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영화계의 안중에 들어오다 [문화저널 백도씨/0704]

!@#… 만화가 영화 원작으로 열심히 쓰여서 유명세를 타고 돈이 산업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야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만화는 영화를 위한 최고의 보고라느니 하는 식의 호들갑 오버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금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서 쓴 글.

 

만화, 영화계의 안중에 들어오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수년간 영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화를 원작으로 쓰는 것의 화제성이다. 물론 영화계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한국이든 헐리웃이든 만화에 대한 관심이 난데없을 정도로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300』이라는 만화 그 자체를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지상목표인 영화가 큰 흥행을 이루며 이런 현상은 한층 더 고무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만화는 희망적 관점의 기사들이 이야기하듯 영화계의 새로운 돌파구이자 활력소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런 것인가.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화 원작의 채택

사실, 영화계에서 만화 원작에 눈독을 들이는 현상의 바탕은 어떤 미학적인 이유보다도 결국 소재의 고갈이 기여한 바가 크다. 영화는 사실 서사성을 긁어모을 수 있다면 어떤 매체라도 거절하지 않고 흡수해왔다. 소설이든, TV드라마든, 자서전이든, 라디오방송이든, 심지어 비디오게임이든 말이다. 만화가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고, 실제로 만화 원작의 영화가 특별히 21세기적인 현상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서 여전히,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전체 영화 제작편수 가운데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과반을 향해 달려간다거나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핵심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단순한 소수 컬트 팬층의 전유물이 되거나 아예 기억할만한 가치도 없는 모호한 졸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무슨 말이냐하면, 첫째 만화팬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호소력을 지니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영화가 나오고, 둘째 그 영화가 자신의 뿌리인 만화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내세우며, 셋째 그런 성공작이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또다른 성공작이 나타나서 마치 하나의 현상처럼 각인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만화원작 영화를 생각해보자. 80년대, 영화판 『공포의 외인구단』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영화판의 만화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비천무』 당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올드보이』나 『타짜』의 대중적 성공은 만화팬과 일반인들을 가리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만화원작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연속성있게 이어지고 있다. 만화원작 프로젝트 가운데 사실 실패한 것들이 이 비슷한 기간에도 더 많겠지만 (『아파트』의 재앙이라든지, 『다세포소녀』의 괴악함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뚜렷한 성공작은 수많은 유사한 실패사례를 덮어주고도 남는다는 것이 문화산업의 묘미 아니던가.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가지는 만화 자체의 속성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첫째는 엄밀하게 말해서 영화 제작 자체의 승리고, 둘째는 마케팅팀의 성과며, 셋째는 넘쳐나는 미디어 덕분에 시도가 많아지고 또 사람들의 정보 지평 역시 더 넓어진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스파이더맨』은 성공하고, 『퍼니셔』가 실패한 것은 영화 자체의 재미의 품질 차이이며, 만화 원작의 정체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어필했는가의 차이다. 또한 사람들이 엑스맨 다음에 스파이더맨을 기억해주어 새로운 세대의 슈퍼히어로 실사영화를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그 히트의 연쇄에 들어가는 화제성의 힘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런 부분은 만화 원작의 힘이라기보다는 그저 영화의 힘이다. 여기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면, 만화판은 생각보다 일찍 실망스러운 결과에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만화매체가 실사영화 표현상의 한계로 인하여 아직 채택되지 않았던 고갈되지 않은 이야기 오락의 비축량이 있었기에 지금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각특수효과기술과 파생상품 스핀오프 기획 마케팅 능력의 발달 덕에 만화가 영화에 채택되었듯, 또 다른 기술이 발달하면 아직 주목받지 못했던 또 다른 무언가가 영화 원작의 중심으로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만화 원작의 매력을 살리기

하지만 최근 정말로 주목할만한 현상은 만화라는 매체의 표현방식이나 향유 양식 자체가 실사영화와 융합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성공작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선, 시각 스타일을 들 수 있다. “만화는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영화의 콘티로 사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속설과는 달리, 실제로는 만화는 주로 이야기와 캐릭터만을 빌려주곤 했다. 하지만 정말로 만화의 칸들을 하나하나 그대로 옮기는 것에 심혈을 기울인 『씬시티』와 『300』두 영화의 성공은 앞의 속설을 사실로 만들어주고 말았다. 만화의 자유로운 시각표현 방식 속에서 가능했던 강렬하고 역동적인 화면구도, 내용에 맞추어 조절한 인공적인 색감 등이 CG의 힘을 빌어 실사영화와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그 파격성은 지나친 실험성에 빠지기보다 대중의 환호를 받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혹은 칸 분할은 어떨까. 영화 『헐크』등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한, 다른 곳에서 동시 진행중인 사건들을 분할된 화면속에서 병렬해서 보여주는 기법 역시 만화 특유의 방식의 이식이다.

