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은, 본격 남주인공이 미소지으면 스릴러가 되는 만화. 게재본은 여기로.
치즈 인 더 트랩: 로맨스의 가면을 쓴 인간관계 스트레스 잔혹극
김낙호(만화연구가)
열심히 사는 여주인공이 있고, 잘생긴 재벌집 남주인공이 있다. 일련의 오해와 소동이 지나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둘이 사귄다. 그럭저럭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치즈 인 더 트랩](순끼 / 네이버)이라는 작품에 있어서, 이런 흔한 달콤함은 얇디 얇은 사탕 코팅에 불과하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오늘날 일상적인 사회 장면에 가득 넘치는, 평판과 편견, 소문과 조작, 자존감 과잉과 피해의식으로 이뤄진 인간 관계들에 대한 세밀한 탐구다. 이런 것이 개개인의 관계를 넘어 사회적 오지랖으로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들의 모습, 바로 인간 관계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는 사회의 단면에 대한 처절한 통찰이다.
여주인공인 경영학과 대학생 홍설은 학과 안에서 평범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며 무난하게 살아간다. 재벌집 아들인 남자 선배 유정은 사람들에게 늘 정중하게 대하는, 학과의 아이돌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둘은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유정은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친한 척 들이대며 사실은 자신을 이용해 먹고자 하는 모습을 경멸한다. 게다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성미를 지녔는데, 자신의 평판을 더럽히지 않고 오로지 상황과 타인들을 조종해서 이뤄내는 성격이다. 그리고 홍설은 겉으로는 헐렁하지만, 사실은 겉모습과 속생각의 괴리에서 오는 위화감,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신경전 같은 것을 대단히 예민하게 알아차리기에 피곤해지는 예민한 눈치를 지녔다. 그렇기에 이 둘이 서로를 의식하게 된 첫 만남조차, 달콤한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 유정은 홍설을 속으로 경멸하고, 홍설은 유정이 속으로 한 경멸을 눈치채고, 유정은 홍설이 그것을 눈치챘음을 다시 눈치챈다.
그런데 친근한 밀고 당기기보다는 팽팽한 스릴러적 긴장감으로 채우는 것은, 고작 두 주인공의 연애전선만이 아니다. 대학생들은 각자 자기 일로 코가 석 자고, 기회가 되면 서로를 이용해 먹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기 평판을 관리하는 스트레스를 남에 대한 편견으로 해소하며 산다.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남의 행동들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왜곡하고, 남의 상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인간적 매력이니 선의니 하는 것으로 자기합리화하고, 설상가상으로 다들 그런 것이 정상인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 당장 이 작품에서 너무나 현실적으로 묘사해내는 조별과제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무임승차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고, 조 안에서 권력 관계와 조 사이의 경쟁을 의식하고, 웬만큼 능글맞게 은근슬쩍 조율해놓지 못하면 앗 하는 사이에 일과 책임을 뒤집어쓴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은 과제라는 업무 자체만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선후배라는 비공식적 계급과 여러 ‘인간적’ 관계에 엮인다.
게다가 모든 관계는 피곤하게도, 평판과 소문으로 이뤄진다. 불만이 있으면 상대의 평판을 낮추려고 기를 쓰고, 관심이 있으면 상대에 대한 소문부터 뿌린다. 취업용 스펙 쌓기를 위해 방학 중에 잠시 가는 영어학원에서조차, 사람들은 그룹을 만들고 소문을 통해 누군가의 평판을 건드리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런데 결국 평판이란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조차 깊숙하게 파고든 경쟁인데, 매사에 스트레스로 곧 쓰러지더라도 무한경쟁을 부추키는 우리 사회이기에 그것은 손쉽게 당사자의 자의식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평판의 손실은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망상과 피해의식이 삽시간에 커져나가곤 한다. 영곤은 처음에는 그저 눈치 없고 자의식만 강한 연예에 서툰 인간이었으나 그런 집착 속에서 악성 스토커로 발전해 나아간다. 민수도 처음에는 친구를 좀 멋있다고 생각하며 살짝 도움도 주던 평범하고 수줍음 많은 동기 여학생이었으나, 평판 확인의 악순환 속에서 홍설이라는 원본을 파괴하고자 하는 카피캣이 되어간다. 그들을 극단적이고 비현실적 캐릭터라고 치부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오늘날 한국식 경쟁 압박에서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망가짐의 과정에 가깝다.
[치즈 인 더 트랩]은 주인공들의 생활을 둘러싼 친근한 척 잔혹한 대학 생활의 인간 관계, 아니 한국 사회 일반의 인간 관계 단면들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독자는 로맨스라는 치즈 미끼에 걸려들어서, 리얼리즘 잔혹극이라는 쥐덫에 빠져들 따름이다. 유정과 홍설 두 주인공은 관계의 어두운 모습을 통찰하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겉모습으로는 미소 지으며 세상에 맞춰주며 살아간다는 큰 공통점으로 서로 통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은, 홍설은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 좌충우돌하다가 우연찮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도 하고, 유정은 다른 인간들을 당사자들도 모르게 조종하는 뒷공작까지 동원하며 자신의 영역을 냉혹하게 지켜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 두 가지 극단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깝고, 어느 쪽을 동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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