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기회에 앞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단상에서 언급했던 ‘디폴트’ 개념이 인용되었길래 좀 살펴봤더니, 진중권씨는 그 개념에서 일종의 패배주의 뉘앙스를 읽어낸 것 같고 또 그렇게 읽힐 수 있겠다 싶어 약간 추가설명. 설명을 더 달아야할 만큼 대단한 이야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우향을 표방하는 데일리안이 그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경제의 디폴트(채무 태만) 개념으로 잘못 알아들을 정도였기에 아무래도 좀 더 정밀하게(…)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서. 여튼 이런 식의 비유를 하는 이유.
!@#… 사회적 사고/실천 방식의 변화에 있어서 디폴트라는 비유의 핵심은, 여러 선택 경로 가운데 어느 한 쪽이 기본 세팅이어서 별다른 생각을 안하는 상태에서는 그쪽으로 자동 선택되도록 하는 힘이 있다는 것. ‘헤게모니 투쟁’ 같은 개념은 종종 모든 선택들이 나름대로 대등한 경쟁의 장에 있거나 기껏해야 좀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한다는 정도의 뉘앙스를 던져주곤 한다(실제 이론적 세부사항의 정밀함과는 별개로). 반면에 아싸리 푸코적 레짐 개념은 너무 뭔가를 바꾸는 선택의 힘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고.
그래서 capcold의 경우,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디폴트 설정과 선택에 의한 거부(opt-out)”의 방식에 가깝다고 본다. A냐 B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A가 체크되어 나오고 “B에 대해서 좀 아신다는 전제 하에, 굳이 B로 바꿔보시겠습니까” 하는 것. 예를 들어 명랑사회와 닥치고한나라당식이념만세의 대등한 방향 싸움이 아니라, 한나라당식이념만세라는 옵션이 기본 선택되어 있는 상황이 디폴트고 면밀하게 생각을 하는 이들 가운데 다시금 일부만 명랑사회의 방향으로 선택을 바꾸는 것이다. 보통 디폴트에 해당하는 것은, 오래 축적된 사회적 관습과 주류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인 커다란 덩어리다. 그것을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든, 일상화된 망탈리테로 부르든 뭐 각자 추종하는 이론에 맞추면 되겠다. 뒤집는 것이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여러 세대 동안 사고방식을 철저하게 재교육시키는 정도가 아니라면 무척 힘들다(그렇기에 디폴트지). 디폴트는 “편한 쪽”이다. 아무 생각도 극복 또는 개선 의지도 안해도 된다. 프로그램 깔 때 미리 들어있는 권장선택이다. 세부 세팅이 정말로 내 컴퓨터에 적합하든 아니든, 규약에 이상한 스팸 프로그램이 있든 어쩌든, 버튼을 덜 누르고 덜 고민하는 방법이다. 어쩌다가 사용자 설정이라는 버튼을 클릭했다가 나오는 세부설정 사양에 화들짝 놀라본 이들이라면 이해할만한 비유겠지.
즉 그냥 싸워 이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대항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디폴트가 있는 상태에서 그것과 맞선다는 것은, 1) 우선 사람들에게 이쪽 이슈에 대해서 생각과 지식을 투자하게 해야 하고, 2) 그 사고의 결과 우리 논리를 선택해주도록 해야 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으나 개별적인(!) 두 가지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디폴트가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대항하기만 하면 된다는 전략으로 덤벼들면? 뻔하지. 무관심의 확산과 판 전체에 대한 환멸, 안전 편안한 디폴트로 선택.
!@#… 물론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중력장 비유를 더 좋아한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라이덴보다는 슈퍼마리오에 가깝다는 이야기. 비행기 오락인 라이덴에서는, 비행기는 내가 기체를 가져다 놓은 그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의 경우는 아무리 허공에 그대로 머물러서 동전을 모으고 싶어도, 점프를 안하고 있는 동안은 중력이 작용하여 바닥으로 내려온다.
즉 중력장 비유는 디폴트적 사고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 주어진 디폴트를 벗어나는 선택을 했더라도, 생각을 그만두는 순간 어느새 다시 그 곳으로 돌아온다. 어떤 이슈로 인해서 촉발된 그 순간의 분노와 반발심은 진짜였겠지만, 그 분노가 다소 식거나 혹은 이쪽 사안에 구체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다시 말짱 도루묵, 디폴트 격인 중력원을 향해 돌아간다. 눈먼 지지 또는 무관심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그 편함은 강한 인력이다. 특히 내가 사회의 일부로서 내린 사회적 결정이 나라는 개체에게 피해로 돌아오기까지는 항상 책임감의 분산은 물론 일정한 시간차까지 작용하기 때문에(특히 미묘한 이슈일수록), 그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은 느슨해진다. 나이 들면 보수적이 되어간다는 속설은 한쪽으로는 세상사의 정밀한 관계들에 좀 더 숙련되어지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섬세미묘한 일인지 깨달아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명백히 (특히 내 생활범위를 벗어난 것에 대해서) 이거저거 계속 새로 머리 쓰기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포기하면 편해”. 계속 점프하고 있지 않으면, 어느틈에 다시 바닥에 있다.
그런데 그런 중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글쎄. 사실 꼭 무리해서 중력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중력의 존재를 인지하고 필요에 따라서 항상 자의식을 가지고 점프를 하거나 활강을 하면 된다. 혹은 중력의 존재를 알고, 중력원 자체를 개조해나가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사실 당연히 무진장 더 힘들지만 반드시 중력원 개조 작업 역시 필요한 것이, 수차례의 대형 난리통과 브레이크를 뗀 자본주의 지향의 압축근대화를 겪어온 현재 한국사회 사고방식의 중력원에 위치하여 강한 인력을 발휘하는 것으로는 좀 멍청한 물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환상의 3종 세트인 자뻑성오지랖증, 야매이즘, 따고배짱주의 같은 거라든지(이름만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각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언젠가 다른 기회에). 여하튼, 갈 길은 멀다.
!@#… 좀 그럴싸한 말로 쓸어담자면… 사회적 사고방식을 논하면서 디폴트나 중력원을 상정하는 것은 자학도 패배주의도 냉소도 아니다. 그런 중력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바로 성찰이고, 필요할 때마다 중력에 얽매이지 않고 점프를 하거나 아예 중력원의 품질 자체를 바꾸어나가는 것이 바로 의식의 성숙이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위해서는, 무척 허접한 내용물로 가득한 중력에 당겨져서 바닥에 붙어있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일 정도의 맷집을 먼저 갖춰야 하겠지만. 아, 사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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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back by 정종인 / Jongin Jung
@anti_cap @capcold 님의 중력장이론 http://bit.ly/1aBxiF 을 보시면 좀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데 도움이 되실듯.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