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와 과일 사이의 토마토 – <한국 일본 이야기>[으뜸과 버금]

!@#… 여러가지 이유로, 업데이트가 뜸한 상태. –;;;

——————————–

야채와 과일 사이의 토마토 같은 – <한국 일본 이야기>

<한국/일본 이야기>는 한 ‘2.5세대’ 재일교포 유학생의 한국 유학 생활과, 이전의 경험 및 유학 과정을 통해서 정리하게 된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삶의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담아낸 만화다. 원래는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 ‘구미의 유학만화’(http://www.koomi.net)에서 연재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행본이다. 물론 연재작의 단행본이라고는 하지만,, 캐릭터의 독창성에 대한 지적을 받은 후 거의 모든 원고를 다시 그려냈으며, 책을 위해서 완전히 새로 만든 에피소드도 다수 있기 때문에 단행본으로 보는 것이 충분히 의미있다. 또한 유학생활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하여 작년 히트작 <요코짱의 한국일기>와 비슷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 원래 연재와는 달리, 단행본은 유학생활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중간자, 또는 경계인으로서 바라보는 한일 차이와 관계에 대한 생각에 크게 집중하고 있다.

2.5세대, 즉 2세대 교포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3세대도 아닌 2.5세대인 작가가 경험하면서 살아온 에피소드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방법은 결코 무겁거나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 그림일기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듯한 그림체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일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전반부를 차지하는 유학 이야기와 생활경험에서는 주로 코믹한 에피소드, 오해와 호기심을 위주로 진행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한국의 긍정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이해와 화합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되어가는 흐름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 수년 전 이 땅의 대다수 편협한 국수주의자들에게 자위행위를 시켜줌으로써 히트를 치고 그 저자를 출세가도로 올려놓았던 출판쓰레기 <일본은 없다> 식의 ‘우리는 잘났다 그 놈들은 변태다’ 식 서술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일본도 한국도 둘다 애정의 대상이고, 무조건적인 서로 모든 것을 용서해라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설파하고 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뚜렷한 메시지를 위해서 진행되어 가는 단행본으로서의 완성도를 위하여 버리고 간 잔재미가 적기 않기 때문이다. 연재 당시 돋보였던 몇몇 에피소드들이 단행본의 일관성을 위해서 빠졌고, 대화형 글과 만화/에세이의 혼합, 각종 소식들이 자유롭게 섞여서 유희적 분위기를 잔뜩 자아냈던 홈페이지의 매력은 만화만 선별하여 빼곡이 담아놓은 단행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책 말미의 교훈성이 왠지 닭살스럽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상당할 정도로 전반부 ‘유학생활’ 이야기와 그 이후의 교포 이야기 사이의 연결고리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출판 기획에 있어서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교포는 토마토야. 과일 나라에서 자라온 토마토. 오늘날 나는 과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과일나라에서 토마토를 먹을때는 소금을 뿌리는데, 생긴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었던 토마토는 야채 나라에 갔어. 조국에 간거지. 하지만 야체 나라는 토마토를 과일 같이 취급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설탕을 뿌리는 습관이 있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해주었다는 이 대사가 바로 작품 전체의 세계관을 명확하게 대변해준다. 이런 즐거운 작품을 통해서 토마토가 과일이자 야채로서, 과일과 야채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낸다.

[으뜸과 버금 2005. 07.]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뚝딱뚝딱, 인권을 짓다 – <뚝딱뚝딱 인권짓기> [으뜸과 버금 0505]

!@#… 이런 주말은, 밀린 투고문들 올려놓는날~

===================================

뚝딱뚝딱, 인권을 짓다 – <뚝딱뚝딱 인권짓기>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만화는 정보전달에 있어서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뿌려댔던 삐라에 만화가 난무한 것이고, <먼나라 이웃나라>가 일종의 세계화 시대 교과서로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신문만평들이 정치 칼럼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종종 잘못 평가되고는 하는데, 단지 만화로 하기만 하면 그런 좋은 효과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착각이다. 다른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이듯 결국 어느 정도 이상으로 잘 만든 만화가 효과적인 것이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단지 만화이기 때문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의 손길을 당기지만 결국 허접한 품질 때문에 오히려 쓴웃음만 짓게 만드는 수많은 국정 또는 기업 홍보 만화들을 생각해보라.

인권이라는 분야가 있다. 소위 ‘개발 독재’라는 명목하에 자신들에게 부여되었던 말도 안되는 억압을 오히려 그리워하는 이상한 변태피학성 체질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어떤 이상한 나라에서도, 특히 90년대말 이후로 이 화두가 꽤 주류적인 담론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인권운동가들의 오랜 끈기 있는 노력을 바탕으로, 정치 사형수 출신 대통령이 주도한 인권위원회 설립으로 본격화된 이 움직임은 무척 긍정적이다. 하지만 항상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인권 개념 자체의 난해함이다. 인권이 하나의 궁극선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는 이념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그 인권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무엇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범위도 넓을뿐더러, 우리 일상생활 속에 뿌리 깊게 침투해 있는 – 특히 인권을 사치로 여기는 기이한 사회가 수십년간 유지되어 오는 통에 완전히 세뇌 당해버린 내면적 파시즘을 직면시키는 작업은 엄청난 대장정을 요구하고 있다. 어렵다. 설명과 교육으로 계도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쉽게 이해시키기 어렵다. 자, 그럼 이제 해결사가 나타날 차례다. 바로, 만화다. 그렇게 해서 이미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인권 관련 만화 단편모음집 <십시일반>(창작과 비평, 2004)이 탄생해서 다소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인권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차례다.

<뚝딱뚝딱 인권짓기>(인권운동사랑방 글, 윤정주 그림/야간비행)가 바로 그런 책이다. 부제인 ‘만화 인권 교과서’가 표방하는 포부 그대로, 인종주의, 장애우 차별 문제, 빈부격차, 성차별, 평화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가장 날것 그대로의 문제의식을 풀어낸다. 월간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된 분량 가운데 13개 주제를 묶어낸 것인데, 각 주제는 얼핏 거창해질 수 있는 인권 이슈들을,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생활 현실 속에 잠복해있는 모습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라!”라는 거친 구호가 아니라, ‘작게 낮게 느리게 함께 걸어요’라는 권유를 하는 모습이 바로 이 만화의 절대적인 미덕이다. 독자대상층은 초등학생 정도에 맞추어 문체와 그림체 등을 조절했는데, 어른들도 전혀 무리없이 독자층으로 포섭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품이 가능한 것은 역시 인권운동 사랑방이라는 이 분야 최강의 베테랑 집단이 작품에 들어갈 내용을 조율했기 때문이다. 인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나 감상적인 공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앞으로 무엇을’이라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해온 이들의 내공이 담겨있다.

