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것은 여차저차하다보니 내용이 좀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기자님은 오히려 이번 것이 평소보다 더 쉬웠다고 하시더군요. -_-;;; 여튼 요새 ‘요즘 젊은 것들은 긴 안목이 없어’ 투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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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가 붕괴할지라도 – <저수지의 걔들> 이동욱 作
90년대, 이 땅의 젊고 똑똑한 사람들의 관심분야가 급격하게 달라졌던 때가 있다. 그것이 소련붕괴 때문이니 자본주의적 개인주의가 만연해서 그랬다느니 나름대로 분석들을 했는데, 여튼 확실한 것은 결과로서 나타난 한가지 현상이었다. 바로 “대서사의 붕괴”인데, 포스트모던이니 시뮬라크르니 하며 폼잡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커다란 흐름이라든지, 중후장대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이 어느틈에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세상사는 큰 법칙과 통찰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파편화된 요소들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만화로 치환해보자면, 중후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가 점차 쇠퇴하고 짧은 호흡과 작은 성찰의 찰나적인 이야기들이 득세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에 대해서 최근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도 꽤 나오고 있다 – “장편만화의 위기”라는 꽤 자극적인 말로 신문지면에까지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수지의 걔들>이라는 작품이 좋은 예가 된다. 우주선을 타고 각 행성들을 여행하는 탐험단의 모험을 코믹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최근 주목할 만한 작품인데, 짦막한 4칸만화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4칸만화는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험은 보통 4칸만화 8~12편 정도가 내용적으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편에서 소개된 캐릭터는 한참 나중의 모험에 다시 재등장하기도 하면서 시리즈로서의 전체적 맥락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원래 미국에서 현대 신문만화의 시작과 함께했을 정도로 오래된 방식이지만, 몇년전 <아즈망가대왕>의 히트로 인하여 재발굴된 형식이기도 하다.
대서사가 파괴되고 장편이 부진하다고 해도, 그것은 갑자기 작가들이 이전보다 게을러져서도, 독자들이 얄팍해져서도 아니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읽어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전의 장편 개념이 하나의 스트레이트한 스토리로 그런 목표를 향해서 직선질주를 했다면, 지금의 짧은 호흡 작품들은 하나씩 벽돌을 쌓아가듯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하는 작품들보다는 실패하는 작품들이 많을 뿐이다.
결국 현실세계도 마찬가지다. 직선적인 줄거리 – 즉 중후장대한 사회규범의 틀을 통해서든 다양한 일상적인 부분들의 결합을 통해서든, 결국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전체적인 사회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대서사의 붕괴가 아니라, 그것을 시대의 흐름이니 도통 이해가 안되는 콩가루 사회이니 말하며 변명꺼리로 삼고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시키는 우리들의 세태일 뿐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21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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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쿠 – 재밌던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2004/08/23 18:18
– 한나라 – 전혀 엉뚱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왜.. 우리 잘하던 우스개 이야기 중에 ‘벽돌’, ‘기계인간’ 시리즈 같은거 있었잖아요.. 왜 갑자기 그게 생각나지? ㅡ.ㅡ 2004/08/24 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