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성공기: 이두호 만화사

!@#… 작가론 책 “조선을 그린 이두호”(클릭)에 들어간 원고. 이전에 공개한 고우영 작가론 책 원고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인세 계약으로 묶여있지 않고, 출간 후 1년도 훌쩍 넘었으니” 카피레프트 처리. 도판이 쑥쑥 들어가고 예쁘게 편집된 완성형은 종이책을 구하셔서 다른 필자 분들의 훌륭한 글들과도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시고, 여기는 늘 그렇듯 제출원고 버전. 개인적 선호로는 치바데츠야 & 시라토산페이 모방기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노골적으로 풀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지면 성격상 언급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

 

장독대 성공기: 이두호 만화사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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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또한 누군가의 정의 -『아돌프에게 고한다』[기획회의 261호]

!@#… 뭐 어떤 분은 대운하도 정의라고 생각하고 삽질하는 거겠지.

 

그것 또한 누군가의 정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은 정의를 추구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급적이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자 한다. 스스로 알고 있는 어떤 거창한 이상적 정의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하다못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의라고 자조하며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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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 새 글 완성하기 애매한 시기에는, 묵은 글 방출. 이전에 약속한 대로 고우영 특별전의 일환으로 같이 출간된 고우영 작가론 서적 “고우영 이야기”에 실린 꼭지를 카피레프트 처리한다(애초에 인세 계약으로 묶여있지 않고, 출간 후 1년도 훌쩍 넘었으니). 애당초 작품세계 분류와 캐릭터 매력요소 분석 쪽의 이야기고, 기본적으로는 고우영 선생 서거 당시 몇몇 지면에 썼던 기사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 업그레이드한 물건. 도판이 쑥쑥 들어가고 예쁘게 편집된 완성형은 종이책을 구하셔서 다른 필자 분들의 훌륭한 글들과도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시고, 여기는 늘 그렇듯 제출원고 버전.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고우영의 작품세계와 캐릭터들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가 고우영을 이견의 여지없는 한국 대중문화의 거장 반열에 올려준 것은, 그의 폭넓고도 뚜렷한 작품세계가 남긴 커다란 족적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고우영 작품세계의 큰 갈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며, 고우영 만화의 얼굴격인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집중 조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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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에서 완성된 요괴물 – 게게게의 기타로 [기획회의 260호]

!@#…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만화의 60년대는 괴수급 작가들의 잔치상.

 

시작점에서 완성된 요괴물 – 게게게의 기타로

김낙호(만화연구가)

일상 속에 함께하는 이질적인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상상은 세계 곳곳의 문화적 원류다. 어떤 존재들은 별세계의 권좌에 올라앉아 인간세계를 내려다보고, 또 다른 존재들은 혼령의 형태로 인간계와 교류하며, 어떤 존재들은 흔히 드러나는 인간과 여타 동식물과 다른 별개의 방식과 능력으로 진화한 또 다른 생물들이다. 문화권과 종교에 따라서 처음 경우만을 신이라 부르는 경우도, 혼령까지도 신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 번째인 또 다른 생물에 대한 상상의 경우, 신이라는 초월적 경외를 부여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좀 더 불길한, 하지만 여전히 매혹을 일으키는 다른 명칭을 붙인다. 바로 ‘요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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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 무한의 공간 속을 날다 [팝툰 8호]

!@#… 어째서인지 공식홈의 목차에서조차 누락되어있지만(-_-;), 팝툰 8호에 실린 뫼비우스 특집글 중 capcold가 쓴 부분. 그러고보니 capcold의 경우, 뫼비우스의 ‘잉칼’을 99년에 한국어 출간한 교보문고 출판부의 ‘그래픽 노블’ 라인에 웹제작자 겸 조언자로 참여했던 바 있다. 도대체 이놈의 인연이란; 어차피 위키피디아에만 가도 다 있는 약력 중심의 소개만 난무하는 게 싫어서, 아예 이렇게 ‘작가론’을 써버렸음.

