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가 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NYT 데이빗 브룩스 칼럼을 읽고(원문, 뉴스페퍼민트 소개본) 약간의 잡상.
!@#… 칼럼의 내용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하던 일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되었는데, 그 중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로서 열정, 전략, 절차 설계, 유연한 협업, 근본 탐구 등의 가치가 각광받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류의 ‘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은 인간 고유의 기능이 있기에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더 나은 세상이 온다’라는 식의 논지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개인의 자기계발에는 나쁘지 않겠으나 딱 거기까지다.
그냥 약간 역사를 되돌아보기만 해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산업혁명과 기계공학의 발달 속에서, 기술의 발전은 제조업에서 인간을 꽤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다. 직능인들이 맡던 영역 가운데 상당수 내지 대부분은 기계로 대체 가능해졌고, 극소수 수공예 장인들의 영역 말고는 두 방향으로 흩어졌다: 하나는 동급 품질을 생산하는 기계보다 싼 저임금 노동력의 집약, 즉 스웻샵이다. 다른 하나는, 당대에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보였던 관리업으로 업종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management’는 인간의 사고가 필요하니까.
그 다음은, 더 세련된 기술, 특히 미디어기술과 전산 장비 등의 발달이 관리업에서 인간의 역할을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 다시금 인간은 소수의 고급 분석가가 아니면 두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는데, 하나는 더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최대한 보전하는 좀 더 복잡하게 얽힌 악성 관료주의로, 다른 하나는 당대에는 인간 고유의 영역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람을 대접하는’ 대민서비스업으로 업종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care’ 직종들, 특히 미국의 공공서비스 고용 비중이 좋은 예다.
그런데 그 다음은, 기술이 대민서비스도 따라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그저 한층 더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일 따름이니까. 예를 들어 일본의 간호 로봇 발전 속도를 보면 된다.
기술은 인간만 할 수 있다 여겨진 것을 차례대로 앞으로도 계속 대체할 것이다. 관건은 예나 지금이나, 기술을 역행하는 러다이트짓도, 인간의 고유성을 낙관하며 새 기회를 잡아라 자기계발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뻔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다. 바로, 기술로 얻어낸 혜택들을 인간들 사이에 공평하고 풍부하게 분배하는 것을 늘 발전에 관한 가치판단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법정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게 하는 것도 한 가지다. 생산성 향상의 열매를 더 열심히 세금으로 거두어 진취적인 보편적 공공서비스 확충에 쓰는 것도 한 가지다. 저개발지역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에(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매우 바람직한 사례다) 수익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투자시키는 것도 한 가지다. 개별 지역공동체는 그들 나름대로(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계급 갈등), 보다 큰 차원의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부분은 또 그렇게 합의해가면서 말이다. 정말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것이라면, 인간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고 공평을 추구하는 것, 즉 인간에 대한 편애다.
…아니 그것도 언젠가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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