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응 폭발은 없었으나 그래도 2탄. 쓸만한 실용문을 위한 가이드, 그 두번째 시간: “리뷰” 편. 가이드의 속성에 대해서는 첫회 ‘소식글’편 참조 요망(클릭). 저널리즘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도 글들을 쏟아낼 수 있는 온라인의 속성상(아니 사실 많은 기관화된 언론들도 언론규범을 좀처럼 안지키고 있지만 OTL), 개개인들이 정제된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소개성 평가를 내리는 글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 중 특히 자신들이 보고 즐긴 작품, 혹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흔하다. 그럴 때 이것만 따라하면 나도 간지나는 온라인 평론가!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기를 다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는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 리뷰: 감상이 들어가지만, 결국은 소개
: 우선 리뷰라는 범주에 대해서. 무언가에 대해 평가를 하는 글은 문자 그대로 넓은 의미의 ‘평론’이다. 다만 목적에 따라서 편의상 하위구분을 하곤 하는데, 크게 “a) 대상의 소개가 목적인가”, 아니면 이미 그 대상을 필자도 독자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b) 관점을 나눠보기 위함인가”로 나눠볼 수 있다. b)가 좁은 의미의 ‘평론’이며, a)가 소위 ‘저널리즘적 평론’ 혹은 좀 더 간편하게 ‘리뷰’라고 흔히 칭해지는 것이다. 물론 매사가 그렇듯 두 영역은 깨끗하게 잘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대체로 글 작성 지면, 시점 등으로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 영화주간지의 금주 개봉영화 지면이라면, 꽤 심층적인 식견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리뷰로 접근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이다. 구분하기 어려우면, 간단 판별법이 있다: 첫 줄에 브루스윌리스는 귀신이라고 스포일러 적어넣으면 독자들이 화낼 것 같은가. 상당 부분 같은 논리를 공유할 수 밖에 없지만, 실용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은 ‘리뷰’ 쪽이다. (반면, 좁은 의미의 평론(b)은 학문적 글쓰기 쪽을 연마할 부분)
(목표)
1. 목표는 판정이 아니라 소개다: 리뷰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작품에 대해서 섣불리 대신 선택을 내려주면 곤란하다. 리뷰의 역할은 심판이 되어 선악을 판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단점들을 소개해주는 역할까지다. 아, 물론 여기에는 굳이 소개를 하는 이유가 개입되고, 그 이유에 따라서 어떤 쪽의 장점 혹은 단점이 더 강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너무 좋아서 같이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라면 좋은 쪽으로 “판정”해주고 싶고, 너무 엿같아서 나 같은 피해자를 줄일꺼야! 라면 나쁜 쪽으로 “판정”해주고 싶어진다. 별다른 의견이 없지만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이익을 주는 쪽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쪽으로 “판정”하게 될 수 있다. 어느 정도씩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밑도 끝도 없이 “조낸 킹왕짱, 하늘이 내린 걸작. 안보면 죽어!” 보다는 “**한 점이 뛰어나다, ##를 좋아하면 크게 재밌어할 것” 쪽을 지향하라는 말이다. 당신이 이걸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의견을 바탕으로 독자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당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가 핵심이 되는 실용문인 ‘논평’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기본방향)
2. 글의 독자가 누구인가 잊지말라: 예상 독자들의 관심사를 생각해서 써라. 이 분야에 관심 없을 사람들이 대부분인 대중 일반? 이미 이 분야의 팬들? 그렇다면 가볍게 좋아하는 이들인가 아니면 준 전문가들? 내가 다루는 물건이나 작품의 반대자들? 혹은 아예, 해당 물건의 제작자/ 해당 작품의 창작자? 각자가 필요로 하는 내용이 따로 있다. 그냥 블로그 글이라 할지라도, 자기 블로그의 독자들이 어떤 부류인지 뻔히 알 것이다. DC유저들이 주종을 이루는지, 그냥 친구들인지, 아니면 업계인들인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든 기대를 배반하든, 누군지 항상 의식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캡콜닷넷에도 정기적으로 백업하는 출판저널 ‘기획회의’의 만화신간 서평은 서점의 북마스터를 위시하여 출판문화에 깊게 개입되어 있는 이들이 1차 대상이다. 즉 인문적 단서로 풀어내는 문학적 매력, 출판물로서의 만듦새 등을 중심에 놓으며, 시각적 특징 같은 만화 특유의 요소를 첨가해서 쓴다. 목적은 뽐뿌질이되, 약점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솔직하게 먼저 짚고 넘어가고. DC만갤에서 그런 식으로 쓰면 밥맛이거나 무관심의 대상이거나, 둘 다거나.
3. 누구의 시점에서 내리는 평가인가: 그런 글을 쓰는 나는 도대체 뭔가. 일개 블로거? 평론가 지망생? 기자? 싫어하는 안티? 팬보이? 자신이 어느 시점에서 평가를 내리는지, 명확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보다 편안하게 글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덤으로, 자기 자신이 어느덧 자의식과잉의 꼰대화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준다.
(내용갖추기)
4. 이 작품이 뭔가 다른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비슷한 부류의 다른 물건들/작품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즉 굳이 다뤄줘야할만한 특이성은 무엇인가. 별반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쓰지마시길. 에너지도 아끼고 좋다. 특히 장르물의 경우, 90%의 익숙함과 10%의 신선함이라는 공식을 깨고 그냥 99.9% 익숙한 기계적 물건들도 충분히 많은데 그런 것은 그냥 망각의 산으로 보내자. 혹 단지 무언가를 채워넣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전집’형 접근), 5.를 좀 더 집중적으로 참조.
