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 호의 원고도 락음악 관련 만화여서, 담당자분이 잠시 혹시 원고가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튼, 높은 품질에 비해서 화제성이 참 떨어지는 비운(?)의 작품.
락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성장담 -『도로시밴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락앤롤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발상은 참 60년대적이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와 밥딜런과 기타 락의 젊은 신들이 한 세대를 새롭게 재발명해내던 의기충천한 시대의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좀 다른 형태와 규모이기는 했지만, 90년대에 재발견되며 잠깐 대중문화의 창조적 힘에 대해서 이야기되고 락 담론이 반짝인 적이 있다. 하지만 어차피 음악이 거의 ‘배경음악’이 되어버린 2000년대의 오늘날, 그 정도 과대망상급 긍정성은 많이 희박해졌다. 요즈음 락이 각종 밴드 영화나 만화로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재발견되고 있는 것은, 락의 힘 자체보다는 주로 뭔가 아련함을 이야기하는 계통이 많다. 고된 삶으로부터 잠시 동안의 청량감 있는 도피를 하는 것이다 보니, ‘쿨’함이 부족하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 편중화의 문제인데, 비유하자면 진득한 블루스락에 편중되어 직설적으로 발랄한 펑크락이 가려져있다고나 할까.
쿨한 락 만화, 『도로시밴드』(홍작가/미들하우스/전3권)가 최근 단행본으로 완간되었다. 이 작품은 2006-07년간 미디어다음에서 웹만화 형식으로 연재되었다가, 재편집을 거쳐서 단행본으로 만들어졌다.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를 기본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다만 모험의 목표가 약간 다른데, 회오리로 인하여 이상한 나라로 끌려간 현대적 소녀 도로시와 충복 토토가 그곳에서 펑크락 밴드를 결성해서, 밴드멤버들과 함께 전설의 명 제작사인 오즈 프로덕션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기억력이 나빠서 천재적인 애드립을 뽑아내는 기타리스트고, 심장이 없는 양철인간은 감성이 부족하며 강철 잠수복 가면을 쓴 베이시스트다. 용기 없는 사자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자머리 드러머가 되었고, 충직한 강아지 토토는 작곡가 겸 밴드 매니저 겸 만능 땜빵 연주자다. 호기심 많고 발랄한 소녀 도로시는, 발랄하다 못해 아예 걸출하고 직설적인 펑크락 보컬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인물들의 사연 역시 자연스러우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 있어서, ‘오즈의 마법사’를 굳이 의식하며 읽는 것이 손해로 생각될 정도다. 물론 큰 기조를 이식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작품은 소녀 도로시가 숙녀로 성장하는 성장담이고, 자신들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가치들을 모험 여행의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는 이들의 이야기다. 『도로시밴드』의 성장담이란, 좀 더 오늘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소중히 하는 것, 세상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이다. 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락앤롤로 세상도 좀 구원하고.
이 만화의 가장 지배적인 정서는 거침없는 쿨함이다. 큰 갈등도 어려움도 락 정신으로 즐겁게 돌파하다보면 된다. 밴드 멤버들을 거칠게 짓누르고 있을 법한 여러 복잡한 사연들도, 오늘을 살아가며 솔직히 내뱉는 일갈 속에서 해소된다. 세상사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아련함과 끈적함을 억지로 거세한 인위적인 건조함으로서의 냉랭함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무한한 긍정적 에너지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뒷끝 없는 관계의 향연이다. 어처구니 없는 사연으로 어릴적부터 평생 철가면을 쓰고 살아온 강철 나무꾼이 내뱉는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어”라는 원망어린 일갈에, 진심으로 위로의 말로 던져준다는 대사가 “위안은 안 되겠지만, 너도 내 인생을 망쳤어”라고 깔끔하게 말해주는 관계들의 연속인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락 정신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세상이 무너져도 오늘은 락앤롤”이라는 식의 가장 헐렁하면서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종류의 것을 한국만화에서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작품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탄탄한 시각스타일도 효과만점이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타지 나라의 이야기는 흑백 연필화로 묘사되고, 현실세계에서 보내는 짧은 대목은 컬러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현실은 흑백으로 판타지는 컬러로 묘사했던 영화판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작지만 유쾌한 전복이다. 역시 결국 우리가 살아갈 현실세계야말로 진짜 컬러풀한 곳 아니겠는가. 거친 과장이 난무해야할 것 같은 환상적 분위기 속에서도 시치미 뚝 떼고 사실주의적 극화체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이 주는 독특한 이질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때, 이 만화의 재미는 더욱 빛을 발한다. 주인공들이 모험을 벌이는 환타지 세계 전반에 대한 묘사 역시 이질적면서도 충분히 우리 현대 세계의 반영으로 볼 수 있는 혼성적 느낌이 강한데, 특히 몇몇 배경설정에 대한 꼼꼼함은 상당하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중력 공연 무대의 상상력은, 클라이막스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꿈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도로시 밴드』의 이야기 흐름이나 시각스타일을 포괄한 전체적 느낌에는 낙관적 환타지, 분방하고 긍정적인 락앤롤 청춘의 상상력,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분위기 속의 활극 등의 여러 요소들이 잘 섞여 들어가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김수정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마츠모토 타이요를 영입해서 락밴드를 결성한 듯한 느낌의 만화랄까. 감상의 과정에서 보이는 약간씩 부족한 지점이라면, 음악을 금지당한 억압된 세계들에 대한 다소 관성적인 묘사 방식 정도다. 혹은 후반에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다니는 부분의 이야기도 좀 더 친절하게 (특히 강철 나무꾼의 사연) 세부 과정을 묘사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신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호흡과 능숙한 이야기 전개를 보인 개성적인 웰메이드 만화라는 판단이 든다. 스타일리쉬한 거침없는 호흡을 구사하면서도 자질구레함의 미덕을 버리지 않는, 좋은 균형감각의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없이 긍적적 에너지로 넘친다. 이 작품에 반한 인디 밴드들이 사운드트랙을 입혀주고, 인기에 힘입어 실력 있는 감독들의 각종 매체이식 제안이 끊기지 않아야 마땅하다. 아니 오히려 한국보다는 락에 대한 수요가 더 강한 유럽이나 북미지역 쪽에서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2007년 한국만화가 내세울 수 있는 베스트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오즈의 마법사’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듯, 『도로시밴드』에서 결국 도로시는 현실로 돌아가느라 동료들과 작별을 한다. 슬픔보다는 한 시기의 종결에 가까운 작별이지만, 성장의 대가치고는 사실 작지 않다. 이런 만남과 작별들이, 어디 작품 속 이야기에만 한정되겠는가. 하지만 지금 각자의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들도 역시 언젠가는 동료들과 함께 하며 연마했을 법한 긍정적 락큰롤 마인드로 살다보면, 그래도 앞으로 소원 한두세가지 정도는 아직 이룰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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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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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밴드 Dorothy Band 3 홍작가 글 그림/미들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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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밴드 (홍작가/미들하우스) 쿨하기 그지없는 락앤롤 환상모험 성장극. 작화력도 이야기 구성력도 깔끔무쌍. 한국에서 락이 이렇게 찬밥만 아니었다면, 좀 더 확실히 히트쳤을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