물론 좀 더 만화로서 재미있는 서사를 추구했으면, 좀 더 세련된 표현기술들을 구사했으면 하는 자잘한 아쉬움은 여럿 있다. 하지만 그것은 100점에서 99점으로 감소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초등학생 자녀에게 줄 수 있는, 혹은 자녀를 핑계 삼아 부모들이 사서 직접 읽는 선물로서 최상의 아이템이다. 부디 이 ‘만화 인권교과서’가 진짜 교과서가 되어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해주었으면 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5.]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통속성이 빛을 발하다 – <엠마> [으뜸과 버금 0504]

메이드, 즉 하인 내지 하녀라는 소재는 무척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선 헌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현모양처 또는 자상한 아버지형 캐릭터를 쉽게 창조할 수 있다. 자기 집단 내에서 어울릴때는 발랄한 노동자이며, 기품 있는 집안에서 일을 돌보고 있는 동안에는 예절과 품격을 지킬 줄 아는 멋쟁이. 상류층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생기는 격차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나아가 서비스를 하는 자와 서비스를 받는 자 사이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우정이나 애정. 뭐랄까, 너무나 이야기의 규격이 맞춤형처럼 확연히 눈에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것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써먹어서, 이제는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다. 특히 특정 소재나 표현요소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일본에서 90년대 이후 정착된 소위 ‘모에’라고 불리우는 소비성향 물결 속에서 메이드 – 특히 여성 메이드는 한층 더 정형화된 욕정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통속성이 극단으로 치닫다가 이상한 변이를 맞이해버린 셈이다.

하지만 통속성이, 꼭 이러한 어두운 결말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엠마>(모리 카오루, 북박스 / 현재 4권 발매중) 같은 소중한 사례가 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한 메이드와 귀족 남성의 신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나가는 이 만화는, 수많은 메이드물에 익숙할 대로 익숙할 만한 만화팬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선 전제를 하건데, 이 작품은 메이드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른 여타 공산품 만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메이드에 대한 진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착을 한다는 점이다. 메이드의 생활을 묘사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고증하여 재구성한 19세기 영국의 거리를 비롯해, 당시의 생활습관 하나하나를 되살려낸다. 그 결과 메이드는 성적 환상으로 버무려진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노동자이자 품격 있는 집안의 주인들이 되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의 미덕은 빛을 발한다.

이러한 집요함은 작가가 만화를 연출하는 모든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권 첫 대목에서 주인공 엠마가 등장할 때, 그녀가 청소하는 방의 풍경을 훑어주며 일하는 엠마의 손놀림, 목선, 표정을 하나씩 훑어나가는 시선처리는 어떤 영화나 사진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만화 본래의 효과다. 메이드들의 활기찬 집단 노동 장면에서 묻어나오는 에너지 역시 메이드 층의 다양한 속성들을 보여주기에 가장 효과적인 시퀀스들로 압축되어 묘사된다.

물론 <엠마>는 통속적이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사랑이라니, 지난 2000년 인류 문학의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정도로 전형적이다. 주말 드라마 마냥, 나중에 뻔히 맺어질 것이 보이는 두 신분차이나는 마음의 연인들이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적당히 시련도 닥치고, 방해자들도 끼어든다. 그 과정이 특별히 특이하지도 않고, 캐릭터들 역시 파격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 그 기본공식 위에 작가는 자신이 집착하고 싶은 메이드라는 흥미로운 소재거리에 하염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솜씨가 가히 녹록치 않아서, 독자들이 공감하고 따라온다.

결국 좋고 재미있는 만화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통속성/참신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통속적이라면, 아예 확실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집요하게 끝까지, 맨바닥까지 밀어붙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엠마>를 추천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4.]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으뜸과 버금 0503]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늦어도 80년대에 만화를 즐겨 본 세대까지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를 기억한다. 순진발랄한 주인공들, 특히 아동들이 벌이는 유쾌한 모험담 말이다. 명랑만화는 ‘전체관람가’ 만화의 대명사격인 장르였으며, 그 내용은 이상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소시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나머지 절반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차피 모험물로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후자야 말로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친근한 폭소를 띄위줄 수 있는 명랑만화 본연의 필살기인 셈이다. 하지만 점점 자극적인 소재나 서정성 과잉의 강한 맛에 길들여져온 90년대 이후의 만화판도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감수성은 묻혀져만 갔다.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대원CI/3권 발매중)은 여러모로 명랑만화의 이런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유쾌한 최근 작품이다. 주인공은 6살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 ‘네잎’이라는 이름풀이 그대로 항상 머리를 4개의 꽁지로 묶고 다니고 커다란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는 그냥 이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동네에서 살면서 겪는 하루하루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들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설정, 감정의 미묘한 애증, 또는 반대로 (속칭 ‘에세이툰’ 계열에서 종종 드러나는 폐단인)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마저 없다. ‘요츠바’는 이런 장르에서 애용되는 위악적인 애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한 순진함의 상징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그냥 6살 아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그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동물원 가서 동물들 구경하면서 장난치는 이야기가 재밌고, 축제에 놀러가서 아빠가 놀려주려고 숨어버려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우는 것이 재밌다.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재미냐고 약간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니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요츠바랑!>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이미 전작인 <아즈망가 대왕>에서 연애이야기도 복잡한 애증관계도 엽기감수성도 사용하지 않고, 뒤집어지게 웃기는 여자고교생 코미디를 만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을 더욱 다듬어낸 것이 바로 <요츠바랑!>이다. 일부러 한 템포 슬쩍 늦게 터트리는 변박자 리듬의 개그 호흡, 과잉자극을 배제하는 단촐하고 귀여운 그림체, 칸이나 페이지 구성에서 다양한 만화적 시각연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 등이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물론 의도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성장중인 작가인지 점점 이야기가 능숙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즉, 간단히 말해서, 만화로서 최선을 다해서 강력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문화 일반이나 90년대 이후 일본만화 특유의 캐릭터 코드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일본식 미소녀만화 취급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심심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신선한 재미가 나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꺼벙이를 즐겼고 심술통이 재밌었고 도깨비감투를 읽었다는 기억이 슬슬 돌아온다. 그렇게, <요츠바랑!>의 재미는 낮설지 않은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5. 03.]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그림자를 그리며 세상에 자리잡기 – <그림자 소묘>[으뜸과 버금 0502]

만화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이다. 그림과 글을 거리낌 없이 섞어 쓰며, 그것도 그런 그림들을 여러 개를 마음대로 공간 속에 분할하고 흩뿌리고 붙여넣는다. 세밀한 그림과 대충 그린 여백 넘치는 작대기 형상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조화를 이루도록 지휘감독이 행해질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 바로,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이다. 만화의 생명은 이야기로서의 재미(말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독자를 끌어들여서 작품을 끝까지 만족스럽게 읽도록 만드는 힘’ 정도로 적당히 규정하고 넘어가자)이고, 그것이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그 속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유대감을 만들어 깊은 울림을 준다. 이야기를 든든한 핵심축으로 놓고, 그것을 가장 확실하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만화의 매력이다.

