 차이다. 특정한 이야기 속에 놓여진 캐릭터 전체를 하나의 동경의 대상으로 놓기보다, 그 캐릭터가 지니는 특정한 구성요소에서 쾌감을 느끼는 구조 말이다.
모에에 대해서, 사람들은 범람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방편으로 파편화, 특성화된 선호 취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파편화된 여러 기호의 세계 속에서 나름의 공통적 요소들을 찾아 나서서 캐릭터성의 근본적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시도이기도 하다. 즉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하여 맞추어내는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모에라는 것이 정말로 이전 세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향유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비록 궁극의 오타쿠 ‘오타킹’을 자처하는 오카다 도시오 같은 7-80년대 만화/애니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위 1세대 오타쿠들에게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행위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모에 특유의 미형 캐릭터에 대한 동경은 사실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만화편집자 출신 평론가 사사키바라 코우는 『미소녀의 현대사』라는 저서에서 아예 모에를 미소녀에 대한 애호와 동격으로 놓기까지 하는데, 무려 TV애니 『바다의 트리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마크로스』의 아이돌 스타 민메이의 ‘팬’을 자처했던 그 세대라 할지라도 민메이 성우의 앨범들을 긁어모으고, 일러스트들을 서로 교환하며, 기타 각종 상품들을 수집해오지 않았던가. 바로 이러한 점들은 사실 모에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일부 특정 매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중요한 현상과도 연결된다.
모에는 왜 만화/애니/게임 문화와 친한가
‘모에’ 행태는 실체를 획득할 수 없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면 가서 얻어내면 되는 것이지, 관련 굿즈를 사서 모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캐릭터를 사랑하더라도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실체로서의 배우가 있다. 즉, 겨울연가의 모 캐릭터에게 반한 나머지, 욘사마의 팬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만화/애니/게임류의 경우, 캐릭터들은 캐릭터 자체로서만 존재한다. 실체를 얻을 수 없기에 하나의 전체로서의 상대를 동경하고 역할모델로 삼는 방식의 향유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기야, 인기 없는 방구석 폐인들에게 있어서는 이웃집에 사는 3차원 물질계의 여성들도 이미 실체를 획득할 수 없는 먼 세상 신비의 대상이기는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때로는 집착적일 정도의 애정을 과시하는 방법은 바로 소비와 재창조다. 관련 상품들을 소비하며, 또한 이미 주어진 캐릭터로서의 요소들을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재결합하고 재창조해내는 방식으로 즐긴다. 이것이 곧 캐릭터 상품 시장과 동인문화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셈이다.
시각적 표현방식으로서의 만화언어 역시 모에를 위한 유리한 조건이다. 실제로 카툰화법을 채용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가장 강하게 모에 취향과 연계되어 있다. 그에 비해서 소위 ‘실사판’으로는 도저히 같은 정도의 모에를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앞서 이야기한 가상성 – 즉 캐릭터가 실체가 없는 캐릭터 자체로서만 존재한다는 요소와 함께, 만화언어는 모에 요소들을 가장 특징적으로 표현하고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툰화법은 근본적으로 생략과 집중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핵심 모에요소를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테나 머리’라는 모에 요소를 실사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무스를 2-3통 뿌린다고 할지라도 과장되고 뚜렷하게 나타내기가 대단히 힘들며, 성공하더라도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보일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카툰화법을 채용하면 안테나 머리는 쉽게 하나의 기호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각각의 분절적 모에 요소들을 표현하기에 대단히 용이하며, 나아가 이런 요소들을 자유롭게 서로 결합하는 것 역시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카툰화법이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래로 모에적 향유가 급격하게 발달하게 된 점에는 컴퓨터 게임의 대두가 큰 역할을 했다. 사실 만화/애니 향유층을 지양분 삼아서 발달, 카툰화법으로 표현된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일본에서는 컴퓨터 게임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미 80년대부터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90년대의 급격한 PC보급과 각종 비디오게임 콘솔의 반복된 자기혁신은 게임을 오타쿠 문화의 보다 강고한 축으로 자리매김시켰다. 특히 RPG와 미연시 계열 등 손가락의 반응속도보다는 내러티브적 흐름을 중시하는 장르들에 있어서, 캐릭터성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기에 이것은 자연스럽게 오타쿠 문화 전반으로 같이 융합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고정된 스토리를 따르는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게임 장르 자체가 가지는 특성이란 바로 내러티브 구조의 느슨함 및 루트의 복합성이다. 따라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처해지는 캐릭터성의 조합에 더 주목을 할 수 밖에 없는 방식의 향유를 자연스럽게 강제하는 셈이다. 모에는 이러한 양식을 흡수하며 더욱 공고한 주류 향유 패턴으로 발달했다. 이렇듯 모에는 만화언어의 취향 클러스터 – 즉 만화 자체, 카툰화법을 채용한 주류 애니메이션, 카툰화법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임, 그리고 그와 연관된 피겨 등 각종 상품을 포괄하는 대중문화 향유 취향의 집합 – 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현실과 모에
사실, 모에는 상업적 이유 때문에 선 굵은 대형 서사물보다 캐릭터 조합극으로 주류 방향을 잡고 있는 현대 일본의 서브컬쳐 산업이기에 여기까지 주류화될 수 있었던 방식이다. 모에적 향유는 단지 재미있는 특정 작품 한 가지에 대한 낮은 수준의 몰입이 아니라, 만화언어 취향 클러스터 전반에 대한 높은 수준의 몰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문 시사 만화를 가끔 즐겨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정도가 아닌, 만화 자체를 좋아하는 정도는 되어야 모에적 향유를 시작할 수 있다. 모에는 근본적으로, 각종 캐릭터 공식에 대한 광범위한 흡수와 적극적 집착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소수 매니아적 취향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소수 매니아적 취향의 소유자들이(넓은 의미의 ‘오타쿠들’) 충실하고 강력한 구매력을 발휘해 주어서 주류 시장으로 부상시켰다. 그리고 그 취향이 창작자/생산자들에게도 피드백되어, 모에 취향의 시장이 공고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에도 일본의 만화/애니/게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모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 층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장 구매력은 모에를 주류 시장으로 올려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취향으로서는 모에를 표방하지만, 소비를 통해서 그 취향시장을 발전 또는 최소한 유지시켜놓을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만화는 스캔본, 애니는 인터넷 불법공유 동영상, 게임은 복사CD를 쓰면서 취향만으로 모에를 추구하는 것은 시장의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정식으로 모에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한 정도라면, 시장과 취향이 결합된 진짜 문화산업으로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일본의 문화콘텐츠 성공담을 벤치마킹하고자 할 때, 그것이 모에 취향의 사업 모델인 경우다. 게다가 이미 영화나 TV드라마의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문화 향유자들은 완성된 극적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선 굵은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높으며, 실체로서의 스타 또는 현실의 직접적 반영으로서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모에적 향유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물론 모에는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이미 일본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장단점을 드러낸 대중 문화패턴인 만큼, 받아들일 것은 본받고 경계할 것은 버리면 된다. 예를 들어 모에적 향유가 지니는 열정적인 요소들은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파편에 집착하여 전체 상을 경시하는 풍조는 막아내면 된다. 이 두가지 극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지키면서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또 향유하는 문화로 나아가면 이 시대의 문화현상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 또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혹은 그냥 평이하게, 좀 더 즐겁게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는 촉매 작용이라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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