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본문에 언급한 “스스로를 밀접하게 연결 짓는”다는 부분은, 작가의 창작의도든 아니든(!) 동원한 소재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일 뿐이다. 애초에 창작의도란 작가 자신에게나 중요한 것이고, 문화적 함의는 어디까지나 실제 표현된 내용과 그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쪽 논의 더 관심있는 분들께는 스튜어트 홀이라는 이름을 추천).
판치라는 금지해야하는가
김낙호(만화연구가)
여성의 팬티가 슬쩍 노출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 성적 상상력을 자극받을 수 있다니,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참 굉장하다. 하지만 ‘판치라’라는 그 기제를 아예 당연한 요소처럼 활용하게 된 현재의 소년만화계는 더 굉장하다. 동시에, 판치라는 이야기 전개와 상관없는 성적 묘사이기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는 사실을 회피할 방법도 애초부터 없다. 최근 네이버 웹툰 [결계녀]에서 판치라 코드를 첫 회부터 열심히 사용하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속바지로 수정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과연 그것은 페미니즘의 과민반응인가 정당한 목소리인가.
이야기상에서 필연성에 의하여 팬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척 화면에 잡아주는 기법은 50년대 일본에서 [우주소년 아톰]에서 우란의 팬티가 슬쩍 지나갈 때는 천진함의 표현에 가까웠지만, 70년대 [파렴치 학원]이나 80년대 [드래곤볼]에 이르며 이미 응큼한 유머 코드가 되었다. 그런데 유머라는 역할조차 점차 모호해지고, 소년만화라면 소년들의 성적 상상력을 슬쩍 건드려줘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 즉 서비스씬이라는 개념까지 갈수록 덧씌워졌다. 그런 영향권 안에서 발전한 90년대 이후 한국만화의 소년만화들 역시, 판치라를 당연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판치라가 여성의 성적 대상화이기에 사회적으로 금지해야할 수준의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지절단 묘사 등 윤리적 불편함의 수위가 더 높은 표현도 모두 금지를 논해야 하는 무의미한 도미노 현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즉 표현의 자유 층위에서의 답은 당연히 그런 표현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만화 안에서 장려할만한 표현인가라는 규범적 층위에 대해서는, 좀 더 세부적으로 따지는 것이 가능하다. 과연 작품이 명시적으로 드러낸 목표에 부합되도록 고민을 거쳐서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그 장르에서 많이 친숙하니까 대충 넣었는가.
다시 말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뻔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넣어야만 하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는가. 논란이 되었던 [결계녀]의 경우는 기본 방향을 여성 학교폭력배에게 당하는 남자주인공이라는 다분히 남성 몰입 시각의 성대결 구도를 기본틀로 가져온다. 소년취향 학원 로맨틱 코미디라고는 해도 현실의 폭력과 현실을 인식하고 비트는 성별 권력관계를 가져오는 한, 그런 현실을 인식하고 사는 독자들에게 뜬금없는 판치라는 운 좋으면 무의미한 장면이 되고 운 나쁘면 여성 멸시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렇다고 액션 연출상 필요해서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 맥락 없는 클로즈업이라면 더욱 더 평범하게 부적절하다.
어느 장르코드라도 결국은 주제를 돕는 표현인지 아니면 정면으로 배치되는 표현인지에 따라서 “적절성”을 따져야할 따름이다. 일전에 아이즈에서 다뤄졌던 [뷰티풀 군바리] 논쟁을 예로 들자면, 여자 사타구니를 훔쳐보는 각도의 연출은 남성향 에로물이라는 내용 맥락이라면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군대 폭력문제와 가상의 여성 징병제를 설정하여 현실적 성 평등 논의와 스스로를 밀접하게 연결 짓는 작품이라면, 그런 전혀 평등하지 않은 코드가 대단히 난감한 것이다.
사용하는 장르코드에 대한 고민은 작품 창작에 대한 진지함이기도 하다. 미형의 그림체로 소녀들의 화려한 전신 액션을 자주 쓰는 [소녀 더 와일즈]의 경우만 해도, 수영복 비치발리볼을 펼칠 때조차 판치라 같은 뻔한 코드보다는 여왕님 각도라든지 훨씬 섬세하게 여체에 대한 소년만화적 상상을 자극한다. 강한 여주인공이 학교에서 남자주인공을 지킨다는 공통된 설정이 있는 [바로 잡는 순애보], [오! 주예수여] 등의 작품들도 판치라 같은 민감한 클리셰로 상황을 낭비하지 않고 그저 각자의 독특한 매력적 설정의 재미에 더 집중한다. 치파오를 입고 격투를 하니 당연히 판치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외면함으로써 개그코드를 구축한, 아마추어 중편 시절의 [스페이스 차이나 드레스] 같은 유머 격투물도 코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장르 코드의 활용에 있어서 그 정도의 진지한 성의를 보이지 않은 작품이 어쨌든 현실 관계의 무언가를 건드린 상태에서 많은 독자들과 한꺼번에 만난다면,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비난의 수위가 과한 경우도 섞일 것이다. 물론 판치라 논란을 계기로 모든 창작자와 제작자들이 완전무결한 PC(정치적 올바름) 추종자로 거듭나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내가 무심결에 쓰고 있는 장르 코드가 과연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고, 지적당하면 더욱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결국 더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집착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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