<그림자 소묘>(김인/새만화책)라는 작품이 소리소문 없이 출간되었다. 홍보는 기본적으로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 문제이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이 아무런 주목도 못받고 그냥 묻혀버리는 경우는 역시 언제라도 안타깝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골에 살던 소녀가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다. 작품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소녀가 서울에 올라와서 미술학원 강사와 친해지며 낯선 사람들이 만든 그 공간 속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이야기, 후반부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다른 소녀가 주인공과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절묘하게 서로 연결되고 대칭되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그림자 소묘>는 위에서 이야기한 만화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만화다. 사람의 존재감이란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미술의 소묘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 개념으로 치환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발상이 신선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 피터팬과 웬디의 그림자 소동을 모티브로 섞어넣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구는 능숙한 구성 솜씨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시각기법들이 총동원된다. 사실 주류 상업만화들이 펜과 잉크로 가는 것에 비해서 콘테와 붓으로 그렸다느니 하는 것은 솔직히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화제 거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콘테 질감의 소묘, 2차원적 형상과 여백의 붓선들이  각각 정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확대시켜줄 수 있는 그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밀도의 소묘 그림체로 묘사되는 인물들, 존재감을 잃었기에 하얀 여백 면과 붓선 만으로 형상화된 소녀. 현실의 거리와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 그리고 그 두가지가 섞여들어가면서 만드는 풍경. 따뜻하고 탄탄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만드는 멋진 ‘만화적’ 표현이다.

물론, 그림 질감의 밀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서 주류 만화에만 너무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약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중문화로서 즐기려는 작품에 대해서는 항상 작품으로 들어갈 진입장벽이 무척 낮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이런 경향을 비웃기 위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첫 챕터를 일부러 집요할 정도로 난해하게 썼다). 특히 만화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생명력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언젠가는 결국 독자에게 도달하고 만다. <그림자 소묘>가 그런 작품이 되어줘야 한다고 믿는다.

[으뜸과 버금 2005. 02.]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커다란 산을 넘어가기 – <태백산맥>(박산하) [으뜸과 버금 0501]

!@#…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잘 만든 경우. 아직 1권이기는 하지만.

===============================

커다란 산을 넘어가기 – <태백산맥>(박산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원작으로 만화로 만든다, 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태백산맥이 어떤 작품인가. 사람과 시대를 관통하면서 재미와 깊이를 두루 갖춘, 자타공인의 최강급 현대사 대하소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을 학원폭력물 <진짜사나이>이래로는 중급 히트는 있지만 확실한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못만들어낸 박산하 작가가 만화로 만든다니… 그렇고 그런 보통의 아동 학습만화가 나와버렸다가 금방 잊혀지겠군, 이라고 속단했다. 사실 그 작가의 그쪽 계열 전작인 <칼의 노래>도 무난하기는 했지만 별로 특별히 볼만한 구석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태백산맥이라는 작품은 무려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에 달려들었으나 미적지근한 결과물만을 내버린 전력도 있고.

그런데, 1권을 펼쳐들고 보니… 이것 의외로 재미있다. 아니, 사실 꽤 잘 만들었다. 처음 등장하는 수많은 주연급 캐릭터들부터가 벌써 엇비슷하고 밋밋한 미소년미소녀가 아니라 강단이 있고 표정 풍부한 ‘한국 아이들’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 역시 적당히 무국적화한 가상공간이 아니라, 한국식 시골 풍경이다. 페이지 연출 역시 무난한 클로즈업으로 점철하지 않고, 역동적이지만 현란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칸 배분을 조율해 나아가고 있다. 한눈에 봐도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말이 되는 ‘작품’으로서 완성 짓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해설자도, 귀여움 떠는 억지 조연도, 남녀관계를 맞추기 위한 무의미한 미소녀도 아직 투입된 바 없다. 줄거리의 압축 역시 이전에 임권택 감독의 극장 영화보다 훨씬 페이스의 배분이 좋다. 염씨 형제, 하대치, 김씨 형제, 명자… 주요 등장인물들의 어린시절이 모자람 없이 촘촘히 배치되어 이후 극의 긴장감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해방후 성장한 염상구의 귀환에서 1권을 마무리 짓는 노련함까지. 뭐랄까, 만약 아이에게 단순히 ‘좋은 만화책’ 정도가 아니라, ‘좋은 책인 것은 기본이고, 만화로서 좋은 책’을 골라줘야 한다면 별 망설임 없이 골라줄만한 책으로 나와 주었다. 

물론 문제는 과연 필자가 재미있어한 만큼, 이 책이 원래 목표로 하고 있는 독자층인 아이들도 좋아할 것인지다. 1권은 그나마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입할 구석이라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모조리 성인이 되어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는 이후 이야기들에 어떤 재미를 느낄지, 모르겠다. 온몸에서 빔이 나가는 마법 필살기로 상대를 쓰러트리거나, 화려한 주먹다짐을 하거나, 아니면 스펙타클한 폭발으로 수놓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전체적 색조를 포함한 시각연출 역시, 아이들이 흔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셀 방식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나아가 줄거리 전개 면에서도, 염상구 정도를 제외하자면 명쾌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대결+성장구도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취향에 맞추기 쉽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의외였던 점이기도 한데, 작품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 그런 요소들을 넣어서 적극적인 자기 타겟 공략에 나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원작의 품격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다시 말하자면 정작 쓸만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서도, 원래의 독자층에게 외면 받아서 묻혀버리는 아쉬운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만화 <태백산맥>은, 문학작품을 적당히 만화로 옮기기만 한 것에서 의미를 찾는 여러 “명작만화”류 들과는 다행히도 스스로 차별화를 꽤하면서 1권을 시작했다. 부디 보다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후 전개에서 원작의 무게에 눌리거나 나태하게 기대어 버리지 않고 본격적으로 만화 <태백산맥>으로서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1.]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빈센트, 그리고 반 고호를 만나다 <빈센트와 반 고호> [으뜸과 버금 0410]

이발소 그림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 또는 회화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고 그림이 거래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빈센트 반 고호. 하지만 반 고호가 살아 생전에는 전혀 해피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에피소드다. 아무도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격렬한 감수성을 알아주지 않았고, 그 결과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덤으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까지 겹쳐서 고생했다. 그리고 유일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도르와 함께 어느 공동묘지에 묻혀서, 사후에 자신의 그림이 천문학적 액수로 거래되는 상황들을 모두 놓쳐버리고 만 비극적 캐릭터다.

