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게 만드는 힘 – 만화로 듣는 올댓록 [IZE / 131121]

!@#… 게재본은 여기로.

 

듣고 싶게 만드는 힘 – <만화로 듣는 올댓록>

김낙호(만화연구가)

요즘 들어서는 많이 줄어든 듯 하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아티스트의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는 평론글이 함께 삽입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반적으로 그 글들은 음반을 낸 밴드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활동을 벌이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냈고, 마치 오프닝 밴드처럼 음반이라는 본 무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을 만들어냈다. 특히 락음악 쪽은 다양한 세부 장르들의 향연과 밴드들의 이합집산이 마치 무협지 같은 박진감을 주었다. 그런 역할을 만화라는 모습으로 수행하는 최강의 오프닝 밴드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만화로 듣는 올댓록>(남무성/네이버)일 것이다.

이 작품은 네이버 웹툰이기는 하지만, 웹툰 코너가 아니라 음악 섹션 아래 ‘오늘의 뮤직’란에서 읽어야 완성본을 경험하도록 되어 있다. 글로 된 기본 해설, 만화, 그리고 그 화에 관련된 음악들을 네이버 음악 서비스를 통해서 들어볼 수 있도록 패키지가 묶여있는 것이다. 마치 음반 속지 해설처럼,매 화는 락음악의 이정표 격인 밴드나 장르를 소재로 풀어가고, 길어도 한 두 화에 하나의 토픽을 간결 명확하게 끊어낸다. 원래 출판단행본 <페인트잇락>에서 시작한 작업을 아예 연재로 계속한 경우인데, 연대기 순서에 완전히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영향관계들을 엮어나가고 적절한 일화들을 섞어 넣는 솜씨가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지식/학습만화라고 할 수 있는데도 무언가를 학습한다는 느낌보다는 탁월한 재미를 주는 것은 바로 계보와 야사의 매력이다. 우선 계보란, 락음악의 흐름에 대한 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어떤 밴드나 장르를 다루더라도 그들이 어떤 식의 음악적 전통 위에 있는지 맥락을 잡아주는 것이다. 어떤 류의 음악을 즐기던 청년들이 모여서 이런 밴드를 만들었고, 그 밴드가 해체해서 누가 다른 밴드로 들어갔고, 또 그런 장르가 지겨워져서 다른 이들이 또 다른 음악을 시도했고 하는 역동적 세계에 관한 구수한 입담이다. 자칫하면 누구의 조상이 누구라는 식의 족보 찾기로 흐르기 쉬운데, 지나치게 세부적인 장르 명칭이나 기타 기술적 부분에 집착하기보다 큰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어 함정을 피한다.

야사는 음악가들이 겪은 여러 크고 작은 일화들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들을 적절하게 추려내서 다소 코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재미를 준다. 뒷이야기가 지니는 인간적 면모, 혹은 범접하지 못할 전설적 무용담은 락음악과 종종 연관 지어지는 특유의 허세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다만 야사는 적당히 걸러서 즐겨야 할 양날의 칼이라서, 출처를 확실히 관리하지 않다 보면 만화적 각색 속에서 그냥 잘못된 내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퍼밴드 ‘크림’을 다루는 화에서는 1966년 윈저 페스티벌에서 이뤄진 전설적 데뷔를 풀어내는데, 작품에서 그려진 모습과 달리 ‘더 후’는 크림 직전 순서가 아니라 하루 전에 이미 출연했고, 머디 워터스는 행사 라인업에 없었으며, 사실은 크림이라는 밴드명도 당시에는 아직 내걸기 전이었다든지 말이다 (참조).

이야기로서의 계보, 코미디 또는 전설로서의 야사가 잘 섞여 들어갈 때 <올댓록>은 최고의 락음악 입문서의 위용을 발휘한다(반대로 계보도 야사도 드러내지 않는 소수의 화에서는 재미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평범하게 교조적인 홍보물이 되기도 하는데, 국내에서 개최되는 여러 락 페스티벌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들이 좋은 예다). 90년대 중후반에 나온 수많은 락음악과 관련문화 평론 책들의 과도하게 위압적인 무게잡기와 한 발짝 떨어져서, 한번 읽고 나면 소개된 그 음악들이 당장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실용성이 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허세감 넘치는 포만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더 들어보고 싶은 관심을 만드는 평론이라면, <올댓록>은 하나의 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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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웹진 ‘IZE’ 연재글. 연재중인 웹툰을 다루며, 얕지 않되 너무 매니악한 선정도 피하며 고루 소개하는 것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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