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 백도씨의 지면개편과 함께 새로 연재 들어간, 토이/아이템 관련 칼럼. 보다시피, 두어개 아이템을 뽑아서 같이 비견하는 코너다.
8비트가 그리워 물질계로 끌어내다 – 마리오 사운드밥 vs 8비트 넥타이
김낙호(만화연구가)
기가와 테라바이트가 보편적인 것이 오늘날은, 대통령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지녔다고 놀리기 위한 속어로 무려 메가바이트 단위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64비트 프로세서로 대표되는 현재보다 그리 너무 오래지 않은 옛날, 모든 소프트웨어는 킬로바이트 단위에서 결정되었고 처리단위는 8비트였다. 그 8비트의 시대에 비디오게임은 급속히 대중화되어 오락실과 가정집을 수놓았고, PC의 보급과 함께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생활 문화가 생겨났다. 지금은 더없이 익숙해진 생활방식들이, 8비트 시대에 개막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더 신기했고, 더 희망찼고, 한마디로 더 순수하게 즐거웠다는 것. 처리용량이 부족해서 기계가 매개해주지 못하는 모든 것은, 사용자의 상상력의 힘으로 극복하는 와중에 더욱 깊은 몰입을 주었다. 희소한 가운데 하나씩 발견하고 서로 나누고 경쟁하는 것의 즐거움은 뭐든지 과잉인 오늘날의 낭비적 행태와는 달랐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노스탤지아가 끼어있는 턱도 없는 미화겠지만(아무리 미화해서 생각해도, 카세트 테이프로 게임 데이터를 30분 넘게 로딩하다가 중간에 정전이 되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다), 8비트 시대를 최선을 다해 거쳐 온 입장의 사람들에게는 종종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환상이 오락문화와 만날 때, 그것이 바로 8비트 복고정서다. 그런데 고작 에뮬레이터를 사용해서 고성능 PC에서 옛날 8비트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정도로는 그 문화적 공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이미 세상은 64비트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8비트 세상을 끌어온단 말인가?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전자 세계는 현실 세계를 모사의 방식으로 동경하지만, 그것을 플레이하는 인간의 몸은 여전히 현실 세계에 있다. 그렇다면 아예 8비트 세계를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오면 어떨까. 8비트적인 현실세계의 아이템으로 자신의 8비트 복고정서를 커밍아웃하는 것이다!
우선 모든 자기주장은 비주얼부터 시작한다. 8비트적 비주얼이 되기 위한 필살 아이템, 8비트 넥타이를 목에 걸자. (사진 클릭) 테크 긱들을 위한 재미있는 아이템 전문회사, Thinkgeek에서 제작 판매하고 있다. 8비트를 나타내는 각진 커다란 네모 픽셀 모양과 뚜렷한 3색으로 되어 있는 이 반듯한 넥타이를 착용하면 순식간에 8비트 인간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네모난 픽셀 모양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타이를 정상적으로 멜 수 없고, 클립으로 고정시키는 방식이라는 약점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8비트 와이셔츠를 같이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8비트가 되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하지만 촉촉한 눈으로 갤러그와 제비우스와 마리오를 이야기하며 “그때가 좋았지”를 외치는 모든 향수어린 이들을 만족시킬 최고의 아이템이 아닐까. 아니면 말고.
8비트 넥타이를 착용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되어 8비트 세상을 누빌 차례다. 애초부터, 오프라인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각별한 재미가 있다. 망토를 두르고 약간 높은 곳에서 점프하는 수많은 소년 슈퍼맨들이 증인이다. 재현 기술의 부족은 기본적으로는 상상력으로 채우지만, 그 상상력의 매개가 되는 몇 가지 매개체를 발명함으로 극복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누구나 보고 이해하며 감탄할 정도로 보편적인 느낌이 있다면 좋다. 예를 들어 점프해서 독버섯을 밟아주고, 벽돌을 두들기면 돈이 올라가고, 별을 먹으면 생명이 하나 늘어나는 방식이라든지 말이다. 8비트 시대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 가운데 하나, 슈퍼마리오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마리오 사운드밥 시리즈는 바로 이런 장난감이다. 헝겊인형으로 만들어진 픽셀아트풍의 별, 벽돌, 버섯 등이 세트로 묶여있고, 각각 건드렸을 때 특유의 소리를 내준다. 별을 건드리면 보너스 생명의 음악이 나오고, 벽돌을 치면 코인 업 소리가 난다. 굼바(버섯)은 물론 건드리면 특유의 밟혀 죽을 때의 ‘뻐걱’ 소리를 낸다. 사이즈는 물론 실제 내가 마리오라면 이 정도겠다 싶은 2-30cm 가량의 크기. (사진 클릭)
이 토이의 즐거움은 무궁무진하다. 힘내라는 마음의 선물로 보너스 라이프 별을 주자.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굼바를 밟자(건전지로 작동되는 토이인 만큼 너무 세게 밟으면 망가진다). 자금사정이 궁핍할 때, 코인 벽돌을 두들기며 마음만이라도 부자가 되자. 100개 모으면 보너스 라이프도 주어진다 – 이것이야 말로 돈으로 목숨을 사는 경지 아닌가!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슈퍼마리오 게임에는 인생의 진리가 여럿 담겨있다. 기껏 공주를 구하기 위해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마왕의 성에서 보스를 해치우고 끝까지 가면, 엉뚱한 버섯돌이가 나와서 “고마워 마리오, 하지만 공주님은 이 성에 있는 거 아니거든?” 하고 알려주어 인생의 허망함을 일깨워준다든지 말이다. 계속 별을 먹고 버섯을 밟고 벽돌을 두들기다보면 사람이 현명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레벨 높은 분들이라면, 사무실이나 학교의 길다란 복도를 하나 선택한 후 구석구석 배치하여 달리고 점프하고 두들기고 다니자. 이왕이면 세트를 여러 개 사서 말이다. 물론 주변에서는 이상한 인간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느꼈던 즐거움의 근원을 되찾고 추구하는 쾌감에 충실해지는 것은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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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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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 좀 대박인 듯. 바로 주문 들어가야겠네요.
– 8 bit 넥타이라.. 나이 좀 든 엔지니어들은 하나씩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그 시절 게임은 처리용량 부족 때문에 단순화된 그래픽을 썼지만 현재의 현실에 더 가까운 영상에 뒤떨어진다고 보기는 그렇죠. 미술에 정물화만 있는게 아니고 추상화나 상징도 있듯이 나름의 멋이 있지요. 그렇다고 보지만 어째 폴리곤 수가 부족한 옛날 3D는 그냥 구닥다리란 느낌만 납니다. ^_^;;
!@#… chatmate님/ 8비트는 위대합니다.
지나가던이님/ 이런 류의 8비트는 거의 자체적 미학을 만들어내버렸지만, 구닥다리 3D는 더 현실을 모사하고 싶었으나 기술력이 부족해서 아쉬워 죽겠다며 너무 티를 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