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기능은 상호작용의 재미: 인터액티브 티셔츠들 [문화저널 백도씨/0901]

!@#… 문화저널 백도씨의 아이템 연재 칼럼 마지막 원고. 이번 경우 역시 그다지 일신상 이유는 없고, 지면이 제작비 지원 중단으로 휴간…;;; 웹서비스가 없고 구독자 배송 방식이라 보급율이 좋은 잡지는 아니었지만, 꽤나 쓸만한 특집들이 많이 나와주어 종종 참여한 지면이었는데 좀 아쉽다(캡콜닷넷에서 ‘백도씨’로 검색). 하지만 뭐 그 지면의 노하우를 이어갈 다른 방도가 또 있겠지.

 

옷의 기능은 상호작용의 재미: 인터액티브 티셔츠들

김낙호(만화연구가)

태초에, 옷은 체온 보존을 위한 도구였다. 아니 뭐 지금도 사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옷은 멋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옷의 두께나 내구성에 머물지 않고 디자인에 신경 쓰게 되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지위나 성향, 혹은 현재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상징이 되었다. 돌려 말하자면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미디어가 된 셈인데, 현대에 와서는 특정한 문양이나 문구를 표시한 티셔츠라는 의복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동안, 그 미디어는 꽤 일방향적이고 고정되어 있었다. 한번 옷의 형태로 고정된 메시지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으며 (물론 성한 청바지를 찢어서 입는다든지 하는 식의 방식은 있지만), 입은 사람이 한번 외치고 마는 단발성 울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정신, 기술의 진보 등 몇 가지 요소들이 맞물리면 그 정도 한계는 금방 극복할 수 있다. 쌍방향적이고 역동적인 미디어로서의 옷, 오늘날 이미 상용화된 인터액티브 티셔츠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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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밖 3차원 공간을 휘젓기: 미니RC헬기 [문화저널 백도씨/0812]

!@#… 혹은, 이번 미국 연말시즌 토이 분야의 승자라고도 할 수 있다(Ultimate Wall-e가 당초 예정가격보다 거의 100불이나 비싸게 출시되는 등 쟁쟁한 경쟁자들마저 알아서 밀려나주고…). 다만 너도나도 만들기 때문에 하나의 업체만 초대박나지는 않는 듯.

 

화면 밖의 3차원 공간을 휘젓기: 미니RC헬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컴퓨터 게임이든 만화 속 세상이든, 가상 속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력이다. 적어도 지구 위에 살고 있는 한(혹은 인공중력이 작용하는 스페이스 콜로니에 살아도 별반 다를 바 없겠지만) 모든 물리적 세계는 중력의 한계에 속박되어 기본적으로 2차원의 움직임을 전제로 하게 된다. 공간을 3차원적으로 만들더라도, 사람은 그 공간에 있어서 바닥을 기어다닌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약간 달라서, 오히려 한쪽으로 균일하게 모든 것을 떨어트리는 중력을 적용하는 것이 더 귀찮아서 수많은 비행기 오락의 근간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러 따로 ‘현실성 있도록’ 지정해주지 않는 한, 제한된 유선형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현실세계의 비행보다는 중력의 영향을 따로 받지 않은 공중부양, 3차원적 움직임에 가깝다. 비행이라는 행위는 인류에게 있어서 그렇게도 낭만의 대상이고 자유의 표상이 되곤 했는데, 가상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 쪽 세계에 감동할만한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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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장난감이 되다 [문화저널 백도씨/0811]

!@#… 그런데 이모티콘도 그렇고, 쓸만한 온라인 통신문화의 대부분은 기술적으로 열악했던 초창기 PC통신시절에 탄생한 것이라는 점은 아이러니.

 

기호와 시각화 사이의 이모티콘, 장난감이 되다

김낙호(만화연구가)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아니 그냥 어렵다는 말 정도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 작업의 난해함에 질린 나머지 수많은 SF장르의 대중문화 작품들이 “전인류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다 못해 아예 하나가 되어 버리는 세계”에 대해서 장광설을 풀었을 정도다(뭐 보통은 결국 “그래도 역시 서로 이해 좀 못하고 사는 게 그나마 나음”으로 끝나곤 하지만). 하지만 거꾸로, 그만큼 사람들은 열심히 감정을 전하는 기술들을 발달시켜왔다. 제한조건이 많은 소통양식일 수록 더욱 기를 쓰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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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장치의 취향 과시, USB메모리 [문화저널 백도씨/0810]

!@#… 하드한 개념으로 떡밥을 던지며 시작하는 글쓰기 방식을 애용하긴 하지만, 이번만큼 거창하게 낚는 것은 실로 오랜만…일지도.

