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거장의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기획회의 050502]

!@#… 5월 2일자 기획회의용 원고(따라서 2005.5.2까지는 이동불허. 그 정도 네티켓은 알아서 다들 지켜주리라 믿는다). 아직 개제안된 원고를 사전공개하는 건 평소 신조나 일반 도의에 어긋나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편집부도 너그러이 윤허해주겠지.

!@#… 여담이지만, 나는 만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화백은 그림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화백이라는 용어를 이쪽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왠지 미술계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시 – 즉, 만화가도 그림 제대로 그릴 줄 안다는 식의 소극적 선언같이 들린다. 특히 고우영 선생같은 길이 남을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튼,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종목을 초월한 극존칭인 ‘선생’으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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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거장의 남겨진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2004년 4월 25일, 한국 만화의 큰 별이 떨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니 여러 시대를 관통하면서 계속 풍미해온 명실상부한 거장 고우영 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일찍이 70년대에 스포츠신문이라는 공간에 연재만화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소개한 <임꺽정>을 필두로, 마지막 그날까지 항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역으로 특유의 해학과 입담을 발휘했다. 갑자기 이 지면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 투의 평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고우영이라는 이름이 남기고 간 한국만화의 걸작들을 두 편만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발간된 수많은 삼국연의 판본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잘 팔린 것은 이문열 삼국지다. 하지만 가장 재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고우영 삼국지>(애니북스, 전10권)를 선택하겠다. 단지 오락성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가 뛰어난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역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이어서 비단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뿐만 아니라, 관우와 제갈량 사이의 신경전이라든지 손씨 가문 여인들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하는 설정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며, 우리 독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우영식 고전 서사연출은 이 작품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으로,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작가의 해설은 동시대(현대)의 여러 맥락들을 섬세하게 풍자하고, 내부의 주인공들 역시 그 과정에 천연덕스럽게 동참해버린다. 단순히 극이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기분 좋게 세상사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고전은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의 전통은 스포츠신문 만화의 터주대감 같은 이미지로 굳어있는데, 고우영 만화가 바로 그 시조이자, 선구자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강의 현역선수였던 것이다.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탁월하다.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필치는 이미 달인의 경지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등장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고우영 삼국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가 다소 급작스럽게,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유씨 3형제와 제갈량이라는 주인공들이 극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첫 시작부분에서 황건적을 다룰 때 보였던 평범한 민초들에 대한 애착이 연재 종결의 시점에서는 다소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긴 연재기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생긴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故고우영의 사극들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창작물인 <일지매>(애니북스, 전8권) 역시 원전이 있으리라는 오해를 종종 사고는 한다. <삼국지>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이 그만큼 유명 고전들과 견줄 만큼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버려진 서자 일지매가 청국과 일본에서 각종 신기한 기술을 익혀서 의적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일지매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당대 조선조 양반사회의 부패, 청나라와의 국제 정세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비록 권말해설에서 평론가 박인하가 지적했듯이 그 모순에 대한 분노가 왕조 자체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일지매라는 일개 의적(!)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당연한 행보일수도 있다.

<일지매>에는, 훗날 <삼국지>에서 완성되는 능청스러운 재담의 원형이 가득하다. 칸과 면을 가지고 하는 만화적 장난은 물론, 현실세계의 맥락을 자꾸 환기시키는 농담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것 역시 여기서 이미 선보이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여장을 일삼는 미형 남자주인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설정도 고우영식 재담 속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지한 극 전개가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데, 그 분위기 전환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지매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양반의 부패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지매>는 오랜 연재기간동안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만큼 본질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기에, 연재 후 거의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봐도 그 재미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효과를 지닌 작품들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물론 장기 연재작이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너무 확연하게 바뀌어버린다거나, 때로는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러가버린다든지, 주요 이야기 단위 간의 균형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그림이야기 솜씨라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명예의 전당감인 여러 작품들이 그의 업적을 기릴 뿐이다. 고우영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서 한국만화의 더욱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숙제가 이제 후배 세대에게 남겨졌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관우와 임꺽정이 그를 만화의 천국에서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하지만 2005.05.02까지는 이동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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