뫼비우스 – 무한의 공간 속을 날다

김낙호(만화연구가)

거장이라는 칭호는 한편으로는 경외감을, 한편으로는 회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특히 후자의 이유는 보통, 거장이라는 타이틀은 알려졌지만 정작 왜 거장으로 간주되는지 당대의 맥락 속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세계 만화계에서 그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별다른 이견 없이 거장으로 꼽히는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를 한국에서 접하는 것도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이번 시카프 축제에 초청되어 한국 땅을 밟기까지 했지만, 고작(?) 소설 ‘나무’의 삽화라든지 타임마스터나 에이리언의 세트 디자인 정도 밖에 키워드를 꺼내오지 못한다면 솔직히 쉽게 과소평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본직이 만화가이건만, 정작 만화 이야기가 턱없이 부족하면 더욱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왜 뫼비우스가 세계적 거장으로 평가받는 것인지, 뫼비우스 만화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인지 한번 간단히 몇 가지 키워드로 짚어볼까 한다. 무한의 공간 속을 날아다니는 아이러니컬한 구도자, 뫼비우스의 이상한 세계에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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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충만, 달라이 라마 강연 듣고 오다.

!@#… 티벳 불교의 최고 승려이자 임시정부 수장인 14대 달라이 라마가 위스콘신 매디슨을 방문해서 ‘긍휼: 행복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대중 강연.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벳을 무단점령해서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후(뭐 뻔한 레파토리… 강제이주, 종교금지, 자국어 사용금지, 전통문화 부정, 당에 의한 개발정책 등등) 59년에 정부인사 및 12만 티벳인들과 인도로 탈출하여 망명 임시정부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임시정부 활동의 방식은 정치투쟁보다는 티벳의 정신과 문화를 보존/육성하기 위한 정착촌과 학교 설립 위주로, 철저한 비폭력주의. 그 덕분에 6-70년대 히피이즘의 와중에서 아이콘적 지위로 올라서고, 90년대에는 구습을 타파하고 티벳의 민주화를 위한 정치체제 개혁도 다수 강행. 그 사이 중국은 티벳땅에 괴뢰정권을 수립운영. 이런 험난한 와중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전 세계를 돌며 평화에 대한 강연을 하고 기금을 모아 학교, 사원, 박물관 등을 건립하기를 수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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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하워드 진 강연 듣고 오다.

!@#… 미국 최강의 빨갱이(!)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의 강연을 듣고 왔다. 뭐 알 사람은 다 알다시피, ‘미국 민중 저항사’, ‘오만한 제국’,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같은 이 분야 최고 명저들의 주인공이고, 그 일을 한 50년 넘게 해왔다.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쪽에서 만든 Haven’s Center에서 주는 비판연구 평생 공로상(센터 대표의 말이 걸작이다: “이 상은 비판적 학문 연구의 노벨상이다. 그들은 십몇억씩 상금도 주지만, 우리는 좌파라서 그런거 없다”) 수상 기념 특별 토크, ‘역사의 활용과 테러와의 전쟁’. 동네가 매디슨이다 보니, 행사장이 미어터졌다… -_-;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물론, 새파란 신입생 티 풀풀나는 젊은이들까지. 오죽하면 하워드 진이 인사말로, “매디슨에 오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고 이야기했겠나. 여튼 하워드 진의 실물을 본다는 것은 사람이 나이도 나이인지라 날이면 날마다 올 기회가 아니라서 긴 줄 기다려가면서 여하튼 착석.

그리고 강연 시작. 물론 이젠 늙어서 말도 느릿느릿 힘겹게 이어가는 할아버지지만, 여전히 현장 활동가의 포스와 대가 특유의 여유까지 겸비. 강연 소감이라면… liberalism가 아무리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conservatism의 반댓말로 쓰인다고 할지라도, 진짜 progressive의 포스에는 쨉도 안된다는 것. 오래오래 살아서, 더욱 더 세상에 공헌하시길.

