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 지구에서 온 사나이

!@#… 지난 달 출시되어 낼롬 질렀던 월E DVD를 보다가 난데없이 문득, 최근에 본 SF 독립영화 ‘지구에서 온 사나이‘가 오버랩되었다.

‘지구에서 온 사나이’는 간단히 말해서 14000년동안, 즉 크로마뇽인 말기 사회부터 현대까지 계속 35살의 신체로 늙지 않고 살아온 한 남자가 동료 교수들과 삶과 문명의 의미에 대해서 대화하는 영화. 그런데 오랜 시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주옥같은 통찰이 많고 특히 원시시대의 순수한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묘한 감동을 준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극히 오랜 삶과 호기심이 축적되어온 생활의 모습이 마치 혼자 700년 동안 작업한 월E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 “지금도 정원에 웅크리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보곤 합니다”
: … 월E야 말로 홍보 포스터부터 이미 웅크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미지 그 자체.

– “죽음을 실용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죠. 멈추는 것. 그 다음 못 일어나는 것. 그 뒤에 이상한 냄새가 나고. 병이 나는 것은 미스테리였죠. 늙는다는 것은 가장 커다란 미스테리고.”
: …쌓여있는 수많은 ‘죽은’ 월E 기계들, 그 사이를 거닐 뿐만 아니라 ‘시체’에서 부품을 취하는 월E.

– “처음에는 다른 이들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내가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주라고도 여겨보고, 축복이라고도 여겨보았죠. 이제는 하나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죠.” “하느님은 항상 신비로운 방식으로 개입하신다는 믿음인가요?” “아뇨 그냥 우연이죠.”
: …하필이면 이 하나의 월E가 살아남고 또 인격을 발달시킨 것은, 우연 그 자체니까.

– 게다가 내용상 월E야 말로 ‘지구에서 온 사나이’ 아닌가.

아마 가장 서로 안어울릴 법한 영화 vs 영화겠지만, 뭐 훌륭한 SF는 서로 통한다. 사실 많은 고전 SF의 핵심 감동의 코드가 바로 인간의 인식을 크게 초월하는 엄청난 시공간의 스케일과 그에 따른 격변의 속에서도, 어떤 ‘인간적’ 가치가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연스럽게 인류문명에 대한 상대적 사고, 거대한 상상력,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등이 담기면서 지적 요소와 감성적 충만함을 채워주는 황금 공식이다(월E의 엔딩크레딧 에필로그 부분의 마지막 장면에서 헉하는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니까). 여튼 극장에서 3번보고도, 여전히 새로운 감동할만 한 맥락을 찾아가며 계속 다시금 재미있게 보고 있다. ‘잘 만든 영화’와 ‘고전의 반열에 한 자리 예약한 영화’의 차이.

 

 

PS. 아마존에서 배송왔던 DVD는 무려… 전용박스.

 

PS2. 월E빠인 capcold를 위해, 와이프님이 직접 제작해주었던 바 있는 생일 케익 인증샷. 물론 당시 받은 선물은 리모콘 조종 월E (물론 U-command 버전. 얼티밋은 유감스럽게도 당초 예상가격보다 거의 100달러 가량 비싸게 나오는 바람에 과감하게 포기;;;)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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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thoughts on “월E, 지구에서 온 사나이

Trackbacks/Pings

  1. Pingback by LieBe's Graffiti

    Who do you think I am?…

    이 영화는 2007년 만들어졌지만 사실 국내 개봉도 한 적이 없고 DVD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 흥행에도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 과연 얼마 만큼의 스크린에 걸렸을지도 상상이 갑니…

  2.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베스트 오브 2008 [책, 대중문화]

    […] The Man From Earth : 감동적 SF의 핵심은, 시공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

Comments


  1. 느무느무 아름다운 케잌입니다 ^^! ‘재밌는 영화’와 ‘고전이 될 영화’의 차이의 지적이 참 멋지지말입니다 :)

  2. 맨 프롬 어쓰는 근 몇년간 본 SF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말할수 있을듯 해요….

    lol

    월e 얘기는 아니지만 맨 프롬 어쓰 포스팅을 트랙백 날려요~
    (트랙백이 안날아간다….ㅡ.ㅡa)

    http://liebe.tistory.com/224

  3. !@#… Mini9님/ 저도 헉 소리가 났었죠.

    kay님/ 로봇염장물 월E를 이야기하는데 이 정도야…

    dcdc님/ 사실 다른 분야들에도 거의 그대로 대입 가능하죠.

