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차저차 뒤로 미뤄두었던 신해철 입시광고 출연 이야기. 대단히 까는 이야기도 아니고 변론이라고 치기에는 전혀 당사자에게 득 될 것 없는 몇가지 생각들이라서 그냥 끄적여만 놓고 잊어먹었다가, 그냥 뒷북으로 공개. 뭐 연예인 개인에 대한 왈가왈부라기보다는, 결국 이런 류의 사안에 대처하는 반응에 대한 약간의 가이드.
!@#… 이런 사안에 대한 반응을 보자면 크게 무엇에 놀라는가,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반응하나 두 가지가 작용한다. 우선 놀람의 근원부터 살펴보자.
* 진보인사가 학원광고를 찍다니?!
: 이 경우는, 사실 진보인사라는 틀이 좀 허수아비 때리기다. 그쪽 진영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민중이나 연대를 부르짖더라도, 하나의 유일한 ‘종합 진보 프로토콜’ 같은 것은 없다. 신해철 스스로도 해명했듯 그의 경우는 국가가 뭘 간섭한다는 식의 개념 자체를 싫어하는 아나키스트에 얼추 가깝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는 사민주의쪽이나 아예 본격 민중혁명을 부르짖는 부류와도 일부 겹치는 부분도 보이지만, 겹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을 수 밖에. 좁혀서 말하자면, 획일적 교육체계에는 같이 반대인데, 그 해결책에서는 한쪽은 공교육 강화, 다른 쪽은 적성을 살리는 사교육으로 갈라짐. “아하 그 계열이라면 이런 식으로 살려고 하는구나” 라고 인식을 세분화하면 되겠다. 덤으로 그 관심의 1/10만 할애해서, 사민주의적 입장으로 사교육을 비판하면서도 입시논술학원을 차리는 분들을 비판하는 쪽이 생산적이다. 이왕이면 입시논술 말고 사회일반용 논리교육으로 스위치하도록 종용하면 더 좋고.
* 틀에 박힌 교육을 비판해온 이가 학원광고를?!
: “보기보다 생각이 얕구나” 하고 앞으로 기대수위를 대폭 낮추면 된다. 바로, 자신이 주목하는 부분과 맥락이 들어가서 완성된 전체 의미의 차이를 순진할 정도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 얕은 생각의 결과다. 예를 들어 공교육에 불만이 많아서 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쁠 것 없는 주장이다(‘대안학교’를 진보적인 형태의 교육으로 간주하는 것이 왜 그렇겠나). 다만 문제는 그것이 하필이면 자신이 스스로 기존 공교육의 문제점으로 지목하곤 하는 서열화된 대학입시 하나로 줄세우기 몰빵과 별로 방향이 다르지 않으면서 세부방법론만 살짝 다른 사교육 형태, 즉 입시학원이라는 점이지. 게다가 “왜 학습목표를 확인하지 않습니까”라는 카피 자체가 자신의 세계관과 합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합당하다. 하지만 입시학원 광고라는 맥락에 그 카피가 들어가면 스파르타 입시질의 의미가 되어버린다는 것. 그것을 알고도 외면했다면 나쁜 넘, 몰랐다면 바보. 해명 내용으로 볼 때 둘 중에서 신해철 본인은 후자를 선택한 듯 하고, 뭐 그 선택을 탓하지는 않겠다(비웃는 정도는 얼마든지). 이 정도에서 뻔히 드러나는 문제라면, 좀 더 공교육과 사교육의 얽힌 관계라든지 아예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에서 수행해야 할 vs 수행하고 있는 역할 같은 좀 더 근원적인 화두까지는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다.
!@#…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놀람의 결과로 나오는 실망의 방식이다.
* “좌빨들은 위선자”
: 좌빨 아니라니까. 아나키즘 쪽에 가깝다면 ‘좌’는 맞는데, ‘빨’ 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좌빨이던 우꼴이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대다수의 부류들이든, 각각의 속에 위선자도 위악자도 진짜배기들도 다 있다. 세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일반화와 단순화는 무척 유용하지만, 대표성을 부여하기에는 좀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 케이스다. “어떤 좌빨(로 인식되곤 하는 자)들은 위선자일 수 있다” 정도로 만족하시길.
