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보위를 기리며 / 다른 가수가 부른 그의 곡들

!@#.. 한 시대, 아니 여러 시대를 풍미한 락커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외계로 돌아갔다. 아니, 고블린왕이 왕국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지구의 팬들을 위한 마지막 음악선물까지 불과 며칠 전에 남겨주고 갔다. 포크락과 글램을 거쳐 인더스트리얼과 전위 재즈까지 멋지게 소화해온 잡식가의 다음 도전을 이제 인간계에서 못보게 되었다. 어떤 장르, 어떤 문화, 어떤 주변 존재 틈바구니에서든(프레디 머큐리든 요괴들이든) 자연스레 녹아들고 화려하게 돋보일 수 있던 능력의 소유자. 아니 그쯤되면 초능력, 마법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던 독특한 존재를 추모한다. Space Oddity의 우주적 고즈넉함부터 Magic Dance의 발랄함, Hearts Filthy Lesson의 섬뜩함, The Stars (Are Out Tonight)의 노년의 우울한 화려함까지, 디스코그래피 전체에 걸쳐 매우 오랫동안 내 취향을 울려주었던 이에게 경배를. 그의 위상을 생각할 때 어차피 온갖 추모 공연이 뒤따르겠지만, 다른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멋지게 리메이크했던 10개의 순간을 소개한다. #RIPBow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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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만화의 구본준 기자님께 명복을

!@#… 건축, 그리고 만화. 전문분야 기자의 모범 중 모범, 훌륭한 블로거, 멋진 글동료.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의 때 아닌 급서 소식에 먹먹하다.

http://blog.hani.co.kr/bonbon/

건축과 만화라는 두 전문 트랙을 합쳐 언젠가 건축만화 스토리를 쓰시겠다던 다짐이, 이런 식으로 미결로 남게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살아있는 분들에게 위로를.

(추가)

공간과 문화에 남겨진 한 전문 기자의 소중한 흔적들 – 구본준(1968-2014)

– 다시 읽고 싶은 수많은 글들 가운데 한 줌을 선별해서 슬로우뉴스에 기고.

곽경신님의 명복을.

오랜 동료 곽경신님의 턱없이 이른 작별을 접하며, 일찌기 미국만화 팬덤을 개척하고 만화비평집단 두고보자에서 함께하며 두보북스로 새로운 도전을 하던 모습을 다시 떠올립니다.




이쪽에서 못 읽은 시리즈들, 못 만든 책들은 그쪽에서 계속 즐기시고 또 만들어 내시길. 그것이 고인의 명복이리라 믿습니다.

트위터백업 2013년 1월 2주까지: 저널리즘 퀄리티, 애런 스워츠, 레미제라블 외

!@#… 떡밥 단편들의 북마크와 간단멘트 기록용 트위터@capcold, 그 가운데 새글 알림과 별 첨가 내용 없는 단순 응답 빼고 백업. 가장 인상 깊은 항목을 뽑아 답글로 남겨주시면 감사(예: **번). 중요한 리트윗 일부는 따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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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다음 세상으로 날아오르다

유로SF의 견인차, 비행과 무한한 공간감의 거장, 트론, 블레이드런너, 제5원소 등의 시각적 상상의 원천, 여러 세대의 작가들과 다른 거장들에게 영향을 미친 한 시대의 상징, 게다가 평생 현역.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 파리에서 영면하다. (몇년전 썼던 간략한 작가론 형식 소개글: 클릭)

Reposez en paix. 이제 한층 자유로이, 광활한 공간을 날아오르시길.



[뫼비우스 자화상]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역사가 하워드 진 타계

!@#… 미국 진보의 양심, “미국민중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등을 저술한 역사가이자 정치 활동가 하워드 진(87)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거대한 지성이 영영 자리를 비웠음에 아쉬워하며, 그가 남긴 가르침들이 많은 이들에게 스며들기를 기원합니다. 생전 강연을 듣고 남겼던 감상을 다시 꺼내보며(클릭), 고인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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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약속, 치졸한 기습

!@#… 이 작자들은 겉으로는 말은 뭐라고 하든, 행위로 드러나는 바로 판단하건데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무척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듯 하다. 이 정도로 밑바닥이면, 이 작자들을 지지하는 작자들도 그 경향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 힘들겠다. 이것은 수구니 우익이니 뭐니 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막되어먹은 것이고, 각하의 돌잔치상에 바치는 피의 제물이다.

