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봄에 나왔던 마영신 단편집 [연결과 흐름]의 책내 서평. 단편집 특유의 원형적 아이디어들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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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기발하며 낙천적인 상상력 – 서랍 속 테라리움 [기획회의 380호]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기획회의 070901]
!@#… 솔직히, 루미코 여사보다 최소한 한 수 아래. 아다치는 어떤 성인 감성 소재를 들고와도 결국 뼛속까지 청춘 소년의 한계를 못벗어난다… 아니 뭐 꼭 벗어나야할 필요는 없지만.
철없음의 미덕 – 『모험소년』
김낙호(만화연구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는 종종 일정한 후회가 따른다. 좋든 싫든,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보이니까 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그래서 만약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상념이 드는 것은 굳이 지난 주 로또번호가 아니라도 인생의 여러 순간에 대해서 해당된다. 왜 그 때 붙잡지 않았을까 하는 연애사든, 왜 그 때 좀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추구하는 과정이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런 식으로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회를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철없는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지나간 것을 돌아가서 바꿀 수 있을 리도 없는데, 그런 상념에 쓸 지혜를 차라리 지금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수록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다. 가끔 그런 상상이 현재의 삶에, 앞으로의 선택에 비슷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같은 ‘철없는’ 희망,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텐데 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생사, 어차피 살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종종 드러나곤 하니까 말이다. 그럴 때, 철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한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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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기획회의 070615]
!@#… 하지만 거꾸로 소시민 정서 위주의 작품들만 남발되면, 짜증이 난다는 단점도 있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다양한 선택권.
소시민 별곡 –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단편집』
김낙호(만화연구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한 때는 너도나도 세계정복이니 세계평화니 하다못해 남북통일이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뭔가 멀리 있는 커다란 것에 대한 동경, 자신에게 아직 남아있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정상적인(?) 경로로 나이를 먹고 세상에 적응하며 사회인이 된 사람이라면 목표의 거리 범위가 더 짧아지고 자신의 성장 속도가 어느 선을 넘지 못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품었던 것과 지금 품고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한다면 몰라도, 만약 스스로 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는 특별히 아깝거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평화에서 아파트 이웃 간의 평화로 목표가 옮겨가고, 세계정복은 직장의 철밥통 자리 정복으로 이동했을 뿐. 호연지기니 야망이니 어쩌니 교육받으며 자라난 교육환경과는 달리, 세상은 대부분 소시민적 가치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바로 그 속에 훨씬 더 많은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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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의 원천 – 『석정현 소품집 Expression』[기획회의 061101]
매력의 원천 – 『석정현 소품집 Expression』
김낙호(만화연구가)
지난 몇 년 사이, 젊은 전도유망한 재능의 만화작가들이 단편집으로 단행본 데뷔를 하는 일이 연달아 있었다. 장편 연재지면에 곧바로 뛰어들어서 굵직한 작품을 만들어냄으로서 주목을 모으며 데뷔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런 기반도 없이 믿을 것이라고는 실력과 패기밖에 없는 젊은 만화작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적은 지면 안에서 최대한 자신만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활동을 해온 결과다. 그런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업계는 물론이고, 특히 웹을 통하여 독자들에게까지도 직접 증명해보이곤 하여 장편 데뷔작 없이 먼저 ‘스타’로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안정적 고료나 단행본 인세를 받는 완성된 스타라기보다는 우선 지명도를 올리고 가능성을 인정받는 불완전한 예비 스타인 셈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실력으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가들의 첫 단편집이란, 단지 그 작가의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이 작가에게 주목한 이유의 재발견이다. 중후장대한 장편의 틈새에서 틈틈이 숨돌리며 만드는 의미의 단편집이 아니라, 작가의 가장 거칠고 원형적인 매력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주어지는 셈이다.
『Expression』(석정현/ 거북이 북스)은 이런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실사풍의 화려한 이미지로 만화 지망생층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석정현이라는 작가가 왜 지지를 받았는지 복기해주는 모음집인 셈이다. 이 책은 단편집이라는 분류상의 명칭보다, 작품 개개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의 ‘소품집’이라는 이름을 고집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일관성 있게 모인 단편들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길이와 형식의 작품들이 섞여있다. 다양한 방식의 작품 활동으로 다양하게 두각을 나타낸 작가의 행보다운 결과다. 작품들은 가장 최근작부터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중간 중간의 풍부한 작가 해설과 함께 작가의 매력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으로 인도한다. 작가의 장편 데뷔작 『귀신』이 화려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문제의식의 수습이나 이야기 서술의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것에 비해, 이 소품집은 훨씬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 즉 작가 본연의 매력이 지녔던 호소력을 발휘한다.
