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 전설: 워드프레스, 10년 [슬로우뉴스 130603]

!@#… 게재본은 여기로(짤방의 존재에서 볼 수 있듯, 편집된 모습 그대로 긁어옴).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글 공개 후 제보받고 ‘아, 왜 이걸 빼먹었을까’ 싶은 것들도 좀 있지만, 씁 뭐 어쩔 수 없지.

 

패왕 전설: 워드프레스, 10년

wordpress앗! 하는 사이 돌아보니, 오늘날 워드프레스는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으로서는 거의 리눅스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알고 보니 너도나도 워드프레스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현실이나, 철저한 오픈소스 방식으로 개발이 이뤄지는 측면 등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워드프레스의 10주년째 번성을 바라보게 되는 시선은 여느 닷컴기업의 거대한 상업적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정도로 원형적인 웹 문화의 순박한 이상주의가 지금도 무척 괜찮게 작동하고 있음에 대한 환호다. 무슨 이야기인지, 그 궤적을 잠시 살펴보자.

태동기

웹 문화의 애초 이상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자기 매체 공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어떤 내용물들을 자기 계정 공간에 html로 문서를 코딩해서 발간하던 태동기를 거치며, 웹에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나간다는 ‘블로그’라는 형식이 싹텄다. 이때 두 방향이 갈라져 나갔는데, 하나는 업체에서 블로그 공간을 분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계정 공간에 블로그 출판 도구를 심어 넣는 것이었다. 전자의 사례라면 미국에서는 라이브저널, 블로거  등이 있고, 한국에서는 초기에는 블로그인, 이글루스 같은 전문 서비스 및 이후에는 대형 포털들의 블로그 사업 진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 사업체에 자신만의 생각과 창작의 기록들을 위임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든지, 좀 더 자신의 마음대로 공간을 주무를 필요가 있던 이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온라인 출판을 위해 스스로 호스팅해서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국내에서 그냥 이지보드와 제로보드 등 게시판 프로그램을 그런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던 무렵, 2001년 말에 본격 블로그엔진인 무버블타입이 등장했다.

wp_mt

트랙백이라는 혁신적 블로그와 블로그 사이의 콘텐츠 연결 기능 발명은 물론, 개별 콘텐츠를 DB의 자체 코드로만 저장하기보다 실제 html 파일로 발행해주어 당시의 검색엔진들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접근성을 최대화했다.

그런데 한국 역시 셀프호스팅 블로그 방식이 좀 더 관심을 끌게 되자, 2004년에 당시로써는 동종 최강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었던 태터툴즈가 탄생했다. 꾸밈새가 뛰어난 위지윅 편집 작성 기능은 물론,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디자인 ‘스킨’을 공개하여 개인 미디어계를 호령했다.

이렇게 이미 움직임들이 활발한 와중에, b2/cafelog라는 비교적 마이너한 블로그툴의 파생 프로그램이었던 2003년 워드프레스의 탄생은 실로 미약했다. 그런데 조금도 굴하지 않는 무료 -오픈소스 방침이 그 이후의 흐름을 좌우하게 되었다. 오픈소스 방침 덕분에 워드프레스는 기본 엔진의 성능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개발자라도 모듈을 만들어 특수화된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즐겁도록, 즉, 남의 회사 배를 대신 불려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였다.

우뚝 서다

이렇게 개선되어가던 성능과 함께 아무런 제약 없는 무료 사용 보장에 힘입어, 미국에서는 무버블타입이 회사의 수익성을 위해 2004년에 무료로 개설할 수 있는 주체의 자격과 블로그 개수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는(그 이상은 유료) 쪽으로 사용자 라이센스를 변경하자마자, 자체 호스팅 블로거들이 너도나도 그 기회에 워드프레스로 갈아탔다. 무버블타입이라는 거인이 무료-오픈소스의 저력에 일거에 밀려난 순간이었다.

그런데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 이후에도 기조는 계속되었다. 뮬렌웩(Matt Mullenweg)과 동료들은 여전히 워드프레스 자체를 상품화하지도, 누구나 참여하는 개발문화를 위축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유용한 모듈들을 차기 버전의 기본 엔진에 통합하는 식으로 성능 개선에 대해서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갈수록 사용성은 물론이고, 설치와 업그레이드를 간단하게 만들어나갔다. 고작 2005년에 위지윅 에디터를 심었는데, 2007년에 위젯 구조, 2008년에 위키 방식의 문서변경 추적 기능, 모듈 업데이트를 별도 파일 업로드 과정 없이 사이트 메뉴 안에서 해결하는 편의까지 제공되었다. 시기별 포스트와 고정 페이지의 구분, 융통성 넘치는 주소체계 제공(일찌감치 카테고리별 RSS발행 기능이 기본이었을 정도로) 등도 기본이었다.

