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구나, 찌라시 언론들의 지조때로 외신 짜깁기. 황우석의 사기가 만천하에 폭로되고 있는 틈에도, “이러는 사이 외국이 자꾸 한국을 추월하고 있어!”라는 골때리는 채찍질은 그치지 않는다. 사실 언론사의 입장에서, 이따구 논지가 가져다주는 몇가지 확연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뭐냐하면,
1) 독자 일반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건드려줌으로서 공감대 형성
– 심지어 ‘진실’보다도, 독자와의 공감대가 더 중요시된다는 것이 이번 건에서 누차 증명되었으니 뭐. 조선일보가 황을 감싸고 오보를 남발하고 진실규명 노력을 짓밟았지만, 황이 사기꾼으로 판명되었으니까 이제 조선일보 구독 끊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심지어 강단있는 반골 이미지로 자신을 구축해온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조차도 피디수첩의 진실규명 노력을 “재수없다”고 치부하는 판에.
2) 선진국을 따라잡자라는 현대사 이데올로기
– 여하튼 한국은 전후 현대사 내내 잘살아보세를 암묵적 국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잘살아보세의 내막은 정말로 행복한 삶을 꾸린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선진국, 특히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즉 한국 자체를 판단 기준으로 신뢰하고 싶지 않고, ‘선진국’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그러니까 미국의 영어테스트인 토익따위가 한국에서 입사 시험의 준거틀이 되지 않던가). 선진외국과의 비교는 아주 근본적으로 잘 먹혀든다. 재밌는건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독자들이 외신을 준거틀로 삼고자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 그 외신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필터링되서 들어오는 건데 말이지. 참 골때리는 일이다.
3) 저널리즘의 ‘전문영역’을 자랑하기
– 솔직히 요새는 누구나 다 자기 소식이 있고 특종이 있다. 즉 누구나 기사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극단적인 예는 오마이뉴스, 개인 블로그들이고. 즉 특별한 소식을 발굴해서 전한다는 저널리스트들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다. 그런데 아직 ‘일반인’들이 손대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해외 언론들을 통한 소식, 즉 “외신”이다. 언어장벽이 있거든. 그리고 외국 언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왠만해서는 잘 모르고(잘 알 필요도 없고). 그래서 외신 보도를 하면 아주 전문적 저널리즘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다만, 실제로는 대다수의 저널리스트들도 그렇게 외신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 전담 취재자들이 가져온 소스를 가지고 서로 돌려가며 베껴가며 비스무리한 내용들을 양산하지만.
!@#… 게다가 이번 건에 한정시켜 놓고 보자면, 한가지 이점이 더 있다:
4) 지난 과오 묻어버리기
– 알다시피, 찌라시들로서는 참 이번에 밑바닥을 드러냈다. 아니 밑바닥을 파고 천연암반수까지 도달했다고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 소재를 우려먹고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추리꺼리’도 슬슬 떨어지는 만큼 어서 봉합하고 넘어가고 싶은 구석도 있다. 어떻게 하면 너무 속보이지 않게 다른 이슈로 넘어갈 수 있을까. 간단하다. “소모적인 논쟁을 이제 슬슬 접고 발전을 바라보자”라는 명제를 주입시키는 거지. 이런 패턴 한두번 본 것 아니지 않나. 가깝게는 2004년의 대통령 탄핵건에서도 화려하게 선보였던 담론 구성방식. 소모적 논쟁을 하면 안된다는 당위성을 주는 확실한 방법은? 이러는 동안 남들이 우리를 추월한다는 것. 명쾌하다.
!@#… 여튼, 그래서 이런 보도들이 나오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 실족, 유럽 라이벌 학자 활개친다
[연합뉴스 2006-01-02 01:05]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기사클릭)
스위스의 유력지이자 세계 우수 저널리즘 톱텐 안에 항상 들어가는 신문,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ZZ)의 1월1일 일요일자판에서 외신 인용. 선정적인 제목에서 볼 수 있듯, 황우석이 낙마하니까 다른 외국 학자들이 활개친다, 뭐 그런거지. 아 이거 위기감 고조. 한국인들이 이러고 있어도 될까, 하는 위기의식이 절로 샘솟는다.
!@#… 자 여기서, 슬슬 원문 뒤져볼 때가 되었지. 무료 기사 공개되어 있는 온라인판이 아닌, 유료 서비스라서 눈물 머금고 기사 단위 결재. 아아, 졸라 비싸다. 여튼 어디보자. 1면에 있는 기사 예고 제목은 “Weiter klonen“. 즉 “복제는 계속된다“. 59면(즉 그만큼 과학 기사는 무척 비대중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에 있는 본문 기사 제목은 “Europas Klonpionier“. 유럽의 복제개척자. 자세한 내용은 좀 줄이고, 그냥 1면에 소개된 예고글 그대로 옮기자. 움라우트는 코드 깨지니까 생략.
