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 한겨레21에 들어간 글. 이번주, 각 시사주간지들마다 문화면은 이 이야기였을터. 故고우영 선생 돌아보기. 그런데, 어차피 ‘고우영 만화와 함께 한 추억’은 60년대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듬뿍 애정어린 눈으로 써내고 있고, ‘작품 연보’는 자료만 열심히 뒤지면 신문기자들이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capcold는 좀 다른 부분에 집중하기로 한 거다. 바로, “고우영 만화가 어떻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추억담보다는 훨씬 메마르고 연보보다는 덜 정보적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이야말로 누군가가 확실하게 짚어줘야한다고 생각하니까.
!@#… 여담: 한겨레21 기사에서는,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이라는 대목이,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라고 편집되어 나왔다. 헛, 소년만화잡지라는 말이었는데, 편집기자님이 잡지 이름으로 아셨나보다. 하필이면 작품이 연재된 잡지의 실제 이름은 <새소년>.
…결과적으로 절묘하게 중간에 걸친 오타가 되어버렸다. OTL
(어디선가 누군가는 “저 인간, 잡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전문가 행세야! ㅋㅋㅋ” 하면서 비웃음을 던질지도)
!@#… 여튼 대체로 그렇게 해왔듯이, 여기에 올리는 것은 원본. 잡지에 실제 실린 데스크 거친 버젼과는 대소제목, 문단구분 등이 약간씩 다를 수도 있음. 아니, 다름. -_-;
!@#… 본문에 언급한 ‘노가리 만화’라는 명칭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공식 용어로 정착시켜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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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의 거장, 故고우영을 돌아보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취향변화가 극심하고 상호모방과 가치절하가 만연되어 있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거장’이라는 호칭이 부여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여러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고르게 명작을 탄생시켜야 한다.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거머쥐어야 한다. 나아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해당 문화장르 자체의 사회적 입지까지 향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를 충족시킨다면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4월 25일 타계한 故고우영 선생은 대중문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중문화적인 분야인 만화가 배출한 진정한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향년 67세, 그 중 50여년을 고스란히 만화에 바친 거장의 빈자리는 크다.
고우영 만화의 발자취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만화계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각별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몇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초창기의 명랑만화들이다. 이 시기에는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당대 명랑만화 문법에 충실했는데, 익살스러운 모습의 박사와 아들의 좌충우돌 모험을 그린 <짱구박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72년 <임꺽정> 연재를 필두로 성인취향 연재만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러한 작품들의 확고부동한 히트는 현재까지도 하나의 공식으로 남아있는 스포츠신문과 만화 사이의 파트너십을 새로이 발명해냈다.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고전의 재해석 및 <일지매>등 창작사극을 통해서 고우영식 만화의 개성이 확립되었고, 이후 그의 대표적인 작품색으로 남게 되었다.
성인 연재만화를 대표 장르로 하면서도, 청소년 만화 작업 역시 지속되었다.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이 대표적인데, 한껏 성인만화에서 실험하고 있던 해학이나 농담보다는 우직한 극화 스타일의 전개가 특징이다. 또한 창작 만화 작업 이외에도 평소 작가가 여행한 명소들을 중심으로 엮여진 기행문 서적, 도서 삽화 작업 등 다방면에 작가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유려한 솜씨는, “만화가가 글도 잘 쓴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과 달리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기 때문에 만화가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94년부터 단행본으로 출시된 <십팔사략>은 이전의 신문연재 사극만화와도 다시금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단행본 총서류에 적합한 호흡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특유의 해학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뚜렷한 주인공들보다는 커다란 흐름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여, 드라마와 사서 사이에 있는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 성공하며 고우영 만화의 또 다른 도약을 예고했다. 항상 동시대적 호흡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서 진화를 거듭해온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 <한국만화야사> 등이 더욱 아쉽다.
고우영식 서술방식과 ‘노가리 만화’
흔히 고우영 만화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런 문법을 확고하게 해준 것은 그의 신문 연재만화들인데, <임꺽정>에서 시작하고 <일지매>에서 가다듬어져서 <삼국지>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신문은 당대의 떠오르는 오락 언론매체였고, 작가는 지면특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의 만화문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야기 서술 방식의 유연함이다. 고우영 만화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극을 전개시켜나가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해설과 해석을 달아주고 있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이것은 마치 고전소설 또는 판소리를 연상시키는 방식인데, 특히 작중 상황들을 현실 세태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단순히 줄거리가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웃음과 울분으로 세상 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작품 속 이야기는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만약 작가가 개입하는 지점이 지나치게 설교조로 가거나 주인공들이 극중 흐름에 너무 경직되어 있을 경우는 독자들의 외면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故고우영 선생은 특유의 거리두기와 화려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풍자의 칼날은 표현으로서는 우회적이었으나, 독해 과정 속에서는 통쾌한 날카로움을 잉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는 필연적으로 서민적 정서, 인간적 내음을 진하게 담고 있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의 70년대 청년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이후 그 전통은 강철수, 배금택, 한희작 등의 작품을 통해서 현재까지도 스포츠신문 만화의 유구한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나아가 일기체로 서술되는 여러 온라인 만화 작품들에서도 그 영향력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고우영 만화는 바로 그 시조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 수준의 현역선수였다.