(추가: kabbala님이 찾아주신 강의 동영상. 역시 유튭! 하지만 아쉽게도 본강연 부분만 있음)
(추가2: 루나님이 본 강연 중 몇 대목을 발췌 번역해주셨음)

!@#… 발표 내용이야 뭐 항상 책에서도 하던 이야기인 “현재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망각하지 말도록 교육을 하자”니까 그렇다치고… 질의응답에서 몇토막(녹음해온 것이 아니라서, 적당히 의역).

Q: “정부의 문제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도대체 사람들이 알아듣길 거부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그건 당신이 제 처남을 못만나봐서 그러는 겁니다.”
…그 분야 최고 대가가, 수십년동안 자기 처남 하나 못 설득했다는… 그만큼 사람을 바꾸는 건 힘들다는 이야기. 그리고 말로 안되면 책을 선물해라, 라고 이야기한 후 책을 한 열 권 이상 주루룩 소개.

Q: “대학와서 한 3년동안 저항운동을 한 것만으로도 각종 압박에 시달리는데,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계속 해나가셨습니까. 어떻게 해야 계속할 수 있을까요.”
A: “가끔 야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십시오. 저도 100% 선동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을 믿으십시오.

Q: “항의 운동(시위, 팜플렛 등등)으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항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A: “모든 항의는 항의 당시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이고 모여서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어쩌면 내일, 어쩌면 내년, 어쩌면 그 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항의는 계속 해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운동이 필요하지만, 항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고 그 다음은 무엇이다 식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이죠.

!@#… 잘 기억해뒀다가 나도 50년 뒤에 써먹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그 때 가서 이런 질문들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싶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2010.1. 추가) PS. 삼가 고인의 명복을.

미디어 아트의 대가, 백남준 별세

!@#… 미디어 아트의 거두, “비디오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백남준 씨 별세. 항상 동시대에 살기보다는 (많이) 앞선 시대에서 꿈을 꾸던 사람이었건만, 왠지 스러지고 나니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한국 만화의 거장, 故고우영을 돌아보다 [한겨레21/050504]

!@#… 이번 주 한겨레21에 들어간 글. 이번주, 각 시사주간지들마다 문화면은 이 이야기였을터. 故고우영 선생 돌아보기. 그런데, 어차피 ‘고우영 만화와 함께 한 추억’은 60년대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듬뿍 애정어린 눈으로 써내고 있고, ‘작품 연보’는 자료만 열심히 뒤지면 신문기자들이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capcold는 좀 다른 부분에 집중하기로 한 거다. 바로, “고우영 만화가 어떻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추억담보다는 훨씬 메마르고 연보보다는 덜 정보적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이야말로 누군가가 확실하게 짚어줘야한다고 생각하니까.

!@#… 여담: 한겨레21 기사에서는,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이라는 대목이,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라고 편집되어 나왔다. 헛, 소년만화잡지라는 말이었는데, 편집기자님이 잡지 이름으로 아셨나보다. 하필이면 작품이 연재된 잡지의 실제 이름은 <새소년>.

결과적으로 절묘하게 중간에 걸친 오타가 되어버렸다. OTL

(어디선가 누군가는 “저 인간, 잡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전문가 행세야! ㅋㅋㅋ” 하면서 비웃음을 던질지도)

!@#… 여튼 대체로 그렇게 해왔듯이, 여기에 올리는 것은 원본. 잡지에 실제 실린 데스크 거친 버젼과는 대소제목, 문단구분 등이 약간씩 다를 수도 있음. 아니, 다름. -_-; 

!@#… 본문에 언급한 ‘노가리 만화’라는 명칭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공식 용어로 정착시켜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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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의 거장, 故고우영을 돌아보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취향변화가 극심하고 상호모방과 가치절하가 만연되어 있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거장’이라는 호칭이 부여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여러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고르게 명작을 탄생시켜야 한다.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거머쥐어야 한다. 나아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해당 문화장르 자체의 사회적 입지까지 향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를 충족시킨다면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4월 25일 타계한 故고우영 선생은 대중문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중문화적인 분야인 만화가 배출한 진정한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향년 67세, 그 중 50여년을 고스란히 만화에 바친 거장의 빈자리는 크다.

