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 이야기 꺼낸김에 애프터서비스. 앞선 모리꼬네 PIFF사건 보도 관련 글의 리플에서 …님이 제보해주신 후속기사. 이럴 때 현지 지역신문의 위대함을 느끼곤 한다. 리플로 이미 달았지만, 기자가 악성 구라를 깠다고 해서 다른 문제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모옹이 행사를 떠난 것과 행사 진행의 문제는 별개라는 것 뿐. 기자의 악의에 찬 왜곡 덕분에, 얼떨결에 귀빈 대접 안해준다고 버럭 화내고 파토 내는 (다분히 한국형) 소인배가 되어버린 모옹만 불쌍하지. 실제로는 자기 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 하고 매너좋게 신사적으로 가신 분인데. 여튼 뭐 아무래도 이 블로그 성격상 당연히 저널리즘에 초점을 맞췄지만… 자꾸 이야기가 달리고 보니, 의전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은 괜한 의무감이랄까. 그래서 이번에는 의전 이야기. 위의 기사에 가장 중요한 단서가 나와있다. 바로, 모옹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
!@#… 우선 도대체 의전이라는 것의 핵심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좀 점검하고 가자. 진짜 접대, 진짜 의전은 단순히 무슨 박제된 귀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애초에 여기 온 목적 즉 ‘관심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접객하는 사람들이 체면차리는 자뻑행위가 아니라, 방문자에게 보람을 주는 것이다. capcold의 직무 경험상 주로 심포지엄/세미나 행사를 만들어봤기 때문에 생긴 편견일수도 있지만, 거장이면 거장일수록 무슨 그럴싸한 귀빈 대접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대로 한번 대우받아보지 못한 숨겨진 거장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건 그냥 흔해 빠졌으니까.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진짜 자기 관심사와 자신이 열정을 바치는 분야에 대해서 뭔가 더 알고 싶어하고, 교류하고 싶어한다. 95년 당시 스필버그는 멋진 귀빈 식당에서 접대하면서 지루한 반도체 이야기만 한 이건희와의 식자 자리를 싫어했고, 그냥 허심탄회 가정초대를 하고는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잔뜩한 미키 리와의 식사자리를 좋아해서 CJ와 드림웍스 계약을 했다. 허영보다는 열정이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거장의 레벨까지 간 거라니까.
!@#… 모옹이 무슨 레드카펫 한번 폼나게 밟고 싶어서 지친 몸 이끌고 부산까지 왔겠나. 혹은 반드시 와야만 하는 무슨 모리꼬네 영화음악 회고전 같은 공식 프로그램이라도 잡혀있던 것도 아니다. 콘서트 방한이 메인이고, 부산은 그냥 나중에야 덤으로 결정된 것. 유일한 행사라고는 핸드프린팅인데, 그건 지쳐서 적당히 호텔방에서 뚝딱했고. 결국 부산까지 온 이유는 영화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 구경하고 싶어서 온거다. 피곤할텐데 개막영화 열심히 관람해준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모옹은 영어를 못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capcold가 판단하기에 의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무슨 우산이고 20분 복도에서 대기하고 어쩌고 하는 수준의 단순한 접객 차원 문제가 아니다. 접객차원 문제야 발생 안하면 좋지만, 약간만 준비측이 말이 어긋나도 종종 일어나곤 한다 – 큰 행사고 작은 행사고 간에. 그보다 진짜 핵심은,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도 모옹이 누구와도 소통이 안되었다는 게 문제다. 통역 가능한 밀착 동행이 없었고, 결국 마누라 말고는 누구와도 제대로 영화에 대해서 행사에 대해서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무줄 시간 지연이라면 프랑스 행사고 이태리 행사면 더하면 더했지), 도대체 왜 무슨 일로 기다리는지 어리둥절하고, 또 기다리는 동안 영화제에 대해서 또는 한국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어와 기껏해야 영어가 간간히 섞인 낯선 섬에 부부가 고립된 것이다. 아무리 입장 후 관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든 전제덕이 감동적인 연주로 자기 곡을 선보여주든 간에, 정작 본인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도 안되고, 다른 영화인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이래서야, 여기까지 힘들여 온 목적이 전혀 충족이 안된다! 이건 단순히 기분이 유쾌하고 불쾌하고 차원이 아니라 진짜로 “도대체 뭐하러 왔는지 모를” 피로감이 쌓인다. 접객상의 결례를 범하는 것이 의전으로서 C 정도라면, 이건 정말 회복의 여지가 없는 F다. 그냥 몇십만원 투자해서 반나절동안 동행 통역자 하나 고용하지 그랬어요(이왕이면 영화 좋아하는). (10.12. 추가: 새로운 팩트 발표에 따라서, 위 내용 가운데 일부 수정. 방금 나온 영화제측 공식해명에 따르면, 부산일보 기사에 나간 내용과는 달리 저녁 내내 계속 통역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입장 행사에만 같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소통의 문제가 아예 언어 자체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제라는 행사를 둘러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정말 다행이다.)
