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드한 개념으로 떡밥을 던지며 시작하는 글쓰기 방식을 애용하긴 하지만, 이번만큼 거창하게 낚는 것은 실로 오랜만…일지도.
저장장치의 취향 과시: USB 플래시 메모리라는 패션 아이템
김낙호(만화연구가)
그 자세한 내용이나 함의를 알든 말든, ‘정보화 시대’나 ‘네트워크 사회’ 같은 이야기가 미래학자의 비전이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의 기본 키워드가 된지는 꽤 오래된 듯하다. 비단 사이버펑크 SF의 어두컴컴한 비전이 아니라도,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은 데이터와 함께 살아간다. 아니 데이터의 축적과 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아예 존재가 규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 과정이든 미디어의 향유든 아니면 그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행정 처리에 필요한 호명이든 말이다. 하지만 (연재칼럼의 성격상) 사실 대단한 사회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지면으로 미루고, 그보다 그런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내주는 토이 아이템이란 과연 무엇일까? 감히, 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선 기계 속으로 통째로 집어넣는 저장장치는 아무리 해봤자 흥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핑크색 내장 하드디스크 따위, 누가 신경 쓰겠는가. 이동식 매체라 하더라도, 저장매체와 매체를 읽어내는 장치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 방식에서는 플로피디스켓이든 씨디롬/DVD롬이든 집드라이브든 결국 기계 안으로 삽입해야 했기 때문에 기껏해야 색깔을 약간 화사하게 바꿔본다든지 하는 표면적인 장식을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USB라는 접속기술, 그리고 플래시 메모리라는 저장기술이었다. USB는 간단한 범용 표준 인터페이스로 어떤 기계든 쉽게 쑤셔 넣어서 저장장치처럼 쓸 수 있도록 해줬고, 플래시 메모리는 가볍고 작고 안정적으로 들고 다니는 것은 물론 저장용량 역시 두고두고 늘려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즉 USB 플래시드라이브는 이전의 여러 이동식 저장매체들과 달리 용량이 늘어나도 계속 호환되는 긴 생명력이 보장되었고, 휴대성은 대폭 증가했다. 그리고 어느 틈에, 이제 USB는 한 때의 전자손목시계처럼 나름의 ‘뭔가 있어 보이는’ 일상적 아이템이 되었다. 그냥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 그저 노트북을 들고다니는 사람 정도로 보이지만, 플래시드라이브가 꼽혀있으면 뭔가 프로페셔널해 보인다(한 번 시험해보셔도 좋다). 실제로는 그 안에 야동이 하나 가득이든 다른 사람들이야 알 바 아니지만, 데이터를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손수 들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강력한 개성이 되는 것이다. 그럼 기왕 하는 김에, 자기 개성의 주장으로 써먹으면 더욱 훌륭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재미있는 모양의 플래시 드라이브 만들기가 최근 수년간 크게 유행을 타고 있다. 작은 칩이 들어갈 수 있고, 작은 USB포트만 집어넣는다면 어떤 디자인이라도 사실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형, 그것도 역시 곰인형이다(클릭). 곰의 목을 뜯으면 접속 포트가 있다는 발상은 엽기적으로 보이겠지만, 막상 연결하면 이미지는 귀여운 쪽으로 급격하게 바뀐다. 무언가를 뒤지려는 듯 컴퓨터 포트에 머리를 박아넣고 있는 곰의 형상이 되기 때문이다. 유머 측면에서도, 주목도 측면에서도 놀랄만큼 창의적인 아이템이다. 혹은 털 달린 동물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많은 만화/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의 심금을 울려줄 다른 방식의 아이템도 있다. SD캐릭터 플래시드라이브로 무표정 괴수 격퇴 히어로 울트라맨, 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무표정 미소녀 아야나미 레이를 장착하면 어떨까(클릭). 평소에는 책상에 캐릭터 인형처럼 세워놓고 있다가, 앉은 자세로 다리를 구부리면 엉덩이에서 USB포트가 나와서 부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디자인은 18금적인 상상력이 약간만 개입되면 무척 당혹스러운 아이템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자신의 특정 오타쿠 취향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방식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이왕 매니악한 취향의 상징으로 가자면, 아예 상징물도 좋겠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정의의 진영 오토봇과 악의 진영 디셉티콘의 엠블렘을 그대로 플래시드라이브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클릭). 