!@#… 이를 피의 돌잔치 사건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표어 역시 근조 민주주의 그런 뻔한 이야기말고, 이 따위 상황이 반복해서 들이닥침에 대한 황당함과 분노와 짜증이 섞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또 당했다 씨발”을 제안한다. 아름다운 말머리, 아름다운 대화명이니 인증샷을 박자. 배너 필요하신 분은 이렇게 퍼가시길:

<a href="https://capcold.net/blog/3062">
<img src="https://capcold.net/blogimg/2009/02/notagain.jpg"
title="미디어악법 날치기 반대 캠페인 [또 당했다, 씨발]">
</a>

* 혹시나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라고 생각하실 분은, 이런 저런 이전 글들 참조 요망.
* MBC 아나운서들이 세계인에게 전하는 긴급 메시지도 널리 퍼트려 주시면 좋음. (정말로 ‘세계인’을 대상으로 했다고 보기는 좀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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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 기본적으로 “바보는 말려야한다” 캠페인을 주장하는 캡콜닷넷이지만, 실상 ‘바보’라는 보편적 용어에는 꽤 넓은 뉘앙스의 서로 다른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말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보는, 자신들의 욕심에 의하여 꿰어차고 있는 그 직책들을 수행하기에 도저히 적합하지도 않고 개선의 여지도 없는 무능함으로 혁혁한 민폐를 끼치는 저능아들을 말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바보’도 있으니, 자신의 깨달음이 부족하다 겸손을 보이며 세상에 대한 공헌을 함에 있어서 욕심보다 순리를 추구하겠다는 자성의 의지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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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 총격사건에 애도를. 설레발 말고.

!@#… 버지니아텍 총격 사건. 이미 떠난 희생자들에게 삼가 명복을, 남아있는 이들에게 빠른 완쾌를.

버지니아텍 총장 기자회견 현장(사건 타임라인 등)

!@#… 보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나와서 지면을 수놓아버릴 보도문 예상:

– 한미FTA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니 더욱 FTA에 매진하자는 이야기.
– 앞으로 미국 비자 발급이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
– 외교관계와 대북문제에 영향이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
– 반미정서가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
– 게임, 만화 등 대중문화 폐해론.

!@#… 범인은 한국태생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미국 거주지가 성립된 resident alien이었고, 솔직히 미국인들 입장에서 볼 때는 범인이 한국인이건 중국인이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총을 아무렇게나 막 구할 수 있고, 이런 극악한 증오범죄를 사전에 다스리지 못한 것이 중요한 것일 따름이지. 한국에서도 호들갑 설레발 떨지 않고, 그냥 인간의 예의로서 애도를 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리가 없다는 것이 안봐도 DVD라서 미리 씁쓸.

(리플 후 추가: 영주권자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사람이 미국인이니 우리 한국인들과 상관없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비극적 사건을 공연히 무슨 국제 역학관계 문제처럼 포장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포스트모던 철학자 장 보들리야르 별세.

!@#… 90년대 초중반에 문화이론 붐에 휩싸였던 동양 어떤 나라에서, 개나소나닭이나 마치 만트라처럼 아무데나 아무때나 집어넣고 다녀서 나중에는 거의 스팸메일 보는 기분이 들게 했던 용어… 시뮬라크르/시뮬라시옹 (마구잡이식 남용이 아닌 가장 원형에 가까운 설명은 이곳 참조). 이 개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이론 철학자 장 보들리야르 Jean Baudrillard가 현지시간 2007년 3월 6일 지병으로 별세. 90년대 말 이후에는 학문적 기여보다는 “매트릭스 감독 형제가 좋아하는 철학자”라는 식의 상징적 표상으로 열심히 소비된 바 있으니, 어찌보면 존재 자체가 자기 이론의 증거였던 셈. 여하튼 이로써 료타르-데리다-보들리야르라는 포스트구조주의 3인방이 모두 사라졌다 (푸코와 들뢰즈는 이들과 같은 범주로 묶기에는 좀 그렇다).