이쯤 되자, 워드프레스는 설치형 개인 블로그를 넘어 온갖 웹사이트의 구현엔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콘텐츠 많은 사이트가 구매해야 했던 본격적 상업용 CMS 프로그램들의 영역까지 대거 침식했다. 좀 더 세부적 관리 기능이 필요한 이들은 그쪽으로 전문화된 또 다른 유명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드루팔로 갔고(미국 백악관 사이트도 2009년 드루팔로 바꿨다), 그보다는 덜 민감하지만, 더 쉽게 웬만한 기능을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은 미련 없이 워드프레스를 채용했다.

2013년 현재 미국 기준으로 현존 웹사이트 다섯 개 중 하나가 워드프레스 기반이라고 추정될 정도로, 아예 전용 툴이나 생짜 html 꾸러미가 아니라면 웬만한 웹사이트는 워드프레스 위에 만들게 되었다. 사용 조건 제한 없이 공짜인 툴이, 꽤 성능이 좋고 성능 향상도 안정적으로 계속 이뤄진다. 도대체 이런 것이 판을 평정하지 못하면 무엇이 평정하겠는가.

한국에서도 영향력을 키우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태터툴즈 계열이 자체 호스팅을 주도했고, 티스토리 같은 서비스 사이트도 탄생하는 등 나머지 세계에서 워드프레스가 해온 역할의 상당 부분을 대신 이뤘다. 한국어화가 미비했고 모양이 좀 더 투박해 보였던 워드프레스를 사용하는 블로그는 200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도 희귀한 편이었다(일례로, 필자의 2009년 블로그코리아 인터뷰에서 그것이 화제로 다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태터계열의 총아였던 텍스트큐브가 닷컴서비스화되었다가 구글에 인수되고 구글이 사업을 접는 일련의 소동 속에서, 대형포털사이트에 의지하기는 싫어하는 적지 않은 블로거들이 워드프레스닷컴으로 눈을 돌리거나 이 기회에 다시 개인 호스팅으로 방향 전환하며 워드프레스 엔진을 채용했다. 또한, 그간 한국어 콘텐츠를 구현하는 것에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 디자인 테마도 더 많이 개발되었고, 정치적 검열 요구에 대한 구글-유투브와 국내 업체들의 대처 차이 때문에 국외 서비스 이용에 좀 더 관심이 모였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두 마리 토끼, 잡다

그럼 그동안 워드프레스를 만들어 무료로 세상에 풀고 계속 기능을 향상하고 있는 핵심 개발팀은 땅 파먹고 살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툴이 배경이 될수록 서비스의 수요도 커지기 때문이다. 뮬렌웩이 설립한 본격적인 개발업체 오토매틱은 워드프레스의 후속 개발을 계속 지휘하면서, 워드프레스 관련 서비스를 만들어 수익을 도모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워드프레스 기반 가입형 블로그서비스인 워드프레스닷컴이다. 개별 호스팅으로 자신의 페이지를 관리할 생각은 없는 사용자들 대상의 서비스인데, 일반 사용자는 무료지만 일련의 특수 기능 – 광고 제거, CSS 자유도 향상, 저장용량 확장 외 – 을 유료로 구입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현재 워드프레스닷컴은 현재 6천6백만 블로그를 호스팅하고 있으며, 이런저런 매출도 꽤 괜찮다고 한다(2012년 기준 4,500만 달러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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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관련 서비스업이 아니라 워드프레스 엔진 자체에 어떤 수익 장치를 강제한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독립 비영리 기관인 워드프레스 재단을 설립하여, 심지어 자기 회사조차 워드프레스 엔진의 오픈소스 정신과 무제한 이용 정책을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해버렸다. 개발자들의 밥벌이와 웹 매체의 이상 추구, 두 마리 토끼를 그냥 그렇게 잡았다. 또한, 이렇게 해서 지속해서 진화하며 계속 사용 조건이 없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갖춰졌기에 비로소 모듈, 디자인 테마, 분석작업, 관리 서비스 등 관련 산업이 손쉽게 번창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워드프레스의 궤적은 마치, 버너스-리경의 특허 포기 덕에 웹이라는 매체 기반을 마음껏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생겨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웹의 모습이 된 것과도 유사하다. 제한 없이 더 많이 개방하고 더 많이 공유하면, 그 과정에서 발전도 이뤄지고 사람들도 먹고살 수 있다는 원형적이고 순박한 사이버-낙관론이, 어쩌다 보니 정말 잘 작동해버린 경우다. 물론 워드프레스와 달리 그렇게 되지 못한 프로젝트들이 훨씬 많겠지만, 어쨌든 모범적일 정도의 성공 사례가 이렇게 눈앞에 하나 있다면 좀 더 한 쪽으로는 분석하고 한 쪽으로는 동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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