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린아님 포스트에서 트랙백이자, 담론의 뒷처리 이야기에 대한 약간의 보충. 정부가 납치당했다가 돌아온 이들에게 계산서 들이미는 것에 대한 판단 몇가지, 그리고 그것에서 시작해서 결국은 약간 다른 이야기.
!@#… 외교부에서 홈페이지 공지 붙인 것의 문구가 너무 매정해보인다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원래부터 실제로 선교가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1) 사건/사고 관련 제반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여행자보험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 예를 들어 영사관에 와서 나 소매치기 당해서 돈떨어졌어 한국행 비행기 태워줘하는 사람들에게 비행기값 추후 청구를 안하면 공관들 전부 거덜난다…-_-; 다만 2) 개인이 금전적/절차적 부담을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극단적 상황이라면 국가기관이 나서서 우선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 역시 원칙이고. 돈이 있고 없고, 선교고 사업이고, 국가는 우선적으로 국민이라는 조건이 충족되면 보호의무가 생기니까.
그런 극단적 상황을 정의내리는 것이 미묘한 문제라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위 두 가지 원칙은 상호충돌하지 않는다. 소말리아 납치사건도 정부가 뒤에서 협상이 되도록 조율했으나 몸값을 지불하는 것은 회사였으니. 아프간 건 역시 충분히 극단적인 상황이라서 정부가 먼저 해결에 나섰고, 샘물교회나 나아가 기독교계가 일정 지불능력이 있으니 그 지불능력 범위에 맞추어 당사자 지불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타당하다. 다만 그 변재의 대상은 실제 소요비용이지(예를 들어 당사자 수송비, 외부 변호사 수임, 보석금, 통역가 고용 등) 외교부의 임무 자체에 포함된 업무는 아니다(예를 들어 외교관 근무수당, 출장비 등). 다만 깨끗하게 처리하려면 그냥 구출한 시점에서 땡처리해야하는데, 아프간이 이미 여행금지국되어 있어서 이들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올 민간 우송수단이 없다-_-; 결국 정부 특별편 동원. 외교부가 여행사차린 것은 아니니까, 실비 선에서 청구해야지 뭐.
!@#… 소문 속의 ‘몸값’을 지불했을 경우 그것 역시 소요비용에 포함되기 때문에, 지불 능력이 된다고 판단되면 청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몸값의 존재 자체가 드러날 경우 입을 국가적 손실을 감안하여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경우에는 아예 청구를 할 수 없다. 청구를 결정하는 경우라도, 지불능력이 되는가를 판단해야 하는 데다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잔뜩 퍼준 뒤 바가지 씌운다는 식의 항의가 올 수 있으니 결국 사법부의 손길을 거치게 된다 – 즉 고소 들어간다(네덜란드 사례).
그렇다면 실제로 상당한 액수가 몸값으로 나갔다면 세금 들어간 것이 아까워서 어떻게 하냐고? 전략적으로 판단해서 청구해서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 기회비용학습비용으로 간주할 수 밖에. 제도정비를 하기 위한 기회비용학습비용말이다. 여행금지국 지정절차를 더 신속하게 하고, 개인과 조직에 대한 벌칙을 대박 강화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되 실제로 정부기관은 아닌(즉 여러 측의 명분을 미묘하게 동시충족시켜주는) 전문 대테러협상팀을 상설화하고… 이런 것들을 추진하기 위한 기회비용학습비용 말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가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국내에서 복지/봉사 영역에 대한 투자를 가시적으로 대폭 늘여서 자신들의 특급 뻘짓을 전향적으로 보상해야지.