<빈센트와 반 고호>(애니북스 / 글라디미르 스무자 작)라는 만화가 최근 출간되었다. 반 고호의 생애를 다루는 이 만화는 반 고호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거센 붓터치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의 명화 속에서 등장한 – 즉 그가 생전에 보았을 그 다양한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로 녹아들어가 있는데(이러한 자연스럽고 묘한 패러디 / 오마쥬를 가능한 것은 그림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라는 서사장르의 매력이다), 초반에 이어지는 평온한 풍경화 위주의 패러디가 결말에 가서는 주로 강렬한 필치의 환상적인 그림들로 바뀌어 나가는 시각적 연출 역시 전개의 극적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빈센트와 반 고호>는 만화의 매력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것의 유희성을 효과적으로 다루어주는 작품이다. 그것은 전혀 경박하지도, 고인의 진지한 삶 앞에 누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위인전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작가는 안 그래도 매력적인 한 사람의 삶을 더욱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살짝 비틀어준다. 빈센트라는 고양이가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소심한 무명화가 반 고호,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치명적인 유혹인 고양이 빈센트. 고양이 빈센트는 재능이 넘치는 화가이자, 거침없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 만남과 우정은 반 고호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충만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구도는 멀게는 시인 베를렌과 아르튀르, 가깝게는 영화 <베티블루>에서도 숱하게 보아온 익숙한 방식이다. 그리고 결말은 항상, 비극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신선한 활력이었던 그 거친 에너지가, 인간의 사회와 규율 속에서 적응하면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거침없는 천재가 결국 먼저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필자가 불만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좋은 만화책들이 홍보부족 또는 전략미스로 인하여 묻혀지는 것이다. <빈센트와 반 고호> 역시 출간 이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도 자료도 신문 기사도 뭣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어느 날 우연히 예술서적 서가에서 발견했을 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안 그래도 경향신문의 주간 만화섹션에서 소개할 좋은 신간을 매주 선정하는 역할을 맡아서 머리에 쥐가 나던 시기였는데, 이 책을 만남과 동시에 기쁨(좋은 작품이니까!)과 야속함(제발, 보도자료라도 좀 돌리지 그랬는가!)이 같이 밀려들어왔다. 좋은 작품이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못 만나서 무관심 속에 묻혀버려서야, 반 고호의 불운한 일생보다 나아질 것이 없을 테니까.

PS. 여담(내용누설 주의): 유럽만화는 드라마틱한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또는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해서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역시 만화는 애들 수준에나 맞아’라고 푸념을 내뱉는 분들에게는, 마지막 공동묘지 장면에 심어져 있는 ‘식스센스’급 반전을 한번 제대로 즐겨보시기를 권한다. 
[으뜸과 버금 2004. 10.]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달빛 기숙사에 환영합니다 – 루나 하이츠 [으뜸과 버금 0409]

만화팬들 사이에서 속칭 하렘물이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있다. 하렘물은 이름이 주는 ‘19세 미만 구독불가’스러운 느낌과는 달리, 러브 코미디물의 하위 장르 가운데 하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여러 매력을 각각 형상화한 다수의 여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한명의 다소 소박한 남자 주인공에게 동시에 매력을 느끼고 접근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써놓고 보니, 별로 간단하지 않은 듯도 하다). 물론 반대의 경우, 즉 한명의 일견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다수의 멋진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렘물은 주로 연애에 대한 현실론보다는 망상(?)으로 가득한 뭇 남녀 청소년들의 성장기 판타지로서 가장 큰 재미를 보았다. 일방적인 연예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인간관계는 지극히 단순화되고, 평범한 주인공은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될 수 있도록 몰개성화되어가기 마련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성숙한 성찰이라는 주제가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목적이 ‘다른 곳’에 있는 장르로 치부받은 것도 사실 당연한 일이다.

<루나 하이츠>(호시사토 모치루 / 북박스)는 하렘물이 주는 대리연애 쾌감과, 현실적이고 성숙한 인간관계가 잘 결합되면 얼마나 멋진 러브코미디가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오랜만의 수작이다. 원래 이 작가는 일관된 작품 흐름을 유지했다. 30대 회사원이며, 영업직을 맡고 있으며, 적당히 사람들 사이에서 맞추어 주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만 스스로 어떤 강력한 출세욕을 불태우지는 않는다. 무난하게 생활을 꾸리고 있지만 내심 뭔가 자극에 대한 욕망이 있는, 하지만 탈선은 그다지 꿈꾸지 않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일상으로 일련의 여성들이 들어오면서 그의 생활이 서서히 변해나가는 이야기 구조다. 그리고 <루나 하이츠>는 그 흐름 속의 최신작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결혼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남자주인공 난조가 작은 신혼주택 건물을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아뿔싸, 신부가 약혼파기를 선언하고 모처럼 무리해서 마련한 집은 텅 비게 된다. 그러자 회사 과장의 아이디어… 인원부족으로 폐쇄직전에 있는 사내 여자기숙사를 이 집으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난조는 얼떨결에 기숙사관리인이 되어, 4명의 직장여성들과 한가족 생활을 하게 된다. 당연히 4명의 여성들은 모두 각각 뚜렷한 개성으로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하렘물 구도이며, 2권까지 왔는데 벌써 그 중 두 명이 공개적으로 대시를, 두 명은 부분적인 호감을 드러내고 있는 정도의 경지다.

이들이 벌이는 일상적인 이야기와 마찰, 연애감정의 미묘한 밸런스는 회사생활이라는 대단히 현실적인 틀거리 안에서 결코 과장되지 않게, 하지만 심심하지도 않게 멋진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에는 과장된 성적 매력이나 성적 연상작용을 시키는 상황과는 거리가 먼 담담한 연출과 그림체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 장르에서는 보통 몰개성/평면성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주인공 역시 여성들과의 열린 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난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적지않은 즐거움이다.

물론 이 작품이라고 해서 하렘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원죄 – 즉 이성의 객체화라든지 하는 한계가 극복된 것은 아니다(생리대를 소재로 하는 몇몇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 생활에 대해서 다소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약점이라든지). 하지만 뭐라고 할까, 하렘물은 하렘물인데 한층 성숙한 하렘물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으뜸과 버금 2004. 9.]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한 만화세대의 부활 – 월간 <허브> [으뜸과 버금 0408]

웰빙의 폭풍이 이 땅에 상륙해서 파괴력을 발휘한지 이제 그래도 좀 시간이 지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웰빙이라는 게 자기 몸 자기 마음 좀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아주 단순한 컨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와 조우했다. 난데없이 요가, 유기농 채식, 아로마 테라피 같은 것들이 행복한 생활의 잣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그리고 덧붙이자면, 꽤나 바가지성 가격표를 하나씩 달고 다닌다. 그리고 결국 최강의 코미디, 패스트푸드점의 ‘웰빙버거’ 붐까지 이어졌다. 진짜 웰빙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얼굴을 하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진짜 웰빙은 특정한 상품, 상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잃어버렸던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다시 깨닫고 추구해나가는 것에 있다.

