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장난감이 되다 [문화저널 백도씨/0811]

!@#… 그런데 이모티콘도 그렇고, 쓸만한 온라인 통신문화의 대부분은 기술적으로 열악했던 초창기 PC통신시절에 탄생한 것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기호와 시각화 사이의 이모티콘, 장난감이 되다

김낙호(만화연구가)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니 그냥 어렵다는 말 정도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 작업의 난해함에 질린 나머지 수많은 SF장르의 대중문화 작품들이 “전인류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다 못해 아예 하나가 되어 버리는 세계”에 대해서 장광설을 풀었을 정도다(뭐 보통은 결국 “그래도 역시 서로 이해 좀 못하고 사는 게 그나마 나음”으로 끝나곤 하지만). 하지만 거꾸로, 그만큼 사람들은 열심히 감정을 전하는 기술들을 발달시켜왔다. 제한조건이 많은 소통양식일 수록 더욱 기를 쓰고 노력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재미있는 사례가 바로 문자 통신이다. 문자는 본연적으로 언어라는 서술적 내용을 담으며, 그것도 일련의 의미론적 시각기호로 표현한다. 딱 손으로 잡기 힘든, 수많은 미세한 단서로부터 애매하게 맥락화시킬 수 밖에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정말 턱없이 제한적이다. 물론 “나는 기쁘다”라고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며 진짜 기쁜 표정을 지어주는 것과는 전달력이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언어가 아니라 시각적 연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되, 문자를 사용하는 방식 – 바로, 이모티콘의 탄생이다. 약간 더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래픽 처리된 얼굴 표정도 도입되었는데(물론 여전히 글의 일부처럼 쓰인다), 그 경우도 이모티콘의 시작인 문자 표정의 지극히 단순화된 원형을 승계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2400bps 다이얼업 모뎀으로 PC통신에 접속하던 시절과 달리 굳이 문자만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모티콘은 여전히 온라인 소통의 중심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갑자기 웹캠으로 실제 미소를 보여줘도 되고, 음성으로 웃음을 전달할 수도 있고 하지만, 문자를 써서 바로 감정을 시각화한다는 편의성은 생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온라인 소통의 대표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금방 떠오를 정도고, 생활 속 다른 영역에서도 배워갈 정도다. 이모티콘을 활용하는 훌륭한 아이템 몇 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자고로, 실용적인 활용성과 유머감각이 합쳐지는 것이야말로 최고다. 소통의 방법이 지극히 제한된 경우에 이모티콘이 무척 유용하다는 전제를 살짝 다시 살펴보자. 심지어 문자로 소통하는 것마저 용이하지 않을 정도의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이 하나 있으니, 바로 운전이다. 차에 탄 채로 오로지 경적기와 불빛으로 소통을 하기에는 너무나 서로 충돌하고 오해를 빚을 급박한 상황들이 많다. 하다못해 양보해줘서 고맙다거나, 조심하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창문을 열고 소리치지 않고서도 말이다. 뒤에 전광판을 달고 문자를 쏠 수도 있겠지만, 뭔가 딱딱하다. 자, 바로 이런 상황이 이모티콘이 유용한 순간이다. ‘드라이브모션’이 바로 그런 아이템이다(클릭). 차의 뒤쪽 창에 달아 놓는 LED 표시판인데, 각종 표정을 선택해서 뒷차의 운전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웃는 표정, 벙찐 표정, 윙크 등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고마워’와 ‘미안’ 정도는 단어가 짧으니 문자로 표시할 수도 있다. 물론 뒷차가 좀 심하게 유머감각이 부족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싸움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훨씬 수월하다.

혹은 문자 이모티콘이 주는 형상화에서 캐릭터성을 발견하고 싶다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일본의 동전뽑기 미니 피겨(‘가샤폰’) 명가 유진에서 만든 ‘카오모지군’ 시리즈가 있다(클릭). 원래 일본의 경우 메일송수신이 핸드폰을 통해서 발달했고, 인터넷 게시판 문화 역시 꽤 오랫동안 그래픽 짤방보다는 순수하게 문자게시판 위주로 전개되어서, 문자로 형상을 그리는 전통이 아직까지도 강하다. 특히 2ch 등지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폐인들은 다양한 특수문자를 배합해서 만화적 과장이 풍부한 표정들을 쉽게 시각화하곤 한다. 바로 그런 얼굴들을 캐릭터 피겨화한 것이 바로 카오모지군 시리즈다. 방긋 기뻐하는 “왔다!” 표정, 황당해하면서 화내는 “임마!” 표정, 헤벌레 웃는 “에헤헤” 표정 등 미묘하면서도 귀엽기 그지없다. 원래 캐릭터성의 근본이 되는 이야기성이라는 요소는 바로 신기한 사연의 게시물이 올라왔을 때 게시판 폐인들의 즐거운(?) 반응들을 연상시켜줌으로써 충족한다. 비록 여기에 혹할 시장층은 바로 그 인터넷 폐인들에 한정될지라도, 여하튼 전체 세트를 구비하고 싶은 강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하기야 세트로 구비하는 욕구가 쉽게 일어나는 것은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여러 가지 같이 묶여야 제대로 갖추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의 표정이라는 것이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창작』에서 이야기하듯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의 조합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조합을 무궁무진하게 활용하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문자 이모티콘의 가지수 역시 무척 많다.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거나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아예 옷에 찍어서 입고 다니면 어떨까. 회원들의 아이디어를 상품화시켜주는 사이트 ‘재즐’의 쇼핑몰에 올라와 있는 이모티콘 일람표 티셔츠가 딱 알맞다(클릭). 앞뒤로 빼곡하게 차있는 목록을 참조하면 당신도 이모티콘의 달인… 인데, 보통 자신이 입은 티셔츠 무늬를 자신이 보기는 불편하다는 것은 단점이다.

이모티콘은 시각적 형상과 기호 사이에 위치한 애매한 영역에서,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서 의미를 넣는 매력이 있는 소통방식이다. 덕분에 이렇듯 감성 충만한 재미있는 아이템으로 활용하기 좋다. 다만 항상 조심할 것이, 사용맥락에 따라서는 경박함의 효과가 배가되어 의도하지 않은 느낌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 (모 연예인에 관한 악성 루머를 유통시켜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피의자가 형사에게 남겼다는, 최근 화제가 된 악명 높은 문자메시지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재미를 위해 사용하겠다면, 거리낄 것 없다. 이모티콘 같은 것을 사용할 재간이 있는 한, 굳이 인류는 단일군체로 합체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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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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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이모티콘, 장난감이 되다 [문화저널 백도씨/0811]

Comments


  1. 쓸만한 온라인 통신문화의 대부분이 PC통신시절에 나온건..제한된 환경덕분일지도 모르죠.
    과도한 제약은 창의력을 말살시켜 버리지만, 적절한 제약조건에선 창의성이 자극되는 경우가 꽤..ㅋ

  2. !@#… kall님/ 맞는 말씀. 그리고 바로 그 미묘한 영역을 잘 조율해내는 것이 정책이나 기획의 묘미죠.

    이승환님/ 저런걸 이용하는 것에 관한 글을 쓰는 걸로도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세상이죠.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