!@#… Au revoir, monsieur Baudrillard. 뭐랄까, 어째서인지 한 패러다임이 지나가는 느낌은 이론이 구닥다리가 될 때보다, 그 이론을 상징하는 ‘대가’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실체의 중요성, 혹은 실체의 구체적인 상징적 구현체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것인지도. 포스트모던은 개뿔.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바빠서 뜸한 사이, 실로 오랜만의 포스팅이라는 것이 부고라니… OTL )

한국의 1세대 만화평론가, 오규원 시인 별세

!@#… 한국의 1세대 만화평론가, 오규원 시인 별세. 비평/평론이 하나의 문화예술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맨바닥에서 시작해서 깊이있는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가치관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며, 작품의 독자로서 작가와 다른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평론의 모범을 세웠고, 나아가 그런 평가들이 자리잡아 자기 역할을 수 있도록 지면과 공모전을 확충해나간 공이 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PS.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고인의 평론집 ‘한국만화의 현실’이 공공도메인으로 올라가서 인터넷에 공개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유족분들이 대범한 결정을 내려주셔서 고인의 공로를 더욱 널리 나누었으면 좋겠다.

만화언론 ‘만’ 부고 기사 [링크]

2002년 당시 웹진 ‘두고보자’ 인터뷰 기사 [링크]

한나-바베라 스튜디오의 조 바베라 서거

!@#… 한나-바베라 스튜디오의 창업자, 조 바베라가 향년 95세로 별세. 인생의 전반부에 본 애니메이션의 절반 정도는 이 스튜디오 것이었는데… 톰과 제리, 스머프, 플린스톤 가족, 젯슨 가족, 스쿠비 두, 뭐 등등 특유의 캐릭터성 만빵 뱅크샷 만빵의 미국 애니 장편 시리즈들. 톰과 제리로 아카데미도 7개나 탔었군, 그러고보니. 30년대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미국에서 TV 전용 시리즈들을 만들어낸 최초(1957)의 독립 스튜디오 가운데 하나였기도 하고… 뭐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명실상부한 거장 가운데 하나.

!@#… 여하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뉴시스인가하는 뉴스통신사에는, 무려 톰과 제리의 ‘만화가’로 올라왔던데… 어떤 의미로, 굉장한 기자라고나. 아니, 사실 꽤 웃었으니 나름대로 공로 인정.

(capcold블로그는 요새 한창 기말 + 연말 마감중이라 좀 뜸한 와중입니다… 사실은 또다른 담론 쌩쑈든 부동산 광풍이든 문화콘텐츠의 소비문화든 최근의 만화창작 경향이든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 삽질이든 그냥 평이한 잡생각이든 하고 싶은 쌓인 말은 한 다스지만, 잠시 양해를.)

사라진 아이

!@#… 뿌리고 간 씨앗은 비록 피치못할 사정으로 직접 추수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서 또다른 결실로 이어지기를. 스스로 자신의 작품 사라지는 아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주목하고 있던 한 예비작가를 기억하며. 2007년에도, 그 이후에도, 신년축하 받고 싶었는데… 세상 일이란. 롬고기양의 명복을.

미디어 아트의 대가, 백남준 별세

!@#… 미디어 아트의 거두, “비디오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백남준 씨 별세. 항상 동시대에 살기보다는 (많이) 앞선 시대에서 꿈을 꾸던 사람이었건만, 왠지 스러지고 나니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 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만화가 박봉성 선생 별세.

!@#… 박봉성 작가 별세. 고우영 선생 당시와는 달리 지병으로 인한 것도 아니라, 산행중 돌연사라고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 이렇게 해서 남성 성인극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이 한결 더 실감난다. 솔직히 비평적인 이유와 산업적인 이유 때문에 고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반발감이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장르를 장악하고 일구어낸 대가로서의 위업은 어디 가지 않는다. 이제 만화사의 일부로만 남게된 그의 작품들이, 꾸준한 생명력으로 그들의 독자들과 만나주기를.