고우영 만화의 발자취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만화계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각별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몇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초창기의 명랑만화들이다. 이 시기에는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당대 명랑만화 문법에 충실했는데, 익살스러운 모습의 박사와 아들의 좌충우돌 모험을 그린 <짱구박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72년 <임꺽정> 연재를 필두로 성인취향 연재만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러한 작품들의 확고부동한 히트는 현재까지도 하나의 공식으로 남아있는 스포츠신문과 만화 사이의 파트너십을 새로이 발명해냈다.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고전의 재해석 및 <일지매>등 창작사극을 통해서 고우영식 만화의 개성이 확립되었고, 이후 그의 대표적인 작품색으로 남게 되었다.

성인 연재만화를 대표 장르로 하면서도, 청소년 만화 작업 역시 지속되었다.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이 대표적인데, 한껏 성인만화에서 실험하고 있던 해학이나 농담보다는 우직한 극화 스타일의 전개가 특징이다. 또한 창작 만화 작업 이외에도 평소 작가가 여행한 명소들을 중심으로 엮여진 기행문 서적, 도서 삽화 작업 등 다방면에 작가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유려한 솜씨는, “만화가가 글도 잘 쓴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과 달리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기 때문에 만화가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94년부터 단행본으로 출시된 <십팔사략>은 이전의 신문연재 사극만화와도 다시금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단행본 총서류에 적합한 호흡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특유의 해학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뚜렷한 주인공들보다는 커다란 흐름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여, 드라마와 사서 사이에 있는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 성공하며 고우영 만화의 또 다른 도약을 예고했다. 항상 동시대적 호흡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서 진화를 거듭해온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 <한국만화야사> 등이 더욱 아쉽다.

고우영식 서술방식과 ‘노가리 만화’

흔히 고우영 만화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런 문법을 확고하게 해준 것은 그의 신문 연재만화들인데, <임꺽정>에서 시작하고 <일지매>에서 가다듬어져서 <삼국지>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신문은 당대의 떠오르는 오락 언론매체였고, 작가는 지면특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의 만화문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야기 서술 방식의 유연함이다. 고우영 만화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극을 전개시켜나가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해설과 해석을 달아주고 있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이것은 마치 고전소설 또는 판소리를 연상시키는 방식인데, 특히 작중 상황들을 현실 세태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단순히 줄거리가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웃음과 울분으로 세상 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작품 속 이야기는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만약 작가가 개입하는 지점이 지나치게 설교조로 가거나 주인공들이 극중 흐름에 너무 경직되어 있을 경우는 독자들의 외면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故고우영 선생은 특유의 거리두기와 화려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풍자의 칼날은 표현으로서는 우회적이었으나, 독해 과정 속에서는 통쾌한 날카로움을 잉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는 필연적으로 서민적 정서, 인간적 내음을 진하게 담고 있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의 70년대 청년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이후 그 전통은 강철수, 배금택, 한희작 등의 작품을 통해서 현재까지도 스포츠신문 만화의 유구한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나아가 일기체로 서술되는 여러 온라인 만화 작품들에서도 그 영향력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고우영 만화는 바로 그 시조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 수준의 현역선수였다.