!@#… 다른 한쪽에서는, 헌법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이런 사태를 예방하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예를 들어 공격적 선교의 폐해 예방.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고,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좋든 싫든 선교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체계다(마치 상어가 앞으로 헤엄치지 않으면 숨막혀 죽어버리듯). 그런데 보통 헌법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다른 사회 성원들의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에 조율을 한다는 명분이 있을 때 하는 것 아닌가. 해외 선교(이들의 체계에서 봉사와 선교를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활동은 그 자체로 ‘한국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납치당해서 국민적 분노와 불안감을 마구 증가시킬지언정, 그런 간접적 효과만으로는 표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제한해선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를 금지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외교적 협의에 따라서 특정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탈리반은 무장강도떼지 외교 관계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런 것을 알고 있기에 한국의 모 기독단체들이 벌써부터 생지랄을 시작한거고. 이것 참 난감한 노릇이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실제 아프간 정부와 빨리 외교협상을 맺어서 선교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프간도 나름대로 민주정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종교 차별을 명문화하라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미국에서 영리활동을 제한하듯이, 엄격한 심사에 의한 사전허가제 정도로 타협한 후 단기선교단, 뻘스러운 대형 부흥집회 같은 것을 아프간 정부에서 불법화하고 정식 처벌하도록 한다든지, 제도적 묘를 찾아야지. 그걸 위한 외교적 협력, 정책기획 협조 등을 한국 외교부에서 열심히 해주면 되겠다.
물론 애초에 한국 개신교 단체들이 알아서 자중해주면 다들 해피하겠지만,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런 근본적이고 도덕적인 해결 따위 너무 바라지 말라니까. 그런게 다 되면 뭐하러 제도 정비를 고민하겠나. 게다가 이미 세계는 100년전에 다 행복한 공산주의 전원공동체가 되었을껄.
!@#… 하지만 뭐 capcold가 외교전문가나 행정관료는 아니니까. 그저, 지금 내 머리에 담긴 재료의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 해결 방법들의 아이디어를 열린 담론 공간에 제시할 뿐이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가는 아이디어들을 모아보자는 것.
분노하기는 쉽다. 분노만으로 끝나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문제지. 그나마 현실 위의 분노라면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전략 설정에 도움이라도 되지만, 그냥 닥치고 분노, 닥치고 빈정거림은 그냥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꺼리일 분이다. 사실 이번 건에서도 또 한번 드러난 담론흐름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가정을 기반으로 한 분노“. 가정을 기반으로 추론을 하고 상황을 설계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가정을 기반으로 분노하는 것은 좀 뻘스럽다. 몸값을 지불했을지도 몰라 -> 그러니까 나는 너무 열받아!!! …뭔가 이상해보이지 않나. 지불했으면 분명한 금전적 손실이 있으니 열받을 수 있다. 지불 안했으면 열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불했는지 안했는지 모르면서 우선 열부터 받고 본다? 열을 받으면 그 다음에 보통, 자신이 열받은 이유가 그저 ‘가정’이었다는 점 자체를 쉽게 망각한다. 가정의 기정사실화. 그러니까 더 분노하겠지? 그럼 더 극단적인 ‘가정’을 필요로 하고, 그것 역시 다시 순환과정 속에서 기정사실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소문은 실체를 얻고, 사회적 망상은 확장된다(기억을 되살려보자).
!@#… 사람들의 관심이 이만큼 모인 것은 절호의 기회다. 물론 비용을 두둑히 치르고 얻은 기회이기도 하고. 이 기회를 설레발 언론 보도 방식의 성찰, 개신교 개혁, 외교전략 재고, 성숙한 담론 소통의 패턴 고민 등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활용할지, 그저 스트레스만 한번 풀고 판 접어버릴지는 지금부터다.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9.2.추가)PS. !@#… 대체로 공감하는 이녁님의 포스트에 달아놓은 덧글, 살짝 여기에 백업.
‘대중’의 분노야 뭐 그러려니 해도(물리적 폭력이나 개인정보 침해, 허위사실 유포 등의 명예훼손 같은 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문제는 차분히 진실을 파고들고 대안을 제시하고 합리적 담론을 이끌어야 할 언론들이 그 분노에 편승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쌩쑈를 벌인다는거죠. 소위 제도화된 언론은 물론이고, 스스로 대안언론이니 언론보다 낫다느니 언론의 미래라느니 자뻑하고 있던 블로고스피어마저도.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아프간 담론 뒷처리3: 제발 근거 좀!
[…] 액수와 전달방식 같은 진짜 데이터가 증거로서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런 가정에 기반해서 분노를 낭비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온갖 소문들이 언론의 필터를 거쳐서 각각 하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