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영화를 판단하기 – 아라한 장풍대작전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고. 거기에 대한 딴지일보의 영화평도 보고. 거기다가 남겨준 한마디. 왈가왈부하지말고 닥치고 그냥 봐라…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비평을 위한 비평…즉 목적도 뭣도 없이 단지 지면을 채우기 위한 비평에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개인 홈피도 아니라 나름대로 언론이고 뭐고를 표방한다면, 비평은 순수한 개인감상이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이유와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폭주해서 어디선가 저절로 그런 의도가 만들어져서 필자의 손아귀를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끔 이런식의 말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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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 게시판은 분위기 타는 거 빼면 솔직히 시체 아닌가? 이전에 다른 영화평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끔은 누군가가 조회수나 추천수 조작기도 동원한다. 지금 분위기가 무조건 아라한 장풍대작전 까면 플러스, 좋았다고 하면 졸라 마이너스 때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난 재기발랄한 영상실험을 보러 간 것도 아니고, 유쾌한 오락영화 한편 보러 간건데 흡족했거든? 언제까지 다찌마와리 타령이냔 말야. 정두홍의 악역이 너무 얕다고? 그럼 줄줄이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리? 신선계와 인간계가 분리되고 그 사이에서 드문 왕래가 있고 인간계의 혼란을 보다못한 신선이 개입을 하다가 마성에 사로잡혀 폭주한다… 전형적이잖아! 무협 환타지에 익숙한 사림치고 이런 캐릭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왜, 신선이니 도인이 뭔지도 다 설명해달라고 그러지 그래? 허공답보도, 경공술도, 전음입밀도 모두 다 일일이 설명해주라고 하지 그래? 이미 장르의 약속으로 정해진 것들은, 그냥 다들 알고 있으려니 하고 해피하게 넘어가는 게 바로 장르영화 아닌가. 대신 그자리에 또다른 ‘즐거움’을 집어넣고.

!@#… 난 근데 류승범의 캐릭터가 충분히 즐거웠거든. 괜히 러브러브 분위기로 안간 것도 좋고. 아 씨발, 방송국이라잖아, 방송국. 난 그 대사 하나만으로도 영화표 값어치의 즐거움은 뽑았거든? 즐기지 못했다는 열분들은 말이야… 스.스.로.영.화.표.어.치.만.큼.의.즐.거.움.을.얻.어.낼.생.각.이.애.초.에.없.었.던.거.야.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영화가 즐거움을 가져다 주든? 스스로 즐길 준비를 하고 즐겨야 즐겁지. 특히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승부하는 닳고닳은 장르영화…나아가 그런 장르영화들을 공개적으로 짬뽕하겠다고 나선 장르영화라면 더더욱. 류승범의 원맨쇼로 진행되는 무협성장물을 두고, 류승범은 재밌으나 영화는 워스트 쥬니어라는 식의 평가는 솔직히 좀 닭살돋는다. 적어도 이 영화는 류승범이 재밌었으면, 재미있는 영화인거다. 스테이크 요리를 먹으면서, 고기는 맛있는데 요리가 형편없네요…라고 평가하나? 아 물론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같이 나온 당근이니, 파세리니 하는 것들이 졸라 상한 것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원래 의도한 본체 – 즉 고기덩어리가 육즙 가득 신선발랄하고 입에서 살살 녹으면 그냥 해피해지는 거다. 나머지는 부수적이란 말이다. 고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더 나은 약점들이다. 그 다음에 주방장에게 항의하든 말든. 

!@#… 자꾸 류승완 감독이 안타깝다는 식의 별 필요도 없는 걱정이나 하면서 폼잡고 있지 말고… 감독은 대자본 동원해서 자기 찍고 싶은 거 해피하게 찍고 있잖아. 너무 자기맘대로 해서, 막판 결투씬 늘어지는 거 봤지? 다찌마와리는 그 때 주어진 예산으로 자기 찍고 싶은 거 찍은거고, 아라한은 아라한인 거다. 왜, 자본이 재능을 타락시켰다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은거냐? 그럼 샘 레이미는 1억짜리 스파이더맨을 만들 수 있는 실력과 지명도를 가지고 다시 이블데드 찍으러 가야하게? 성냥팔이소녀마냥 한국영화계를 말아먹을 재앙급 프로젝트도 아니고… 매트릭스니 킬빌은 또 왜 맨날 들먹이나. 철학이니 아시아 무협영화에 대한 오마쥬니 어쩌니 하는 껍데기들을 다 벗겨내고 오락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평가를 했을때, 그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대단했다는 건가.

!@#… 적어도 난, 내가 이 영화 보면서 겪은 즐거움 – 즉 오락으로서의 즐거움 – 은 그냥 간직하고 있을련다. 그리고 아쉬웠던 부분은, 속편이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련다. 예를 들어서 난 말야, 봇짐 할머니나 구두방 아저씨같은 생활도인들이 문파를 이루어서 서로 항쟁을 하는 이야기도 보고 싶다. 사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핵심정서가 되어주었으면 했거든…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이 진짜 득도한거고, 그들이 이 세상의 진짜 주인들이라는 거. 그냥 고수들이 평범하게 살고있더라 하는 소림축구의 세계관보다 훨씬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더욱 그쪽으로 파고 들어가면 얼마나 훌륭하겠나. 류승범이 변신슈퍼히어로 마냥 대활약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더 보고싶다. 반칙왕과 스파이더맨과 품행제로를 합쳐놓을 수 있는 최강의 남자 캐릭터, 그리고 그걸 아무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배우가 있지 않는가.

!@#… 그래서 당신은 아라한을 별 다섯개, 베스트로 봉하겠냐고? 전혀. 하지만 재미없으니 보지말라는 말은 안한다. 그 반대다. 재미있으니까 봐라. 대신, 재밌는 장면 같으면 낄낄대며 웃으면서 좀 봐라. 그걸 위한 영화다. 그 이외의 목적에 대해서는 어차피 부실덩어리다. 하지만 빨래방망이로 야구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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