캐릭터성의 선구자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만화는 탁월함을 발휘한다. 유려한 선의 힘을 이용하여 고전 동양화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풍경묘사는 물론, 해학적 필치와 진지한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솜씨 역시 달인의 경지다. 이러한 시각적 탁월함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캐릭터성의 창조다. 효과적인 시각화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내적 변화과정은 선명하게 줄거리 속에 각인되어 각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고우영 만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아무리 많은 이들이 등장해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차별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성격과 모습의 일치에서 오는 강력한 효과가 발군이다. 이전 어느 누가 삼국지의 저돌적인 맹장 여포를 멧돼지 같은 얼굴로 묘사했으며, 눈치 많이 보는 유비를 아예 사시로 그려냈던가. 신출귀몰한 일지매를 변장에 능한 중성적 미소년으로 만들어낸 것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렇듯 캐릭터성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고우영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우스움과 진지함, 강함과 나약함을 오가며 상황에 따른 내적 감정변화가 선명하다는 것은 곧 독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을 다루면서 기존의 박제화된 인물묘사를 벗어나 인간적인 일화들을 대폭 심어 넣은 것 역시 크게 일조하고 있다. 일지매든 임꺽정이든 장비든 삼황오제든, 어떤 근엄한 역사적 등장인물이라도 고우영 만화에서는 시시한 농짓거리 또는 소소한 질투 한번 안 해보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부터 캐릭터성이 장르문화의 파급력을 이야기하기 위한 중요한 잣대로 동원되곤 하는데, 그렇다면 고우영 만화야말로 캐릭터의 힘을 극대화시켜서 성공을 거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만화, 포스트 고우영의 시대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독자들에게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은 바로 만화의 즐거움이다. 만화로 이야기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 즐거움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 즐거움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여, 군홧발에 짓이겨졌던 <삼국지>를 원형대로 복원해낸 새 삼국지가 2000년대에 다시한번 큰 히트를 기록했다. 나아가 <일지매>, <수호전> 등도 재발간되어 단지 옛날만화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수레바퀴>, <십팔사략> 등 90년대 이후의 근작들도 당연히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평생현역을 고수했던 작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나온 여러 명예의 전당급 작품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그가 세운 커다란 산을 넘어서 더 큰 봉우리를 만드는 과제가 후배 작가 세대에게 떨어졌을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만화가에 대한 존칭으로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화백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동시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림이야기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故고우영 선생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간 만화들이 주었던 즐거움에 감사하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스기사)

[고우영 만화 대표작 5선]

굳이 이런 것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이번 기회에 세트로 하나씩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어보면 좋을 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몇 가지 뽑아보고자 한다.

일지매 (애니북스/전8권)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되어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창작사극.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방식이 거의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묘사와 변천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하지만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개별 악당들을 넘어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삼국지 (애니북스 / 전10권)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를 극대화하여,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으로 완전무장한 걸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인데,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라든지, 관우와 제갈량의 신경전 등이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가루지기 (자음과 모음 / 전2권)

성인만화를 표방하지만, 대체로 고우영 만화는 질펀한 농담이 가끔 나오는 정도일 뿐 그다지 성적인 방향으로 심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도전한 것이 바로 <가루지기>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계통의 영원한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도 지극히 해학적으로 접근해서, 끈적거림보다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청소년의 성장기 성적 환상이 아닌 진짜 성인들의 에로문화가 추구해야할 경지가 아니던가.

십팔사략 (애니북스 / 전10권)

증선지가 편저한 고전 <십팔사략>은 창세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였으며,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피고 졌던 이 광대한 줄거리를 만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한 명을 떠올릴 것이다. 십팔사략은 신문연재가 아닌 기획총서의 형식에 맞게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으며, 대중문화의 예술품이나 오락물로서뿐만 아니라 학습서로서도 탁월하다. 두산동아 출판사에서 원고를 전량 분실했던 안타까운 전력도 있다.

대야망 (학산문화사 / 전6권)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발표 시기 및 지면상 가라데가 아니라 태권도로 번안하였으며 일본에서의 여러 초기 일화들이 빠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탁월한 재미를 지닌 청소년 극화. 고우영 만화 특유의 풍자정신과 해학, 다양한 밀도를 오고가는 그림체의 변화무쌍함은 그다지 들어있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굵은 선과 역동적인 질감은 이후에 당시 문하생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수정불가/영리불가 —

고우영, 거장의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기획회의 050502]

!@#… 5월 2일자 기획회의용 원고(따라서 2005.5.2까지는 이동불허. 그 정도 네티켓은 알아서 다들 지켜주리라 믿는다). 아직 개제안된 원고를 사전공개하는 건 평소 신조나 일반 도의에 어긋나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편집부도 너그러이 윤허해주겠지.