캐릭터성의 선구자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만화는 탁월함을 발휘한다. 유려한 선의 힘을 이용하여 고전 동양화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풍경묘사는 물론, 해학적 필치와 진지한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솜씨 역시 달인의 경지다. 이러한 시각적 탁월함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캐릭터성의 창조다. 효과적인 시각화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내적 변화과정은 선명하게 줄거리 속에 각인되어 각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고우영 만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아무리 많은 이들이 등장해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차별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성격과 모습의 일치에서 오는 강력한 효과가 발군이다. 이전 어느 누가 삼국지의 저돌적인 맹장 여포를 멧돼지 같은 얼굴로 묘사했으며, 눈치 많이 보는 유비를 아예 사시로 그려냈던가. 신출귀몰한 일지매를 변장에 능한 중성적 미소년으로 만들어낸 것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렇듯 캐릭터성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고우영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우스움과 진지함, 강함과 나약함을 오가며 상황에 따른 내적 감정변화가 선명하다는 것은 곧 독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을 다루면서 기존의 박제화된 인물묘사를 벗어나 인간적인 일화들을 대폭 심어 넣은 것 역시 크게 일조하고 있다. 일지매든 임꺽정이든 장비든 삼황오제든, 어떤 근엄한 역사적 등장인물이라도 고우영 만화에서는 시시한 농짓거리 또는 소소한 질투 한번 안 해보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부터 캐릭터성이 장르문화의 파급력을 이야기하기 위한 중요한 잣대로 동원되곤 하는데, 그렇다면 고우영 만화야말로 캐릭터의 힘을 극대화시켜서 성공을 거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만화, 포스트 고우영의 시대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독자들에게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은 바로 만화의 즐거움이다. 만화로 이야기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 즐거움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 즐거움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여, 군홧발에 짓이겨졌던 <삼국지>를 원형대로 복원해낸 새 삼국지가 2000년대에 다시한번 큰 히트를 기록했다. 나아가 <일지매>, <수호전> 등도 재발간되어 단지 옛날만화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수레바퀴>, <십팔사략> 등 90년대 이후의 근작들도 당연히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평생현역을 고수했던 작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나온 여러 명예의 전당급 작품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그가 세운 커다란 산을 넘어서 더 큰 봉우리를 만드는 과제가 후배 작가 세대에게 떨어졌을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만화가에 대한 존칭으로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화백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동시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림이야기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故고우영 선생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간 만화들이 주었던 즐거움에 감사하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스기사)
[고우영 만화 대표작 5선]
굳이 이런 것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이번 기회에 세트로 하나씩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어보면 좋을 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몇 가지 뽑아보고자 한다.
일지매 (애니북스/전8권)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되어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창작사극.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방식이 거의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묘사와 변천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하지만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개별 악당들을 넘어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삼국지 (애니북스 / 전10권)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를 극대화하여,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으로 완전무장한 걸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인데,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라든지, 관우와 제갈량의 신경전 등이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가루지기 (자음과 모음 / 전2권)
성인만화를 표방하지만, 대체로 고우영 만화는 질펀한 농담이 가끔 나오는 정도일 뿐 그다지 성적인 방향으로 심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도전한 것이 바로 <가루지기>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계통의 영원한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도 지극히 해학적으로 접근해서, 끈적거림보다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청소년의 성장기 성적 환상이 아닌 진짜 성인들의 에로문화가 추구해야할 경지가 아니던가.
십팔사략 (애니북스 / 전10권)
증선지가 편저한 고전 <십팔사략>은 창세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였으며,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피고 졌던 이 광대한 줄거리를 만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한 명을 떠올릴 것이다. 십팔사략은 신문연재가 아닌 기획총서의 형식에 맞게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으며, 대중문화의 예술품이나 오락물로서뿐만 아니라 학습서로서도 탁월하다. 두산동아 출판사에서 원고를 전량 분실했던 안타까운 전력도 있다.
대야망 (학산문화사 / 전6권)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발표 시기 및 지면상 가라데가 아니라 태권도로 번안하였으며 일본에서의 여러 초기 일화들이 빠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탁월한 재미를 지닌 청소년 극화. 고우영 만화 특유의 풍자정신과 해학, 다양한 밀도를 오고가는 그림체의 변화무쌍함은 그다지 들어있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굵은 선과 역동적인 질감은 이후에 당시 문하생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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