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으로 탄생시킨 즐거움 – 선천적 얼간이들 [IZE / 130919]

!@#… 게재본은 여기로. 참고로 같은 작가가 레진코믹스에서 발표한 2부작단편 ‘8-Bit Bastards’도 갈때까지달려보자 스타일의 유머를 잘 구현.

 

후천적으로 탄생시킨 즐거움 – [선천적 얼간이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느 집단에나 한 명쯤, 웃긴 이야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웃긴지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두 경향으로 나누어지곤 한다(물론 양쪽을 겸비하는 개그의 달인도 있지만). 하나는 정말 웃긴 소재를 가져오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정말 웃기게 하는 사람이다. 근래 가장 고르게 폭소를 주는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가스파드 / 네이버웹툰)이 바로 후자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의인화된 거북이인 주인공 가스파드, 그리고 닭, 생선, 개 등 여러 의인화된 동물로 표현된 주변인들이, 매사에 최대한 열심히 바보 같은 일을 벌이는 내용이다. 즉 생활툰, 그러니까 작가의 실제 생활에 대한 자화상인 캐릭터가 주인공 역할을 하며,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다닌 일들을 마치 라디오 사연 소개처럼 풀어내는 방식이다. 보통 이런 장르의 작품이 소재의 웃김에 의존하는 경우, 소재가 떨어지자마자(경험의 폭은 정해져있고 연재는 계속 되는 만큼 생각보다 빨리 떨어진다) 유머의 품질은 급락한다. 그럼에도 인기 유지를 위해 어설픈 인생철학으로 팬들의 공감대에 호소하기 시작하면, 확실히 몰락한다. 하지만 [선천적 얼간이들]처럼 소재의 웃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웃기게 하는 것이 특기라면, 흔들리지 않는다.

매주 새 연재분이 뜰 때, 이 작품에는 늘 “그런데 이게 다 실화라는 것이 개그”라는 내용의 리플이 달린다. 그만큼 매 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사건 자체는 작위적일 정도로 특출난 것들이 아니다. 바이럴하게 퍼지며 초창기에 이 시리즈에 유명세를 가져다준 히트 에피소드는,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 깡패한테 천진난만하게 돈을 뜯겼는데, 군대에서 휴가 나온 큰 형이 그 녀석을 잡아들인 사연이다. 매우 웃긴 내용이었지만, 사연 자체는 적당히 있을 법한 소동이다. 그런데 이야기 솜씨를 만나면서 비로소 포복절도급으로 향상된다. 선천적으로 웃긴 소재로 승부하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빵 터지는 재미를 입혀주는 능력이다.

웃기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적절하게 구사하는 패러디 장면, 그것을 담아내는 섬세한 그림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훨씬 중요한 장점은, 등장인물들 얼굴이 갑자기 야부키 죠나 베어 그릴스가 되는 것을 개그의 핵심으로 삼는 얕은 수를 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패러디나 기타 시각적 개그는 웃음을 극대화하는 이야기 흐름에 곁들여진 양념 정도다.

매 에피소드를 움직이는 것은, 캐릭터들의 일직선적인 박력이다. 태도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결국 해버린다. 열심히 할 이유가 없거나 아예 해보는 것이 이상한 것들도, 너무나 열심히 하고, 그 과정에서 ‘갈수록 태산’ 구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나의 일이 터지고, 열심히 해서 상황을 수습하려는 무렵 더 큰 일이 터진다. 그것도 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쓸 때, 상식선을 살짝 넘어갈만한 큰 일들이 터지며 어이없게 만들어 큰 웃음을 주는 식이다. 앞서 언급한 깡패 잡은 에피소드의 경우, 큰 형이 깡패를 찾아낸 것으로 적당히 끝나지 않는다. 한참 응징하고 있는데, 구경나온 아줌마들 사이에 실시간으로 소문이 과장되게 증폭되며 상황이 커지고, 옆 건물 교회에서 예배보던 사람들이 합세하며, 불량청소년 한 명 잡던 일이 순식간에 온 동네 거대 집회로 커진다.

이런 방식은 리듬감을 잘 조절하여 구현해내기가 상당히 까다롭지만, 성공해내면 매우 효과적이다. 특이한 감성의 광고 비디오를 찍어 공모전에 내놓은 것, 고생해서 캠핑을 갔는데 비가 온 것,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는데 일이 꼬여서 고생한 것 등, 모두 다채롭지만 그냥 흥미로운 수준의 사연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열심히 하는 주인공들이 맞부딪히는 점층적 생쑈가 합쳐지면, 희대의 괴영상 제작 과정, 근성의 고기 구이, 무의미하게 박진감 넘치는 서바이벌 일기가 된다.

보통은 생활툰 개그만화에 대해서 희망사항을 표현할 때, 소재 고갈에 빠지지 않기를 기원하게 된다. 하지만 [선천적 얼간이들] 같이 이야기 솜씨로 작품의 틀을 다잡아놓은 경우라면, 그냥 작가가 과중한 노동으로 쓰러지지만 않으면 나머지는 걱정할 것 없겠다 싶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돌이 굴러갔다는 소재만으로도 개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기세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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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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