!@#… 여담이지만, 나는 만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화백은 그림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화백이라는 용어를 이쪽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왠지 미술계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시 – 즉, 만화가도 그림 제대로 그릴 줄 안다는 식의 소극적 선언같이 들린다. 특히 고우영 선생같은 길이 남을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튼,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종목을 초월한 극존칭인 ‘선생’으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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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거장의 남겨진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2004년 4월 25일, 한국 만화의 큰 별이 떨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니 여러 시대를 관통하면서 계속 풍미해온 명실상부한 거장 고우영 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일찍이 70년대에 스포츠신문이라는 공간에 연재만화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소개한 <임꺽정>을 필두로, 마지막 그날까지 항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역으로 특유의 해학과 입담을 발휘했다. 갑자기 이 지면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 투의 평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고우영이라는 이름이 남기고 간 한국만화의 걸작들을 두 편만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발간된 수많은 삼국연의 판본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잘 팔린 것은 이문열 삼국지다. 하지만 가장 재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고우영 삼국지>(애니북스, 전10권)를 선택하겠다. 단지 오락성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가 뛰어난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역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이어서 비단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뿐만 아니라, 관우와 제갈량 사이의 신경전이라든지 손씨 가문 여인들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하는 설정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며, 우리 독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우영식 고전 서사연출은 이 작품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으로,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작가의 해설은 동시대(현대)의 여러 맥락들을 섬세하게 풍자하고, 내부의 주인공들 역시 그 과정에 천연덕스럽게 동참해버린다. 단순히 극이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기분 좋게 세상사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고전은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의 전통은 스포츠신문 만화의 터주대감 같은 이미지로 굳어있는데, 고우영 만화가 바로 그 시조이자, 선구자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강의 현역선수였던 것이다.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탁월하다.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필치는 이미 달인의 경지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등장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고우영 삼국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가 다소 급작스럽게,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유씨 3형제와 제갈량이라는 주인공들이 극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첫 시작부분에서 황건적을 다룰 때 보였던 평범한 민초들에 대한 애착이 연재 종결의 시점에서는 다소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긴 연재기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생긴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故고우영의 사극들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창작물인 <일지매>(애니북스, 전8권) 역시 원전이 있으리라는 오해를 종종 사고는 한다. <삼국지>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이 그만큼 유명 고전들과 견줄 만큼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버려진 서자 일지매가 청국과 일본에서 각종 신기한 기술을 익혀서 의적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일지매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당대 조선조 양반사회의 부패, 청나라와의 국제 정세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비록 권말해설에서 평론가 박인하가 지적했듯이 그 모순에 대한 분노가 왕조 자체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일지매라는 일개 의적(!)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당연한 행보일수도 있다.

<일지매>에는, 훗날 <삼국지>에서 완성되는 능청스러운 재담의 원형이 가득하다. 칸과 면을 가지고 하는 만화적 장난은 물론, 현실세계의 맥락을 자꾸 환기시키는 농담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것 역시 여기서 이미 선보이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여장을 일삼는 미형 남자주인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설정도 고우영식 재담 속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지한 극 전개가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데, 그 분위기 전환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지매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양반의 부패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지매>는 오랜 연재기간동안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만큼 본질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기에, 연재 후 거의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봐도 그 재미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효과를 지닌 작품들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물론 장기 연재작이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너무 확연하게 바뀌어버린다거나, 때로는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러가버린다든지, 주요 이야기 단위 간의 균형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그림이야기 솜씨라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명예의 전당감인 여러 작품들이 그의 업적을 기릴 뿐이다. 고우영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서 한국만화의 더욱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숙제가 이제 후배 세대에게 남겨졌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관우와 임꺽정이 그를 만화의 천국에서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하지만 2005.05.02까지는 이동불허 —

[부고] 고우영 선생 별세

!@#… 고우영 선생 별세. 탁월한 해학으로 한 시대 – 아니 여러 시대를 풍미한 한국만화계의 거장 가운데 한명을 떠나보내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임꺽정과 삼국지 수호전의 영웅들이 그를 어디선가 반갑게 맞이해주겠지.