Der Falschungsskandal um den sudkoreanischen Klonpionier Hwang hat die Stammzellforscher erschuttert. Jetzt ruhen die Hoffnungen auf den Wissenschaftlern in Europa. Einer von ihnen ist der in Newcastle tatige Miodrag Stojkovic. (by Mark Livingston, 1.1.2006)
남한의 복제개척자 황의 조작 스캔들이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뒤흔들었다. 이제 희망은 유럽의 과학자들에게 놓여졌다. 그들 중 하나는 뉴캐슬에서 활동중인 미오드락 스토이코비치다.
대략 여기까지만 봐도 원문의 뉘앙스 짐작가지 않나? 스토이코비치 소개 기사다. 황우석 이야기는 그냥 양념일 뿐. 그것도 전체 기사는 줄기세포 연구의 제도적 어려움에 대한 것, 줄기세포 연구가 복제인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 등의 내용이다. 스페인으로 간다는 것도 고액연봉 스카웃 그런게 아니라 복제 연구 제한이 덜한 곳으로 가는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이 기사는 스토이코비치를 통해서 줄기세포 연구가 무슨 만능 치료약이 아니라는 것, 당장 내일이면 모두 벌떡 일어나서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잇다. 즉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 거품을 오히려 깨버리고자 하는 기사라는 말이다. 유치하게 무슨 국제 경쟁이 어쩌느니, 유럽이 세계최고니(아니 도대체 유럽이 한 나라냐?) 하는 기사가 아니란 말이다.
또 덤으로 연합뉴스 문정식 기자는 “최근까지도 스토이코비치 박사는 건강한 여성의 난자를 확보한 황박사 팀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라고 쓴 대목이 있는데, 원문에서는 “건강하고 젊은 여성의 난자를 쓸 수 있는 남한을 부러워했다“라고 되어있다. 연합뉴스 문정식 기자가 생각하고 싶었던 것 처럼 스토이코비치가 황랩을 시기한게 아니라, 한국의 연구환경을 탐냈다는 거지. 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연구환경을 찾아서 영국으로 갔고, 또 스페인으로 가려는 사람 아닌가. 참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이토록 뼈저릴 수 없다.
!@#… 하지만 지조때로 읽어낸 기사 하나, 한국 찌라시 업계를 한바퀴 도셨다. 아싸가오리 외치면서 이걸 그대로 이어받아서, YTN, MBN, KBS, 해럴드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바퀴 돌아가면서 다 그대로 썼다. 번역이고 뭐고 그대로 베끼다시피 해서. 연합뉴스 기사에서 ‘미오드라’라고 이름을 잘못 표기하니까, 이후 보도들에서 너도나도 미오드라다. 원문에 원어로 쓰여진 본래 이름 안 읽어본거지. 하기야 영어들도 잘 못하는데, 독일어는 오죽하겠나. 게다가 숫제 이전에 국내에 보도되었던 과학 관련 기사들 검색조차 안해본거지. 중간에 “유럽 학자, 줄기세포 선두 주자로”(중앙일보) 같은 문학적인 제목으로 가끔 탈바꿈도 하고. 뭐 굉장하다고 밖에.
!@#… 하지만 진짜 걸작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세계일보, 아주 뒤지게 웃겨줬다.
한국은 죽쑤는데…미국 “배아줄기세포 신기술 개발”
[세계일보 2006-01-02 21:06] 조현일 기자 (기사클릭)
개그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UW-Madison에서 개발했다는 연구라는 것은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지, 황랩에서 하고 있던 핵치환 배아 줄기세포가 아니라고. 그것도 영양세포 공급법 개량을 통한 배양 효율 개선.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한 녀석은 브레이크 연구 중이고 한 녀석은 트랜스미션 연구중이었다, 라고 보면 되겠다. 나중에 다 취합되면 좋은 자동차가 나오는 것이지, 무슨 동종 분야의 라이벌 연구가 아니라고. 게다가 황빠들이 원천기술이라고 극구 주장하는 황랩의 주력 분야는 배반포 단계까지라며. 아 그리고 이 기사에도 말미에 “미오드라” 스토이코비치 박사 또 등장하신다.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외신, 아니 그걸 인용한 연합뉴스 기사 적당히 쑤셔넣어서.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는 스포츠고 연예고 정치고 경제고 뭐고 다 뭉뚱그린 ‘국제’ 섹션 전문인지라 과학에는 사전 학습이 좀 많이 부족했나 싶다. 그런데 프로 저널리스트가 그러면 안된다. 특히 전국민(?)이 세포 전문가가 되어가는 한국 현실에서. 너무 쉽게 야매란게 뽀록나잖아.
!@#… 호랑이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외국 과학자 라이벌들”이 몰려오신단다. 겁나 죽겠다. 아 뭐 여튼. 저널리즘의 위기는 온전히 저널리스트들의 몫이다. 어디 딴데 이유 돌리고 자시고 그런거 없다. 이런 식의 같잖은 외신 보도는 그런 야매스러움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번 황건으로 한국 과학계의 야매가 마구 드러나는데, 사실은 한 구석에서 언론의 야매도 마구 드러나고 있다. 이쪽에도 나중에 사람들이 관심 좀 가져서, 언론개혁 한번 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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