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다른 종류의 앎에 대한 접근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정치의식 역시 하나의 명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르는 것들을 인식하기“.
!@#… 무슨 지적 겸손 같은 거시적 도덕률을 읊으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모름’이 민주사회의 작동에 미치는 문제는 비교적 선명하다. 미디어를 통해 반영되고 조성되는 주류 대중의 정치의식 수준을 생각해보자면, 난이도를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춰야 흥행이 되는 방송, 초등학생 수준의 이야기를 가지고 중2병을 부추키는 ‘메이저’ 신문들, 그런 떡밥들로 되새김질을 하는 인터넷 게시판들이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훨씬 흔하다. 반면 어떤 정치적 선택의 사회적 파급력을 판단하려면 수능시험 이상의 사고력 투여가 요구되며 특히 그 중 민주사회에 대한 함의의 잠재적 측면까지 따지려면 종종 관련 분야 전공 대학생급 이상의 관심 할애와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당장 ‘미디어법 정국‘에 던져진 대중 일반의 무관심을 떠올려보시길). 그리고 두 가지의 격차만큼 고스란히 에러가 쌓인다.
하지만 시민들이 깊은 사고를 위한 노력을 각자 모두 투자한다는 것은, 계몽주의자들이 아무리 민중에 대한 애정으로 쩔어 봤자 전국민 룸펜지식인화라도 이루지 않고는 불가능하다(이 방향으로 더 깊은 논의는, 시민의 역할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긋날 때 알아차리고 견제하는 ‘감시’ 기능이라는 Schudson의 ‘monitorial citizen’ 개념 참조). 실제로 필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모두 알아내는 경지를 향한 전국민시지프스놀이™가 아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고, 각자가 그 모르는 영역 속에 더 중요한 문제 지점, 더 나은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스스로의 인식을 열어두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쪽의 정보가 제시되면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일종의 정치의식 오픈OS를 준비해놓는 것이다. 내가 아직 구비하지 못한 더 나은 앺과 모듈들이 다른 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플랫폼을 열어두는 셈이다. 모름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아무리 상세한 선거자료집을 들이민다 한들 더 나은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귀찮게 에너지를 낭비하겠는가.
!@#… 이왕 선거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쪽으로 더 가보자. 사람들은 그 누구라 할지라도, 모든 정치인/정책 가운데 “나름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는 정치인/정책 중에서 선택한다. 게다가 그 아는 정도를 바탕으로 일종의 등급도 부여한다. 내가 대선후보급으로 ‘아는’ 정치인. ‘국회의원급으로 ‘아는’ 정치인 식으로 말이다. 반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경력 스펙이 괜찮은 사람인 경우도 있겠지만, 별로 승산이 없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정당 지지에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정당도 개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등급화된 이미지가 있다. 국가를 운영할 만한 정당, 자기 동네쯤 운영할 정당, 처음 들어보는 정당 등. 즉 선출될 승산이 있으려면 이미지 자체에서 특정 레벨로 포장이 되어 충분히 개개인들에게 인식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흔하게 화자되는 “**당에는 거물후보가 없다”, “**당은 정책이 없다”라는 말이 주는 함의이자, 뭘 특별히 하고 있지 않아도 허구한날 박근혜 대선 타령인 현상에 대한 약간 기계적인 접근이다.
!@#… 이래저래, 결국 어떻게 하면 ‘모르는 부분’을 인식시켜주는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유권자들이 내가 잘 모르는 후보, 내가 잘 모르는 정책, 정치구도 속에 가장 훌륭한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도록 각성시키는 것이다. 물론 전략적으로 무지를 조장하여 당선을 꿈꾸는 (주로 기득권층 강자의) 개별 선거 캠페인이야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 민주적 정치의식 자체를 측정하고 장려하려는 담론기획들이라면 그것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러니까 우선, 설문조사, 뉴스 전달, 토론 등 시민들을 직접 상대하는 일상의 여러 사회적 정치담론 활동들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직면시켜주는 장치를 강조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허구한 날 하는 정치 관련 여론 조사 설문에서 정작 필요한 건, “당신이 아는 정치인은 도대체 누가 있습니까?”, “그 정치인이 정책적으로 뭘 표방하는지는 아십니까?” 라는 문항이다(물론 훨씬 덜 공격적으로 문구를 수정하고). 응답자의 정당 지지성향에 정치적 지식도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지식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정치의식을 어떤 식으로 장려해야할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단순한 현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의를 얻어 이후의 발전을 위한 재료로 쓰려면, 뭘 어느정도 알길래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지 측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언론에서 기사를 쓸 때도 말미에 항상 “후보자들의 세부 프로필과 정책에 대한 총체적 정보를 얻으려면 ***을 방문하시오” 라고 덧붙여서 사실 당신이 아직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수 있다고 자꾸 상기시켜주는 ‘정보허브 저널리즘’ 관행을 정착해 볼 수 있다. 개별 토론 공간에서도 그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 토론하는 것은 전체 가운데 일부다”라는 인식을 상기시켜주는 관리자 역할을 강조하면 좋고.
뭐 이외에도 당연히 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핫핫)
PS. 이왕 선거 이야기 나온 김에(2): 2009년 10월 28일, 재보선 선거 실시. 해당 지역 유권자 여러분들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원합니다. 우선 각 후보의 경력과 실제 지역 정책을 보시길. 그리고 그와 함께 미디어법 강행 정국, 4대강 쌩쑈, 내각인사문제, 용산철거민 과잉진압, 경제 위기 주역들과 정책기조를 회전문으로 여전히 중용하기, 그리고 기타 여러 커다란 전국구 떡밥 정도는 “아 맞아 그게 아직 여전히 문제인거지?” 하고 한번쯤 기억을 가다듬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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