* “신해철 팬을 그만두겠다”
: 그만 두시면 된다. capcold의 경우는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김세황-김영석-이수용 라인업의 넥스트를 해체한 것에서 실망하고, 비트겐슈타인에서 데려온 신멤버로 재결성 후 낸 5집이 작곡도 메시지도 입에 탁구공 물고 있는 듯한 창법도 마음에 들지않아 좌절하고, 6집 파트1에서 다시금 기대를 걸었으나 그대로 기대를 접었다. 그거 말고 총체적 캐릭터로서의 신해철이라면, 사회적 마인드 출중한 개념 연예인이라는 기믹을 사용했다가 그 기믹이 고장났으니 뭐 어쩌겠는가… 아직 남아있는 ‘마왕’ 캐릭터에 더 집중하든지 해야지. 그쪽만으로도 만족하는 팬이라면, 뭐 계속 팬으로 남는거고.
* “차라리 분유값이 모자라서 나왔다고 하지”
: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도도한 마왕 캐릭터는 포기해야겠지. 그리고 여하튼 본인이 돈때문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납득하지 뭐.
* “앞으로 사회적 발언을 해도 ㄱ소리로 들을 것”
: 그러다가 옳은 소리를 할 수도 있으니 미리 편견을 가지지는 말되, 이번 건에서 드러났듯 보기보다 생각이 대단히 얕은 분야도 있으니 가려서 들으시면 된다. 해명시리즈는 좀 벙찌지만, 그나마 그 전에 예고편이라고 올렸던 명박형님 운운하는 중2병의 본격 병맛보다는 그래도 좀 생각하고 쓴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구나 싶다. 다만 역시 논객으로서는 매력 레벨 7, 공격력 레벨 8, 논리 레벨 1.
생각해야할 것이, 담론 영향력에는 (물론 서로 영향을 미치는) 몇가지 층위를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편의적 일상용어로, 1) 직접적인 정책결정을 구성하는 전문성 담론, 2) 사회적 토론과 구체적 대처를 진행시키는 토론성 담론, 그리고 3) 주목을 시켜주는 캠페인성 담론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더 얕다 깊다의 위계라기보다, 역할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캡콜닷넷의 대부분의 ‘무거운’ 이야기는 2를 중심으로 하되 1에 대한 아이디어를 군데군데 살포시 심어놓는 식이다. 그리고 종종 3에 해당하는 떡밥을 따로 던지고(실제로 인기 있는 건 물론 거의 이쪽…). 3을 풀어놨는데 그것을 난데없이 2나 아예 1의 기준으로 비난한다면 그건 상당히 뜨악한 일이다(그 주장의 2나 1에 해당하는 세부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면 훌륭한 논의가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 모델은 대안저작권 운동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C)에서도 쓰이고 있는데, 3) 캠페인성 부호와 표어, 2) “인간이 읽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 그리고 1) 법적 세부 논의 등 3개 층위로 주장하는 바를 나누어 담고 있다.
에에 잡설이 길었는데, 그러니까 신해철의 경우는 논객으로서도 원래 거의 전적으로 3에 가까운 역할이었다는 말이다. 그걸 감안하면서 실망의 수위를 조절하시라는 이야기. 그 속에서 만약 이왕 사람들이 주목하는 김에 2, 혹은 아예 1의 층위를 이어나갈 수 있으면 가장 좋겠고.
!@#… 결론은 그러니까… 실망하시든 싫어하시든 알아서 하시면 된다. 다만 엄청난 이슈도 아닌데 한번 비웃고 지나가는 정도 이상으로 너무 오버하지는 말고, 이왕 이번 건으로 각성이 되었다면 그 에너지를 진짜로 뭘해도 대학 입시 깔대기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현재 한국의 ‘교육’ 문제를 생각해보는 쪽으로 한 번 돌려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는 정도랄까. 역시 써놓고 보니 별 것 아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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