뜬금없이 웰빙 이야기로 시작했다. 만화 읽는 것을 업의 일부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웰빙은, 좋아하는 취향의 만화들을 지속적, 정기적으로 한 보따리씩 만나서 즐기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취향이 유별나서인지, 묶음으로 존재하는 것 없이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나서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굳이 여기서 한국의 척박한 출판유통 환경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소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튼 수많은 잠재적인 만화독자들을 질려서 만화로부터 떨어져나가도록 한다는 것 정도는 꽤 자명하다. 음… 이런 상황은 어떨까? 원래 만화를 좋아했던 한 세대의 폭넓은 독자층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화책을 펼쳐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먹은 나이에 따른 사회적 환경과 감성의 변화를 충족시켜줄만한 새로운 만화들을 이제와서 다시 찾아나서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든다. 게다가 당시에는 당시 취향을 충족시켜줄 잡지들이 넘쳐났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당시 감동을 주고 자신의 취향을 생성시켜 주었던 그 작가들, 그 감수성은 여전히 그립다. 만약, 그 때 그 작가들 또는 그러한 감수성이 고스란히 나와 함께 나이를 먹고 더 성숙해졌다면 어떨까. 피차 서로 성장한 그런 상태로 다시 만나보면 얼마나 멋진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그런 모습으로 <허브>라는 순정만화잡지가 최근 창간되었다. 80년대의 순정만화붐 속에서 만화에 심취했던 그 폭넓은 여성독자층이 이제는 2-30대가 되어 좀 더 성장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 때, 이들을 위한 만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진, 우양숙, 박연 같은 그 세대에게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이름들이 있고, 강경옥, 김혜린 등의 이름들이 대기자명단에 버젓이 올라와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호흡하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군들도 어깨를 나란히하며 섞여있다. 하지만 작가군이야 어차피 이름정도일 뿐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작품 아니겠는가. <도깨비신부>의 이야기적 매력, <들꽃이야기>의 구수한 냄새, <미시 박>의 성인취향 생활담, <조우>의 현학적이지만 흡입력있는 모양새 등은 초반의 우려를 상당부분 제거해주고 있다.

물론 작품과 기사들의 전체적 방향성이 다소 산만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등, 신생 잡지인 만큼 아직 부족한 지점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 동전의 뒷면은 바로 작가 수익배분 시스템이나 인터넷 중심의 정기구독모집(http://www.c-herb.net) 등 다양한 패기넘치는 실험들이다. 월간 <허브>의 향이 한 세대를 다시 만화에 눈뜨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기를 기원한다.
[으뜸과 버금 2004. 8.]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왕실이라는 오락거리: <궁> [으뜸과 버금 0407]

유럽의 한 섬나라에는, 한 왕자님이 살고 있다. 나름대로 동화같은 풍모가 있는 나라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명예롭게 생활하는 귀티나는 왕자님. …그런데, 그 사람의 어머니되는 여왕님이 워낙 오래 살며 왕직에 눌러앉아있는 바람에 중년이 넘어가도록 계속 왕세자다. 그 왕자의 부인인 세자비는 진정한 ‘공주’의 풍모를 풍기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듯 했으나, 악성 파파라치들에게 쫒기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해버렸다. 예산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왕실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심심치않게 나타나지만, 각종 스캔들과 가십을 소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국민들을 위해서 제단에 올라가야 하는 운명이다. 뭐, 현실이라는 것은 대충 이런 것이다.

<궁>은 한국에 만약 왕실이 있다면, 하는 설정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만화다. 조선 왕가의 혈통이 이어지면서 현대까지 경복궁에서 살고 있는 로얄 패밀리를 상정하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여고생이 할아버지들의 약속에 떠밀려서 왕실로 시집을 가면서 겪는 좌충우돌 소동과 로맨스가 이 만화의 줄거리다. <궁>은 너무 늘어지지도 가쁘지도 않은 깔끔한 연출 패턴, 궁중의례 등에 대한 성의있는 고증, 현대 한국에서 입헌 군주제가 이루어진다면 있을 법한 다양한 일화들의 세심한 편성 등 많은 미덕을 지닌 만화다.

하지만 <궁>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궁>에서 왕실이 담당하는 역할은 기존 여러 ‘들장미소녀 캔디류’ 순정만화 작품들에서 재벌 가문이나 유럽 귀족 가문이 해왔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낮은 신분의 저돌적인 여자 주인공이 높은 신분의 고고한 남자 주인공을 후려쳐서 결국 반하게 만들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인 것이다 (솔직히 대체역사물이라고 보기에는 입헌군주제가 된 한국이라는 역사적 흐름과 그 의미에 대한 고민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여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재미있으니까’ 라고 편리한 해답을 제시하기에는 한국의 왕실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과소평가하는 듯 하다. <궁>에서 왕실이라는 설정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현대 사회에서 입헌군주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 자체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듯이, 실질적인 통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왕실이라는 개념을 양립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입헌군주제다. 입헌군주제에서 왕실은 통치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권위와 정통성을 구체화한 궁극의 마스코트다. 이 사회에서 왕실은 범접하기 어렵고, 권위있고 전통을 따지는 고고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내부에서 권력다툼과 스캔들이 벌어지는 대가족이다. 한마디로, 해당 국가의 전통문화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운 부분들로 잘 포장된 최고의 오락거리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훌륭한 오락거리로서 만들어진 제도인 입헌군주제 왕실을, 트렌디 연애물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도입해 들여온 셈이다. 좋은 선택이다.

<궁>은 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도 다분히 많다. 게다가 tv드라마로 제작 진행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락으로서의 왕실이라는 본래의 본분을 넘어서서 갑자기 심각한 노선으로 돌변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많은 재미를 줄 수 있는 멋진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4. 7.]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북한, 결국은 사람 사는 곳 – <남측 손님> [으뜸과 버금 0406]

  90년대 중반, ‘라구요’라는 대중가요가 잔잔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한번쯤 북녘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한숨 쉬시는 아버지 – 여기까지는 단순한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노래가 특별했던 것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 덕분에 그 노래만은 잘 아는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무슨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란 말인가.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애매할 수 밖에 없다. (일상생활 속으로 완전히 뿌리내린) 뭔지 모를 소위 민족적인 사명이라는 것과, 현실적으로 전혀 다른 낯선 나라라는 두 가치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후세대의 모습이다.