    LieBe님/ 보내주신 트랙백을 Akismet필터님이 또 낼름 삼켰더군요; 다시 토해내게 만들었습니다. // 간혹, 지구에서 온 사나이를 만약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상상도 해봅니다. 기본적으로는 유주얼 서스펙트 삘에, 넘쳐나는 과거회상 장면, 작렬하는 대구모 전투씬, 폭발장면… (핫핫)

    hyol/ 당근. 설마 순수하게 SF적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 이런 포스팅을 할 리가;

    지나가던이님/ 자랑 안하기 힘들죠. (…)

    JNine님/ 극적 대반전!

  4. 맨 프롬 어쓰 저도 매우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예요 ^^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도 점점 쌓여가는 긴장감과 웬만한 대하장편 못지않게 깊어져가는 역사에…

    역시 SF적 감성과 SFX는 전혀 다른 개념이죠. ^^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서 SF를 말하는 이들이 너무너무 싫어요. ;ㅅ;

  5. 대놓고 말하기 힘든 주인장님을 위해서 케키에 좌절한 사람이 8명을 돌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지기 싫어서 답글 안적은 사람의 수는……..ㅡ.ㅡa……..$%^&%&^%*&YTUU&^*

  6. 이 이런 드디어 캡콜닷넷도 본격 염장블로그?! 부러워어요오오~~~T_T
    아 겸사겸사 월E의 아카데미 애니메이션상도 기원!…물론 팬으로써는 스트레인저를 응원하고 싶지만 냉정히 말해서 미치도록 게이삘 나는 B급 액션애니라 아마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할테니 (노미네이트 후보작에 오른 것이나 감지덕지)…닥치고 월E! 월E! 바시르와 왈츠를이 뭐냐! 월E!

  7. 헐. 진짜냐?
    ㅎㅇ씨의 내공이 하늘을 찌르시는군..

    부럽다.

  8. !@#… Cranberry님/ 하지만 그에 비해서 영화의 인지도는 하염없이 떨어져서, 제작진들이 작품의 주요 확산경로였던 토렌트 불법복제에 감사를 표했을 정도…;;;

    erte님/ 부러워하면 지는 겁니다! (핫핫)

    LieBe님/ 안 적은 분들의 수는 전체 조회수에서 8명을 뺀 대략 ***명!

    시바우치님/ 애니메이션상이야 이미 탔다고 보고, 애니메이션에 유독 박한(정통적 의미의 ‘연기자’가 없기 때문) 작품상 후보에 올라갈 것이냐가 관건이죠.

    유도르님/ 사실은 합성! (그럴리가)

    네이탐님/ 그래도 염장을 하기에 앞서 나름 도움되는 다른 이야기로 당의정을 입힌 배려심이 돋보이지 않습니까 (핫핫)

  9. LieBe님//여기 그런 사람 하나 추가요 orz
    케잌도 케잌이지만 BURN-E등의 DVD 특전등을 얼마전에 접한터라 DVD와 무선조종 월E의 염장이 무지막지 하군요 ㅠㅠㅠ

  10. 월E는 정말, 저만해도 두번째 봤을때 더 감동…. 결국 세번보고 만 작품이었습니다.

    올해는 그런 영화가 더러 있네요. 상반기에는 월E가 그랬고, 하반기에는 매직아워(현재 한국극장가에서 전혀 찬밥대우를 받는 걸작)가..

    영화잡지를 보다보니 누군가 월E와 쿵푸팬더를 비교해놓고선 쿵푸팬더가 한국극장에서는 승리를 거뒀다고 쓴데 대해서 화가 날 지경으로 제가 팬이 되었다는것을 깨달았죠…

    (개봉을 두달을 늦게 하면서, 1관도 안준 주제에, 디지털상영은 더빙만 들어오고 자막은 디지털판도 아니게 상영한 월E와 공정한 대결이 이뤄지지 않은점 은 쏙..뺀 기사에 괜히 열받더라구요.아 맞다 그 기사는 어차피 영화지기사도 아니고 PC사랑 12월호였구나)

  11. 생일 축하드린다고 답글 적으려다가 케익 보고 답글 안 적기로 했어요(라고 답글을 쓰고 있다.)

  12. !@#… 언럭키즈님/ 한국어판 DVD가 미국판 3디스크세트의 주요 아이템을 다 담고도 2디스크버전으로 출시되었으니, 필 지름입니다. (뽐뿌)

    nomodem님/ 한 반년만 지나봐도 결국 남는 것이 어떤 작품일지는 명약관화한데 말이죠.

    보라/ 아마 나라도 그랬을듯. (핫핫… 축하 땡큐)

  13. !@#… intherye님/ 아아 지나간 반세기가 주마등처럼… 이 아니라, 집구석에 남은 (전에 쓰고 남은) 양초가 다섯개 밖에 없었다는 슬픈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