한국 만화의 거장, 故고우영을 돌아보다 [한겨레21/050504]

!@#… 이번 주 한겨레21에 들어간 글. 이번주, 각 시사주간지들마다 문화면은 이 이야기였을터. 故고우영 선생 돌아보기. 그런데, 어차피 ‘고우영 만화와 함께 한 추억’은 60년대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듬뿍 애정어린 눈으로 써내고 있고, ‘작품 연보’는 자료만 열심히 뒤지면 신문기자들이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capcold는 좀 다른 부분에 집중하기로 한 거다. 바로, “고우영 만화가 어떻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추억담보다는 훨씬 메마르고 연보보다는 덜 정보적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이야말로 누군가가 확실하게 짚어줘야한다고 생각하니까.

!@#… 여담: 한겨레21 기사에서는,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이라는 대목이,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 라고 편집되어 나왔다. 헛, 소년만화잡지라는 말이었는데, 편집기자님이 잡지 이름으로 아셨나보다. 하필이면 작품이 연재된 잡지의 실제 이름은 <새소년>.

결과적으로 절묘하게 중간에 걸친 오타가 되어버렸다. OTL

(어디선가 누군가는 “저 인간, 잡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전문가 행세야! ㅋㅋㅋ” 하면서 비웃음을 던질지도)

!@#… 여튼 대체로 그렇게 해왔듯이, 여기에 올리는 것은 원본. 잡지에 실제 실린 데스크 거친 버젼과는 대소제목, 문단구분 등이 약간씩 다를 수도 있음. 아니, 다름. -_-; 

!@#… 본문에 언급한 ‘노가리 만화’라는 명칭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공식 용어로 정착시켜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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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의 거장, 故고우영을 돌아보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취향변화가 극심하고 상호모방과 가치절하가 만연되어 있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거장’이라는 호칭이 부여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여러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고르게 명작을 탄생시켜야 한다.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거머쥐어야 한다. 나아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해당 문화장르 자체의 사회적 입지까지 향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를 충족시킨다면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4월 25일 타계한 故고우영 선생은 대중문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중문화적인 분야인 만화가 배출한 진정한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향년 67세, 그 중 50여년을 고스란히 만화에 바친 거장의 빈자리는 크다.

고우영 만화의 발자취

고우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만화계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각별하다. 그의 작품 경향은 몇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초창기의 명랑만화들이다. 이 시기에는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당대 명랑만화 문법에 충실했는데, 익살스러운 모습의 박사와 아들의 좌충우돌 모험을 그린 <짱구박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72년 <임꺽정> 연재를 필두로 성인취향 연재만화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러한 작품들의 확고부동한 히트는 현재까지도 하나의 공식으로 남아있는 스포츠신문과 만화 사이의 파트너십을 새로이 발명해냈다.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고전의 재해석 및 <일지매>등 창작사극을 통해서 고우영식 만화의 개성이 확립되었고, 이후 그의 대표적인 작품색으로 남게 되었다.

성인 연재만화를 대표 장르로 하면서도, 청소년 만화 작업 역시 지속되었다. 75년 소년지에서 연재된 무술가 최배달의 일대기인 <대야망>이 대표적인데, 한껏 성인만화에서 실험하고 있던 해학이나 농담보다는 우직한 극화 스타일의 전개가 특징이다. 또한 창작 만화 작업 이외에도 평소 작가가 여행한 명소들을 중심으로 엮여진 기행문 서적, 도서 삽화 작업 등 다방면에 작가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유려한 솜씨는, “만화가가 글도 잘 쓴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과 달리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기 때문에 만화가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94년부터 단행본으로 출시된 <십팔사략>은 이전의 신문연재 사극만화와도 다시금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단행본 총서류에 적합한 호흡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특유의 해학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뚜렷한 주인공들보다는 커다란 흐름을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여, 드라마와 사서 사이에 있는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 성공하며 고우영 만화의 또 다른 도약을 예고했다. 항상 동시대적 호흡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서 진화를 거듭해온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게 된 <한국만화야사> 등이 더욱 아쉽다.