  오영진의 <남쪽손님>은 북한 생활상에 대한 관찰로 이루어진 만화지만, 사실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가 경수로 건설하러 출장갔던 북한. 작가의 자화상인 오대리에게 북한은 무슨 염원의 땅이 아니다. 그 곳에는 모든 것을 뛰어넘은 뜨거운 동포애가 넘쳐나기보다는, 엄격한 제한사항들에 대한 조심성과 서로에 대한 차이 확인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7-80년대의 중동처럼, 이곳 역시 단순한 출장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3국인이 아닌 ‘남쪽 손님’에게 북한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평범할 수 없다. 북쪽과 남쪽의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기념비부터 세워놓기 좋아하는 습성부터 시멘트 빼돌리기, 막무가내로 자존심 건드린다고 고집부리는 아저씨까지. 심지어 ‘수령님 살아계실 때가 좋았지’라는 북한 주민의 대사와, 당장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박통 때가 좋았지’라는 푸념의 그 섬뜩한 유사성이란! 특히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듬뿍 살린 낙서체의 열린 선들과 짧은 호흡의 일화들이, 마치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장 같은 느낌으로 더욱 그곳에서 겪은 일들의 역설과 희극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강박적인 민족주의라든지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하는 정치논리 또는 맹목적인 통일 타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이 보고 겪은 만큼의 북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이사이에 교차하며 등장하는, 전문필자가 집필한 북한 사회와 문화에 대한 설명문 역시 이 책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동질감이니 형재애니 하는 것은 곤란하다.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를 가감없이 서로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 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돼지 김일성이 지배하는 악의 제국이 등장하는 70년대 <똘이장군>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지만, 그 빈 자리에는 아직 새로 들어선 것이 많지 않다. <남쪽손님>의 오대리처럼 우리들도, 그 곳에 이쪽과 비슷비슷하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배워나가는 세상 – 이천년대 한국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으뜸과 버금 2004. 6.]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으뜸과 버금 0405]

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만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설마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아직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시는 시대착오의 화신같은 분들은 다행히도 거의 멸종하셨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겁을 주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는 ‘유머’라는 이미지가 당장 떠오르는다고 대답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화를 영어에서 지칭하는 용어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시피 ‘코믹스’다. 의미 그 자체에 코믹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이 용어는 만화가 지난 역사동안 간직해온 대표적인 얼굴이 (좋든 싫든) 유머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를 통해서 폭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장르보다 더 쉽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유머를 단지 만화의 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아예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르를 흔히 ‘개그만화’라고 부른다. 개그만화는 주어진 단위 지면 안에서 확실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때로는 200여 페이지짜리 책 한권, 때로는 한 페이지에 불과한 그 속에서 어떻게 독자들의 웃음보를 터트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발한 소재의 발굴이며, 다른 하나는 이야기의 리듬을 조절하여 독자들의 몰입도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특히 매일 4페이지 가량씩 연재되는 표준적인(?) 스포츠신문 개그만화의 경우, 위의 두 가지 요소를 거의 공식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독자들에게 친숙한 짐짓 진지한 상황을 때로는 있는 그대로, 또는 만화적 비유를 통해서 약간 틀어서 점차 고조시킨 다음, 마지막 한칸을 통해서 화려한 반전을 주며 독자를 놀래킨다. 그 마지막 반전 장면이 성공하면, 독자는 작품에서 눈을 떼면서 순간 폭소를 터트린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개그 리듬은 어떨까. 반전이 한박자 일찍 찾아오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짤막하게 개그를 반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엇박자인 셈이다. 달변의 자타공인 개그맨이 화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보다는, 어눌하게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싶으면 그 개그를 다시 한번 구차하게 반복해주는 느낌이다. 전자의 경우는 한번의 폭소를 폭발시키는 것이 장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야기가 끝난 다음까지도 계속 키득키득대고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할 듯 하면서도 사실은 일상적이고 소심한 상황으로 수렴되는 소재와 결합할 때, 이런 ‘허허실실’ 개그 리듬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포츠서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트라우마>라는 만화는 바로 이런 만화다. 엇박자의 개그와 ‘쪼잔한’ 캐릭터들의 향연 속에서 4페이지 단위로 매일매일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여 많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리고 이들의 기대감 속에, 우선 두 권의 책으로 묶여서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물론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하루에 4페이지짜리 에피소드 한개씩 찾아보는 일상적 즐거움의 리듬은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대신에 각 권 400 페이지를 넘는 두터운 레퍼토리의 융단폭격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독자들의 웃음보를 공략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재능이나 발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부지런한” 개그만화다. 그 부지런함은 바로 개그 리듬을 재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때로는 실패할 때 – 즉 안 웃길 때 – 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충격과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은 어떤 경우라도 즐거움을 주고야 만다. 개그만화로서의 미덕, 최종목표는 모로 가나 도로 가나 결국 채워넣고야 마는 <트라우마>의 스타일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으뜸과 버금 2004. 5.]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무지개 저편으로 – <미스터 레인보우> [으뜸과 버금 0404]