윌 아이스너 타계. (1917-2005)

!@#… 미국만화…아니, 만화라는 양식 자체의 거장, 윌 아이스너 타계. 2005년 1월 3일, 심장수술 중 운명. 장수를 누리면서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은 노 작가의 명복을 빈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소설가(이자 운동가…아니 운동가이자 소설가?) 수전 손탁도 타계. 음음음…

!@#… 윌 아이스너는 한국에서는 스콧 맥클루드의 만화이론서 <만화의 이해>를 통해서 주로 알려졌다. 사실 <만화의 이해>는 핵심논리의 상당 부분을 아이스너의 <만화와 연속예술>(국내 출간명은 생뚱맞게도 “그림을 잘 엮으면 만화가 된다”)에 빚지고 있고, 스콧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식있는 미국작가들은 아이스너라는 영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항상 안달이다.

!@#… 하기야 그럴만하기도 한 것이, 이 사람은 한 평생 미국 만화 발전의 최전방에서 뛰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주류/비주류 작가와 작품들이 아이스너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서 자라났다. 그럼에도 과거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후배들이 활동하도록 판을 짜주고,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인식 개발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을 벌였다. 정말, 만화 그 자체를 사랑한 작가.

!@#… 간단히 약력을 요약하자면:

1936 잡지에 정식 데뷔.  해적 모험만화 Hawk of the Seas 연재.

1936-39 Eisner & Iger Studio 를 통해서 미국만화의 중추를 이룰 수많은 인재 양성. 미국식 히어로물의 비주얼을 완성시킨 잭 커비, 배트맨의 밥 케인, 작가주의 쥴 파이퍼…

1940  연재 시작. 사상최초로, 일요일자 신문에 16페이지 별책부록으로 수록. 이 작품은 가면을 쓴 탐정이 등장하는 수사물인데, 나중에는 인간사 전반을 다루고 만화의 형식적 연출실험의 장도 되는, 아이스너의 라이프워크이자 최대 베스트셀러.

1942-45 펜타곤에서 준사관으로 복무. 교육/홍보 만화의 문법과 활용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킴.

1945-52  연재 재개. 이 후기 시리즈의 원숙미는 지금봐도 가히 발군.

1978 이런저런 작은 시리즈물과 홍보에 전념하는 듯 하다가, 이 때 큰 건을 하나 터트림. 바로, Graphic Novel 이라는 개념의 발명. . 연재 시리즈물이 아닌 완성된 단행본으로 발행하고, 시각 연출과 문학적 깊이에 초점. 이후 1년에 한 권 꼴로 이런 류의 작품 발표. 부지런하기도 하지. 이후 New York School of Visual Arts 에서 만화 강의. 후에, 이를 기반으로 이 분야의 고전격인 교과서 출시.

1988 샌디에고 코미콘에서 수여하는 대상에 Eisner Award 라는 명칭 부여. 그런데 이 사람, 여전히 유능한 현역이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상을 여러번 수상. -_-;

…이후에도 계속 작품 발표하고, 상타고, 공로상 부여받고, 교육하고… 그런 것들의 연속. 5월에 출간 예정인 유작 THE PLOT: The Secret Story of 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 의 설명을 읽어보니, 이 사람은 정말 젊은 작가의 패기와 노 작가의 원숙미를 겸비한 괴인이었다는 느낌이 마구 든다. 100년전 러시아의 유태계 지오니즘과 관련된 음모론의 발생과정을 통해서 시대와 사회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니… 서문은 움베르토 에코.

!@#… 꼭 한번 한국으로 초빙해서 세미나/강좌 테이블로 끌고 나오고 싶었던 인물이었는데… 타이밍을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만화인생 70년, 평생 현역. 작가로서도 활동가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솔선수범 진두지휘. 이제는 평안하게 휴식을 취하시기를. 

– 작가 소개 (영어의 압박): http://deniskitchen.com/docs/bios/bio_will_eisner.html

– 윌 아이스너 공식 홈페이지: http://www.willeisn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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