고우영식 서술방식과 ‘노가리 만화’

흔히 고우영 만화라고 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런 문법을 확고하게 해준 것은 그의 신문 연재만화들인데, <임꺽정>에서 시작하고 <일지매>에서 가다듬어져서 <삼국지>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신문은 당대의 떠오르는 오락 언론매체였고, 작가는 지면특성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의 만화문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야기 서술 방식의 유연함이다. 고우영 만화에서는 기본적으로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극을 전개시켜나가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해설과 해석을 달아주고 있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이것은 마치 고전소설 또는 판소리를 연상시키는 방식인데, 특히 작중 상황들을 현실 세태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단순히 줄거리가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웃음과 울분으로 세상 사는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작품 속 이야기는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만약 작가가 개입하는 지점이 지나치게 설교조로 가거나 주인공들이 극중 흐름에 너무 경직되어 있을 경우는 독자들의 외면을 살 수 밖에 없겠지만, 故고우영 선생은 특유의 거리두기와 화려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풍자의 칼날은 표현으로서는 우회적이었으나, 독해 과정 속에서는 통쾌한 날카로움을 잉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는 필연적으로 서민적 정서, 인간적 내음을 진하게 담고 있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의 70년대 청년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이후 그 전통은 강철수, 배금택, 한희작 등의 작품을 통해서 현재까지도 스포츠신문 만화의 유구한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나아가 일기체로 서술되는 여러 온라인 만화 작품들에서도 그 영향력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고우영 만화는 바로 그 시조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 수준의 현역선수였다.

캐릭터성의 선구자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만화는 탁월함을 발휘한다. 유려한 선의 힘을 이용하여 고전 동양화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풍경묘사는 물론, 해학적 필치와 진지한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솜씨 역시 달인의 경지다. 이러한 시각적 탁월함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캐릭터성의 창조다. 효과적인 시각화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와 내적 변화과정은 선명하게 줄거리 속에 각인되어 각 캐릭터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고우영 만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아무리 많은 이들이 등장해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게 차별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성격과 모습의 일치에서 오는 강력한 효과가 발군이다. 이전 어느 누가 삼국지의 저돌적인 맹장 여포를 멧돼지 같은 얼굴로 묘사했으며, 눈치 많이 보는 유비를 아예 사시로 그려냈던가. 신출귀몰한 일지매를 변장에 능한 중성적 미소년으로 만들어낸 것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렇듯 캐릭터성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고우영 만화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우스움과 진지함, 강함과 나약함을 오가며 상황에 따른 내적 감정변화가 선명하다는 것은 곧 독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을 다루면서 기존의 박제화된 인물묘사를 벗어나 인간적인 일화들을 대폭 심어 넣은 것 역시 크게 일조하고 있다. 일지매든 임꺽정이든 장비든 삼황오제든, 어떤 근엄한 역사적 등장인물이라도 고우영 만화에서는 시시한 농짓거리 또는 소소한 질투 한번 안 해보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부터 캐릭터성이 장르문화의 파급력을 이야기하기 위한 중요한 잣대로 동원되곤 하는데, 그렇다면 고우영 만화야말로 캐릭터의 힘을 극대화시켜서 성공을 거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만화, 포스트 고우영의 시대

이러한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독자들에게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은 바로 만화의 즐거움이다. 만화로 이야기하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리고 그 즐거움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 즐거움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여, 군홧발에 짓이겨졌던 <삼국지>를 원형대로 복원해낸 새 삼국지가 2000년대에 다시한번 큰 히트를 기록했다. 나아가 <일지매>, <수호전> 등도 재발간되어 단지 옛날만화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수레바퀴>, <십팔사략> 등 90년대 이후의 근작들도 당연히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평생현역을 고수했던 작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나온 여러 명예의 전당급 작품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그가 세운 커다란 산을 넘어서 더 큰 봉우리를 만드는 과제가 후배 작가 세대에게 떨어졌을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만화가에 대한 존칭으로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화백은 그림 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동시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림이야기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故고우영 선생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간 만화들이 주었던 즐거움에 감사하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박스기사)

[고우영 만화 대표작 5선]

굳이 이런 것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이번 기회에 세트로 하나씩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어보면 좋을 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몇 가지 뽑아보고자 한다.