무지개 저편으로 간 만화 – <미스터 레인보우>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예를 들어 비가 온 직후처럼 수분이 채 증발하기 전인데, 갑자기 햇살이 비추는 순간이 있다. 이 때, 운이 좋으면 빛이 대기중에서 파장길이에 따라서 분광현상을 일으키면서 커다란 곡선을 그려내는 경우가 있다. 생활용어로, 이것을 우리는 ‘무지개’라고 부른다. 무지개를 보면 괜스레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비온 직후 찬란한 햇빛과 함께, 마치 대자연의 힘이 우리에게 희망의 선물을 던져준 듯 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대홍수 이후 신과 노아의 약속의 징표로 여겨졌으며, 서양 민담에서는 무지개의 ‘저쪽 끝’에는 행복과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지개의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생식에 얽매인 사랑을 넘어선 사람들, 바로 동성애 인권운동의 현장이다. 동성애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깃발은 78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대중적인 코드가 되었다. 아마도 그 무지개의 저편에는, 이들이 꿈꾸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그런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레인보우>(시공사, 1권 발매중)의 주인공은 동성애자다. 사실 ‘야오이’라는 장르가 만화팬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지 오래인 지금, 그것이 무슨 특징이 되겠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느 동성애 판타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미스터 레인보우>의 하덕구는 생활인이다. 지금 이곳, 한국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인 것이다. 고스란히 있는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커밍아웃을 피하고, 좁디 좁은 동성애자의 커뮤니티에서 위안을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세계 속에서 사랑을 찾아나선다. 밤에는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잔뜩 부풀려서 폭발시킬 수 있는 직업인 게이바 여(…)가수를 하면서, 낮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는 사회에서 ‘정상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유치원 교사를 한다. 정체성과 사회적 삶을 동시에 유지하려면, 여러모로 바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꽤나 착한 사람이다. 가끔 희화화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코믹한 상황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레인보우>는 결코 자신의 주인공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한 유치원생의 잘생긴 아버지에게 연모의 정을 불태우며 소란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사랑을 고민하는 덕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나아가 그의 주변 인물들 조차도 코믹하고 궁상맞으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고 싶은 사람들 투성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덕구를 좋아했던 한 후덕한 여학생, 덕구의 할머니, 허영끼 많은 유치원장, 덤덤한 동료 여교사… <취중진담>등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편안해진 펜선과, 기교를 가다듬은 화면 연출이 안정감 있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동성애와 성전환증의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든지, ‘남성답지 않게 여성스러움’ 등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든지 하는 등은 지적의 대상이다. 나아가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 전개의 호흡도 이후의 발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부족했던 부분들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독자들의 상상력 속에서 완성을 시켜야 할 듯 하다. <미스터 레인보우>의 작가는 최근 급성 폐렴으로 인하여, 무지개의 저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좋은 작품, 더 좋아질 것이 한없이 기대되던 작품을 중간에 남겨두고 가신 고 송채성씨의 명복을 빈다.

[으뜸과 버금 2004. 4.]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으뜸과 버금 0403]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르겠다. 아마도 피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기만이 가능할만한, 엄청나고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꾸어보면, 모두의 관심사로 탈바꿈한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강풀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강도영의 <순정만화>는 바로 이것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다. 

  <순정만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디어 다음>에 연재중인 만화로, 이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0여 화가 문학세계사에서 최근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다음이라는 막강한 인터넷 포탈의 힘이 아니더라도, <순정만화>는 어차피 히트를 기록했을 법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커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솔로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떻게’라는 과정은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우여곡절, 여러 인연과 사연들이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는 흐름이 결국 큰 맥락에서는 사랑이라는 큰 차원으로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을 독자들이 깨닳을 때, 더 이상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는 못배긴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이런 큰 원칙을 좋은 작품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자신의 사이트 강풀닷컴을 비롯해서 여러 온라인 만화지면을 통해서 수련된 연출호흡은 모니터 친화적이며, 동시에 인터넷 독자들의 독서 및 반응 패턴을 정확하게 맞추어주고 있다. 한 회의 연재분량은 하나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끊어나가며, 그 속에서 자기 완결적인 기승전결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아가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방식 보다는 한 페이지 안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단지 수평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패턴에 함몰되지 않고 연속극 방식의 내용연결로 이야기의 전개를 축적하여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짧은 호흡을 보완해나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말하다 보니 대단히 어려운 개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을 잘 다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능숙하고 잘 만든 만화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연재시에 <순정만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때 과연 살아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힘이 다음 페이지면 다음 이야기가 있는 단행본에서도 통할 것인가. 또한 마치 가려진 부분들을 조금씩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던 한 페이지 내에서의 스크롤 방식이, 여러 페이지로 분절된 책 속에서 과연 매력을 발할 것인가. 나아가, 모니터 화면의 저해상도 불빛에 맞추어 놓은 여유로운 컬러 그림과 경계없는 칸의 매력이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혀서도 그 투박한 멋을 발휘할까.
  책을 펼쳐본 결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재미있었다. 이때, 필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의 기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만화의 진정한 힘,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덕분에 필자도 이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사랑 이야기의 다음이, 궁금해 미치겠다.
[으뜸과 버금 2004. 3.]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TAKE FIVE – 밴드 만화의 미덕 [으뜸과 버금 0402]

TAKE FIVE- 밴드 만화의 미덕

김낙호 (두고보자 편집위원)

이야기만화에는, <드래곤볼>, <슬램덩크>등의 대형 히트작으로 대표되는 소년만화라는 커다란 장르가 있다.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중심줄거리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그것을 함께 극복하도록 돕는 동료들을 얽어넣는 공식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주류장르다. 이 장르에서 강력한 적과의 대결은 필수적이며, 동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멋진 명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외계의 강자들, 그리고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 뭉친 주인공과 친구 용사들… 이 결합하면 <드래곤볼>이 되는 이치인 것이다. 이처럼 지구, 나아가 전 우주를 걸고 맞짱 싸움을 벌이는 환타지물도 있지만, 만약 나름대로 현실적인 환경설정 속에서 그런 재미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포츠물이 있다. 그 다음은 좀 더 원초적인 학원폭력물도 생각난다. 하지만 이미 그쪽은 너무나 많은 작품에서 써먹었고… 좀 더 특이하면서도 일상적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온 아이디어중 하나는 분명히, ‘밴드’다.

우정이라는 측면에서 먼저 볼까? 밴드는 기본적으로 팀이다. 팀웍이 밴드의 ‘힘’의 핵심이다. 게다가 각 악기파트별로 뚜렷한 개성도 있어서, 기타도 보컬도 드럼도 각각 다른 성격의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인원 역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3-5인조 정도로 편성할 수 있다. 대결은 어떨까. 밴드 음악은 서로 겨룰 수 있다. 누가 더 연주실력이 좋은가, 더 작곡을 잘하는가, 관객을 더 감동시킬 수 있나… 경쟁이다. 그리고 심지어 대화합의 발판도 확실하다. 뜨거운 경쟁을 펼치던 실력있는 밴드들이, 결국에는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된다’… 얼마나 감동적인 화해의 장인가.

TAKE FIVE(유상진 작 / 학산문화사 / 현재 2권 발매중)는 이러한 지점에서 탄생한, 영화판 용어로 하자면 ‘웰메이드’ 소년 밴드만화다.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서 부모 몰래 예고로 전학을 가버리고, 그 결과 집에서 쫒겨난 주인공 이주인은 모범적일 정도로 소년만화적인 주인공이다. 넘치는 열정, 하지만 장래에 대한 고민이 있고 아직은 실력도 그리 썩 뛰어나지 않은 캐릭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캐릭터를 성장기도로 올려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짠, 하고 수상한 여주인공의 등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더 큰 성장과 목적을 위한 밴드 결성,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밴드간 대결. 그 과정은 너무나 능숙하고 매끄러워서, 보편적인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사실 가 표방하는 ‘재즈 만화’라는 것은 그다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뭔가 전문적인 ‘개성’으로서 소년만화에서 흔한 락보다는 특이하게도 재즈를 택한 것이고, 그 선택은 어설프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매니악하지 않은 정도의 전문지식 수준 안에서 나름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유머, 적절한 과장, 적절한 고뇌, 적절한 갈등, 적절한 애정관계. 이 모든 완급이 신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특이하고 전위적인 개성은 아니지만, 좋은 주제와 좋은 연출의 웰메이드 장르만화의 미덕을 갖춘 즐거운 만화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의 진행이 마음에 들고,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으뜸과 버금 2004. 2.]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필살기로 한자 익히기 – 마법천자문 [으뜸과 버금 0401]

