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늦어도 80년대에 만화를 즐겨 본 세대까지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를 기억한다. 순진발랄한 주인공들, 특히 아동들이 벌이는 유쾌한 모험담 말이다. 명랑만화는 ‘전체관람가’ 만화의 대명사격인 장르였으며, 그 내용은 이상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소시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나머지 절반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차피 모험물로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후자야 말로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친근한 폭소를 띄위줄 수 있는 명랑만화 본연의 필살기인 셈이다. 하지만 점점 자극적인 소재나 서정성 과잉의 강한 맛에 길들여져온 90년대 이후의 만화판도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감수성은 묻혀져만 갔다.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대원CI/3권 발매중)은 여러모로 명랑만화의 이런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유쾌한 최근 작품이다. 주인공은 6살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 ‘네잎’이라는 이름풀이 그대로 항상 머리를 4개의 꽁지로 묶고 다니고 커다란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는 그냥 이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동네에서 살면서 겪는 하루하루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들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설정, 감정의 미묘한 애증, 또는 반대로 (속칭 ‘에세이툰’ 계열에서 종종 드러나는 폐단인)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마저 없다. ‘요츠바’는 이런 장르에서 애용되는 위악적인 애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한 순진함의 상징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그냥 6살 아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그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동물원 가서 동물들 구경하면서 장난치는 이야기가 재밌고, 축제에 놀러가서 아빠가 놀려주려고 숨어버려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우는 것이 재밌다.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재미냐고 약간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니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요츠바랑!>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이미 전작인 <아즈망가 대왕>에서 연애이야기도 복잡한 애증관계도 엽기감수성도 사용하지 않고, 뒤집어지게 웃기는 여자고교생 코미디를 만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을 더욱 다듬어낸 것이 바로 <요츠바랑!>이다. 일부러 한 템포 슬쩍 늦게 터트리는 변박자 리듬의 개그 호흡, 과잉자극을 배제하는 단촐하고 귀여운 그림체, 칸이나 페이지 구성에서 다양한 만화적 시각연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 등이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물론 의도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성장중인 작가인지 점점 이야기가 능숙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즉, 간단히 말해서, 만화로서 최선을 다해서 강력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문화 일반이나 90년대 이후 일본만화 특유의 캐릭터 코드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일본식 미소녀만화 취급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심심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신선한 재미가 나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꺼벙이를 즐겼고 심술통이 재밌었고 도깨비감투를 읽었다는 기억이 슬슬 돌아온다. 그렇게, <요츠바랑!>의 재미는 낮설지 않은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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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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