일지매 (애니북스/전8권)

양반계층의 사정으로 버려지게 된 서자 일지매가 기구한 운명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에서 수련한 무술을 바탕으로 의적이 되어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창작사극. 고우영식 해학과 풍자, 자유로운 서술방식이 거의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명작. 특히 일지매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복합적인 심경묘사와 변천과정은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다. 하지만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가 개별 악당들을 넘어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삼국지 (애니북스 / 전10권)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를 극대화하여,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으로 완전무장한 걸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인데,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라든지, 관우와 제갈량의 신경전 등이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가루지기 (자음과 모음 / 전2권)

성인만화를 표방하지만, 대체로 고우영 만화는 질펀한 농담이 가끔 나오는 정도일 뿐 그다지 성적인 방향으로 심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도전한 것이 바로 <가루지기>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계통의 영원한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도 지극히 해학적으로 접근해서, 끈적거림보다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청소년의 성장기 성적 환상이 아닌 진짜 성인들의 에로문화가 추구해야할 경지가 아니던가.

십팔사략 (애니북스 / 전10권)

증선지가 편저한 고전 <십팔사략>은 창세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였으며,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피고 졌던 이 광대한 줄거리를 만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한 명을 떠올릴 것이다. 십팔사략은 신문연재가 아닌 기획총서의 형식에 맞게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으며, 대중문화의 예술품이나 오락물로서뿐만 아니라 학습서로서도 탁월하다. 두산동아 출판사에서 원고를 전량 분실했던 안타까운 전력도 있다.

대야망 (학산문화사 / 전6권)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발표 시기 및 지면상 가라데가 아니라 태권도로 번안하였으며 일본에서의 여러 초기 일화들이 빠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탁월한 재미를 지닌 청소년 극화. 고우영 만화 특유의 풍자정신과 해학, 다양한 밀도를 오고가는 그림체의 변화무쌍함은 그다지 들어있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굵은 선과 역동적인 질감은 이후에 당시 문하생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수정불가/영리불가 —

고우영, 거장의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기획회의 050502]

!@#… 5월 2일자 기획회의용 원고(따라서 2005.5.2까지는 이동불허. 그 정도 네티켓은 알아서 다들 지켜주리라 믿는다). 아직 개제안된 원고를 사전공개하는 건 평소 신조나 일반 도의에 어긋나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편집부도 너그러이 윤허해주겠지.

!@#… 여담이지만, 나는 만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화백은 그림그리는 사람에 대한 극존칭인데,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화백이라는 용어를 이쪽에 가져다 붙이는 것은 왠지 미술계에 대한 자격지심의 표시 – 즉, 만화가도 그림 제대로 그릴 줄 안다는 식의 소극적 선언같이 들린다. 특히 고우영 선생같은 길이 남을 탁월한 이야기꾼에게, 화백이라는 호칭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튼,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종목을 초월한 극존칭인 ‘선생’으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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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거장의 남겨진 흔적 – <삼국지>와 <일지매>