 

저장장치의 취향 과시: USB 플래시 메모리라는 패션 아이템

김낙호(만화연구가)

그 자세한 내용이나 함의를 알든 말든, ‘정보화 시대’나 ‘네트워크 사회’ 같은 이야기가 미래학자의 비전이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의 기본 키워드가 된지는 꽤 오래된 듯하다. 비단 사이버펑크 SF의 어두컴컴한 비전이 아니라도,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은 데이터와 함께 살아간다. 아니 데이터의 축적이동이라는 맥락 속에서 아예 존재가 규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 과정이든 미디어의 향유든 아니면 그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행정 처리에 필요한 호명이든 말이다. 하지만 (연재칼럼의 성격상) 사실 대단한 사회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지면으로 미루고, 그보다 그런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내주는 토이 아이템이란 과연 무엇일까? 감히, 그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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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난감 – 지식인 엄지극장 vs 액션피겨[문화저널 백도씨 0808]

!@#… 솔직히 어린이 이야기는 핑계고, 지식꾼들의 아동틱한 심리를 건드리며 긱스런 유머감각을 슬쩍 선보이도록 만드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뭐…

 

지적 장난감 – 지식인 엄지극장 vs 지식인 액션피겨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들의 소위 ‘교육’에 목을 매고 산다. 사실 대부분의 노력은 진짜 교육다운 교육이 아니라 그냥 명문 대학이라는 간판을 달아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에,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교육 쌩쑈와 그 따위 추세에 오히려 맞춰가 버리는 황당한 공교육 정책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천박한 난리통의 시작점은 점점 빨라져서, 그 천박함을 온몸으로 반영하며 새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되신 어떤 분은 초등학교 경쟁을 자신의 교육철학으로 선포하고 나서셨다. 그런 와중에서 자녀들의 장난감을 골라주는 것(골라주기라도 한다면) 마저 아이들의 즐거움보다는 어떤 ‘교육적’ 기능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상태가 이미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지능개발 블록이니 퍼즐이니 뭐니, 각 아이들에게 실제 효과가 어떤지도 모르겠고 정말 재미있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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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 게임 콘솔 – 동전 야구 vs 볼펜 대전략[문화저널 백도씨 0807]

!@#… 지면이 더 풍부했더라면 아날로그 슈퍼마리오 같은 다른 여러 장르들도 다루고, 친절한 도해내지 게임플레이 시연 동영상도 넣었겠으나, 우선은 이 정도로 대충 만족할 수 밖에. (핫핫)

 

연습장 게임 콘솔 – 동전 야구 vs 볼펜 대전략

김낙호(만화연구가)

학창시절이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도록 강요받는 학교라는 공간과 오락성에 대한 욕구가 서로 화려하게 상충하는 시기다. 특히 어째서인지 여러 오락 중에서도 전자오락이라는 장르는 학교라는 제도에서 절대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은 악의 축 취급을 당하고 있다 (시간만 난다면 농구도 되고 교실 레슬링도 되는데 왜 전자 오락기는 꼬박꼬박 압수당하는지 의아해 해본 이들이 필자뿐일까). 하지만 그 아기자기한 재미는 항상 소년소녀들을 강하게 끌어당겼으니, 전자오락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속에 담긴 오락성만이라도 즐겨보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 것이 당연하다. 종종 그렇듯, 이럴 때는 약간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면 뭔가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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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비트가 그리워 물질계로 끌어내다 [문화저널 백도씨 0806]

!@#… 문화저널 백도씨의 지면개편과 함께 새로 연재 들어간, 토이/아이템 관련 칼럼. 보다시피, 두어개 아이템을 뽑아서 같이 비견하는 코너다.

 

8비트가 그리워 물질계로 끌어내다 – 마리오 사운드밥 vs 8비트 넥타이

김낙호(만화연구가)

기가와 테라바이트가 보편적인 것이 오늘날은, 대통령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지녔다고 놀리기 위한 속어로 무려 메가바이트 단위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64비트 프로세서로 대표되는 현재보다 그리 너무 오래지 않은 옛날, 모든 소프트웨어는 킬로바이트 단위에서 결정되었고 처리단위는 8비트였다. 그 8비트의 시대에 비디오게임은 급속히 대중화되어 오락실과 가정집을 수놓았고, PC의 보급과 함께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새로운 생활 문화가 생겨났다. 지금은 더없이 익숙해진 생활방식들이, 8비트 시대에 개막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더 신기했고, 더 희망찼고, 한마디로 더 순수하게 즐거웠다는 것. 처리용량이 부족해서 기계가 매개해주지 못하는 모든 것은, 사용자의 상상력의 힘으로 극복하는 와중에 더욱 깊은 몰입을 주었다. 희소한 가운데 하나씩 발견하고 서로 나누고 경쟁하는 것의 즐거움은 뭐든지 과잉인 오늘날의 낭비적 행태와는 달랐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노스탤지아가 끼어있는 턱도 없는 미화겠지만(아무리 미화해서 생각해도, 카세트 테이프로 게임 데이터를 30분 넘게 로딩하다가 중간에 정전이 되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다), 8비트 시대를 최선을 다해 거쳐 온 입장의 사람들에게는 종종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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