필살기로 한자 익히기  – 마법천자문
(스튜디오 시리얼 / 2003, 아울북 / 현재 2권까지 출간중)

김낙호 (만화연구자/두고보자 편집위원)

  아이들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방금 삼십분전에 시킨 심부름이나 구구단 같은 것은 어느틈에 깨끗하게 잊어버리지만,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니 벨로시랩터니 하는 그 길고 긴 공룡 이름들은 고고 생물학자들보다도 더 줄줄 외우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이 애들은 여하튼 잘 외우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생물학 도감을 들이밀면 역효과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몰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학습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답은, 그렇다면 어디에 몰입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이 부분은 약간 더 어렵다(만약 확실한 답을 알고있다면, 한국땅에서는 쉽게 떼부자가 될 수 있으리라). 필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접근을 좋아하는지라, 그 해답은 “자기들의 생활과 관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들이 무슨 생활? 모르시는 말씀. 아이들의 생활은, 부모들이 폄하하는 것 이상으로 심오하고 복잡미묘하다. 서로 다른 개성과 능력에 의한 경쟁관계, 성장, 강한 것에 대한 동경, 점차 복잡미묘해지는 인간관계 등이 여과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다가오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생활경험에 기반한 욕구들을 반영하는 환타지를 하나의 줄거리로 담아내는 작품이라면,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해서, <포케몬>의 히트는 단지 피카츄가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그 지점을 확실하게 공략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뭐든지 – 심지어 한자공부라도 –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로 그런 책이 나오고 말았다. <마법천자문>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서유기의 주인공들을 바탕으로 하는 소년만화 스타일의 작품으로, 필살기 중심의 대결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소년취향 만화의 단골소재인 필살기라는 개념은, 사용자의 개성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며 그 상성이 다르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승패결과를 조합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필살기로 한자를 사용한다면? 허공에 소(小)를 쓰면 상대가 작아진다든지, 화(火)를 쓰면 불길이 치솟는다든지, 그것을 수(水)자를 써서 물벼락으로 꺼트린다든지 하는 대결의 묘미가 생겨난다. 더 어려운 한자를 상황에 맞게 구사할 줄 아는 자가 바로 강자이며, 그러한 고수가 되는 것이 바로 성장의 척도가 된다. 악의 마왕에게 맞서기 위한 방법은 주인공의 끊임없는 수련 – 즉 한자공부다.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능숙한 장르법칙에 따라서 깔끔하게 연출되는 우정과 대결, 배신과 믿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모험. 그 모험에 동참하는 어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그 한자를 되뇌이고, 종이에 끄적거리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런 방식이라면 천자문이 아니라 사서삼경이라도 어느틈에 다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학습만화의 미덕은, 단순히 얼마나 좋은 정보가 많이 들어있는지가 아니다. 얼마나 대상독자들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는 재미를 주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배우도록 유도할 수 있는가다. 능숙하고 매끄러운 이야기, 깔끔한 화면연출,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이라는 전통적인 만화 기반 위에, 한자마법 필살기라는 새로운 요소를 섞어넣은 <마법천자문>은, 홍은영의 <그리스/로마 신화>의 아성을 이어나갈 차세대 기대주로서 손색이 없다.
[으뜸과 버금 2004. 1.]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전쟁의 이유를 유머로 캐묻다: 십자군 이야기 [으뜸과버금 0312]

전쟁의 이유를 유머로 캐묻다: 십자군 이야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독으로 독을 치유한다” –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자, 수많은 전쟁범죄을 자행한 자의 초라한 말로가 뉴스를 타고 있는 지금 생각나는 구절이다. 현역 석유재벌인 부시라는 자가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마음대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사람들을 학살해도 용납이 되는 이상한 시대지만, 적어도 자기들끼리의 심오한 이해관계 충돌 덕분에 이 세상에서 독재자가 한명 쯤 줄어들었다.

전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최근 출간된 <십자군 이야기>(김태권 작, 길찾기 출판사 / 전6권 예정 / 현재 1권 발매중)는, 전쟁의 이유를 직시하고 있는 교양만화다. 이 만화의 시각은 처음 몇 페이지에서 이미 명확해진다: “문명의 충돌? 문명끼리 어떻게 충돌합니까… 문명인들이라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해야 할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미개한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 그것이 바로 로마시대 이래로 내려온 세계의 역사라는 말이다. 무지의 씨앗을 뿌려놓을 때 사람들은 충돌과 오해의 악순환 속으로 빠져들며, 그 와중에서 어떤 세력들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자기 잇속을 챙겨나간다.

<십자군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중세 서양의 십자군 전쟁의 과정의 소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풍자에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는 현재 21세기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동방과 서방, 이슬람의 정치권력 관계의 패턴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금 TV를 틀면 화면에 나올 법한 뻔한 정치인들과 그들의 행태가 그대로 이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뭔가 팍팍하고 계몽적인 느낌 – 다시 말하자면, “재미없는” 만화일 것이라는 걱정은 처음부터 접어놓기를 바란다. 작가가 매 순간마다 언어유희와 상황 개그를 일삼으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오는 실력은, 마치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고우영 삼국지>과 <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을 섞어놓은 듯 하다.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아마도 부시의 선조인 듯한 호전적인 나귀와, 서방과의 우호관계와 자주적 실리 사이에서 희극적인 고민을 계속하는 동방의 어떤 황제, 각자의 잇속을 위해서 경주하는 여러 기사들이 벌이는 난리판 그 자체가 이미 일류 코미디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중세 서양화 풍으로 구사된, 단순하면서도 미려한 그림은 이 작품의 또다른 미덕이다. 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시대를 묘하게 왜곡되어 있는 그림들의 연속으로서 연출해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적 연출 덕분에 설명 부분과 드라마 부분의 경계선이 한층 희미해지면서,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유익한 교양정보의 전달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종시에 훌륭하게 충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서 작가서문의 마지막은 한 인용구절로 끝나고 있다: “기억은 약한 자들의 마지막 무기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이 바로 <십자군 이야기>가 개인이든 대여점이든 도서관이든, 모든 서가에 꼽혀있여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다.

[으뜸과 버금 2003. 12.]

====================================================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 Copyleft 2003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