2004년 4월 25일, 한국 만화의 큰 별이 떨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니 여러 시대를 관통하면서 계속 풍미해온 명실상부한 거장 고우영 선생이 지병으로 별세한 것이다. 일찍이 70년대에 스포츠신문이라는 공간에 연재만화라는 훌륭한 파트너를 소개한 <임꺽정>을 필두로, 마지막 그날까지 항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역으로 특유의 해학과 입담을 발휘했다. 갑자기 이 지면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 투의 평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고우영이라는 이름이 남기고 간 한국만화의 걸작들을 두 편만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발간된 수많은 삼국연의 판본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잘 팔린 것은 이문열 삼국지다. 하지만 가장 재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고우영 삼국지>(애니북스, 전10권)를 선택하겠다. 단지 오락성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지가 원래 가지고 있었을 법한 본연의 서민적인 재미가 뛰어난 해학과 동시대적인 풍자정신 속에서 발현되고 있는 역작이다. 인물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역시 발군이어서 비단 ‘싸나이 조조’ 대 ‘쪼다 유비’의 대결구도뿐만 아니라, 관우와 제갈량 사이의 신경전이라든지 손씨 가문 여인들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라든지 하는 설정들이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고우영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그 어느 다른 판본보다도 더욱 인간적이며, 우리 독자들의 모습에 가깝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삼국지가 인간사에 대한 종합백과사전이고 처세전략의 교과서라면, <고우영 삼국지>는 한국에서 출판된 모든 삼국지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우영식 고전 서사연출은 이 작품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때로는 마치 판소리의 소리꾼마냥 걸죽한 입담으로, 때로는 주인공들의 박진감 넘치는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독자들을 쉽게 몰입시킨다. 작가의 해설은 동시대(현대)의 여러 맥락들을 섬세하게 풍자하고, 내부의 주인공들 역시 그 과정에 천연덕스럽게 동참해버린다. 단순히 극이 전개되는 모습 자체에 의존하기보다는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기분 좋게 세상사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풀어내듯이 – 속칭 “노가리를 까듯이” – 고전은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네 세상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노가리 만화’의 전통은 스포츠신문 만화의 터주대감 같은 이미지로 굳어있는데, 고우영 만화가 바로 그 시조이자, 선구자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최강의 현역선수였던 것이다. 시각적 측면에서도 <고우영 삼국지>는 탁월하다. 선의 힘을 조율하여 헐렁한 유머와 강렬한 전개를 오고 가는 필치는 이미 달인의 경지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등장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서로 혼동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고우영 삼국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가 다소 급작스럽게, 실질적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물론 유씨 3형제와 제갈량이라는 주인공들이 극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첫 시작부분에서 황건적을 다룰 때 보였던 평범한 민초들에 대한 애착이 연재 종결의 시점에서는 다소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긴 연재기간동안 주인공들에게 생긴 애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故고우영의 사극들은, 고전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창작물인 <일지매>(애니북스, 전8권) 역시 원전이 있으리라는 오해를 종종 사고는 한다. <삼국지>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이 그만큼 유명 고전들과 견줄 만큼 이야기의 스타일이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칭찬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버려진 서자 일지매가 청국과 일본에서 각종 신기한 기술을 익혀서 의적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일지매의 기구한 운명 속에서 당대 조선조 양반사회의 부패, 청나라와의 국제 정세 등이 가감 없이 펼쳐진다. 비록 권말해설에서 평론가 박인하가 지적했듯이 그 모순에 대한 분노가 왕조 자체나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못해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일지매라는 일개 의적(!)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당연한 행보일수도 있다.

<일지매>에는, 훗날 <삼국지>에서 완성되는 능청스러운 재담의 원형이 가득하다. 칸과 면을 가지고 하는 만화적 장난은 물론, 현실세계의 맥락을 자꾸 환기시키는 농담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것 역시 여기서 이미 선보이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 여장을 일삼는 미형 남자주인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설정도 고우영식 재담 속에서는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지한 극 전개가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나서는데, 그 분위기 전환이 너무나도 능숙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는 일지매의 비극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양반의 부패에 속수무책 당하는 사람들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것이 바로 인생 그 자체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지매>는 오랜 연재기간동안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만큼 본질적인 재미를 지니고 있기에, 연재 후 거의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봐도 그 재미가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효과를 지닌 작품들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물론 장기 연재작이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너무 확연하게 바뀌어버린다거나, 때로는 흐름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러가버린다든지, 주요 이야기 단위 간의 균형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그림이야기 솜씨라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의 고우영 만화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명예의 전당감인 여러 작품들이 그의 업적을 기릴 뿐이다. 고우영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서 한국만화의 더욱 높은 경지를 개척할 숙제가 이제 후배 세대에게 남겨졌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관우와 임꺽정이 그를 만화의 천국에서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하지만 2005.05.02까지는 이동불허 —

[부고] 고우영 선생 별세

!@#… 고우영 선생 별세. 탁월한 해학으로 한 시대 – 아니 여러 시대를 풍미한 한국만화계의 거장 가운데 한명을 떠나보내다. 그가 남긴 만화 유산들이 더 좋은 만화를 일구어내는 씨앗이자 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삼가 명복을 빈다. 일지매와 임꺽정과 삼국지 수호전의 영웅들이 그를 어디선가 반갑게 맞이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