다른 의미에서 지극히 ‘만화적’인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의 거침없는 전개다층적 이야기의 상호연계다. 만화는 원래 시각기호의 효율성 덕분에 스토리텔링상의 다소의 비약이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덕분에 다른 어떤 대중서사매체보다도 (대중성을 희생하지 않는) 자유로운 전개의 실험이 가능하다. 이런 요소들이 만화원작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는 것은 만화 본연의 매력을 살려내는 것에 중요하다. 거침없는 전개로 성공을 거둔 『타짜』나 『비트』가 이것을 해낸 것이고, 비약적 전개 자체를 자신의 매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해서 단지 시나리오가 부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48+1』이나 『다세포소녀』가 이것에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시각효과나 서사를 떠나서, 만화원작의 또 다른 강력한 만화적 매력은 만화 특유의 향유문화 그 자체다. 예를 들어 헐리웃의 슈퍼히어로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원래 만화를 원작으로 실사영화를 만들 경우 방향은 크게 만화성을 살리거나, 아니면 실사영화의 문법을 강조하여 처음부터 재구축하거나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단순화시키자면 붉은 빤스를 입고 호쾌하게 활극을 펼칠 것인가(슈퍼맨), 아니면 패셔너블한 가죽 유니폼을 입고 약간의 초능력을 구사할 것인가(엑스멘)의 문제인 셈이다. 물론 이 둘 사이에서 방향을 제대로 못잡으면 『캣우먼』같은 졸작이 됨은 당연지사다. 비슷한 맥락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원작의 인기를 마케팅 포인트로 강조해놓고는, 정작 그 만화가 향유층에게 어필했던 매력을 잘못 짚어내는 것도 패망의 지름길이다. 다중적 등장인물들의 교차, 오컬트와 썰렁한 농담, 활극이 미묘하게 겉돌면서도 섞여 들어가는 엇박자가 매력이었던 강풀의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은, 모든 것을 거세한 장르 호러물 『아파트』이 되었다. 폭풍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기구한 인생유전이 매력이었던 김혜린의『비천무』는 유사 무협활극 액션물로 바뀌면서 재앙급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것은 인기 있는 원작이 아니라, 원작의 인기비결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반증해준 셈이다. 물론 영화가 형편없어도 원작의 인기 덕분에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데스노트』라든지), 100이 될 재료로 40밖에 못만드는 재주에 좌절해도 모자랄 일이다.

만화원작 실사영화는 결국 실사영화다

물론 실제로 만화를 원작으로 골라내어 좋은 영화로 만들어 성공까지 하는 것은 결코 앞서 이야기한 논의만큼 매끄럽지도 뚜렷하게 갈라내어 설명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히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방식으로 만화 원작을 실사영화로 활용하든지 간에 우선 영화로서 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시간으로 기승전결을 담아내는 이야기와 영화적 화면에 어울리는 시각적 쾌감 말이다. 솔직히 자율적 독서의 방식으로 향유되는 만화와 강제적으로 2시간동안 몰입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그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파생콘텐츠를 만든다는 OSMU(원소스멀티유즈) 개념을 적용하더라도,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 만화 원작을 원소스로 해서 파생상품으로서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 연계 상품들의 맥락 속에서 영화가 그 자체로서 새로운 원소스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더 중요하거나 산업적 파급력이 커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든 작품을 만들 때 필요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좋은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라, 좋은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좋은 영화일 때에 비로소 영화판이든 만화판이든 같이 서로 행복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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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만화원작영화, 이 작품들이 중요하다
비트: 질주하는 서사, 스타일리쉬한 연출은 만화 원작의 가치를 제대로 잡아내는 미덕을 한국영화에 심어주었다.
씬시티: 시각스타일도 서사방식도, 심지어 원작자를 공동감독으로 모셔온 것도 ‘만화’ 영화에 대한 집착의 성공.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멀쩡한 청년이 빨간 빤스를 바깥에 입어도 멋질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다. 대중적 재미의 슈퍼히어로 실사영화의 원조.
올드보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가져오되, 새로운 깊이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 청출어람하는 창의적 원작 활용.
폭력의 역사: 만화원작의 깊이 있는 재창조라는 점에서, 헐리웃의 ‘올드보이’.

만화원작 괴영화
아스테릭스: 품질 낮은 코스프레 잔치.
왕룡 삼부작(피구왕 통키, 북두신권, 드래곤볼): 무개념 키치의 컬트적 경지.
엑스멘1: 영화평론가들은 스판을 벗고 활극을 줄이고 정치적 표현을 팍팍 드러냈다고 환호. 하지만 원래 이런 만화의 진짜 매력은 스판을 입고 활극을 벌이며 그 깊숙한 기저에 정치적 비유와 함의가 자연스럽게 젖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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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만화, 영화계의 안중에 들어오다 [문화저널 백도씨/0704]

Comments


  1. 오타 있는듯하다..

    붉은 빤스를 입고 호쾌하게 활극을 펼칠 것인가(스파이더맨), 아니면 ..> (슈퍼맨)?

  2. !@#… 허걱. 설마 종이잡지에도 그렇게 나가지는 않았기를 바라지만… 아마 그렇게 나갔겠지. 여튼 수정 들어갔음.

  3. 괴영화는 어떻게 분류된건가요? 인기는 있었는데 질은 떨어졌던것을 선택한 건가요?
    그럼 왕룡’님’은 어쩨서 저기에…-_-;;

  4. !@#… 인기 여부나 질적 수준보다는, 문자 그대로 괴스럽게 이식된 영화들입니다. 원작을 등에 업으려는 강한 의지가 보이는 반면 지나칠 정도로 ‘재창조’되어버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도록 이상해진 영화들.

  5. …..죄송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답글을 쓰실 수 있던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