!@#… 애초에 PIFF가 성장하게 된 것은 스타들이 화려한 무대를 수놓는 공간이라서가 아니다. 그런 건 도처에 깔렸다. 초창기에 빔 벤더스가 와서 호평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당시 한국의 한껏 부풀어오른 영화담론 붐 속에서 가능했던, 미칠 듯한 호응과 영화열기 때문이었다. 온 관객들이 다 영화학도라도 되듯이 열정적이고 날카로운 감독과의 대화자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깐느고 베니스고 하는 곳들이 오히려 지금은 스타파워 따라가기에 바빠서 잃어버렸던 그 에너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IFF가 위기라면 그건 기껏해야 접객의 허접함이(특히 ‘기자’들을 맞이하는… 핫핫핫) 아니다. 점점 더, 열정보다 허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세계적 거장을 못알아보고’ 우산 씌워줬냐 안씌워줬냐에 집착한 최초 떡밥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 역시 가면 갈 수록 그런 것을 바라는 듯 하고. 귀빈 대접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전에 과연 영화인으로서 만족스러운 관심사를 추구하도록 해줬느냐가 핵심이다. 축제의 손님으로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줬느냐는 말이다. 그게 되는 행사가 아니라면, 어떤 내노라 하는 스타들을 손님으로 동원해오든지 간에 PIFF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만약 행사에 대해서 발전적 비판을 하고 싶다면 기자들 취재공간이 부족했다느니 거장에게 비를 맞췄다느니 무슨 건물에 비가 샌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촌극을 통해서 드러난 영화제의 현재 방향성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꺼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PS. 덤으로, 한국 망신이니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니 국가급 걱정을 하시는 분들은 너무 흥분하실 필요 없는 것이… 이런 행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굳이 ‘한국’ 망신이 아니라 그냥 PIFF라는 행사가 허영끼나 가득한 허접한 행사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스스로 자부하는 만큼 ‘국제’행사라면.
크아. 멋진 글입니다.
“귀빈 대접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전에 과연 영화인으로서 만족스러운 관심사를 추구하도록 해줬느냐가 핵심이다. 축제의 손님으로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줬느냐는 말이다. 그게 되는 행사가 아니라면, 어떤 내노라 하는 스타들을 손님으로 동원해오든지 간에 PIFF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오, 멋진 지적이십니다. : )
제 졸문( http://minoci.net/232 )에 링크 인용합니다. : )
!@#… 민노씨/ 제 의도를 워낙 적확하게 읽어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
큰소님/ 이왕이면 “크아”보다는, “우홋! 멋진글”로 불러주세요 (매니악한 개그)
PIFF가 위기라면 그건 기껏해야 접객의 허접함이 아니다. 점점 더, 열정보다 허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가 어디에서 야기됐는지 꼭 찝어 내는 글이네요.
피프 3회때인가(확실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나서 관객들과 감독이 서로 열띠게 대화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었었는데……
와키키 장면중에서 빨가벗고 기타치는 장면에 감명 받고, 토론 모습에 강한 여운이 남았었는데.. 웬지 그때가 그립네요.
[클릭]
이 기사를 보니 “여기까지 힘들여 온 목적이 전혀 충족이 안된다! 이건 단순히 기분이 유쾌하고 불쾌하고 차원이 아니라 진짜로 “도대체 뭐하러 왔는지 모를” 피로감이 쌓인다.”는 캡콜드님의 정확한 지적이 더더욱 다가옵니다.
우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 맑스의창님/ 주최측이 닥치고 관람객 유치 숫자에 얽매일 때, 기자들이 닥치고 김소연 슴가 강동원 얼굴에만 얽매일 때, 관객들이 닥치고 (어차피 두어달만 있으면 일반 개봉할) 화제작 예매에만 매달릴 때 증발하고 사라지는 가장 첫번째 것이 바로 말씀해주신 그런 문화지요.
ddd님/ 다행히도 연합뉴스에서 그래도 기사의 abc가 갖추어진 후속기사를 내줬군요. 다만 “왜 난 거장인데 내게 관심을 안가져주는가야 잉잉” 같은 뉘앙스가 들어가도록 묘사한 것은 여전히 아쉽습니다만.
미고자라드님/ 하지만 떡밥 가치는 떨어지죠. 이런 드라이한 내용의 경우는 올블 추천도 별로 없고, 다음뻘판에 등록해봐야 무대 위로 올라가보지도 못하더라는… 핫핫
지금 기사찾기 힘들어서 다른곳에 올라온 기사를 대출 발췌해서 인용하자면
이탈리아어 통역은 레드카펫에서는 없었고 영화제는 모리꼬네가 “내가 왜 피프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보도에 대해서 이는 의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스타에게 집중되는 팬과 언론의 관심에 섭섭함을 표시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왜 난 거장인데 내게 관심을 안가져주는가야 잉잉”->보니까 피프측의 공식적 해명도 저런 뉘앙스처럼 나오던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