5. 이 작품이 뭔가 같은 것은 무엇인가: 다른 작품과 비슷한 측면은 또 무엇인가. 아니면 어디 외계에서 뚝 떨어졌는가. 즉 리뷰하는 대상을 그것이 속해있는 큰 범주 속에서 맥락화를 시켜주는 것이 좋다. 계보 흐름을 보고, 장르적 클리셰를 보고, 동시대 대중문화에서의 연결고리를 보라. 4.와 5. 이 두가지만 제대로 항목들을 뽑아내도 좋은 리뷰글이 절반 이상 완성된다.
(금기)
6. 감상의 맥락을 오해하지 말라: 감상자의 주관이 들어설 부분을 인정해줘야 한다. 다소 공식화하자면, “나는 **해서 **하게 봤다. 이제 당신이 어떻게 느낄지는 당신 자유다.” 반면 내가 이렇게 소개했는데 그걸 못느끼면 멍청이, 다른 식으로 즐거움을 찾았으면 개새 그런 식의 자의식 과잉은 민폐다. 호불호의 코드는 문화, 교육, 인생경험에 따라서 얼마든지 갈라진다. 픽사의 ‘UP’이 감동의 도가니탕이라한들, 배우자에 대한 애착과 꿈에 대한 미련에 대한 개념에 주관적으로 동조화되지 않으면 그냥 아동모험극. 나아가 어릴 때 개에게 물려서 트라우마가 있는 이라면 공포영화.
7. 합리성을 가정하지 말라: 명백하게 자신의 주관적 평가인 부분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우기지 말아라. 뉴욕타임즈가 이 작품을 칭찬했다! 이건 단순한 팩트. 뉴욕타임즈가 이 작품을 칭찬했으니 좋은 작품! 이건 주관적 평가. 그것도 작품에 대한 주관적 평가, 그리고 뉴욕타임즈에 대한 주관적 평가까지 들어간다. 주관적 평가를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충실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뉴욕타임즈가 **한 점을 칭찬했는데, 필자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한 부분에서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듯 하다고 본다.”
8. 스포일러 주의: 아무 내용도 제시하지 않고 좋은 소개를 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다 제시하면 독자들이 화낸다. 무엇에 관한 것인가 감을 잡아서 뽐뿌는 받지만, 김은 새지 않을 정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제1의 기준 – 스포일러는 원하는 이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배려하라. 배려의 방법은 기술적 해결(예: 글자색깔과 배경 일치시키기)도 있고, 내용적 해결(예: “여기서부터 내용 언급”)등을 적절히 혼용. 그런데 그 이전에, 줄거리로만 도배해봤자 하나도 좋은 글이 아니다. 간밤 방영한 드라마의 줄거리만 주욱 늘어놓고 프로기자의 기사랍시고 던져놓은 싸구려 언론들이 넘쳐나서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나는 건 알겠지만. 저작권 시비가 오갈 정도로 화면캡쳐 수십장을 줄거리 순서로 깔아놓고는 두어줄 팬심 표출하고는 스스로 대견해하는 초딩들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특히 새로운 소통형태를 조심하라. 예를 들어 트위터에서는 코멘트가 폴로잉하는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바로 개방되어 보이도록 되어있어서, 자기한테 안보인다고 부주의하면 실수하고 쿠사리 먹기 쉽다(경험이다).
9. 자뻑금지: 더 잘 소개하기 위해서 더 많은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빠져버리면 소개의 효과 같은 건 등한시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자뻑이다. 독자들이 정작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뽐뿌질 당한 기대감에 즐거워할 구석이 없다. 리뷰로서 실패 중의 실패다. 자뻑의 대표적인 방법은 1)자뻑성 용어 남발. 90년대 최강의 자뻑 용어, ‘시뮬라크르’를 기억하시는 분? 이건 해당 개념들을 제대로 해당 글의 맥락에 맞추어 풀어줌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스스로 그걸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해야겠지만. 2)나는 이런 특이한 것도 봤다 메롱. 좀 기다리거나 좀 더 노력을 기울이면 독자도 경험해볼 수 있는 작품이나 제품이기에 소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은 거의 구해볼 길이 없는 것을 자랑하며, 그것도 구해볼 길이 없는데 나는 구해봤다고 자랑질하면서까지 혼자 떠들면 에러(예를 들어 90년대 ‘컬트영화’ 관련 기사들이 그런 자뻑을 참 많이 했다). 이건 여러분들도 언제/어떻게 구해볼 수 있다, 라고 알려줌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 가능.
(A/S)
10. 논쟁의 문을 열어둬라: 이견을 지닌 이들은 알아서 이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열어둬라. 동의하지 않으면 나쁜놈! 이 아니라, 동의하지 않으면, 어째서 그러신지 알려주시오로. 예를 들어 온라인이라면, 나는 좋아서 소개했는데 저넘은 싫어한다고 하면서 트랙백 보내왔어! 지워버릴꺼야! 그러지 말라는 것. 혹은 해당 반응들을 취합한 후속포스팅이나 토론성 리플도 좋다. 각각 경우에 따라서.
!@#… 노파심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이 가이드 시리즈는 작문교실이 아니라 체크리스트일 뿐이다. 즉 좋은 글을 쓰기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문제투성이 글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이다. 작문 방법 자체까지 다루려면 공짜로 해서는 안되는 분량과 깊이가 된다(핫핫). 물론 이런 것 안지키고도 쓸만한 글이 되는 경우가 없을 리 없지만, 이왕이면 갖추는 쪽이 상쾌. 본 가이드에 새 아이디어를 추가하든지 삽화를 넣든지 만화화를 하든지 기타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 3편 “논평”으로 토끼머리 뿔날 때 즈음 투비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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