수록된 작품들은 시사만평, 일러스트형 카툰, ‘하이라이트 엿보기’ 방식의 작품, 기승전결이 담긴 정식 단편 등 여러가지다. 어느 시기에는 하나만 하고 다른 시기에는 다른 것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작업을 계속 오갔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모든 작업 방식을 총괄하는 것은 특유의 섬세한 실사풍 이미지로, 칸간 연결의 역동성보다는 칸 안의 순간의 힘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다. 필체에서도 연출방식에서도 고압축 고밀도를 전개하는데, 장편과 달리 짧은 소품에 있어서는 이런 것이 내용과도 썩 좋은 조화를 이루곤 한다. 다만 칸 자체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출에서 작품의 역동성을 보충하기 위하여 보통 취하는 과장된 기하학적 구도와 포즈가 적은 편이다. 그 결과 실사풍에 가깝게 그릴수록 작품이 정적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발생, 액션 위주의 작품일수록 표현력이 부족해지는 약점이 있기는 하다.
카툰의 전통 위에 서있는 시사만평이나 일러스트형 카툰의 경우 작가의 이런 재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순간의 이미지를 가공하되, 실사풍의 필치는 그것을 만화체로 약호화한 감성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사람 세상의 실제 모습 사이에 있는 영역에서 보여준다. 여타 카툰들이 극도의 희화화와 추상성을 통해서 날 것 그대로의 감수성에 노크를 한다면, 석정현식 카툰은 카툰 특유의 감성을 지니면서도 무언가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사람 세상에 대한 거울 역할을 좀 더 강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만화와 실사의 경계, 만화 작품 속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 단칸 카툰과 연속 칸 만화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려버리는 ‘Expression’이라는 수록작품의 시도 역시 재미있다.
보다 본격적인 극만화풍 단편의 경우는 효과가 덜 명확하다. 기승전결을 지닌 완결성 있는 단편이나 에피소드식 연재물의 경우 석정현이라는 작가가 그림장이 이전에 본디 이야기꾼의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평범한 인간사에 대한 애정은 『순정만화』의 강풀이나 『비빔툰』의 홍승우에 다다를 정도의 따뜻함을 지니고 있어서 이야기의 좋은 뼈대가 되어준다. 아직은 무거운 사회적 또는 철학적 주제를 다룰 때보다 사람들의 온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더 재능이 빛을 발한다.
다만 아직 긴 이야기를 가지고 계속 상대방을 쥐었다 놓는 식의 이야기꾼은 아직 아닌, 순간 반짝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와서 단번에 매료시키는 식의 재담에 가깝다. 즉 소재의 힘, 이미지의 압도에 많은 에너지가 할애되어 있고, 그에 비해서 밀고 당기는 연출에는 아직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경우 다행히도 짧막한 소품들이기에 앞의 강점은 부각되고, 단점이 드러나기 전에 작품이 끝나서 곧바로 여운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의 프로 데뷔작이자 처음 주목을 모으게 한 『노르웨이의 숲』이라든지, 작가 자신의 해병대 전력과 만화가 생활을 바탕으로 그려낸 연재물 『코미커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런 경향이 한 단계 더 나아가 『귀신 외전』같은 작품에서는 아예 자체적 완결성보다는 전체 장편을 상정하고 그 중 한 대목을 뽑아낸 듯한 방식까지 구사하기에 이른다. 이 경우 작품 자체로서 읽기에는 지나치게 거두절미지만, 보다 큰 작품을 연상시키는 기대효과에서는 효과적인 것이다.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하나의 책으로 일관성 있게 엮어낸 것은 책 만듦새의 뛰어남 덕분이다. 작가의 작품 설명과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삽입한 것 등 한마디로 ‘잘 프로듀싱된’ 책이다. 다만 소품집이라는 컨셉 자체의 한계 때문에, 이미 작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주목하고 있거나 만화가 지망생으로서 다양한 창작시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 외에 새로운 독자를 개척하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장편작품들이 더 출간되면서, 작가의 매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이 항상 돌아오게 될 원천으로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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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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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현 소품집 Expression 석정현 지음/거북이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