특유의 기계적인 이미지, 80년대 향수의 느낌이 물씬 나며 비범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매니악한 취향은 빼고, 사무실 작업의 상징물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파일 폴더 모양이라든지 말이다(클릭). 파일이 들어있는 공간의 상징이 컴퓨터 안에서 ‘폴더’로 상징된다면, 파일을 바깥에 들고다니는 장치도 그 폴더 아이콘 모양으로 만들면 직관적이지 않을까. 현실의 물건과 사용처를 모사한 아이콘을 모사한 현실의 물건인 셈이다. 혹은 정반대로, 구체적인 물건 모양으로 만들어서 의외성을 부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라이터 모양이라든지, 초밥 모양이라든지 말이다(클릭). 다만, 담배피는 동료가 다가와서 갑자기 라이터를 빌려달라며 컴퓨터에 부착한 드라이브를 확 뜯어가서 작업중인 데이터가 날라가고 덤으로 정전기 발생으로 메인보드가 망가지는 (무척 우연스러운) 파국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아니면 확실하게 장난스러운 아이템으로 주변인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HACKED에서 발매중인 끊어진 전선 모양의 플래시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다니면, 항상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에 성공할 것이다(클릭). 뭔가 접속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파괴적으로 제거한 듯한 묘한 느낌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다가 업무를 방해하며 물어볼 때 느끼는 쾌감을 즐길 수 있는 분들에게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게다가 다소의 손재주가 있으면 사실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데이터가 인격을 규정하는 시대에는 저장장치가 취향을 나타낸다. 저장장치를 표현하는 속성이 단순히 용량에 머물지 않고 ‘멋’ 혹은 숫제 ‘재미’가 추가될 때, 일상화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성공적인 디자인 아이템들의 숙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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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 ‘백도씨’에 연재중인 토이/아이템 칼럼. 뽐뿌질 50% + 아이템 소개를 빙자한 놀이문화의 본질적 측면 살짝 건드려보기 50%로 구성.)
—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저는 8기가 짜리 라이터형이 제일 좋아 보이는데요. 가격도 나쁘지 않고 그리고 실속도 있어 보이고. 물론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가끔 생일 잔치에서 라이터를 찾을 때 꺼내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나저나 요즘은 시사성 글은 통 안쓰시네요.
!@#… Crete님/ 아 그건 밥벌이용 글들이 워낙 그간 마감 밀린게 많아서요…;;; 제 생각토막들이나 s모 님과의 가끔 나누는 (생각해보면 꽤 심오한 내용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시사메신저토크라도 좀 근면하게 기록하면서 살아야 할텐데. 여튼 격려 감사히 받았습니다 :-)
저의 모토와 싱크로가 되어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드웨어를 언제나 인문학적인 견지에서 고찰하기”
아쉬운점이 있다면, 그래도 컴맹들에게 문장이나 단어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것 같다는 저의 편견?
*디자인을 떠나서 폴더 …발상이 제일 마음에 드네요.
*아야나미 레이 USB 플래시메모리를 보고 있자니, 얼마전 소개해주신 굽본좌의 대작이 자꾸 떠오릅니다.후유 이거 생각보다 후유증이 있네요.
그런데 오른쪽에 링크가 언제부터 있었지용?
손재주가 있다면 취향대로 만들고 싶군요! 어차피 굿즈로 나올 것 같지도 않으니…
!@#… nomodem님/ 못알아들으신 컴맹분들이라도, “이거 뭔가 멋진 건가보다 그러니까 나도 무슨 소린가 알아듣고 싶어”라고 뽐뿌를 받으신다면 뭐 오케이라고 봅니…;;; // 하드웨어 모에화 만화도 상당히 재밌을 수 있겠군요! 도도한 CPU쨩, 꼬붕노릇이 지겨워져서 점점 실력을 키우는 GPU쨩, 기록 오타쿠 RAM쨩, 항상 사람의 손길을 부르는 마우스양… (어이) // 원래 캡콜닷넷이 숨겨진 기능들, 몰래몰래 업데이트들이 사이사이 섞여있습니다. 그래야 마이너컬트로서의 보람이 있죠.
시바우치님/ 설마 뱀병장 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