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진국들이 우경화에 빠지는가 [대학내일 / 800호]

!@#… 이번 미국대선 클린턴 패배에는 각각으로는 결정적이지 않았을 여러 실패들(여성 정체성 동원 실패든, 오바마보다는 떨어졌던 비백인표 결집이든, 변화열망 정치저관여층 점화든)이 겹쳤지만, 그 중 인단숫자 확보라는 측면에서 확실하게 결정타가 된 것은 역시 돌아선 러스트벨트 3개주. 그런데 그것조차 주 단위로 보면 애매하고, 결국 최소한 카운티로 쪼개봐야 그림이 드러난다. 공동체 규모에 따라서 생활조건 자체가 갈라져버리는 미국사회, 그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흐름. 그리고 그것이, 절대 미국만의 이야기로 머물 일이 아니다. 여하튼 그래서, 바로 그런 동네의 이야기를 꺼내봤다. 민중의 선택은 항상 옳다거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거나 운운하는 실로 난감한 민중주의로 빠지지 않으면서 그쪽 소재를 다루는게 은근히 쉽지 않다. 내 분량조절 실패로 인한 편집부 축약 게재본은 여기로 클릭.

 

왜 선진국들이 우경화에 빠지는가

김낙호(미디어연구가)

눈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 한 쪽 길은 울퉁불퉁하고 꽉 막혀보여서, 지금도 멀미나는데 저기로 들어가라고 다그치는 오만한 소리가 너무 듣기 싫다. 다른 쪽 길은 상쾌해게 트여있는데, 앞에 낭떠러지가 보인다. 어떤 길이 선택될 것인가. 한국에서 수 년 전, 영국에서 몇 달 전, 미국에서 2주 전에, 낭떠러지가 이겼다.

기득권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능한 정치관료인 클린턴과, 인종혐오로 무장하고 정책 노하우가 결여된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부에서, 대부분의 여론조사 데이터를 뒤집고 트럼프가 승리했다. 자료로 뒷받침된 가장 중요한 패턴은, 미국의 제조업 쇠락으로 삶의 조건이 나빠진 중서부 “러스트벨트” 주들의 농촌과 소도시 지역에서, 거주민 다수인 저학력 백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론조사에 좀처럼 응하지 않기에 숨겨진 목소리로 묻혀있었고, 미국 선거인단 제도의 주별 승자독식 방식과 결합하여 트럼프에게 결정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들은 트럼프가 위대한 지도자라고 믿고 온갖 차별에 환호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를 던졌을까. 여럿 접해본 바로는, 클린턴이 더 똑똑하다는 것도 인종차별이 비도덕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정상적인 현대인들이 흔했다. 하지만 기득권 정치가들이 계속 해먹지 못하도록 확 바꿔야 한다고 말하며, 트럼프가 보이는 문제들은 사적 결함 내지 위악 퍼포먼스로 치부했다. 그렇게 시민적 예의나 공공 사안에 대한 합리성 등의 선진적 가치 따위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곳간에서 인심 나고, 사회적 해결에 대한 신뢰에서 진보 난다. 반대로 곳간이 비면 포용력이 가장 먼저 쪼그라들고, 공적 제도와 조직으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가 깨지면 방어적 자력갱생만 남는다.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성공 경로 자체가 나에게는 구조적으로 막혀있다는 박탈감이 넘치고, 그 문제를 사회의 진보적 개입으로 성공적으로 해소해내는 경험을 못해봤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조건에서라면, 현실에 대한 분노는 정교한 복지제도나 적극적 격차 해소, 더 강력한 인권 촉구 같은 좌파적 진보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삶을 어렵게 만든 것 같은 외부의 적들, 내부의 거만한 기득권 엘리트들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거칠고 강한 한 방이 훨씬 통쾌하다.

성장의 과실을 적극적으로 분배하여 강력한 사회 인프라를 다지기보다는 성장세 자체에 집중하여 그 동력에 사회 전체가 대충 편승하는 흔한 선진국 경제는,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나 저성장 국면을 만날 때 불평등의 심각성을 직면한다. 글로벌 경제에서 사양산업으로 밀려, 마을의 일자리 절반을 책임지던 공장이 문을 닫았다. 새 활로라는 서비스산업이 번창하기에는 지역 규모가 너무 작다. 그렇듯 활력이 없다보니, 여러 인종이 유입되어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할 일도 없다. 여전히 경찰과 소방 서비스는 형편없기에 내 집은 내가 내 총으로 지켜야한다. 쇠락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니 꿈을 꿀 여건도 함께 쇠락하여, 공교육의 질 또한 교육예산을 제공하는 지역 경제의 열악함만큼 형편없다. 이렇게 평생 이 동네를 벗어나지도 못하게 될 것 같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설명은 내 일자리를 중국인들에게 빼앗겼다는 것이고, 미등록 이민자들은 내쫒아야 할 존재다. 온갖 사소한 것들을 차별이라며 시정하라는 교양쟁이들은 짜증나며, 믿지도 못할 사회보장을 자꾸 만든다며 세금 더 걷으려는 속셈도 싫고, 여하튼 뭔가 좋았던 것 같은 시절을 되찾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 바로 그런 생각을 거침없이 무례하게, 그러니까 통쾌하게 내밀 수 있는 정치적 선택지가 주어졌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우리가 믿고 싶은 바를 담은 특종 정보를 페이스북으로 널리 공유하며, 우리 편이 성장하는 것 같아 점점 더 신난다.

미국 중서부 시골의 이야기지만, 조금만 바꾸면 런던이 아닌 흔한 낙후된 영국 소도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쇠락하는 생활여건과 사회신뢰 저하라는 요인만 뚜렷하다면, 굳이 특정 지역의 이야기일 필요도 없다. 경제와 안보 걱정 속에서 극우세력의 정치 지분이 쑥쑥 커가는 중인 프랑스 사회일 수 있다. 혹은 박정희 향수와 외노자 혐오로 무장한 한국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파괴적 우경화는, 불평등의 절망감과 사회적 신뢰 저하를 사회적으로 적극 대처하지 않은 것에서 초래되는 인재(人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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